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0년부터 4척의 배와 함께 수만점의 유물이 발견되면서
바닷속 보물창고라 불리는 태안 마도해역.
바다 깊은 곳에 잠들어 있던 마도섬과 유물은 한국사를 새롭게 쓰기 시작했다.
토기(土器)
다공질로서 무유(無釉)의 것이고,
일반적으로 원료는 유색의 양토질(壤土質) 또는 석기질이 사용되나,
정도기(精陶器)와 아주 비슷한 소지토(素地土)의 것도 있다.
약 9000년 전부터 인류는 토기를 만들어 왔으나,
현재에는 검은 기와, 붉은 벽돌, 화분의 일부 등이 만들어지고 있다.
또한 정도기질(精陶器質)의 것에는
전지용 애벌구이, 전해용 격막, 기체여과, 세균 그 밖의 여과체 등이 있다.
일반적으로 토기는 부서지기 쉽고,
도자기 중에서는 가장 원시적인 것이다.
한국에서는 즐문식(빗살무늬), 채문식(彩紋式) 토기 등이 있다.
토기와 도기의 차이는 크지 않으며,
토기라는 용어는 일본에서 처음 사용된 것이기에 사용을 배제하는 사람도 있다.
한국 도자기의 역사는 약 4000년 전
북방으로부터 집단으로 이동해 와서 생활하기 시작한 토착민부터 시작되었다.
이 시대의 토기는 빗살무늬토기 이다.
이것은 기원전 1000년경까지 신석기시대 문화를 대표하게 된다.
이후 중국에서 발달한 철기가 한반도에 전해져서 초기철기시대가 시작되었다.
이 철기와 함께 전해진 새로운 중국의 토기제작기술은
기존에 무문토기의 전통을 바탕으로 하여 다양한 발전을 하게 된다.
www.allreport.co.kr/search/detail.asp?sid=82report&pk=15031763&refer=http%3A%2F%2Fjava.co.kr%2F
삼국시대로 이르면 비로소 번조시설인 가마가 등장하여
밀폐된 지하굴식 혹은 터널식 가마가 만들어져
고화도 토기를 제작할 수 있는 밑바탕이 마련되었다.
이시기 토기는
표면의 색조가 적갈색에서 회청색 혹은 회색으로 되며
소성온도가 높아져 쇠소리가 나는 단단한 경질토기
또는 석기질의 상태로 나아갈 수 있었다.
삼국시대는 후장풍습이 있어서 수많은 유물이 고분에서 출토되고 있다.
각종항아리, 고배, 감대 등 그릇형태 이외에 상형토기 등
기종과 표현기법이 다양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통일신라시대(7세기후반-10세기초)에는 토기에서 자기로 이행되는 기반을 확립하면서
부장용도기보다는 실생활용기로서 변모하였다.
또한
당대(唐代) 도자기의 영향으로 구연부에 변화가 오고
몸체의 선도 곡선위주로 되며 문양은 다양한 형태의 인화문이 등장한다.
통일신라시대의 국제성(國際性)으로 인한
다양한 중국자기의 유입과 사용하고자 하는 욕구,
사회·경제적 기반의 성숙은 자기제작을 위한 밑거름이 되기에 충분하였다.
www.cha.go.kr/cop/bbs/selectBoardArticle.do?nttId=5782&bbsId=BBSMSTR_1008&nm=NS_01_10
고대 문명 발상지를 찾아서
정착 문명을 발생시켰던 인류가 고안해 낸 최초의 저장 도구,
토기는 어떻게 탄생했으며 그것은 어떤 한계를 안고 있었을까?
그릇으로 밝혀낸 청동문명 이집트와
철기문명 히타이트 초기 인류는 토기의 한계를 보완하고
더 단단한 그릇을 만들기 위해 불의 온도를 높이려 시도한다.
윗부분이 열린 통가마는 인류가 발명한 열효율을 높이는
첫번째 구조물. 이로부터 토기는 도기로 발전했다.
지난 2010년부터 4척의 배와 함께 수만점의 유물이 발견되면서
바닷속 보물창고라 불리는 태안 마도해역.
바다 깊은 곳에 잠들어 있던 마도섬과 유물은 한국사를 새롭게 쓰기 시작했다.
특히 지난 3월부터 11월까지 이루어진 고선박 복원 프로젝트.
마도 1호선이 국내 선박 사상 최초로 실물 크기로 복원돼 주목을 받았는데...
고려시대 배 건조기술과 항해술이 뛰어났던 이유는 무엇일까.
그리고 그것은 지금 우리에게 무엇을 남겼을까.
800백년만에 떠오른 마도 1호선,
마도선은 왜 태안 마도 해역에서 좌초된 것일까.
고려시대 조선기술의 비밀이 밝혀지고
우리나라 역사의 한 페이지가 새롭게 쓰여질 마도선의 미스터리.
800백년 전 보물선이 수면 위로 떠오른다.
우리들에게 도자기란 무엇일까요? 한마디로 도기와 자기의 합성어죠?
그렇다면 그들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단적으로
陶瓷(질그릇-도, 사기그릇-자)를 굽는 온도(소성온도라고 하죠)의 차이랍니다.
‘陶器(도기)’는 800~1,100℃,
‘瓷器(자기)’는 1,300~1,500℃(그 중간쯤에 있는 게 ‘沙器(사기)’입니다.
어렸을적 ‘사기그릇’ 깨뜨리고 야단맞던 거 기억하시는지...)
생각해보면 도자기의 가장 원시적인 형태는 ‘土器(토기)’고,
여기에 녹유를 칠한 ‘질그릇(=도기, 이중 역사적으로 가장 유명한 게 ‘唐三彩(당삼채)’고,
예전에 우리 일상에서 흔히 봤던 '장독 항아리'는
도기 중 가장 고온인 1,100℃에서 구워 따로 '옹기'라고 부르기도 하죠)’이 있었지만,
토기의 소성온도가 600~900℃(장작불에 넣어 얻을 수 있는 최고의 온도)임을 감안하면,
결국 도자기의 역사적 발전 경로(토기→도기→자기)는 높은 온도를 얻고 관리할 수 있는 과학기술의 발달과정과 일치하게 됩니다.
도기에서 한단계 더 발전한 것이 자기고,
여기에 청자와 백자가 있습니다.
개체의 발생은 계통의 발생을 반복한다고 했나요?!
이 개념과 부합하는 예는 아니지만,
자기는 도기의 소성온도와 같은 800℃ 정도에서 먼저 초벌구이를 하고,
유약을 바른 다음 1,300℃ 이상에서 재벌 구워 완성 됩니다.
그러면 청자와 백자의 차이가 무엇이냐고요?
백자의 소송온도가 청자보다 높습니다.
즉 청자가 1,250~1,300℃ 전후,
백자는 1,300℃이상이어야 만들어진다고 합니다.
결국 백자를 생산하기 위해서는 유약이나 자토의 성분은 둘째 치고,
높은 온도를 관리하는 기술이 있어야 했으니,
당연히 기술 수준에서도 청자보다 백자가 높고,
시기적으로 후대에 개발될 수밖에 없는 거지요.
청자의 푸른 빛은 흙의 색도 아니요, 안료의 색도 아닌 것이다.
그들은 바로 유약이나 태토에 포함된 철분 성분이 굽는 소성과정에서
고열을 받아 만들어낸 색인 것이라는 것을 몰랐던 것이다.
유약에 약 1~3%의 산화제이철(Fe2O3)이 포함되면
이것이 1200도 이상의 열을 받아 발색을 하게 되는데
산소가 충분한 조건하에서는 황색 등 붉은 색 톤을 띄고,
산소가 부족한 조건하에서는 푸른 빛을 띄게 된다.
철분 Fe는 2가 (Fe2+) 와 3가(Fe3+)가 있는데
3가철이 산소와 염을 이룬 형태가
아래 그림과 같은 붉은색의 산화제이철(Fe2O3, Ferric Oxide)이다.
산소는 항상 2가를 띄기 때문에 3가의 철과 조합을 이루려면
철:산소=2:3 비율이 되어야만 한다.
m.blog.naver.com/tasmanic/221085167979
분장회청사기(粉粧灰靑沙器)의 줄임말인 '분청사기'는
회색이나 회흑색 태토(胎土·도자기를 만드는 흙)에
하얀 흙으로 분장한 자기를 지칭한다.
시기적으로
화려한 고려청자와
단아한 조선백자 사이를 잇는 분청사기는 수수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국가가 운영하는 관요(官窯)의 간섭을 강하게 받지 않아 창조적 조형미가 두드러진다.
m.yna.co.kr/view/AKR20181020019800005
조선 백자의 진수인 분원의 백자는
조선시대 이념인 유교의 정신세계를 가장 잘 표현한 산물이다.
‘꾸미되 사치스럽지 않고 질박하되
누추하지 않은 정도’의 중용(中庸)의 아름다움에 대한 철학은
500여 년 동안 변치않고 유행한 백자 제작의 힘의 근원인 것이다.
분원 백자의 맑고 투명한 백색과 단아하면서 당당한 형태를 대면하면
조선시대 왕실을 비롯해 선비들이 추구하고자 했던 이념의
미학인 ‘격조’의 아름다움과 만날 수 있다.
news.joins.com/article/20414428
도자기(陶瓷器) 발전史(2) - 중국 청화백자 (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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