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정이 세상을 뜬 지 5년 뒤인 계미년(癸未年,
1583년) 4월에 율곡은 다시 한번 십만 양병설을
주장하는 상소를 선조에게 올렸다. 그러나 동서
분당이 격화된 분위기에서 그의 주장은 조금도
반영되지 않았다.
토정의 의견을 가장 가까운 데서 임금에게 직소할
수 있던 율곡마저 다음 해에 마흔아홉 살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이때 율곡은 그와 동본(同本)인 이순신에게 임진
대환난을 이길 수 있는 비결을 전해 주었다. 이순신이
임진 대환난을 가장 크게 막을 인물이라는 것을
토정에게서 들어 알고 있었던 것이다.
율곡은 비결을 남겨 토정의 일이 헛된 것이 아님을
보증해주었다. 그 비결은 '伐木丁丁山更幽
毒龍潛處水猶淸'이었다. 바로 이 글을 해석하여
왜적을 물리치라고 말해주었던 것이다.
그리고 율곡은 무능한 선조와 조정 대신들이 백성과
궁궐을 버리고 도망가게 될 길목 임진강 나루에
화석정을 지었다. 그리고 선조 일행이 깜깜한 강을
건너지 못해 허둥댈 것을 미리 짐작해 기름 먹인
나무를 가득 쌓아 놓았다. 이 장작더미는 훗날
칠흑같던 밤하늘을 대낮같이 밝혀주기도 했다.
한편으로 율곡은 당쟁으로 자신의 반대편에 서 있던
서애 유성룡에게 이순신을 소개시켜 나중에 크게 쓰일
인물이니 뒤를 돌봐달라고 부탁했다. 유성룡, 그는
명신, 충신이면서도 율곡의 십만 양병설을 직접적으로
반대한 인물이었다.
그러나 후에 이순신이 모함을 받고 투옥되어
참수형을 기다리고 있을 때 그를 백의종군케 하여
다시 수군 통제사가 될 길을 터놓기도 했다.
한편 율곡은 나름대로 <율곡비기(栗谷秘記)>를 지어
후세에 전하도록 했다. 또 이즈음 황진이가 시조집 한
권을 남기고 세상을 떴다.
이미 토정으로부터 임진 대환난을 예고받은 중봉
조헌은 상소를 올려 정휴를 대장으로 하는 군대를
조직하여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물론 이 상소는
일고의 가치도 없다고 폐기되었다.
그러나 정휴를 대장으로 하는 이러한 계획은 조헌이
정휴의 명운을 잘 모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정휴
역시 임진 대환난을 치를 명을 가지고 있지 않았던
것이다.
그 다음에 화담 문하생이었던 좌의정 박순이 다시
한번 선조에게 청하여 정개청을 도원수로 하는 군대를
양성해야 한다고 주장하였지만 역시 기각되고 말았다.
이렇게 앞날을 대비하는 것에 주저하면서 조정이
갈팡질팡하고 있을 때 정여립이 분연히 일어나 역성
혁명을 기도했다.
정여립은 마리산 모임을 다녀간 이후로 사람들을
모아 더욱더 열심히 교유했다. 혁명가라면 누구나
그러하듯이, 그는 스스로 임금이 되는 것이 왜곡된
역사를 바로잡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그동안
교류를 터온 사람들을 규합하여 혁명을 모의하였다.
이러한 계획을 정당화하기 위하여 그는 책을
썼는데, 그것이 바로 <정감록(鄭鑑錄)>이다. 이 책은
마리산 참성단의 제2차 전국 역학자 대회에서 결집된
내용을 바탕으로 재편집한 것이었다.
뿐만 아니라 신라 고승 의상(義相)의
<산수비기(山水秘記)>, 고려 고승 도선의 <도선비결>,
조선 승려 무학(無學)의 <무학비결>, 북창의
<북창비결>, 그리고 토정의 <토정가장결>까지 두루
섞어서 조선은 망하고 정씨 성을 가진 새 인물이
나타나 새 나라를 세운다는 내용으로 완전히
재편집했다. 이 책에는 앞서 이야기되었던 십승지가
재등장해 사람들의 큰 호응을 받았다.
이 책의 효과는 대단해서 전라도와 황해도를
중심으로 정여립의 사상이 급속도로 번져나갔다.
정여립이 곧 정 도령이라는 말이 공공연히 나돌
정도였다.
그 결과 전라도 지역에서 꽤 알려졌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거의 다 그의 휘하로 모여들었다.
한번은 전라도 해안 지방에 왜구가 침입하자
정여립이 대동계를 소집, 천여 명이 넘는 사람을
일시에 규합해 보이기도 하여 소집조차 되지 않았던
관군을 당황케 한 바 있었다.
그 뒤 기축년(己丑年, 1589년) 선조 22년의
일이었다.
황해 감사 한준(韓準)의 비밀 장계를 받아본 선조는
덜컥 겁을 집어먹었다. 비밀 장계는 임금만이 뜯어볼
수 있는 극비 문서였다. 비밀 장계에는 '정여립이
주동이 되어 전라도와 황해도를 중심으로 대모반을
꾀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선조는 즉시 의금부에 영을 내리고, 의금부에서는
날쌘 포졸을 풀어 황해도와 전라도로 내달리게
하였다. 이리하여 기축옥사(己丑獄事)가 일어났다.
이때 정여립은 이 사실을 미리 알고 측근 변숭복과
함께 대동계를 소집하여 관군과 맞섰다. 정여립은
마침내 구월산과 송광사를 본거지로 하는 대동계를
중심으로 반란을 일으켰던 것이다.
그러나 거사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관군의
공격을 받은 정여립의 군대는 오합지졸일 수밖에
없었다. 진안 죽도까지 밀려간 정여립은 결국
그곳에서 자결하고 말았다.
이 일은 정여립의 죽음만으로 끝나지 않았다. 임진
대환난이 있기 삼 년 전에 일어난 이 일은 전국
역학자들이 뜻을 모아 막아보려던 마지막 정기까지
모조리 뽑아버리는 대사건으로 비화되었다.
정여립은 동인이었다. 동인으로는 토정의 조카로서
이미 정승 대열에 오른 산해가 있었고, 유성룡도
있었다. 조정에 동인이 득세하고 있는 상황에서
서인인 정철이 가만히 있을 리 없었다.
더구나 정여립은 기회만 있으면 정철을 비난하고
다녀 눈에 가시처럼 여기고 있던 터였다. 정철은 일대
호기를 만난 듯 무소불위의 칼을 휘둘렀다.
우선 정여립의 모반에 뜻을 같이 한 사람을
밀고하라는 방을 내려 전라도 지역에서는 이름 났다
싶은 선비들은 죄다 연루시켜 참수했다. 이것이
전라도가 반역향으로 낙인찍힌 두번째 이유가
되었다.(첫번째는 고려 태조 왕건이 훈요십조에서
전라도 사람을 등용하지 말라고 한 것이다.)
이때 정휴의 둘도 없는 친구인 정개청도 연루되어
죽었다. 이때 연루된 사람들은 대개 동인이었는데,
좌의정 정언신, 최영경 등 무려 천여 명이 정철의
쾌도난마에 걸려들어 목숨을 잃었다.
임진 대환난을 막을 인재는 점점 사라져가고 그
운명의 시각은 천리마처럼 달려오고 있었다.
임진 대환난 2년 전, 박순이 일본에 밀사를 보내서
우리나라를 침략할 준비를 하고 있는지 아닌지를
알아보자고 한 건의가 마침내 받아들여졌다. 이때만
해도 술사, 도사들은 어느 정도 희망을 가지고
있었다.
1년 뒤인 1591년, 밀사 두 명이 돌아왔다. 한
사람은 일본이 우리나라를 침략할 준비를 하고 있다고
보고했다. 그러나 다른 한 사람은 태평하여 아무런
기미를 볼 수 없다고 보고했다. 결국 당쟁으로 왜의
진상이 밝혀지지 않고 넘어가게 되었다.
임진 대환난을 눈앞에 두고 박지화가 세상을 떴다.
임진년 정월이었다. 더이상 임진난을 방비할 대책이
없음을 한탄하다가 송악산 속으로 몸을 감춘 그를
산방의 학인들이 여러 날 산을 뒤진 끝에 못 속에서
발견하였다. 박지화는 연못 속에 들어가 마치 단전
수련을 하듯이 단정하게 앉아 있었다.
그의 가슴 아래께로는 얼음이 꽝꽝 얼어 있었다.
학인들이 손을 대보았으나 이미 숨을 거둔 뒤였다.
박지화는 입에 유게(遺偈) 한 귀절을 물고
있었는데, '백구(白鷗)는 원래 물에서 잠들거니 무슨
일로 슬퍼할 것이 있으랴.'하는 글귀였다.
이로써 화담 산방은 영원히 사라졌다.
아무도 하늘의 도수는 막을 수 없는 것인가.
하늘은 왜 이렇게 화급한 때에 정휴의 목숨마저
앗아가려는 것일까?
정휴는 토정이 없는 세상에서 자신이라도 끝까지
남아 대환난을 지켜야 한다고 이를 악물었건만,
하늘은 정휴의 도수(度數)를 바꾸지 않았다. 정휴는
병석에 쓰러지고 나서부터 하늘을 노려다보면서 성을
내기도 하고, 애원하기도 하며 연명(延命)을
호소했지만 역시 병세는 조금도 회복되지 않았다.
토정을 가장 가까이에서 관찰하고, 토정이 죽고
나서도 계속 그의 유지를 받들던 정휴는 바로 임진
대환난을 몇 달 앞두고 세상을 떴다.
정휴는 끝내 눈을 부릅뜨고 이를 악문 채 임종을
맞았다.
그때가 3월이었다.
아, 시간은 그렇게 끝나고 말았다.
임진 대환난은 시시각각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이제
역학자와 도인들이 해볼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아무 것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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