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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物 ^ 소설

삼개나루 - 소설^토정비결(下-33)

임술년(壬戌年, 1562) 새해는 임꺽정 처형 소식과  함께 찾아왔다.

세 해 전 황해도에서 난을 일으켜 조정을 위압할 정도로 강성해졌던 임꺽정은

임술년 1월, 구월산 민가에 숨어 있다가 잡혀 처형되었다.
꽁꽁 얼었던 강이 풀리고 여기저기 아지랑이가 오르기 시작할 무렵,

지함은 제자들에 대한 강의를 마치고

안 진사 집 창고에 남아 있던 물건을 다시 내어다 팔기 시작했다.

말총, 도자기, 한지, 먹과 벼루 등 사두었던 물건은

모두 다섯 배에서 열 배까지 이익을 남겼다.
지함은 물건을 판 돈으로 안 진사에게 빌렸던 돈을 갚고,

나머지는 안 진사의 창고에 있던 쌀 등 주식을 사서 달구지에 실었다.
지함은 제자들과 함께

달구지를 여러 대 끌고서는 마포 삼개나루로 갔다.
"선생님,

왜 굳이 삼개나루로 가시는 겁니까?"
내용을 모르는 전우치가 지함에게 물었다.

그러자 정휴가 얼른 나서서 대답을 했다.
"팔도의 물산이 다 모여드는 곳이 그곳이라네.
그러니 팔자도 각각이고

운수도 저마다 다른 사람들이 모여 살 것 아닌가?

형님은 그런 곳에서 이 책을 쓰시려는 것이네."
"예."
남궁두가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정휴의 말이 옳다네.

그런 곳이야말로 사람을
관찰할 수 있는 가장 좋은 곳 아니겠는가?

물산과 인물로만 본다면 삼개나루 만큼 다양한 곳도 없을 것일세."
지함이 전우치와 남궁두를 따뜻한 눈길로 바라보면서 대답했다.
삼개나루에 도착한 지함은 마포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곳에

자그마한 흙집 한 채를 짓고 거기서 기거했다.

 

마포 강변 동막골 새우젓 동네였다.

흙으로 지은 집이라서 사람들은

그 집을 '토정(土亭)'이라고 불렀다.

 

사람들의 눈에는 양반이 천민보다 못한
초라한 흙집에서 사는 것이 기이하게 비친 모양이었다.
그 뒤로 지함의 흙집은 지함만큼이나 유명해져서
사람들은 아예 지함을 '토정'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토정 이지함은 마포에서 빈민 구휼과 인생 상담에 나섰다.

그곳이 바로 조선의 모든 물산이 집결하는 장소였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 어느 곳보다 갖가지 사연을 가진 사람들이 많이 드나들었고,

사람들의 인생살이 또한 부침이 심했기 때문에

토정에게는 안성맞춤이었다.
토정은 제일 먼저 세곡선에 싣고 온 곡식과 옷감 등을 창고에 넣어두고

그것들을 빈민들에게 조금씩 나누어주었다.

그리고 제자들과 함께 흙집에 살면서
정휴, 남궁두와 함께 사람 만나는 일을 했다.
전우치는 그의 얼굴을 알아보는 사람이 있을까봐
집안에서만 사람을 만났다.
토정의 아들 산휘도 가회동에서 종 한 명을 데리고 와서 허드렛일을 거들었다.

벌써 열네 살 소년이 된 산휘는

어렸을 때나 마찬가지로 아버지 토정을 지성껏 따랐다.

내의원에서 벼슬을 맡고 있는 북창의 아우
정작도 일이 끝난 저녁이면 마포로 달려와 토정의 일을 도왔다.
"자네들은 이 말을 명심하게.

사람들을 대하되 하늘을 보듯이 하게.

한 사람 한 사람이 다 하늘이네.
혹시라도 업수이 여기는 마음이 나거든 문답을중지해야 할 것일세.

그리고 문답 나눈 것을 꼭 기록하게.

그것을 놓고 저녁 때에 다시 한번 이야기를 나누도록 하세."
정휴, 전우치, 남궁두 세 사람은

토정이 가르치는 대로 사람들을 만나서

토정의 가르침을 시험하기도 하고,

확인도 하는 작업을 계속해나갔다.
빈민 구제 사업차 벌이는 일이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곡식이나 옷감 등을

아무에게나 툭툭 던져주는 것은 아니었다.

반드시 직접 만나보고 이야기를 듣고 나서야

쌀을 퍼주거나 옷감을 내어주었다.
이것이 바로 임꺽정을 통해서 배운 것이었다.
임꺽정은 빈한한 사람에게 무조건 재물을 나누어 주었지만

토정은 그 재물이 사람을 일으키는 작용을 할 때에만 주었던 것이다.

즉 재물로 해결될 일이면 그 문제를 풀기 위하여 주었지만

단지 가난하다는 이유만으로 곡식을 덥썩 집어주지는 않았던 것이다.
토정이 제자들에게 단단히 일러둔 게 있었다.

즉 그 누구든지 한번 도움으로 일어설 사람이 아니면

한푼도 주지 말라는 엄명이었다.
여러 번 도와주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다고 했다.
그것은 그가 게을러서 가난하게 된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그런 것까지는 책임질 필요가 없다는 말이었다.
"물이 흘러가는데 돌이 막혀 있거나 지푸라기가 뭉쳐들어 흐르지 못할 때

그걸 치우면 원래대로 잘 흘러갈 수 있다.

그러나 물줄기 자체를 돌리는 대역사는 사람이 하는 일이 아니다.

만일 그런 일을 하려는 사람이 있다면 하늘의 인가를 얻어야 할 것이다."
한번은 토정이 지방 군수로 떠나는 형 지번을 배웅하기 위해

아들 산휘와 함께 가회동 집으로 가고 없을 때 이런 일이 일어났다.
토정이 없는 토정에서는 정휴가 주로 사람들을 맞았다.

전우치와 남궁두, 정작은 환자들을 돌보느라
사람 만나는 일은 대부분 정휴의 차지였다.
그날 찾아온 사람 중에 노인이 한 사람 있었다.

노인은 오랫동안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는지 몹시 지쳐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피죽도 못 먹은 사람마냥 몰골이 서지 않은 몸이었는데

몇 시간이나 땅바닥에 쪼그리고 앉아 있었으니 더 형편없게 되었던 것이다.
그 노인을 본 정휴는 두말 없이 쌀과 비단 두 필을 꺼내주었다.
"이것을 요긴하게 쓰시고 힘을 내십시오."
그러자 노인은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정휴의 손을 꼭 잡았다.
"스님, 오늘 목숨마저 보전키 난망하였는데,
이것이라면 한 달 목숨은 얻은 셈이구료.

내 아들이 노름을 해서 가산을 탕진했어요.

당장 먹을 게 없으니 체면 불구 줄줄이 선 줄을

더 길게 만들어놓고 기다렸더니 이렇게 좋은 일도 있군요."
그 노인도 소문을 듣고 달려온 것이었다.
정휴는 노인의 말을 듣고 나서는

비단 한 필을 더 내주면서 노인을 위로했다.
"하루 목숨이니 한달 목숨이니 하는 절망적인 말씀은 거두십시오.

인명은 재천이라고 사람이 사람의 목숨을 함부로 논하는 것은

천명을 거스르는 행위입니다.

그믐달도 날이 가면 어느덧 잔뜩 차올라서 둥근 보름달이 됩니다.

휘영청 밝은 달빛을 받으면서 영달하실 날이 올 것이니

꾹 참고 기다리십시오.
사주를 살펴 때를 일러드릴 터이니 그것을 의지해 잘 살아가십시오.

그믐달이 보름달로 바뀌려면 열다섯 밤,

남들이 다 자는 시각에 동쪽 하늘에서 먼먼 서쪽 하늘로 힘겹게 뛰어다녀야 합니다.
사람도 꼼짝하지 않으면서 요행수나 기다리면 가난을 면할 길이 없습니다.

한 나라의 명운을 바꾸는 데는 뼈를 깎고 살을 찢는 아픔 같은

혁명이 있어서 사람도 많이 다치고 재물도 크게 잃게 됩니다.
이처럼 사람의 운명을 바꾸는 데에도 그만한 노력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노인장 사주와 아드님 사주를 불러주십시오."
노인이 사주를 적은 쪽지를 정휴에게 내밀었다.
정휴는 그 쪽지를 받아들고 간지를 세웠다.

그 때 마침 토정이 가회동에서 돌아왔다.

기왕 만나던 사람이므로 정휴는 토정한테 신경쓰지 않고 사주를 뽑았고,

토정도 잠자코 구경만 했다.
정휴가 사주를 다 풀고 나서 감정 결과를 노인에게 말했다.
"한 오 년 있으면 아드님에게도 때가 듭니다.

그때 큰일을 도모해서 가계를 일으킬 수 있으니

아들을 잘 타일러서 몸을 함부로 굴리지 않게 하십시오.

노인장 천수는 아직 넉넉하나,

강너머로 건너가 농사를 지으셔야 형편이 좋아지겠습니다.
노인장은 흙냄새를 맡아야 몸도 튼튼해집니다.
노인장의 부귀는 다 땅속에 묻혀 있으니

괭이질을 해서 파내십시오.

이곳 마포는 수(水)가 승해서 노인장에겐 이롭지 않습니다.

더구나 새우젓이나 팔아가지고는 이문을 내지 못할 사주입니다.

이 비단 세 필을 팔면 아쉬운 대로

부쳐먹을 밭은 좀 사들일 수 있을 겁니다."
노인은 머리를 푹 숙여 정휴에게 인사치레를 했다.
그리고 노인은 정휴가 건네준 쌀과 비단을 안고 문을 나섰다.
그때였다.

잠자코 보고만 있던 토정이 날쌔게 노인을 잡아끌더니 송골매 마냥

노인이 안고 있던 쌀과 비단을 나꿔채어 원래 있던 곳으로 집어던졌다.
"이 물건은 가지고 가나마나입니다."
정휴는 눈깜짝할 새에 벌어진 일이라서

뭐라 말도 못하고 멍하니 바라보기만 했다.

노인도 갑작스레 당한 일이라 어안이벙벙한 채 서 있기만 했다.
"산휘야.

너, 이 노인에게 밥 한 상 잘 차려서 잡숫고 가시게 해라.

몹시 배가 고프시다는구나."
"예."
노인은 산휘가 내오는 밥상을 보고 나서야 화를 내기 시작했다.
"아니,

젊은 사람이 늙은이를 놀려도 분수가 있지,
주었던 물건까지 도로 뺏는 건 무슨 경우란 말이오.
저 스님이 내 앞날을 살펴보고 팔자를 고쳐보라고 준 물건인데,

도로 빼앗는 까닭이 뭐요?"
노인은 소리를 버럭버럭 지르면서 산휘가 내온 밥상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그러자 토정이 노인보다 더 큰 음성으로 노인을 호되게 꾸짖었다.
"이보시오, 노인장.

보아하니 아드님 노름빚 갚으러 오셨군요.

아들의 노름빚이 쉰 냥도 넘지요?

비단을 팔아 그 노름빚을 갚으려는 요량이시지요?
그러면 아드님은 쌀마저 팔아 다시 투전판에 달려들 것이구요.
아들이 귀하다고 해서 그렇게 하시면 안 됩니다.
아들을 바로잡으시려면 도와 주시질 말아야 합니다.
노름빚은 아들이 돈 벌어서 갚게 하십시오.

노인장은 여기서 따끈한 밥이나 한 술 잡숫고 돌아가십시오.
우리는 꼭 필요하지 않은 일에는 도움을 드리지 않습니다."
그러나 노인은 자기는 거지가 아니라며

밥상을 발로 차던지고 돌아갔다.

토정이 아들의 사주를 물어보았으나

그에 대해서 대답도 하지 않고 나가버렸다.

토정은 그 노인의 옷소매를 굳이 잡지 않았다.
"워낙 여러 사람을 만나다보면 마음이 흔들리기도 할 것일세.

그러나 꿋꿋이 해내야 하네.

남의 일생을 보는 일이므로 신중해야 하네.

함부로 동정을 베풀다가는 큰일나네.

그리고 방비를 하네 하면서

사람의 운수를 그르치는 일이 없도록

겸허하게 임해야 하네."
토정을 찾는 사람들은

으레 한바탕 연설을 듣고나서야 돌아갈 수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그 말을 지루해 하지 않고 신중하게 들었다.

토정은 그들에게 주로 마음가짐에 대해서 말했다.
"돈은 그저 흘러가도록 해야 합니다.

돈을 잡아 가두거나 숨겨 두려고 하면

돈은 반드시 빠져나갑니다.

돈이 한 곳에 너무 오래 머물러 있으면 썩습니다.

돈은 사람 사는 데에 꼭 필요한 것이니 써야 합니다.
그러니 돈이 잠시만 나를 스쳐지나가도록 하십시오.
내 돈이라는 생각을 하지 마시고 내게 왔다가

잠시 머물고 떠나갈 손님이라고 여기십시오.

돈의 주인이라는 생각을 하면 안됩니다.

물이 흘러흘러 땅을 적시고 지나간 곳에는 곡식이 잘 자랍니다.

물이 곧 곡식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돈은 사람이 잘 살아가도록 해주는 것이지

돈이 곧 사람은 아닙니다.

그러니 사람이 돈을 위해 살면 안 됩니다.

십 년 동안 열심히 일해서

얼마를 모아야지 하는 어리석은 계획은 세우지 마십시오."
토정에게 찾아오는 사람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았고 사연도 가지가지였다.

가난한 사람,

다리가 부러진 사람,

아이를 못 낳는 여인,

남편을 잃은 과부,

관헌에 쫓기는 죄인,

대과를 눈앞에 둔 자제가 있는 사대부집 부인 등

토정을 찾는 사람들은 그야말로 각양각색이었다.
사람들의 질문은 대개 부귀영화를 언제나 누려볼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그런 속에서 매일같이 토정을 기웃거리는 여인이 있었다.

제자들이 혹 그 여인을 보고 무슨 일로 왔느냐고 하면

여인은 당황한 기색으로 얼른 사라졌다. 그

여인은 하루도 빠짐없이 토정 근처를 기웃거렸는데

토정 이지함이 멀리서라도 나타나면 금세 사라지곤 하였다.
이 여인은 차츰 토정을 찾는 사람들이 불어나면서
제자들한테조차 관심거리가 되지 못했으나,

여인은 변함없이 토정 근처를 하루에 한번씩 기웃거리곤 하였다.
한편 토정은 사람들을 만난 기록을 토대로

자료를 꾸준히 모아나갔다.

정휴, 남궁두, 전우치도 사람들을 만나면

감정 결과와 조치 사항을 적어 토정에게 보고했다.

그러면 토정은 제자들이 본 사주와 상담 기록을 유심히 살펴

잘못된 게 있으면 고쳐주었다.
그리고 저녁이면 네 사람이 모여서 한 사람 한 사람의 운명을 놓고

감정을 한 것이 맞는가 틀렸는가를 확인했다.
토정은 마음의 병을 고치는 기의(氣醫)임을 자처했다.
토정을 찾아온 사람들은 그 자신도 모르던 자신의 성격과 기질을

꼭꼭 집어내는 토정의 지혜에 입을 딱 벌리며 탄복했다.

토정은 그들의 증세에 따라 처방을 해주었다.

돈이 필요한 사람에게는 돈을 주었고,

어떤 사람에게는 사는 곳을 옮기라 일렀고,

어떤 사람에게는 직업을 바꾸라고 하였다.

운명을 헤쳐나갈 생각은 않고

그 안에서 우물쭈물거리고 있는 사람은 호되게 야단을 쳐

혼쭐을 내어 내쫓기도 하였다.
그러나 토정에서 사람을 맞은 지 두세 해가 되자
도저히 그 일을 계속해낼 수 없게 되었다.

토정의 소문이 널리 퍼지자 소문이 소문을 끌고 들어와
토정은 언제나 사람들로 득실거렸다.

사람들은 무슨 일만 있으면 토정으로 달려와 물었던 것이다.

택일, 작명, 사주에 약방문까지 부탁했다.
제자들은 마침내 토정에게 마땅한 지침서를 만들어 달라고 청하였다.

그러면 사람들을 대하기가 훨씬 수월해지고 시간도 덜 걸릴 것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책을 쓰고 있는 중이라네.

서둘러 완성하겠네. 조금만 참고 기다리게.

화담 선생님이 가르쳐 주신 것보다

훨씬 더 잘 맞는 운명 감정서가 될 것일세."
토정은 실험에 실험을 거듭하면서 글을 써나갔다.
토정은 글을 쓸 때에 늘 단전호흡을 먼저 하여

기를 고른 뒤 붓을 들곤 했다.

그것도 시간을 꼭 정해서 자신의 사주에 맞는 시를 골라잡아,

그 시가 아니면 붓을 잡지 않았다.

토정이 붓을 잡은 시각은

자시(子時)와 인시(寅時)로 하루에 두 번 글을 썼다.
토정은 글을 쓰는 중에 갑자기 며칠씩 집을 나갔다가 돌아오곤 했는데,

대개는 화담의 묘를 다녀오는 것이었다.

또 어떤 때에는 하루 종일 붓을 잡고

덜덜 떨면서 한 자도 쓰지 못하기도 했다.

어떤 때에는 한강이나 북한산으로 물상(物象)을 관(觀)하러 다니기도 했다.
토정이 그토록 정열을 바쳐 쓴 책이 마침내 완성되었다.

토정만이 아니라 정휴, 전우치, 남궁두도 손꼽아 기다리던 책이었다.
토정이 제자들 앞에 선보인 책은 <천기비전(天機秘傳)>이었다.

토정은 그동안 수집해온 자료를 토대로 계속 연구를 한 끝에

누구나 쉽게 자기 운수를 볼 수 있는 책

<천기비전>을 완전 탈고한 것이었다.

그리고는 아들 산휘와 글을 아는 종을 시켜 필사본을 세 부 만들었다.

그래서 그 필사본을

정휴와 남궁두, 전우치에게 한 권씩 주면서 이렇게 일렀다.
"이 책은 찾아보기가 아주 쉽게 되어 있으니

사주를 일일이 푸는 수고를 줄일 수 있을 걸세.

내가 그동안 사람들의 사주를 풀다 보니

어느 한 사람도 평생을 평탄하게 살아나갈 수 있게 되어 있지 않더군.
다치고, 병들고, 쪼들리고, 구설에 오르고…

나라도 그러하여 해마다 어느 지방에서는 가뭄이 들고,

어느 지방에서는 홍수가 나고,

어디에는 비적이 출현하여 재물 약탈에 부녀자를 겁탈하고,

또 어느 지방에서는 역질이 돌아

수없이 많은 사람이 앓다가 죽어가기도 하네.

인생살이도 그러하여 말로는 그 방비를 다 해줄 수가 없다네.
내 한 몸의 앞날을 챙기는 것도 어렵거늘

남의 운명을 지나치게 간섭해서는 안될 것일세.

그리하여 한번 도움으로 꼿꼿이 일어설 수 있는 사람이 아니면
아예 스스로 길을 찾아가도록 도와주세.

우리가 모은 재물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으니,

한없이 이러고만 있을 수도 없잖은가.

어쩌면 이렇게도 가난하고 불쌍한 사람이 한도 끝도 없단 말인가."
"이 책 한 권으로 모든 운명을 소상히 알아볼 수 있습니까?"
"나라에 생기는 변고로부터 한 고을 한 백성에게
일어나는 세세한 변화까지도 다 볼 수가 있다네.
시시각각의 변화까지도 다 읽어낼 수 있는 책이니 조심해야 하네.

이 책은 반드시 자네들만 간직하고 있게.

절대로 밖으로 반포해서는 안되네."
토정은 제자들에게 당부했다.
토정은 <천기비전> 원본을 화담의 묘에 바치기로 했다.

화담이 그토록 독려하던 책이

비로소 완성되었음을 고하기 위해서였다.
토정은 옻나무로 짠 궤짝에 <천기비전>을 넣어 단단히 밀봉했다.

그리고 묘에 구덩이를 깊게 팠다.
토정은 궤짝을 집어넣고 흙을 덮은 다음 묘를 향해 큰절을 올렸다.
"선생님,

조선에서는 처음으로 백성들의 개인 운세를 볼 수 있는 책을 썼습니다.

너무도 정확하여 저도 놀랄 정도입니다.

토정에는 연일 인파로 장사진입니다.

이것은 돌림병보다도 강하고,
태풍보다도 강하고,

난보다도 더 강한 것입니다."
이후 정휴를 비롯한 토정의 제자들은 <천기비전>을 바탕으로

사람들을 만나면서 그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었다.

<천기비전>이 워낙 잘 들어맞아서

찾아오는 사람들의 사주만 알면

즉시 그의 운명을 훤히 꿰뚫어볼 수 있었다.

덕분에 사람들과 상담을 하는데 전과 같이

시간이 많이 걸리지는 않았다.
토정과 제자들은 <천기비전> 덕분에

매일 몰려오는 사람을 더 많이 만날 수 있었다.
<천기비전>이 나온 뒤로

토정에 왔다 간 사람들의 입도 더욱 바빠졌다.

그 입들이 여기저기 소문을 냈다.

토정이 지은 신비스런 책이

사람의 운명을 척척 알아맞춘다는 것이었다.
그러던 어느 이른 봄날

궁에서 달려나온 관헌들이 토정에 들이닥쳤다.
"주상께서 부르십니다.

어서 가마에 오르십시오."
"대체 무슨 일이오? 영문이나 알고 갑시다."
"주상께서 부르시는데 이유를 물어 무엇하겠습니까?"
가마는 삼개나루를 떠나 날 듯이 달려 궁에 이르렀다.

토정에 대한 소문은 장안의 화제거리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조정 대신들 사이에서 회자되더니

결국 임금의 귀에도 들어갔던 것이다.
명종은 가난한 백성들이 토정의 말을 듣고
심기일전하여 열심히 살려고 노력한다는 말을 듣고
직접 그 책을 구하라고 명령했다.

책은 오래지 않아 명종의 손으로 들어갔다.
과연 일목요연하게 정리가 잘 된 글 속에는

유려한 문체로 적힌 운명 예언이 보석처럼 빛나고 있었다.
그동안 명종이

정치적인 문서와 중국 서적만을 읽으면서 느끼던

딱딱하고 근엄한 이야기가 아니라
당장 눈앞에 다가선 오늘 저녁의 문제요,

내일 아침의 일이 적나라하게 밝혀져 있었던 것이다.
명종은 이 책을 통하여 일반 백성이 무엇을 고통스러워하고

무엇을 원하는가를 조금이나마 가늠할 수 있었다.

그동안 막연하게만 느껴졌던 백성이라는 개념이

명종의 머리에 확실한 실체로 자리잡게 되었던 것이다.
어려서부터 궐내에서 자란 명종은

사실 백성이 무엇인지를 몰랐다.

왕궁에 출입하는 고관들만 보아 그저 그쯤 되려니 하고 생각했지

실상을 제대로 파악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마침내 왕으로서 그가 통치하는 일반 백성의 마음을

명종은 토정의 저서를 통해 비로소 읽을 수 있었던 것이다.
토정을 태운 가마가 재빠르게 달려 궐내로 들어와 어전에 대령했다.
토정이 배례하고 물러나 머리를 숙이자 명종은
감동어린 목소리로 토정에게 물었다.
"토정,

그대가 지은 비결서를 읽어보았소.

문체도 유려하고 글 다루는 솜씨가 재치 넘쳐 아주 잘 읽었소.

더불어 그대에 관한 소문도 많이 들어서

좋은 일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잘 알고 있소.

백성을 위하여 애써주어 고맙소."
토정은 마음 속으로 아차했다.
<천기비전>은

아직 단 한 권도 밖으로 유포한 적이 없었다.

토정은 명종이 보았다는 책이 의심스러워졌다.
"전하,

그 필사본이 제대로 된 것이온지 살펴보고 싶사옵니다.

어명을 내려주셨으면

한자 한자 정성껏 필사한 책을 진상할 수 있었을 텐데,

황공하여이다."
"다시 쓴 글자 하나 없이 누군가 아주 잘 베꼈소이다.

보시오."
명종은 토정에게 책을 건네주었다.

책장을 넘기면서 내용을 살피던 토정은

얼마 지나지 않아 책을 덮고 명종에게 말했다.
"글씨를 쓴 정성으로 보아 꼼꼼하게 베껴쓴 듯하오나

빠진 부분과 잘못된 곳이 적지 않사옵니다.
제가 다시 잘 필사하여 올리겠사옵니다.
허락해주시옵소서."
명종은 흡족하게 미소를 지으면서 윤허를 내렸다.
"그리 하시오.

도대체 사주라는 게 뭐길래

인간의 운명을 점칠 수 있는 것이오?"
명종이 궁금한 얼굴로 물었다.

아직 젊은 임금이지만 늠름한 기풍이었다.
토정은 천천히 사주에 대해 강의를 시작했다.
"인간이 운명이라는 말을 생각하고,

그 운명을 감정하기 시작한 것은

지금으로부터 오천 년 전
중국의 황하 유역에 살던 하(夏) 이전의
동이족(東夷族) 때부터라고 하옵니다.

옛 조선 번영기에는 중국보다 더 큰 나라가 조선이었사옵니다.
그때 복희씨(伏羲氏)가

황하에서 용마가 지고 나온 그림을 보고

뜻을 새겨 여덟 괘를 만들었다고 하옵니다.

이것이 하도(河圖)이옵니다.

그후 문왕(文王)이 낙서(洛書)를 만들었사옵니다."
"그거야 주역(周易)을 가리키는 것인데,

그렇다면 주역과 사주가 같은 것이오?"
"아니옵니다.

다만 사주가 주역의 이치를 차용하고 있으므로

그렇게 말씀드린 것이옵니다.

이야기를 사주의 기본 요소인 음양 오행으로 돌리면,

음양은 역에는 나오지 않고

사주 명리학에서만 쓰는 말이옵니다.

그렇다면 오행은 무엇이고,

또 이 오행을
근본으로 가지친 10간 12지가 무엇이냐 하면,

바로
별의 운행을 살핀 천문에서 따온 것이옵니다.

천문(天文)이라는 글자에서 알 수 있듯이,

천문이란
하늘의 글이니 바로 별의 움직임은 곧 하늘의 뜻이고 말씀인 것이옵니다."
토정은

오행의 원리 곧 상생(相生), 상극(相剋)의 이치를 소상히 말한 뒤에

10간 12지를 설명했다.

"오행은 가까운 별,

즉 목(木), 화(火), 토(土), 금(金), 수(水)의

다섯 개 별에서 오는 정기를 표시한 말이옵니다.

태양에서 오는 빛이 이 다섯 별에 들러서
우리 인체로 올 때는

저마다 다른 성질을 가진 빛이 되어 인체에 큰 변화를 일으킵니다."
토정이 설명하는 오행은

일찍이 왕사에게서는
들어본 적이 없는 생소하고 낯선 내용이었다.

명종은
토정의 힘있는 목소리와 새로운 해설에 압도되어
진지하게 설명을 들었다.
"간(干)이란

하늘을 둘러싸고 있는 별에서 오는
정기를 열 가지로 나눈 것이옵니다.

그러므로

오행을 더 자세히 나눈 것이라고 할 수 있사옵니다.

그리하여
세상은 십 년을 반복해서 셈을 하는 것이옵니다.
그리고

지(支)란 땅에서 감응한 열두 가지 성질을
짐승의 성격에 붙인 말이옵니다.

그래서 열두 달이 생기는 것이옵니다."
명종은 토정의 말에 대단히 흥미가 느껴지는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한편 사주 명리학은 의학과 직접 관련이 있어,
의학의 한 줄기라고 보아도 무방하옵니다.
<황제내경(皇帝內經)>이라는 중국 최초의 의서를 보면,

음양 오행과 10간 12지를 응용하여

신체를 잘 분석해 놓은 것을 볼 수 있사옵니다.

신체의 오장육부가 작용하는 근본을

하늘의 별의 운행에 빗대어 풀이하였으니,

하늘이 대우주라면

인간은 소우주인 것이옵니다."
토정의 말에 명종은 한동안 깊은 생각에 잠기더니
토정에게 물었다.
"토정,

그대는 내 운명을 볼 수 있겠소?"
토정은 소리나지 않게 큰숨을 들이마셨다.
"예,

사주만 불러주시오면 볼 수 있겠나이다.
하오나

국왕의 운명은 곧 우리 대조선의 운명,

소홀히 다루어서는 아니 되오니

좌우를 물리쳐주시옵고
사관도 물려주옵소서."
"괜찮소.

대신들도 함께 듣는 게 좋겠소."
대신들도 명종의 말에 모두 동조하였다.
토정은 명종을 경계하고 있었다.

말 한마디가
예기치 않은 날개를 달고 궐내를 휘젓고 다니다가
자칫 그 불똥이 애매한 사람에게 튀면 그걸 누가 감당하랴.
벌써 20년이 다 되어가는 특정기 사건이

바로 엊그제 일만 같았다.

그 당시에 친구 안명세에게 참수형을 명하고

토정을 잡으라고 지시했던 그 임금 명종이

지금은 그를 친히 불러 자신의 앞날을 살펴봐 달라는 것이었다.
"아뢰옵기 황송하오나

전하의 사주를 보기 전에 이 말씀을 먼저 올리고자 하옵니다."
"말씀해 보시오."
"세종조에 황희라는 정승이 있었사옵니다."
"있었지요."
"그분이 하루는 부인에게 이렇게 말했다 하옵니다.
'부인,

내가 똥을 누었는데

파랑새 한 마리가
항문에서 나와 포르르 날아갔소.

괴이한 일이니 아무에게도 말하지 마시오.

그런데 얼마 후에

세종대왕께서 황희에게 묻기를

대감 항문에서

봉황새
수십 마리가 나와 날아갔다는데 사실이오?'
하시더랍니다."
"거 참, 괴이한 일이로고.

정승이 부인에게만 한 얘기가 어느 결에 임금께 전해졌단 말이오.

게다가
파랑새가 봉황으로 바뀌고,

한 마리가 수십 마리로 늘어났으니…"

"이렇게 소문이란 무서운 것이옵니다.

그러니 제가 지금 올리는 말씀이

어떻게 날개를 달고 퍼져나갈지 지극히 염려되나이다."
"내 그런 일이 없도록 약속하리다."
"전하께옵선 더이상 후사를 얻기 어렵사옵니다.
그러니

미리 대통을 전할 사람을 정하시어

장차 이 나라의 앞날을 밝고 쾌청하게 하시옵소서."
토정은 그동안 왕에 대해 생각했던 근심을 털어놓았다.
때는 병인년(丙寅年, 1566),

명종이 즉위한 지 21년째 되는 해였다.

12살의 어린 나이에 임금의 자리에 오른 명종의 나이 서른셋,

남자로서 한창인 때였다.

인순 왕후 심 씨에게서

아들을 얻어 세자로 책봉하였으나

이 세자가 열세 살 되던 해에 죽어

대가 끊기고 말았다.
그것이 3년 전의 일이었다.

그 이후 명종은 후사를
얻기 위해 애를 쓰고 있으나 여의치 않았다.
"서두르셔야 합니다.

전하의 여명이 그리 길지 않사옵니다."
게다가 명종은 명이 짧을 것이 틀림없었따.

그런데
후사도 없는 임금이 후계자를 지목하지 못한 채 죽고 나면

이 나라 조정은 왕권 다툼으로

다시 피바람이 몰아칠 게 뻔했다.
토정은 그런 일을 막기 위해 감히 임금의 심기를
불편하게 할 말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조선 이조는 왕통이 혼탁했다.

그만큼 왕권도 약했다.

그래서 이따금 왕권을 강화하려는 의도에서
왕자의 난리가 일어났는데 그것이

네 번에 걸친 사화였다.
조선 이조의 왕위 세습은 전통군주제도에 의거한 대로

장자가 정통으로 물려받은 경우가 거의 없었다.
13대인 명종대까지 4명밖에 안 되었다.

그 중에서도
문종이 2년,

단종이 3년,

인종이 1년 등

재위 기간이 극히 짧아 제대로 정사에 참여해 보지도 못했고,
연산군은 그나마 쫓겨났다.
장자 계승을 한 왕 가운데 왕 노릇을 제대로 한 사람이 없는 것이다.

게다가

장자 세습이 안 된 왕 중에는

태조 이성계를 시작으로

태종 이방원,

세조,
중종,

명종까지

자기가 직접 나섰든

외척이 빼앗았든
왕위를 찬탈해서 차지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고려는 34대 임금 가운데 28명이 순리대로 왕위를 이었고

이들은 많은 치적을 쌓았다.
풍수지리학자들은

왕위 세습이 정통으로 이어지지 않는 까닭을 한양의 지세에서 찾았다.

즉 삼각산이
북에서부터 곧게 남으로 뻗어내려오다가

끊어지면서 빗나갔기 때문에

장손보다는

다른 손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조선 이조의 왕 가운데

장자는 즉위하자마자 병사하거나

이유없이 요절하는 경우가 많았고,

오히려

세종이나

성종,

영조
같은 차손(次孫)이 더 치세를 잘했던 것이다.
"뭐, 뭣이라고?"
명종은 토정의 이야기를 듣고는 얼굴색이 창백해졌다.
지난 해

수렴청정을 해오던 어머니 문정왕후가 죽자,

그를 등에 업고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던
윤원형이

관직을 삭탈당한 채 고향 마을로 쫓겨나 그곳에서 죽었으며,

제주도에 유배당했던 승 보우는
제주 목사 변협(邊協)에게 피살됐다.
그제서야

비로소 임금의 권위를 되찾은 명종은
인재를 고르게 등용하여 선정을 펴보려고 노력하는 중이었다.
명종의

눈꼬리가 치켜올라가면서

이를 꽉 문 입술에서는 신음이 흘러나왔다.
"이런 불충을 감히…"
대신 한 명이 성을 내며 나섰다.
그 대신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다른 대신들이 들고 일어났다.
"저런 요망한 자를 보았나?"
그들은 더 큰 목소리로 호통을 쳤다.
"전하,

이런 엉터리 사주쟁이의 말은 한마디도 듣지 마옵소서.

궤변일 뿐이옵니다."
"전하,

당장에 저 자를 하옥시키시옵소서.

감히
어전에서 불충한 말을 함부로 늘어놓다니…"
"전하,

저 자는 일찍이 특정기 사건 때 참수된
안명세란 자의 죽마고우이옵니다.

감히 주상 전하께
원한을 품고 아뢴 말씀임에 틀림없사옵니다."
명종은

더이상 아무 소리를 내지 않고

토정을 노려다보았다.

그러나

토정은 아무런 흐트러짐 없이
낭랑한 목소리로 다음 말을 아뢰었다.
"파랑새 소리가 너무 시끄럽사옵니다."
명종은

침통한 목소리로 명령했다.
"이보시오, 토정.

밖으로 나가 잠시만 기다리시오."
토정은 절을 하고 물러났다.

안에서는 엄히 다스리라는 대신들의 목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토정은 어깨를 딱 편 채 버티고 서서 명종의 명을 기다렸다.

궐내 사람들이 그런 토정을 보고 혀를 차며 안타까워했지만

토정은 조금도 근심스런 얼굴을 하지 않았다.
이윽고 좌상이 나와 토정에게 어명을 전했다.
"그대가 그렇게 세상을 훤히 내다보고 계책이 분명하다 하니,

전하께서 한 가지 일을 맡기셨소."
"무슨 일이옵니까?"
"포천 현감에 그대를 제수하셨소."
"포천 현감이오?"
"그만한 지혜와 경륜을 가진 사람이

나랏일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불충이라고 하셨소.

그러니 직접 백성을 다스려보라 하셨소."
포천. 산간 지역의 척박한 땅.

굶어죽는 백성이 부지기수인 고을,

팔도에서 제일 가난한 현이었다.
"무슨 뜻이옵니까?"
"그대의 능력을 시험해보고자 하시는 것이오.
그대가 그렇게 세상 일을 꿰뚫어보고 있다면

가난한 현 하나쯤은 거뜬히 다스려서

그 고을 백성들을 구제할 수 있지 않겠느냐는 말씀이셨소."
"전하께서 저에게 벌을 내리시는 것이로군요."

대궐을 나온 토정은 마포로 달려갔다.

그리고
정휴와 남궁두, 전우치를 불러모았다.

제자들이 방에 모이자 토정은 명종에게서 받아온

<천기비전>을 그들 앞에 내놓았다.
"누가 이 필사본을 만들었는가?

임금께서 읽고 계셨네.

정휴, 자네 짓인가?"
정휴는 토정이 내민 책을 보더니 금세 수긍을 했다.
"예, 형님."
"왜 그랬는가?"
"내의원 정작에게 <다선기(茶仙記)> 한 권을 준 적이 있습니다.

두륜산에서 얻은 책 말씀입니다.

그때 정작에게서 궐내에서도

<천기비전>을 찾는 사람이 많다는 이야기를 듣고

제가 필사본을 한 권 만들어주었습니다."
"언제 주었더란 말인가?"
"지난 달에 주었습니다."
"다른 책은 또 없는가?"
정휴는 고개를 푹 수그렸다.

그러자 남궁두가 나섰다.
"저, 선생님.

그 책이 아주 잘 맞는다고 소문이 자자한데

더 많이 만들어 배포하시는 것이 좋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무슨 소린가?

내가 자네들에게 이르지 않았던가,
이 책을 밖에 유포시켜선 아니된다고!"
정휴를 두둔하는 남궁두의 말을 끊으면서

토정이 역정을 내었다.
"이러고서야 어찌 자네들이 내게서 공부를 했다고 할 수 있겠는가.

내 뜻을 이렇게 몰라주니 몹시 답답하이.
이 책은 밖으로 나가면 창이나 칼보다 더 위험하네.
하루 아침에 낙엽지듯 우수수 떨어지는

선비들의 목을 보지 않았는가.

함부로 천기를 누설하면 그 화가 발설자에게 미치는 법이라네."
"죄송합니다, 형님.

정작 그 사람이 워낙 간청하길래…

형님의 깊은 뜻을 미처 알지 못하고…"
정휴가 토정에게 사죄를 청했다.
"알았네.

자네가 직접 나서서 그 책들을 거두어들이게.

벌써 몇 권이나 필사되었는지 모르는 일,

한 시라도 빨리 거두어들이도록 하게.

화급한 일일세.

이 책이 잘못 쓰이면

자네나 나뿐만 아니라 여러 사람이 큰 화를 입을 것일세."
"명심하겠습니다.

곧 그렇게 하겠습니다."
"기왕지사 이렇게 되었으니 내가 자네들에게 다짐을 받아야겠네.

자네들 실력으로 몇 년만 애쓰면 한 개인의 운명은 물론

국사의 먼 일까지도 자세히 적시해낼 수 있을 것이네.

허나,

그렇다고 해서 그런 내용을 책으로 써서 무슨 비결(秘訣)이니
비기(秘記)니 해서 세상에 내놓을 생각은 아예 하지 말게.

그래서는 절대로 안 되네.

그런 사람은 내 제자가 아닐세.

아니, 그런 사람은 절대로 도에 이를 수 없네."
"알겠습니다.

함부로 남의 운명을 감정하는 것을 삼가겠습니다.

한참 묘리를 터득해가는 중에 하도 잘 들어맞는 게 신기해서 그랬습니다.

형님의 깊으신 뜻은 헤아리질 못하였습니다.

제가 직접 돌아다니면서 책을 거두어들이겠습니다."
"한 권도 빠짐없이 거두어들이지 않고는 날 볼 생각을 말게."
토정은 역정을 거두지 않았다.
이튿날부터 정휴는 내의원 정작에게 찾아가서
필사본이 어떻게 다른 사람들의 손을 타고

퍼지고 있는지 물어 하나하나 거두어들였다.

하루라도 빨리 남김없이 거두어들이는 것이

토정의 뜻을 행하는 것이고,

용서를 받을 수 있는 길이었다.

아니 재앙을 미리 막는 길이기도 했다.
정휴는 며칠 동안 숨이 가쁘게 뛰어다닌 끝에 그가 필사해 주었던 책과,

그것을 다시 필사한 책 다섯 권을 다 찾아내었다.
토정은 그것으로 정휴에 대한 질책을 끝냈다.
"토정은 이제 폐쇄하겠네.

지금까지 우리 네 사람이 열심히 애를 썼으니,

이제 이것으로 족하이."
"<천기비전>은 어찌 할까요?"
"나중에 필사한 것들은 모두 불질러버리고,

애초 자네들이 필사했던 것들만 간직하고 있게.

절대로 백성들에게 유출시켜서는 안 되네."
"토정이 없어지고 나서도 말입니까?"
"그렇다네."
정휴와 남궁두와 전우치는 토정을 폐쇄한다는 말에 무척 아쉬워했다.

그러나 일에는 때가 있는 법이었다.
"형님,

그렇다면 임꺽정이 하고자 했던 일과

우리가 한 일의 차이점은 무엇입니까?

우리도 중도에 포기하면 임꺽정이나 한가지 아닙니까?"
전우치가 눈물을 글썽이며 토정에게 따지듯이 물었다.

목숨까지 걸고 제 나름으로는

임꺽정의 군사 노릇까지 하면서 난에 참여했던 전우치였다.

그래서 그는 망나니의 칼에 날아가버린 임꺽정의 소망을
토정에게서 실현하리라 마음먹고 있었던 것이다.
"임꺽정과 우리가 다른 것이 딱 한 가지가 있네.
임꺽정은 백성을 위해서 오로지 주려고만 했지만
우리는 백성들이 살아가는 방법을 알려주려 했지 않은가."
그러나 전우치는 여전히 고개를 푹 수그리고
임꺽정과 함께 처형당한 옛 동료들을 떠올리며 몸을 떨었다.

그때 짐짓 모르는 척 남궁두가 나서서 다른
말을 꺼내어 머쓱한 분위기를 돌려놓았다.
"그래도 제일 보람 있는 일이었습니다.

세상 사는 이치를 진하게 맛보았습니다.

다시는 이런 멋진 경험을 할 리가 없을 터,

오래도록 생각날 것입니다."
그제서야

전우치가 고개를 들어 토정에게 한마디 기분 풀어질 말을 건넸다.
"난리를 치른 뒤같이 허전합니다.

그러나 임꺽정과 함께 의적질을 하던 시절보다는 훨씬 기쁩니다."
정휴는 아무 말도 꺼내지 못했다.

토정의 폐쇄는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었다. 아직 돈이 여유가 있었고,
사람들 발길도 끊이지 않았다.
정휴는 토정 폐쇄의 원인이 자신에게 있는 것 같아 죄스러웠다.

자신이

<천기비전>을 밖으로 나돌게 한 것이 주원인인 것 같았다.
그런 정휴의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토정이 담담하게 말했다.
"백성이 어디 마포 백성뿐이며 조선 백성뿐인가.
임꺽정이 어디 황해도 백성만을 위해서 그렇게 목숨을 바쳤던가. 그렇지 않다네.

나는 나를 위해 일했을 뿐이네.

그리고 자네들이 그 무엇을 위해 일했다고 생각하고 있었든지 간에

자네들 역시 자네들 자신의 삶을 살았을 뿐

누구를 위해서 무엇을 했다고는 생각하지 말게.
이 세상에서 탐관오리가 사라지지 않는다면 제 마음 속에

바로 탐관오리가 들어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하네.

우리는 우리들 자신을 위해서 이곳에서 생활했을 뿐이고,

더 중요한 것은 우리들 일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것일세.
우리 모두 난리를 크게 치르긴 했으나

모두 목숨을 부지하고 있지 않나.

그것으로 우리들의 일은 앞으로도 계속되는 것이라네.

이 말을 궤변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되네."
세 사람 모두 고개를 수그렸다.
토정이 폐쇄되면

정휴, 전우치, 남궁두는 제각기 산으로 돌아갈 것이었다.

세 사람 다 속세에 묻혀 살 사람들이 아니고

저마다 하던 일이 있기 때문에 한양에 눌러살 이유가 없었다.
"내겐 내 일이 따로 있으니 다른 생각들 말게.
일에는 언제나 시작과 끝이 있는 법,

이 일도 시작이 있었으니 끝도 있는 것일세."
이튿날 토정은 그가 선언한 대로 토정을 폐쇄했다.
문을 연 지 네 해 만이었다.

폐쇄라고 해봐야 토정을 찾는 사람들을 맞지 않는 것뿐이었다.

산휘가 종과 함께 문간에 서서

찾아오는 사람들을 일일이 돌려보냈다.
"토정은 이제 폐쇄합니다.

선생께서 더이상 여러분의 상담을 받지 않으신답니다."
정휴, 남궁두, 전우치는 제각각 짐을 싸들었다.

곳도 정해놓지 못한 상태에서

망연히 짐을 꾸리고 있는데 토정이 정휴를 불렀다.
"이보게,

내가 조정의 모함으로 이번에 포천 현감이 되었네."
"현감이 되는 게 모함이라니요?"
"말로만 그런 것일세.

포천이 어떤 땅인가?

농사도 잘 되지 않고,

물산도 넉넉하지 않아서 굶는 백성 투성이라네.

내가 팔도를 다니던 중에 그곳에 들른 적이 있었네.

관아 창고는 명(明)을 드나드는 사절들이 오갈 때마다

얻어가고 빼앗아가서 남은 것이 없어,

창고에는 빈민 구휼은커녕 관리들 먹을 쌀조차 없었네."
토정은 포천으로 떠났다.

처음으로 가족을 다 이끌고 나들이가듯 단출한 짐을 들고 갔다.

토정과 부인, 그리고 아들 산휘 등

세 식구가 단란하게 모여 보기도 오랜만이었다.
정휴는 오랜만에 고향 보령을 찾아보기로 하였고,
남궁두는 원래 있던 계룡산으로 갔으며

전우치는 그가 한때 산적의 군사로 있던 황해도 구월산으로 들어갔다.

정휴는 보령으로 가는 길에 내내 허전한 마음을 가눌 길 없었다.

계룡산까지는 남궁두와 함께 동행을 해서 그런 대로 쓸쓸한 마음이 덜 했지만,

막상 남궁두와 헤어지면서부터는 갑자기 외로움이 밀려들어
다리를 제대로 가눌 수 없을 정도로 힘이 쑥 빠졌다.
들녘은 스산한 바람이 쓸고 지나가 그렇지 않아도 쓸쓸한

정휴의 가슴을 어지럽게 했다.
왜 이럴까?
정휴는 곰곰이 그 까닭을 짚어내보았다.
무엇 때문인가?
토정 때문이었다.
나에게 토정은 무엇이란 말인가?

불도(佛道)를 닦는 중으로 자처해온 내가 고승 대덕도 아니요,
불문(佛門)에 귀의하지도 않은 토정을

그토록 따라다닌 까닭이 무엇이란 말인가?

게다가 유림이라면 누구나 도가 잡술(道家雜術)이라고 얕보는 것을
탐구하고 있는 토정을 무슨 대학자나 대선승인 양

우러르며 따라다닌 까닭은 무엇인가?
정휴는 스스로에게 던진 물음에 답을 할 수 없었다.
정휴는 지금 토정의 곁을 멀리 떠나왔다.

언제 다시 만나자는 기약도 없이 헤어졌다.

정휴는 그 한 가지 때문에 이리도 심약해진 것이었다.
"네 부처는 계룡산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한양에 있구나."
정휴의 귀에 용화사 방장 명초가 준엄하게 꾸짖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말이 맞았다.

정휴는 불법에 귀의했으면서도 마음은 항상 토정에게 가 있었다.
그런데 오직 하나인 그 귀의처를 떠나왔으니

정휴가 마음의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정휴는 계룡산을 지나가면서도

고청봉 용화사에는 들를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런 마음으로는 불전(佛前)에 서고 싶지 않았다.
부처도 그랬다지 않은가.

'깨달음' 그 엄청난 산봉우리를 올라서자 갑자기 허무해지더라고

훗날 실토했다는 것이었다.

'깨달음'이라는 그 목표가 이루어지는 순간 갑자기 밀려드는 허무에 눌려,
부처는 그가 그동안 느꼈던 그 어떤 때보다 감내해내기 어려운 고뇌에 빠졌다.

그동안 그는 '깨달음'이라는 커다란 목표를 향하여

아름다운 아내 야수다라비와 이별할 수 있었고,

모든 권력과 영화가 보장되는 궁을 버릴 수 있었고,

배고프고 춥고 쓰린 6년 고행을 해낼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막상 '깨달음'을 이루고 나니 목표를 잃고 좌절에 빠졌다.
부처의 좌절,

부처의 고뇌.

부처도 좌절하고 고뇌하는가.
정휴는 그의 목표 토정을 잃고 방황하는 것이었다.
그것을 어찌 좌절이라고 할 수 있고, 고뇌라고 할 수 있단 말인가.
정휴의 마음은 진정되지 않았다.

가슴 속으로 밀려들던 그 허무함이

부처의 허무함과 차원이 다른 허무감임을 정휴는 알고 있었다.
정휴가 보령에 당도한 것은 토정을 포천으로 떠나보내고 한 달 뒤였다.

정휴는 심 대감 댁을 먼저 찾아갔다.

집이 예전 같지 않았다.

사람 소리도 들리지 않고 을씨년스럽기만 했다.
대문을 두드리자 옛 하인이 나왔다.
"자네, 오랜만이군.

어째서 그렇게 발길을 끊었었나?"
"돌아다니다보니…"
"어서 들어오게.

기다리고 있는 분이 계시네."
"아니, 누가?"
"명이 아가씨일세.

벌써 몇 년째 자네를 애타게 기다리고 계시다네."
"왜 나를…?"
"시치미 떼지 말게.

다 아는 이야기일세."
"그러면?"
"자네 동생이라는 것을 다 알고 있네.

어서 들어가보게."
정휴는 얼른 내당으로 뛰어들어갔다.

어느새 동생 명이가 마루까지 나와 있었다.
"오라버니…"
"명이야…"
두 사람 모두 제대로 입을 떼지 못했다.
명이가 마침내 울음을 터뜨리면서 정휴의 품으로 쓰러졌다.
명이는 정휴가 보낸 서찰을 받고 반신반의하다가

뒤 친정어머니에게 사실을 확인하였다.

명이는 곧 현감인 남편에게 이 사실을 고백하고

스스로 친정으로 돌아와 있었다.
명이가 보령으로 돌아가 있는 동안

심 대감 부인은 화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런 뒤로는 형제들도 얼굴을 비치지 않았다.

다만 옛정으로 명이가 보령집에서 사는 것을 묵인했다.
그래서 명이는 정휴를 따라서 출가를 하기로 결심하고

몇 해 동안 정휴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밝히지 않았으면 될 것을…"
"그럴 수 없었어요."
"오라버니.

오라버니가 제 머리를 깎아주세요."
"왜 하필 종만도 못한 중이 되겠다고 하는 건가?"
"이대로는 저도 살 수 없어요, 오라버니.

무너뜨리고 싶어요, 흑흑흑."
정휴는 동생 명이와 함께 보령을 떠나 계룡산으로 갔다.

그리고 고청봉을 넘어 동학사 쪽으로 갔다.
계곡에 비구니만 모여 수도하는 암자가 있었던 것이다.

남매탑을 지나면서 명이는 울음을 터뜨렸다.
암자가 보였다.

정휴는 명이가 암자로 걸어가는 모습을 뒤에서 가만히 지켜보았다.
"가끔 들르마."
명이가 고개를 돌려 정휴를 한번 보고는 그대로 내달았다.
정휴는 그 길로 용화사로 돌아갔다.
하안거와 동안거를 마치고 나자 다시 토정이 그리워졌다.
정휴는 용화사 생활을 정리하고

중이 된 명이를 본 다음 한양으로 올라갔다.

토정에 대한 그리움이 부처를 향한 마음보다 컸던 것이다.

그래서 가회동으로 가면 토정의 소식이라도 들을 수 있을까 해서였다.
아닌 게 아니라 토정의 소식이 기다리고 있었다.
소식이 아니라 토정이 그곳에 있었던 것이다.
토정은 벌써 포천 현감을 그만두고 돌아와 있었다.
"내 그렇지 않아도 자네를 기다리고 있었네."
토정은 침통한 표정으로 사랑에 앉아 있었다.
정휴의 인사를 받은 토정은 현감 시절을 회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