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라우 독립에 결정적으로 기여한 인물은 일본인 2세라는 점이 특이하다.
나카무라 쿠니오(中村 國雄, Kuniwo Nakamura)의 아버지는
일본이 남양군도를 통치하던 시절에
팔라우 코로르에서 추장의 딸과 결혼한 일본인이었다.
팔라우가 미군에 점령되자,
그는 두 살때에 가족을 따라 일본으로 귀국했다가
식량부족과 차별대우로 다시 팔라우로 돌아왔다.
팔라우는 모계사회이기 때문에 그는 팔라우인으로 받아들여졌다.
어려서 일본으로 귀국해
일본어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
그는 28세부터 정치에 뛰어들어
미국의 위임통치가 끝나지 않은 1989년에 부통령에 올랐다가
1992년 선거에서 당선되었고,
그후 연임에 성공,
2000년까지 8년간 집권했다.
그가 재임하던 기간에 팔라우는 정식으로 미국으로부터 독립하고,
그해 유엔에도 가입했다.
팔라우는 일본어를 공용어로 지정한 유일한 비일본 국가인데,
이는 나카무라 덕분이다.
http://www.atlas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319
요코이 소이치(하사)
1939년에 제대했지만 2년 뒤 징집됨.
1944년 전투에서 패한 후 괌 섬 동굴에서 숨어살기 시작함.
쥐고기와 나무껍질로 옷을 만들어 버텼다고.
1952년 전쟁이 끝났음을 인지했지만
살아남았다는 비난이 두려워 항복하지 않았음.
1972년 지역민 두 명에게 발견됨.
실랑이 끝에 미군에게 넘겨짐.
의사소통을 못했기에 3개월간 치료를 받음.
이때 나이가 57세.
얼마후 일본으로 넘겨졌고 유명인사 되고
돈도 받고 결혼도 하고 그럭저럭 살다 82세 나이로 사망.
일본에 입국하고 한 말은
"부끄럽게도 살아돌아왔습니다."
https://ppss.kr/archives/55495
1974년 일본의 탐험가 스즈키 노리오는
'남방군도'에 구 일본군 패잔병이 아직도 홀로 항쟁 중이라는 소식을 듣는다.
이에 흥미를 느낀 스즈키는 수소문한 끝에 오노다를 만나게 된다.
침착한 언행으로 스즈키는 끝내 오노다에게 패전 사실을 설득시킨다.
https://content.v.daum.net/v/5959db61ed94d20001b38c8d
https://m.blog.naver.com/PostView.naver?isHttpsRedirect=true&blogId=23hyunsj&logNo=220995370145
혼자 남은 조병기 씨가
원주민들에게 잡힌 것도 한국인 특유의 입맛 탓이었습니다.
매운 게 너무 먹고 싶었던 조병기 씨가
원주민 마을을 뒤지다가 고추 비슷한 농작물을 찾았고,
자꾸 고추밭(...)이 털리는 것을 수상하게 생각한 원주민들이
밭을 지키다가 그의 모습을 보고 뒤를 쫓았던 거죠.
원주민들은 한국인이라고 이야기하는 그를 미군에 인도했고,
미군도 그가 강제로 끌려온 한국인이라는 것을 알고 친절히 대해주었습니다.
한국에서는
6월 3일 주일대표부의 연락으로 비로소 그가 살아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당장에 서울신문 기자 한 사람이 조병기 씨의 고향을 찾아갔고
수소문 끝에 가족들을 찾아내긴 했지만 현실은 비참했죠.
가난한 소작농이던 그가 징용으로 끌려가자
젊은 아내는 아들을 데리고 품팔이로 3년을 겨우겨우 연명하다가
45년 봄에 남편의 전사통지를 받고 개가했고,
아들은 큰아버지 집에서 더부살이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가 살던 초가삼간도 주인이 바뀌어 다른 사람의 문패가 달려 있었죠.
하지만 결국 그는 살아서 고향에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https://m.ppomppu.co.kr/new/bbs_view.php?id=humor&no=334703
https://hrwings.tistory.com/1473
https://m.blog.naver.com/PostView.naver?isHttpsRedirect=true&blogId=travel_star_&logNo=30166605210
파라오(현 팔라우 공화국)는 제 1차 세계대전 이후 일본의 위임통치령이 되었는데
일본의 국제연맹 탈퇴 후 일본의 태평양 상의 중요군사거점으로 정비가 이루어져
1937년에 팔라우 섬에 비행장을 건설하기 시작해
1941년 태평양전쟁 개전시엔 1,200m 활주로 두 개의 비행장이 완성되어 있었다.
1943년 9월 30일에 일본은 절대국방권을 설정하고
10월 11일부로 <작전항공기지에 관한 육해군 중앙협정>에 의해
방어체제의 정비를 진행시켜 나갔다.
당시 일본군에게 있어 파라오는 괌과 사이판의 후방지원 기지였는데
미국에게 있어서는 필리핀 탈환의 거점으로 주목되어
미군은 체스터 니미츠 제독의 명령 하에 파라오 공략작전을 계획하여 실행에 들어갔다.
https://blog.daum.net/kmozzart/15200
미국은 필리핀 공격을 위한 교두보로서
팔라우 제도에 있던 펠렐리우 섬을 공격했다.
2차 세계대전 태평양전쟁 중
격렬했던 격전지로 꼽히기도 한 팔라우 제도에 펠렐리우섬 전투는
1944년 9월에 시작해 그해 11월이 되서야 끝이 났다.
일본군 역시 이것을 알고 만반의 준비를 해놓았고
9월 12일 미군의 공격이 시작되었다.
미군은 역시나
3일동안 함포사격을 통해 섬을 초토화시킨 후 상륙하는 방법을 사용했다.
미국 사령관은 이 섬을 4일이면 점령할 수 있을거라는 생각을 했으나
일본군의 저항이 거셌기때문에 실제로는 2달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펠렐리우 전투 중에 미군은
일본군에게 수차례 반격을 당해 미군 역시 이 섬에서 많은 희생을 치뤄야했다.
하지만 결국 미군이 일본군을 밀어붙이면서
펠렐리우섬 일본군 사령관이 었던 나카가와 우이노 대령이
할복자살하면서 11월 27일 펠렐리우섬 전투는 끝이났다.
https://m.blog.naver.com/PostView.naver?isHttpsRedirect=true&blogId=gusals7377&logNo=220731750729
http://www.palauadventuredive.com/kwa-790638
https://blog.daum.net/clw2222/6362122
https://www.hankyung.com/life/article/201910298835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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