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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物 ^ 소설

토정, 그 후 - 소설^토정비결(下-마지막) 토정이 세상을 뜬 지 5년 뒤인 계미년(癸未年, 1583년) 4월에 율곡은 다시 한번 십만 양병설을 주장하는 상소를 선조에게 올렸다. 그러나 동서 분당이 격화된 분위기에서 그의 주장은 조금도 반영되지 않았다. 토정의 의견을 가장 가까운 데서 임금에게 직소할 수 있던 율곡마저 다음 해에 마흔아홉 살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이때 율곡은 그와 동본(同本)인 이순신에게 임진 대환난을 이길 수 있는 비결을 전해 주었다. 이순신이 임진 대환난을 가장 크게 막을 인물이라는 것을 토정에게서 들어 알고 있었던 것이다. 율곡은 비결을 남겨 토정의 일이 헛된 것이 아님을 보증해주었다. 그 비결은 '伐木丁丁山更幽 毒龍潛處水猶淸'이었다. 바로 이 글을 해석하여 왜적을 물리치라고 말해주었던 것이다. 그리고 율곡은 .. 더보기
다시 찾아온 두무지 - 소설^토정비결(下-39) 힘을 잃어가는 구곡성을 보는 순간 토정의 죽음을 직감하고 아산현으로 달려온 정휴는 걸인청에서 하룻밤을 묵은 뒤 다시 토정에게 갔다. 정휴는 간밤에 토정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줄로만 믿고 있었는데 토정은 그때까지도 꼿꼿했다. 토정의 곁에는 역시 희수 그 여인이 앉아서 시중을 들고 있었다. 정휴가 방에 들어서자 여인은 옷가지를 챙겨들고 밖으로 물러갔다. "편히 쉬었는가?" "예, 워낙 먼길을 걸었더니 잠이 깊었습니다." "용우는 자네가 데려가주게." "예." "자네도 이제는 불도에 더 깊이 들어가게. 공연히 나를 따라다니느라 헛수고만 많았으니…" "형님…" "남아 있는 시간이 별로 없네. 묻고 싶은 게 있으면 어서 묻게." 토정은 숨을 약간 거칠게 쉬긴 했으나 음성은 한가닥도 흔들리지 않았다. 정휴는 그동안.. 더보기
마지막 일 년 - 소설^토정비결(下-38) 토정이 아산 현감을 발령받아 부임한 것은 무인년(戊寅年, 1578년) 봄이었다. 토정의 나이 예순두 살이었다. 토정은 아산에 부임하자 포천에서 그랬던 것처럼 우선 아산의 현황을 파악하였다. 그래서 만나는 사람마다 가장 어려운 일이 무어냐고 직접 묻곤 했다. 그때 나온 것이 양어장 문제였다. 아산의 양어장에서 나오는 잉어는 워낙 맛이 좋아 아산 지방의 특산물로 이름이 높았다. 서울의 벼슬아치들이 그것을 알고는 나랏님께 바치는 공물 품목에 넣었는데, 중간에 손을 대는 관리들이 많아 해마다 잉어 공물량이 늘어났다. 잉어 양식량은 늘 같은데 할당량이 늘어나니 백성들만 죽을 지경이었다. 토정은 그 말을 듣고 즉각 양어장을 흙으로 메꿔 폐쇄시켜버렸다. 잉어를 아예 산출시키지 않아 공물량의 많고 적고로 인한 시비가 .. 더보기
토정비결(하-37) 토정이 다시 돌아온 것은, 사라진 지 세 해만인 을해년(乙亥年, 1575)이었다. 화담 산방으로 돌아온 토정은 아무 일도 없었던 사람처럼 태연했다. 토정은 남루한 옷을 걸치고 몹시 초췌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정휴는 토정의 마음 고생이 컸음을 단박에 알아볼 수 있었다. 그동안 노심초사한 박지화가 겨우 한숨을 돌리긴 했으나 여간 노여움이 큰 게 아니었다. 그런데도 토정은 껄껄 웃으면서 박지화를 위로할 뿐 달리 변명을 늘어놓지 않았다. 다만 산방 학인들 앞에 비결서 한 권을 내놓고는 그동안 이 책을 지었노라고만 말했다. 이라고 겉장에 씌어 있었다. "형님, 이 책을 쓰시려고 갑자기 은둔하셨습니까?" "언젠가는 자네가 알게 될 것일세. 우선 책을 살펴보게." 정휴는 토정이 건네주는 비결서를 받아 찬찬히 읽어보.. 더보기
첨성단 - 소설^토정비결(下-36) 기사년 유월 초엿새, 강화도 마니산 첨성단에 국의 역학 대가들이 모두 모여들었다. 조선 팔도의 기운이 첨성단에 집결하였던 것이다. 하늘엔 구름 한 점 없었고, 대기엔 바람 한 줄기 없었다. 그리고 바다에도 파도 한 번 일지 않고 고요했다. 온 세상이 숨을 죽이고 이들의 모임을 지켜보고 있었다. 이 모임에 참석한 사람들의 면모는 어떠했는가. 토정 이지함을 비롯하여 박지화, 정휴, 정작, 전우치,남궁두, 휴정(서산대사), 서치무, 정개청, 남사고, 유정(사명당),명종주, 김술치, 여무소, 설영후, 고순부였다. 그리고 휴정이 데리고 나타난 유정. 그리고 지리산, 묘향산, 금강산, 설악산, 한라산 등지에서 따로 도가를 수련해온 도사들이 다섯 명 더 참석하였다. 서치무가 지리산에서 만난 명종주, 무정이 묘향산에서.. 더보기
용호비결 - 소설^토정비결(下-35) 토정의 예언은 적중했다. 다음해인 정묘년(丁卯年,1567) 유월 스무여드레, 명종이 서른넷의 젊은 나이로 승하하고, 칠월 초사흗날 선조(宣祖)가 열여섯 살의 어린 나이에 등극했다. 선조는, 명종의 동생이며 중종의 아홉째 아들인 덕흥부원군(德興府院君)의 셋째 아들이었다. 명종이 후사를 두지 못한 까닭에 결국 조선 왕조는 다시 정통으로 장자 계승을 하지 못하고, 방계의 후손으로 하여금 왕위를 잇게 했던 것이다. 임금이 바뀌고 조정이 어수선하던 때에 내의원에 있는 북창의 아우 정작이 토정에게 찾아왔다. 북창이 금강산으로 들어오라고 하니 가능한 한 빨리 상경하라는 것이었다. "형님께서 전갈을 보내오셨습니다." "뭐, 북창께서? 무슨 내용인가?" "금강산으로 오시랍니다." "나만?" "아닙니다. 정휴 스님도 함께.. 더보기
명종의 시험 - 소설^토정비결(下-34) 토정은 명종의 명을 받자마자 포천으로 갔다. 부인과 아들 산휘를 데리고 함께 갔다. 포천현에 도착하자 마중 나온 관리들이 새 현감을 영접했다. 관리들은 나발을 울리면서 신임 현감의 부임을 소리높여 외쳤다. 그 소리에 길을 가던 백성들이 고개도 들지 못하고 땅바닥에 엎드렸다. 하나같이 궁기가 흐르고 병색이 짙은 사람들이었다. 토정은 나발소리를 거두라고 명하고 환영 행사를 물리쳤다. 그리고 조용히 관아로 향했다. 논을 내려다보니 물이 메말라 그런지 벼가 잘 자라지 못하고 있었고 밭에는 누렇게 뜬 채소가 힘없이 자라고 있었다. 말에서 내려 손으로 흙을 한 줌 집어보니 모래흙이 버석거렸다. 용인땅의 차진 흙과는 영판 다른 흙이었다. 생명력이라곤 전혀 없는 흙이었다. 신임 현감 토정은 착잡하기만 했다. 이 땅과 .. 더보기
삼개나루 - 소설^토정비결(下-33) 임술년(壬戌年, 1562) 새해는 임꺽정 처형 소식과 함께 찾아왔다. 세 해 전 황해도에서 난을 일으켜 조정을 위압할 정도로 강성해졌던 임꺽정은 임술년 1월, 구월산 민가에 숨어 있다가 잡혀 처형되었다. 꽁꽁 얼었던 강이 풀리고 여기저기 아지랑이가 오르기 시작할 무렵, 지함은 제자들에 대한 강의를 마치고 안 진사 집 창고에 남아 있던 물건을 다시 내어다 팔기 시작했다. 말총, 도자기, 한지, 먹과 벼루 등 사두었던 물건은 모두 다섯 배에서 열 배까지 이익을 남겼다. 지함은 물건을 판 돈으로 안 진사에게 빌렸던 돈을 갚고, 나머지는 안 진사의 창고에 있던 쌀 등 주식을 사서 달구지에 실었다. 지함은 제자들과 함께 달구지를 여러 대 끌고서는 마포 삼개나루로 갔다. "선생님, 왜 굳이 삼개나루로 가시는 겁니까..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