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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太平洋 角逐戰

팔라우 ^ 펠렐리우섬 戰鬪 - 日本語가 공용어 - 징용 조병기씨 歸還(1955)

 

 

팔라우 독립에 결정적으로 기여한 인물은 일본인 2세라는 점이 특이하다.

나카무라 쿠니오(中村 國雄, Kuniwo Nakamura)의 아버지는

일본이 남양군도를 통치하던 시절에

팔라우 코로르에서 추장의 딸과 결혼한 일본인이었다.

 

팔라우가 미군에 점령되자,

그는 두 살때에 가족을 따라 일본으로 귀국했다가

식량부족과 차별대우로 다시 팔라우로 돌아왔다.

 

팔라우는 모계사회이기 때문에 그는 팔라우인으로 받아들여졌다.

 

어려서 일본으로 귀국해 
일본어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

 

나카무라 쿠니오 /위키피디아 출처 : 아틀라스뉴스(http://www.atlasnews.co.kr)


그는 28세부터 정치에 뛰어들어

미국의 위임통치가 끝나지 않은 1989년에 부통령에 올랐다가

1992년 선거에서 당선되었고,

그후 연임에 성공,

2000년까지 8년간 집권했다.

 

그가 재임하던 기간에 팔라우는 정식으로 미국으로부터 독립하고,

그해 유엔에도 가입했다.

팔라우는 일본어를 공용어로 지정한 유일한 비일본 국가인데,

이는 나카무라 덕분이다.


 

http://www.atlas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319 

 

태평양 섬나라①…일본어가 공용어인 팔라우 - 아틀라스뉴스

팔라우(Palau)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많이 가는 태평양의 섬나라다. 팔라우 군도가 서양인들에게 처음 소개된 것은 1522년 스페인의 제주이트 선교단에 의해서다. 그후 스페인은 필리핀 주둔 사령

www.atlasnews.co.kr

 

 

요코이 소이치(하사)

1939년에 제대했지만 2년 뒤 징집됨.
1944년 전투에서 패한 후 괌 섬 동굴에서 숨어살기 시작함.

쥐고기와 나무껍질로 옷을 만들어 버텼다고.

 

1952년 전쟁이 끝났음을 인지했지만

살아남았다는 비난이 두려워 항복하지 않았음.

 

1972년 지역민 두 명에게 발견됨.

실랑이 끝에 미군에게 넘겨짐.

의사소통을 못했기에 3개월간 치료를 받음.

이때 나이가 57세.

 

얼마후 일본으로 넘겨졌고 유명인사 되고

돈도 받고 결혼도 하고 그럭저럭 살다 82세 나이로 사망.

일본에 입국하고 한 말은
"부끄럽게도 살아돌아왔습니다."

 

https://ppss.kr/archives/55495

 

어떤 패잔병의 귀환 “내 신념은 덴노(天皇)입니다.”

  일본의 로빈슨 크루소 "현대판 '로빈슨 크루소'가 24일 이곳(괌)에서 발견되어 화제를 모으고 있다. 이곳에서 고기를 잡던 미국인 어부 두 명은 24일 약 28년 전 미군이 공격할 때 정글 속으로 숨

ppss.kr

 

1974년 투항 당시 필리핀 대통령에게 투항하는 오노다의 사진.

 

1974년 일본의 탐험가 스즈키 노리오는

'남방군도'에 구 일본군 패잔병이 아직도 홀로 항쟁 중이라는 소식을 듣는다.

 

이에 흥미를 느낀 스즈키는 수소문한 끝에 오노다를 만나게 된다.

침착한 언행으로 스즈키는 끝내 오노다에게 패전 사실을 설득시킨다.

 

https://content.v.daum.net/v/5959db61ed94d20001b38c8d

 

29년동안 항복하지 않은 패잔병

1945년 8월 15일,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 폭탄이 투하 된 이후 일본은 2차 대전의 종막을 알리는 항복선언을 공표하였다. 그러나 모두에게 전쟁이 끝난 것이 아녔다. 오늘의 주인공 오노다 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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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m.blog.naver.com/PostView.naver?isHttpsRedirect=true&blogId=23hyunsj&logNo=220995370145 

 

펠렐리우섬에서 생긴 일 / 팔라우. 태평양전쟁의 격전지

옛 일본군 사령부의 흔적 1955년 미크로네시아 펠렐리우섬, 이상하게도 섬 곳곳에서 농작물들이 깜쪽같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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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남은 조병기 씨가

원주민들에게 잡힌 것도 한국인 특유의 입맛 탓이었습니다.

 

 매운 게 너무 먹고 싶었던 조병기 씨가

원주민 마을을 뒤지다가 고추 비슷한 농작물을 찾았고,

 자꾸 고추밭(...)이 털리는 것을 수상하게 생각한 원주민들이

밭을 지키다가 그의 모습을 보고 뒤를 쫓았던 거죠.

 

 원주민들은 한국인이라고 이야기하는 그를 미군에 인도했고,

미군도 그가 강제로 끌려온 한국인이라는 것을 알고 친절히 대해주었습니다.

 

 한국에서는

6월 3일 주일대표부의 연락으로 비로소 그가 살아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당장에 서울신문 기자 한 사람이 조병기 씨의 고향을 찾아갔고

수소문 끝에 가족들을 찾아내긴 했지만 현실은 비참했죠.

 

 가난한 소작농이던 그가 징용으로 끌려가자

젊은 아내는 아들을 데리고 품팔이로 3년을 겨우겨우 연명하다가

 

 45년 봄에 남편의 전사통지를 받고 개가했고,

아들은 큰아버지 집에서 더부살이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가 살던 초가삼간도 주인이 바뀌어 다른 사람의 문패가 달려 있었죠.

하지만 결국 그는 살아서 고향에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https://m.ppomppu.co.kr/new/bbs_view.php?id=humor&no=334703 

 

2차세계대전 종전 뒤에도 섬에서 10년을 살아남은 사람

원래 출처 : --------------------------------------------------------------------- 남태평

m.ppomppu.co.kr

 

 

https://hrwings.tistory.com/1473

 

펠렐리우 섬에서 11년 동안 숨어지낸 한국인

미드웨이 해전에서 승기를 잡은 미국은 일본 본토를 향해 진군하였고 두가지 갈림길에 봉착하게 됩니다. 태평양 전쟁의 양대산맥 육군 사령관 더글라스 맥아더와 해군 제독 체스터 니미츠의 의

hrwings.tistory.com

 

 

https://m.blog.naver.com/PostView.naver?isHttpsRedirect=true&blogId=travel_star_&logNo=30166605210 

 

팔라우 섬 지도

데이투어닷컴

blog.naver.com

 

펠렐리우섬에 상륙하는 미 해병대 상륙정의 모습

 

파라오(현 팔라우 공화국)는 제 1차 세계대전 이후 일본의 위임통치령이 되었는데

일본의 국제연맹 탈퇴 후 일본의 태평양 상의 중요군사거점으로 정비가 이루어져

1937년에 팔라우 섬에 비행장을 건설하기 시작해

1941년 태평양전쟁 개전시엔 1,200m 활주로 두 개의 비행장이 완성되어 있었다.

 

1943년 9월 30일에 일본은 절대국방권을 설정하고

10월 11일부로 <작전항공기지에 관한 육해군 중앙협정>에 의해

방어체제의 정비를 진행시켜 나갔다.

 

당시 일본군에게 있어 파라오는 괌과 사이판의 후방지원 기지였는데

미국에게 있어서는 필리핀 탈환의 거점으로 주목되어

미군은 체스터 니미츠 제독의 명령 하에 파라오 공략작전을 계획하여 실행에 들어갔다.

 

미군의 함포사격으로 초토화된 펠렐리우섬

 

팔라우 전투 : 네이버 블로그 (naver.com)

 

팔라우 전투

팔라우 전투 파라오(현 팔라우 공화국)는 제 1차 세계대전 이후 일본의 위임통치령이 되었는데 일본의 국제...

blog.naver.com

 

https://youtu.be/btt_-PNf7jU

 

https://blog.daum.net/kmozzart/15200

 

미해병의 펠렐리우 섬 전투이야기 8

Peleliu_USMC_Photo_No._2-15_(21332198548) 반격에 실패하여 격파 된 일본군 95 식 경전차 안쪽은 미쓰비시 G4M의 잔해다 지원 사격을 지휘했던 올덴 도르프 소장은 거의 전멸했을거라고 생각했던 일본군 진

blog.daum.net

 

미국은 필리핀 공격을 위한 교두보로서

팔라우 제도에 있던 펠렐리우 섬을 공격했다.

 

2차 세계대전 태평양전쟁 중

격렬했던 격전지로 꼽히기도 한 팔라우 제도에 펠렐리우섬 전투는

1944년 9월에 시작해 그해 11월이  되서야 끝이 났다.

 

일본군 역시 이것을 알고 만반의 준비를 해놓았고

9월 12일 미군의 공격이 시작되었다. 

 

전사한 일본군과 그것을 지켜보는 미 해병대의 모습

 

미군은 역시나

3일동안 함포사격을 통해 섬을 초토화시킨 후 상륙하는 방법을 사용했다.

 

미국 사령관은 이 섬을 4일이면 점령할 수 있을거라는 생각을 했으나

일본군의 저항이 거셌기때문에 실제로는 2달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펠렐리우 전투 중에 미군은

일본군에게 수차례 반격을 당해 미군 역시 이 섬에서 많은 희생을 치뤄야했다. 

 

하지만 결국 미군이 일본군을 밀어붙이면서

펠렐리우섬 일본군 사령관이 었던 나카가와 우이노 대령이

할복자살하면서 11월 27일 펠렐리우섬 전투는 끝이났다.

 

 

https://m.blog.naver.com/PostView.naver?isHttpsRedirect=true&blogId=gusals7377&logNo=220731750729 

 

태평양전쟁 다큐, 10부 팔라우 제도 펠렐리우섬 전투 히스토리채널 제작

태평양전쟁 다큐, 10부 펠렐리우 전투 히스토리채널 제작 (출처 : https://www.youtube.com/watch?v=tk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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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palauadventuredive.com/kwa-790638

 

홈페이지

홈페이지

www.palauadventuredive.com

 

 

 

https://blog.daum.net/clw2222/6362122

 

팔라우 섬의 상처

팔라우는 필리핀의 남동쪽, 인도네시아령 서뉴기니의 북쪽에 인접한 섬나라입니다. 수도는 응게룰무드이고 인구는 2만 여 명, 면적은 458km² 로 제주도의 1/4 정도입니다. 팔라우 공화국(Republic of

blog.daum.net

 

 

https://www.hankyung.com/life/article/201910298835Y

 

최악의 전투에서 살아남은 미 해병대원의 '진짜 전쟁'

최악의 전투에서 살아남은 미 해병대원의 '진짜 전쟁', 문화스포츠

www.hankyung.com

 

https://youtu.be/CD8Ts7Quv2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