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정이 다시 돌아온 것은, 사라진 지 세 해만인 을해년(乙亥年, 1575)이었다.
화담 산방으로 돌아온 토정은 아무 일도 없었던 사람처럼 태연했다.
토정은 남루한 옷을 걸치고 몹시 초췌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정휴는 토정의 마음 고생이 컸음을 단박에 알아볼 수 있었다.
그동안 노심초사한 박지화가 겨우 한숨을 돌리긴 했으나 여간 노여움이 큰 게 아니었다.
그런데도 토정은 껄껄 웃으면서 박지화를 위로할 뿐 달리 변명을 늘어놓지 않았다.
다만 산방 학인들 앞에 비결서 한 권을 내놓고는 그동안 이 책을 지었노라고만 말했다.
<토정비결(土亭秘訣)>이라고 겉장에 씌어 있었다.
"형님,
이 책을 쓰시려고 갑자기 은둔하셨습니까?" "언젠가는 자네가 알게 될 것일세.
우선 책을 살펴보게."
정휴는 토정이 건네주는 비결서를 받아 찬찬히 읽어보았다. 글이 역시 토정다운 명문이었다.
111 동풍에 얼음이 녹으니
마른나무에도 봄이 오른다.
(東風解凍 枯木逢春)
112 두둥실 보름달이 보기
좋으나, 세월에 닳고나면
손톱처럼 작아지네.
(望月圓滿 更有虧時)
113 버들가지에 앉아 우는 저
꾀꼬리, 털깃마다
황금빛이로세.
(鶯上柳枝 片片黃金)
정휴는 토정의 비결서를 읽으면서 그가 백성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가슴 뭉클하게 느낄 수 있었다.
특히 사람들이 궁금해 하는 것, 즉 언제 돈을 벌 수 있는가,
언제 관직에 오를까 같은 의문을 시적으로 부드럽게 풀이하면서 잘 다독거려주고 있었다.
"두둥실 보름달도 때가 되면 이지러져 마치 손톱 끝처럼 작아집니다.
사람이든, 짐승이든, 운이든,
그 무엇이든 오르다가 내려가고 내려가다가 올라가는 법입니다.
한없이 벼슬이 높아지기만 하는 것도 아니고 한없이 불운과 고통 속에서만 사는 게 아닙니다.
다만
전생에 죄를 많이 지은 사람은 그 값을 치러야만 되므로
다소 발복(發福)이 늦어지긴 하지만 결국 언젠가는 행운을 만납니다.
이 생에 못 누리면 다음생에 누리면 될 것 아닙니까?
그대 자신이 생각해서 올바른 삶을 살아가다 보면 반드시 좋은 날이 찾아올 것입니다."
"노력은 많이 했는데 소득이 없다구요? 빚이 있었는가 보지요.
하늘은 당신의 장부를 가지고 있다가 그런 데서 소득을 빼갑니다.
빚을 갚았다고 생각하십시오. 이 세상에 헛수고란 없습니다.
소득 없는 일이라도 자꾸 쌓이면 언젠가는 결실이 있게 마련입니다.
이 세상에 공짜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열심히 노력했는데 소득이 없다거나 일도 하지 않았는데
갑자기 금전이 굴러들어오는 것은 다 묵은 계산을 하는 것입니다."
"얼굴을 마주하고 서로 말은 하고 있지만 그대의 마음은 천산이 가로막혀 알 수가 없습니다. 도대체 무얼 생각하고 있습니까? 당신이 원하는 게
무엇입니까? 왜 여기에 왔습니까? 지금 하고 싶은 이야기는 무엇입니까?
무엇이 당신을 이토록 혼란스럽게 만들었습니까?
아닙니다. 바로 당신이 스스로 그렇게 한 것입니다."
"일을 내면 일이 있습니다.
이 세상은 당신이 하기에 따라서 일이 일어나기도 하고 없어지기도 합니다.
누가 주체입니까? 당신의 문제는 당신이 주체입니다.
부처도 신명도 하늘도 상관하지 않습니다."
"나무도 뿌리가 약하면 오래 살 수 없습니다.
사람도 마음의 뿌리가 깊지 않으면 몸뚱이를 놓치기 쉽습니다.
사람이 죽을 때에는 마음이 먼저 죽습니다. 마음이 강해야 몸도 강해집니다.
마음이 부리는 요술을 따라가자면 우리네 인생으로는 너무 짧아 따라가지도 못합니다."
"심산유곡에 핀 꽃이 아무리 아름다운들 누가 보아주겠는가고 한탄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아름다움은 그 자체로 빛나는 것입니다.
아름답다는 말을 들어야 아름다워지는 것은 아닙니다.
남을 의식한 아름다움은 아름다움이 아닙니다.
남을 의식한 학문도 학문이 아닙니다.
남이 아니라 당신이 중요한 것입니다."
<토정비결>은
민중의 사기를 북돋거나 주위를 경계하는 내용으로 가득 차 있었다.
경계와 위로와 희망을 동시에 주는 민중 계몽서로서 백성들이 삶을 살아가는 가치관을 정립해주었다.
모든 문귀 또한 조선 팔도에서 볼 수 있는 물상(物象)에서 딴 것으로,
산이나 들에 지천으로 널려 있는 들풀이나 잡목으로 백성들의 삶을 비유하였다.
그래서 글을 읽지 못하는 무지렁이도 한번 듣기만 하면 신수를 쉽게 알아들었다.
<천기비전>은
역학에 기본 소양이 있는 사람만 읽을 수 있는 책인데 비하여
<토정비결>은
조선 백성이면 남녀노소할 것 없이 누구나 가까이 두고 벗할 수 있는
친근하고 쉬운 내용으로 꾸며진 것이었다.
천지 자연의 법도를 준수하는 삼재(三才)의 하나로
인(人)을 본 토정은 천(天)과 지(地)에 조화하는 자연 철학을 설파했다.
이로써 역학이,
은둔 지사가 신비의 책으로 숨겨두고 비밀스럽게 보는 비서가 아니라,
그리고 관상감에서 금서로 묶어 다스리는 괴서가 아니라
백성들에게 가까이 다가가 함께 숨쉬며
애환을 나누는 생활 철학으로 자리를 잡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정휴가 이해할 수 없는 것이 있었다.
보통 사주는 하나하나 간지를 세우고,
대운과 대운수를 뽑는다. 그러고 나서 용신(用神)을 잡고, 격국(格局)을 잡는다.
그러고도 살(煞)이 있는지, 있으면 무슨 살인지 살핀다.
그런 다음에야
대운과 연운(年運), 월운(月運)을 용신과 비교해가며 길흉을 뽑는 것이다.
그런 것에 비해 <토정비결>은
주역의 괘(卦)를 그대로 응용하여 태세수(太歲數)와 여덟 괘로 수(上數)를 뽑고,
월건수(月建數)와 여덟 괘 가운데 여섯 괘로 중수(中數)를 뽑고,
마지막 하수(下數)는 여섯 효(爻) 가운데 세 효로 일진수(日辰數)를 뽑아
모두 144괘를 만들어 운수를 뽑은 것이다.
도대체 토정은 왜 중수에서 두 괘를 빼고, 하수에서 3효를 뺐을까?
111 112 113
121 122 123
131 132 133
141 142 143
151 152 153
161 162 163
211 212 213
221 222 223
......
단자리는 3진법, 십자리는 6진법, 백자리는 8진법으로
서로 다른 진법(進法)을 써서 끝나는 괘는 863이지만 실제 수는 모두 144가지밖에 되지 않는다.
그러면 나머지 240괘는 어디로 갔는가?
"형님,
중수를 뽑는데 왜 여섯 괘만 써서 뽑으셨는지요?
상수 뽑듯이 여덟 괘를 다 쓰시는 게 옳지 않습니까?
효도 여섯 효를 다 쓰시지 않고 왜 세 효만 쓰셨는지 그 까닭을 짐작하기 어렵습니다."
토정은 정휴의 질문이 당연하다는 듯이 대답했다.
"아직은 그 정도로 충분하다네. 그것만으로 선천을 보내고 후천을 맞아야 하네.
더이상 알면 사람이 많이 다치네."
토정은 단지 그럴 뿐 더이상의 설명은 달지 않았다.
정휴는 그것이 몹시 궁금했다.
비록 그 정도로충분하다고는 했으나 사람의 운명을 보는데 어찌 충분한 것이 있을 것인가.
주역을 따라 상수, 중수를 모두 여덟 괘로 잡고, 효도 원래대로 6으로 잡아
384괘를 만들면 운수를 더 다양하고도 정확하게 뽑아낼 수가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토정은
그렇게 하지 않고 그 절반도 되지 않는 144가지 운수만 뽑아냈다.
"하지만 형님,
삼개나루에서 쓰셨던 <천기비전>에 미치지를 못합니다.
이 책은 그에 비하면 너무 허술합니다.
<천기비전> 한 권이면
한 사람 한 사람의 운명으로부터 국가 대사까지 다 볼 수 있었는데,
그 책은 왜 굳이 없애 버리고 이 책을 쓰셨습니까?"
"조선 백성에게 꼭 필요한 책이라서 썼네."
"외람되나, 제가 써도 이것보다는 훨씬 잘 맞출 수 있습니다."
"제 운명을 속속들이 알아서 어쩌겠는가?
어린애한테 창칼을 쥐어줄 텐가? 마음을 전해야지."
"···"
"이 책을 율곡에게 전해주게."
"율곡에게는 왜 줍니까?"
"주면 저절로 이루어진다네."
정휴는 토정이 시키는 대로 율곡을 찾아가 <토정비결>을 내놓았다.
율곡이 <토정비결>을 받아 찬찬히 들여다보았다.
"어떻습니까?
율곡께서는 그 책이 복희나 문왕이 만든 하도 낙서에 비길 만하다고 보십니까?"
"허허허, 스님두."
"토정이 제갈공명쯤은 됩니까?"
"오히려 장자에 비견하는 것이 옳습니다."
"장자라구요? 장자같이 큰 인물로 비견하십니까?"
정휴가 놀라서 반문하자 율곡이 고개를 끄덕였다.
"장자를 토정에 담을 수는 있어도 토정을 장자에 담지는 못합니다."
"그러면 그 책을 쌀밥처럼 늘 먹고 지낼 만한 것으로 보십니까?"
"허허허,
어찌 책 한 권이 어디 주식만이야 하겠습니까?"
"그러면 콩, 보리, 조 같은 잡곡은 되겠소이까?"
"짖궂으십니다. 제가 토정 선생을 존경하는 것하고 그 문제는 전혀 다릅니다."
"밤, 대추 같이 가끔 맛볼 만은 합니까?" "허허허, 스님 참. 그게 맞겠습니다."
율곡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그 말에 긍정을 했다.
"밤, 대추는 주식은 아니지만 약으로 긴요하게 쓰입니다."
율곡이 진지한 얼굴로 한마디 덧붙였다.
정휴가 토정에게 돌아가 이 사실을 전하자 토정은 한바탕 웃어제꼈다.
"밤, 대추만으로도 황송하이. 그것으로라도 허기는 면할 수 있을 터이니."
"형님, 그 뜻을 알겠습니다."
"여보게 정휴,
자네가 내가 쓴 <토정비결>을 보고 다른 생각을 일으킬까봐 다시 이르네."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천기비전>을 태워 없애신 것과 같은 뜻이시지요?
보완하거나 고쳐서 운명을 너무 쉽게 보이지 말라는 말씀 아니십니까?"
"그렇다네.
정휴, 자네는 절대로 <토정비결>을 고치거나 첨삭하지 말게.
천기를 제대로 터득하지못하고서 천기를 누설하려 하거나 거스르려는 자는 크게 다친다네.
한 사람 다치는 게 아니라 여러 사람이 다치고, 세상이 다치고 우주가 다친다네.
함부로 <토정비결>을 환골탈태하려는 사람이 있다면 큰벌을 받을 것이네."
"앞으로도 태세수, 월건수에서 빠진 부분은 영원히 감춰지겠군요.
또 중간중간에 감추신 것까지…"
"눈 밝은 자는 알겠지. 그러나 그것을 글로 쓰려는 자가 있다면 자네들이 막아주어야 하네.
정휴, 남궁두, 전우치, 서치무, 정개청, 남사고. 모두 나서서 막도록 하게."
"그 이후에는 어떻게 이 책을 지킵니까?"
"그때 가서 막을 사람이 또 있을 걸세. 내가 부촉해 놓겠네."
며칠 뒤 율곡이 토정을 찾아왔다.
"선생님,
음양오행으로 운수를 보면 책을 배포할 수 없습니다.
그렇게 되면 관상감에서 금서로 지목해서 분서를 하게 됩니다."
"그러니 어쩌오?"
"음양오행이니 십간십이지니 하는 말씀을 버리시고, 팔 괘로써 고쳐주십시오.
그렇게 되면 조정에서 허락을 얻어 배포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대는 이 책의 가치를 밤, 대추씩이나 보았소?"
"그렇게라도 풍족하기만 하면 더 바랄 게 없는 게 백성들 살아가는 모습 아닙니까?"
토정은 율곡의 청을 받아들였다.
그래서
십간십이지와 음양오행을 쓰지 않고 책을 다시 다듬었다.
그러는 데 걸린 시간은 단지 사흘이었다. 율곡은 토정이 새로 고친 것을 선조에게 바쳤다.
선조는
<토정비결>이 백성들을 위로하고 희망을 준다는 율곡의 말을 듣고 <토정비결>을 읽어보았다.
그리고는 크게 탄복하여 토정을 불러들였다.
선조는
토정의 노고를 치하하고 <토정비결>을 쓴 연유를 물었다.
"전하,
전하께서 백성을 사랑하시는 마음의 만분의 일도 안되는 작은 정성으로 쓴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금조에 이르러
기근이 심하고, 질병이 크게 돌아 배를 곯고 횡사하는 백성이 부지기수에 이르렀습다.
그래서 여기저기에서 도적의 무리가 일어나고 산적이 활보를 합니다.
민심이 흉흉하여 백성들은 우왕좌왕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때에 요사스런 자가 나타나 이상한 기서, 참서를 들어 민심을 끌어당기면
백성들은 어리석은 마음에 그리로 달려가고 맙니다.
장차
이보다 더한 환난을 맞이하여 백성이 더 큰 고난에 빠지고 곤궁해지더라도
믿고 의지할 책이 하나 정도는 있어야겠기에 감히 지었나이다."
"그 마음이 하늘을 움직일 것이오.
그러나
이 책은 신수를 보고 운수를 점치는 책이므로 우리 유가에서는 꺼리는 것이 아니오."
"전하,
이 세상의 학문으로서 하도 낙서에서 나오지 아니한 것이 없습니다.
이 책 또한 주역을 근간으로 작성하였으니 국교를 받들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팔괘를 이용하여 책을 지었다는 것은 율곡에게서 이미 들었소.
그러면 율곡,
그대가 이 책을 민간에두루 배포해서 백성들이 쉽게 구해 읽을 수 있도록 해주시오."
율곡은 선조의 명을 받들어 <토정비결>을 인쇄해 널리 배포했다.
이로써 조선에서는
일반 백성이 스스로 신수를 볼 수 있는 <토정비결>이 세간에 나온 것이었다.
<토정비결>은 곧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지기 시작하였다.
그래서 지방에서 올라온 선비들은
한양에서 <토정비결>을 한 권 얻어가거나 필사를 해가는 게 큰일이 되기까지 하였다.
이로써 역학은 은둔지사가 신비의 책으로 숨겨두고 비밀스럽게 보는 비서나,
관상감에서 금서로 묶어 다스리는 괴서가 아니라,
백성들에게 가까이 다가가 함께 숨쉬며 애환을 나누는 생활 철학서로 자리를 잡게 되었던 것이다.
토정은 이후로도 임진 대환난 준비에는 전혀 손을 대지 않았다.
오랜만에 부인과 함께 집도 고치고 아들 산휘를 다독거리면서 단란하게 살았다.
그러나 박지화를 비롯해 정휴, 전우치, 남궁두 등은 계속 준비를 해나갔다.
토정이 가회동 집에 돌아온 지 한 달쯤 뒤에 토정의 형 지번이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토정은 형 지번의 유해를 홍성 선산에 모시고 조카 산해를 대신하여
직접 묘막살이 삼 년을자처했다.
임진 대환난 준비에 대해서는 역시 일언반구 언급이 없었다.
토정의 집안에서는 벌써부터 삼년 묘막살이로 고민이 많았다.
지번의 큰아들 산해가 묘막살이를 하게 되면 벼슬에서 물러나야 했으므로
앞길에 지장이 적지 않을 터였다. 그러던 차에 토정이 나서서 조카에게 말했다.
"산해, 듣거라. 너는 나라를 위해 일하는 몸이다. 지금 너는 묘막살이할 때가 아니다.
내가 삼 년을 지킬 터이니 너는 나라와 백성을 섬기는 일에 게을리하지 말아라.
무슨 이야긴지 알겠느냐?" "예, 숙부님."
토정은 홍성으로 내려갔다.
토정의 아들 산휘는 일찍부터 과거와 멀찌감치 떼어놓고 있었기 때문에
틈틈이 홍성으로 내려오라고 일러놓고는 생계를 이을 방도를 일러주었다.
생계를 이을 방도란 장사를 하는 것이었다.
조카들에게는 공부를 해서 백성을 다스리는 올바른 법을 배우라고 늘 다그치면서도
토정은 아들 산휘에게만은 한번도 그런 말을 한 적이 없었다.
토정이 어린 시절에
어머니 죽음에 이르러 장례를 치르면서 지관이 이른 말을 아직도 기억해서인 것만은 아니련만,
토정은 산휘에게는 글자 한 자 가르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지관은 그때 이렇게 말했었다.
"이곳에 묘를 쓰면
첫째와 둘째 아들 쪽으로는 영상이 줄줄이 나오지만 막내 아들 쪽으로는 영 벼슬 인연이 없게 됩니다.
다만 수백 년 지난 다음에는 막내 아들 쪽에서도 크게 될 인물이 나오게 됩니다만…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래서
지번은 딴 자리를 알아보자고 했으나 토정이 극구 형을 설득하여 그 자리에 묘를 썼다.
"당대에 영상이 나오면 되었지 제 아들이 무슨 상관이고 형님 아들이 무슨 상관입니까?
다 어머니 자손입니다."
그런데 정말 그 지관의 말이 맞은 것일까.
맏형 지번은 어려서부터 시원시원하게 과거 시험마다 척척 붙어서 현감,
군수를 거쳐 큰벼슬은 아니어도 부제조까지 지내다가 명을 다하고 세상을 떠났던 것이다.
그리고 지번 형의 아들 산해 역시 스물 한 살 나던 해에 진사가 되고,
그로부터 삼년 뒤인 스물 네 살 되던 해엔 식년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승문원에 등용되고,
그 이듬해에 홍문관 정자, 부수찬을 거쳐
그 다음해에는 병조 좌랑, 수찬, 이조 좌랑, 이조 정랑, 직제학 등을 거쳐
동부승지가 되는 등 벼슬길이 순조로웠다.
둘째 형 지무(之茂)의 아들 산보(山甫) 또한 영특했다.
증광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춘추관에 들어가면서 관직에 오른 그는 해미 현감,
정언 등을 지내고 수찬, 교리 등을 역임한 뒤 이조정랑에 올라 있었다.
그러나 토정 쪽은 달랐다. 토정 자신은, 친구가 사화의 칼날에 목숨을 잃고
약혼녀가 염병으로 처참하게 죽었다 해도 벼슬길이 꽉 막힌 것은 아니었는데도
그쪽과는 담을 쌓고 살았다.
토정의 아들 산휘도 어려서부터 서당이라고는 근처에도 가지 않았다.
사촌들은 늘 책을 끼고 다녔지만 산휘는 그저 놀이에만 정신이 팔려 여기저기 쏘다녔다.
토정의 아내는 그런 아들을 걱정했지만 토정은 그에 그리 크게 마음을 두지 않았다.
그래서 산휘는 이래저래 나이만 먹고 배운 것은 별반 없게 되었다.
그러나 심성이 유달리 곧고 착했으며 불쌍한 사람을 보면 도와주지 않고는 못배겼다.
그리고 아버지를 하늘 아래 누구보다도 존경해 시중을 도맡으면서
아버지가 시키는 일이라면 아무리 궂은 일이라도 가리지 않고 했다.
토정은 조카 산해와 산보가 어렸을 적부터 그 둘에게 학문을 가르쳤다.
형 지번이 아버지처럼 그를 가르쳤듯이 토정 또한 어리 조카들을 지극한 정성으로 가르쳤던 것이다.
지번의 묘 옆에 움막을 지은 토정은 그 움막에서 하루 두 번씩 형 지번에게 밥을 지어올리고
제문을 낭송하면서 나머지 시간에는 두문불출하고 책 속에만 파묻혀 지냈다.
그걸 두고 고향 홍성 양반가에서는 칭찬은커녕 크게 비웃었다.
중도에 하차한 현감이라고 비아냥거렸던 것이다.
게다가 양반이라면 하인을 시켜 묘지를 지키게 할 것이지 다 늙은 어른이,
그것도 동생이 그러는 법은 처음 보았다며 더욱 입질을 해댔다.
그러나 토정은 그런 이야기에 전혀 개의치 않았다.
다만 이따금 혼잣소리로 이렇게 한탄을 하기는 했다.
"그깟 사주,
역학이니 하는 잡술 가지고 어떻게 백성을 보살핀다고 감히 현감직을 넙죽 받았더냐!"
그러나 토정과 함께 움막에 거처하게 된 정휴에게는 이 때가 더없이 귀중한 시간이었다.
낮이면 하루종일 토정한테서 가르침을 받고 밤이면 천문과 지리를 익혔다.
홍성 선산에 있는 동안에도 토정은 이따금 먼발치서 날아오는 애절한 시선을 느꼈다. 그 눈은 제수를 마련하러 나간 장터에서도 느껴졌고, 여염집 담 너머에서도 느껴졌다.
그러나 그 시선의 실체를 좀체로 눈으로 잡을 수 없었다.
토정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면서도 그 시선에 자꾸 마음이 쓰였다.
토정이 묘막살이 삼 년 생활을 끝내고 얼마 안 되었을 때,
어느날 토정의 아들 산휘가 계룡산에 머물고 있는 정휴를 찾아왔다.
정휴는 그때 토정의 신상에 어떤 변화가 오고 있음을 감지할 수 있었다.
"아버님이 아산 현감으로 내려가셨습니다."
"아니, 다 늦게 무슨 현감 벼슬이란 말인가?"
"아버님이 임금의 명을 받아들이셨답니다.
제가 그곳에 아버님을 따라 갔다가 스님을 뵙고 말씀을 드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왔습니다."
<토정비결>이민간에 배포되면서 백성들이 몹시 좋아하자 선조는
토정이 형의 묘막살이를 마치기를 기다렸다가 불러 임무를 하나 맡겼던 것이다.
"토정,
선왕이 선생을 포천현에 떨어뜨려 궁지에 빠뜨렸다는 것은 나도 잘 알고 있소.
그러나
그때 하셨던 말씀이 당장 현실로 드러나 선왕께서 이미 승하하셨소.
이제 그 노여움을 풀고 아산현을 맡아서 마음껏 다스려 주시오.
이번에는 소를 각하하는 일이 없도록 각별히 애쓸 것이오."
토정은 이때 두말없이 어명을 받들었던 것이다.
정휴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형님은 도대체 알 수 없는 분이실세."
"아버님은 아산으로 부임하시기 전에 저희 가족을 위해 가장결 한 권을 지어주셨습니다.
앞으로
가계를 이끌어갈 지침과 변란을 당하여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가 하는 이야기가 들어 있습니다."
정휴는 이 또한 몹시 의아했다. 가족에게 가장결을 지어주었다니.
정휴는 토정이 마치 죽음을 준비하고 있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산휘가 돌아간 이후 정휴는 토정의 소식을 더 들을 수 없었다.
포천 현감을 지내면서 크게 실망한 어른이니 이번에는 또 얼마나 노심초사할까 하고
걱정만 할 뿐이었다.
그 뒤 정휴는 금강산으로 거처를 옮겨 수행을 하면서 임진년 준비를 계속하였다.
정휴가 구곡성을 본 것은 금강산으로 간 지 일 년도 채 되지 않은 때였다.
토정의 별이 꺼져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제서야 정휴는 토정이 왜 아산 현감직을 받아들였는지 조금이나마 알아차릴 수 있었다.
토정의 남은 목숨 일 년이 아산에서 소진되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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