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www.sundayjournal.kr/news/articleView.html?idxno=15184
중국이 앞으로 '일대일로'를 통해
각각 미얀마, 파키스탄, 스리랑카 등의 지역에 해군기지를 건설하면
중국은 자연스럽게 미국의 패권에 위협을 가하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옌 연구원은
그러면서 11월 미국이 만약 남중국해와 대만해협에서 '힘을 과시'한다면
그건 중국에 대한 분명한 경고가 될 것이라며
짧은 시일 내에 양측의 관계개선은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에 앞서
미 해군 이지스 구축함 머스틴(DDG-89)과 벤폴드(DDG-65)호는
지난 7월 항공모함 키티호크 이후 11년만에 처음으로
대만해협을 통과해 중국을 자극한 바 있다.
http://www.pagi.co.id/bbs/board.php?bo_table=asean_now&wr_id=7393
中共軍 1만영중 戰死 3천명, 포로 7천명
https://gameplayblog.tistory.com/292
진먼다오(金門島)에서 국군, 해방군을 섬멸하다 | Redian
https://jbk1277.tistory.com/1367
국민당과 중국공산당의 내전인 ‘국공내전(國共內戰)’은
1927년 8월1일 중국 장시(江西)성 성도 난창(南昌)에서
저우언라이(周恩來)·허룽(賀龍)·주더(朱德) 등이 지휘하는 중국 공농(工農) 혁명군이
최초의 군사행동을 벌인 이후
1949년 10월1일 중화인민공화국 정부가 수립될 때까지 21년간 계속됐다.
1937년 일본 군국주의가 중국을 침공한 이후에는
이른바
‘국공합작(國共合作)’이라는 이름으로 주적을 일본으로 규정하고 협력해
대일항전(對日抗戰)을 벌인 기간도 있었지만,
국공내전은 마오가 이끄는 중국공산당군의 승리로 귀결되고
장제스(蔣介石)의 국민당이 수도였던 난징(南京)을 버리고
대만섬으로 옮겨감으로써 종결됐다.
출처 : 시사저널(http://www.sisajournal.com)
미 군부는 행정부 최고지도자들에게 대만의 전략적 중요성을 강조해왔는데,
미 극동군 사령관 맥아더(Douglas MacArthur)는 이 같은 군부의 시각을 대변했다.
그의
‘대만론’은 다음과 같은 전략적 인식의 소산이었다.
전후 욱일승천한 아시아의 신생 공산주의국가
중화인민공화국을 제어해야 할 필요성을 느낀 맥아더는
대만이 지니는 유용한 전략적 전초기지 기능에 착목해,
곧 대만을
“가라앉지 않는 항공모함”(Unsinkable carrier-tender)으로 보았다.
맥아더는 대만이 신 중국 같은 비우방 적성국가에 넘어갈 경우
평시는 소련 등 공산국가의 공군과 잠수함기지가 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전시에도 손쉽게 일본 오키나와에서 필리핀에 이르는
미국의 방어선을 뚫을 수 있는 전략지가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리하여 이 섬을 일단 적이 소유하면
미국에 대한 공격력이 배로 증강될 것이기 때문에
미국은 대만을 자국의 영향아래 두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맥아더의 상기 전략적 평가와 주장은
대만에 대한 중국의 인식 역시 동일한 맥락을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일정한 타당성을 갖게 된다.
다시 말해,
중국 또한 대만을 대륙세력이 태평양으로 나아가는 교량이자
해양세력이 대륙으로 나아갈 수 있는 발판으로 인식하고 있는데,
과거 전통시대로부터 현재까지 지속적으로 대만 및 대만해협을
동남연해의 중요한 해상울타리로서 국방안보상의 전진기지로 보아왔다.
https://blog.daum.net/suhbeing/221
중공군은
한국전쟁을 경험하면서 전력이 확충되고 작전 능력이 향상된 상태였다.
하지만 이제는
미 해군의 저지를 뚫고 타이완을 침공한다는 것이 불가능했다.
결론적으로 한국전쟁 참전 대가로
중국은 타이완을 침공할 수 있었던 절호의 기회를 놓친 것이었다.
그렇다고 대만을 그대로 놔줄 수는 없었다.
마치 신발 속 돌처럼
거추장스러운 이곳을 정리해야 두고두고 후환이 없다고 본 것이다.
다만 현실적으로 침공이 불가능하니
대신 심리적인 효과를 노려 진먼섬(金門島)을 먼저 점령하기로 결심했다.
울릉도의 두 배 정도 크기인 진먼섬은
타이완에서는 150km 떨어진 반면
본토와의 거리는 4km에 불과해서
마치 중국의 턱밑에 위치한 비수^송곳 같은 존재였다.
중국은
전투기의 성능이 우위에 있었고 수적으로도 앞섰기에 자신만만했다.
더구나 한국전쟁 참전을 통해 경험도 충분했다.
하지만
대만의 F-86은
미국으로부터 공급받은 AIM-9 공대공 미사일을 무장하고 있었다.
결국 공중전에서
중국은 17기의 J-5를 포함해 20여 기가 격추됐다.
반면 대만은 3기만 상실한 일방적인 대승을 거두었다.
이 공중전의 여파는 실로 상당했다.
풍전등화의 진먼섬은 물론 대만까지 살린 결정타였던 것이었다.
공대공 미사일이 뭔지도 모르던 상태에서
당한 일방적인 결과에 놀란 중국은 이후 출격을 포기했다.
중국은 기대했던 공군이 넘기 힘든 벽에 부딪히자
더 이상 진먼섬을 목표로 전투를 지속할 수 없었다.
중국은 한 달 동안 47만4000발의 포탄을 날렸음에도
더 이상 전과를 확대할 수 없다고 판단하고 10월 5일 포격을 중단했다.
이후 20년이 넘게 간헐적인 포격이 있었지만 그다지 의미는 없었다.
그래서 양측 합쳐 130여 기의 전투기가 벌인 그날의 공중전은 찰나였지만,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양안(兩岸) 관계를 고착화한 결정적인 사건으로 남게 되었다.
http://weeklybiz.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6/25/2020062502748.html
대만을 방문한 美^국무장관 덜레스는
“중국에 내전이 재발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며
금문도와 마조도에서 국민당 군이 철수할 것을 대놓고 요구했다.
미국의 말이라면 다 들어주던 장제스였지만
이것만은 단호하게 거절해 버렸다.
미국 기자들을 향해
“중공의 금문도 포격은 대만 공격의 전 단계다.
우리도 포격을 멈출 수 없다”며 입장을 분명히 밝혔다.
역사적으로 금문도는 대륙이 대만으로 통하는 길목이었다.
1661년 해적 출신 정성공(鄭成功)은 금문도를 장악한 후
대만 정벌에 성공했고,
강희제 시절 시랑(施琅)이 대만을 평정할 때도
금문도가 발진기지였다.
https://news.joins.com/article/4780893
https://m.blog.naver.com/jgs0207/221974572955
금문도(金門島. 진먼섬)는 대만 역사의 상징이다.
1949년 장제스(蔣介石)의 국민당 정부가 본토에서 대만으로 쫓겨날 때
최후의 보루로 삼은 게 금문도였다.
4만 명의 국민당 패전병들은
“죽음으로 금문도를 사수하라”는 명령을 말 그대로 죽음으로써 지켜냈다.
당시 중공군은
국민당 군대의 절반에 달하는 2만 명을 투입,
금문도 상륙까지 시도했지만 살아남은 자가 거의 없었다.
승전은 국민당의 사기를 높였다.
전투는 역사적 상징이 됐다.
https://news.joins.com/article/4718737
대만, 남중국해 실효지배 군도 전력증강…레이더 개량 등 추진 (msn.com)
https://m.blog.naver.com/PostView.naver?isHttpsRedirect=true&blogId=aulerbrian&logNo=221490375107
https://imnews.imbc.com/replay/2010/nwdesk/article/2752416_30521.html
https://blog.daum.net/ocf0126/7195625
금문도 사건과 대만 침공의 댓가 - Gotchanews 갓차뉴스
서북도서는 군사전략적으로 중요한 곳인데다,
북한의 추가 도발 가능성이 높은 곳이다.
진먼다오를 모델로 삼은 것으로 알려진 백령도는
박정희 전 대통령 때부터 섬 일부에 지하요새를 구축해
일정기간 전쟁을 지속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
그러나 다른 섬들은
북한 해안포나 방사포 공격 또는
기습 상륙작전에 대응할 만한 전력이 확보돼 있지 않다.
특히 주민대피시설 등은 수십 년간 방치돼 왔다.
중국 본토에서 불과 1.8㎞ 떨어져 있는 진먼다오는
동서 20㎞, 남북 길이 5~10㎞인 섬 전체가 땅속으로 그물망처럼 연결돼 있다.
폭 1m, 높이 2m의 지하통로가 2㎞나 이어진 민간 대피소들이 12곳이나 건설돼 있으며
긴급 구호장구와 비상식량 등을 갖추고 있다.
각 대피소 길이를 연결하면 갱도는 무려 10㎞에 달한다.
갱도는 차량 2대의 교차 통행이 가능하다.
지하 2층으로 건설된 지하도시는
4만여명의 주민 전체가 대피해 생활할 수 있다.
화생방 방어시설은 물론
지하 격납고와 연결된 활주로에서 전투기가 이륙할 수 있다고 한다.
진먼다오(金門島)는
1958년 중국 인민해방군이 44일간 포탄 47만발을 퍼부었으나 버텨낸 이후
지하요새를 구축하기 시작해 92년 완공됐다.
http://news.kmib.co.kr/article/print.asp?arcid=0004410183
https://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0831707
지금의 방공호는 옛날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
백령도 면사무소 옆에 위치한 방공호는
460명을 수용할 정도 크기에
흡사 카페를 연상할 만큼 세련되고 청결하게 운용되고 있었다.
백령도 면사무소 민방위 팀장은
“2012년 말~2013년 초에 모두 26개 방공호를 준공했다.
400명 이상을 수용할 수 있는
대형 방공호와 중형 방공호가 각각 3개, 나머지 20개는 소형 방공호다.
대형 방공호 안에는 컴퓨터가 2대 정도 설치돼 있고,
화상전화를 할 수 있는 공간도 따로 마련돼 있다”면서
“백령도 주민등록상 인구가 5600여 명인데
방공호 수용률은 95%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https://www.sisajournal.com/news/articleView.html?idxno=171331
대만을 요새화 한다는 것은 사실상 고슴도치 전략을 채택했다는 의미다.
중국의 거대한 군사력에
지극히도 작은 나라인 대만이 맞설 수 있는 유일한 전법이
고슴도치 전략이기 때문이다.
’고슴도치 전략‘이란,
자신의 힘으로 감당하기 힘든 큰 적수에게 대항하기 위해,
자신을 공격하면 상대방도 고슴도치의 가시에 찔릴 수 있으니
공격을 주저할 수밖에 없다는 의미로,
강대국이 얻어낼 수 있는 이득보다
더 큰 손실을 줄 수 있는 능력을 소국이 갖추고 있으면 안전하다는 전략이다.
http://whytimes.kr/news/view.php?idx=8421
백령도의 지하 요새는
고 박정희(朴正熙) 대통령의
위대한 선견지명(先見之明)을 재발견하게 만드는 또 하나의 징표(徵標)였다.
안내하는 ‘흑룡부대’ 장교의 설명에 의하면,
토목공사의 경우,
백령도의 지하 요새는 그 대부분이 이미 1970년대에
고 박 대통령의 지시로 진행되어 완성되어 있었다.
고 박 대통령은
대만(臺灣)의 금문도(金門島)를 모방(模倣)하여 백령도도 지하로 요새화 할 것을 지시하여
이에 따라 지하 요새 구축공사가 진행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완성된 백령도의 지하 요새는
김대중(金大中)•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이 이끈 좌파(左派) 정부 시기 방치되어
폐허(廢墟)로 변모했던 것을
최근 대대적인 복구(復舊) 및 현대화 공사를 통하여
이제는 일조유사시(一朝有事時) 이 섬의 방어 병력 대부분이
북한군의 포격 사정권(射程圈) 밖에서 방어 작전을 수행할 뿐 아니라
주민 대다수도 수용할 수 있는 현대화된 지하 요새로 재탄생(再誕生)해 있었다.
지금의 백령도는 서해 상에 위풍당당하게 떠 있는
대한민국의 ‘불침의 항공모함’이다.
http://www.newdaily.co.kr/site/data/html/2012/07/01/2012070100018.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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