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전회의가 5시간이 지나도록 결론에 이르지 않자
초조해진 이토 히로부미는
하세가와 군사령관과 헌병대장을 대동하고 일본헌병 수십 명의 호위를 받으며
궐내로 들어가 노골적으로 위협과 공갈을 자행하기 시작했다.
이토 히로부미는
직접 메모용지에 연필을 들고 대신들에게 가부(可否)를 따져 물었다.
그때 갑자기 한규설 참정대신이
소리 높여 통곡하기 시작했던지라 별실로 데리고 갔는데,
이토 히로부미가 “너무 떼를 쓰거든 죽여 버리라.”라고 고함을 쳤다.
참정대신 한규설, 탁지부대신 민영기, 법부대신 이하영만이 불가(不可)를 썼고,
학부대신 이완용,
군부대신 이근택,
내부대신 이지용,
외부대신 박제순,
농상공부대신 권중현은
책임을 황제에게 전가하면서 찬의를 표시하였다.
이 찬성한 다섯 명을 을사오적이라 한다.
이토 히로부미는
각료 8 대신 가운데 5 대신이 찬성하였으니
조약 안건은 가결되었다고 선언하고
궁내대신 이재극을 통해 그날 밤 황제의 칙재(勅裁)를 강요하였다.
을사늑약과 "가쓰라태프트밀약".!! : 네이버 블로그 (naver.com)
www.mediapen.com/news/view/181610
가츠라-태프트 밀약의 교훈 – 베트남 교민잡지 ! 씬짜오 베트남 (chaovietnam.co.kr)
영일 동맹은 일본에게 큰 이득을 주었다.
우선 전쟁 준비를 하는 일본은
당시 최고 선진산업국이었던 영국에서
최신 전함 6척, 장갑함 4척을 발주, 구매할수 있었다.
이에 비해 러시아는 영국에서 군함을 건조하지 못해
이제 막 산업화에 들어간 이탈리아에 주문해야 했다.
결정적인 것은
러시아 함대가 영국 관할 하의 항구에 입항하지 못하고
수에즈 운하 통과가 거부되었다는 사실이다.
러일 전쟁이 터졌을 때 러시아 주력해군 발틱함대가
멀리 아프리카를 돌아 오는 바람에
쓰시마 해협에서 괘멸당하는 운명을 맞게 되었다.
www.atlas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757
1905년 7월29일, 도쿄.
이틀째 회의를 진행해온 가쓰라 다로(桂太郞) 일본 총리 겸 외상과
윌리엄 태프트 미국 육군성 장관이 약속을 주고 받았다.
합의 사항은 세 가지.
①가쓰라는 ‘일본 외교의 기본 원칙인 동아시아의 평화는
일본과 미국, 영국 간 협조가 있을 때 달성될 수 있다’고 말했고
태프트는 전적으로 동의했다.
②태프트는 ‘일본에 우호적이며 강력한 미국이 필리핀을 점령하는 게
일본에도 최선’이고 말했다.
이에 가쓰라는 ‘일본은 필리핀에 대한 공격 의사가 없다’고 답했다.
③가쓰라는 ‘러일전쟁의 직접적인 원인을 제공한 것은 대한제국이었다.
일본은 대한제국이
일본과 다른 나라 사이의 전쟁을 또 다시 야기하는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
대한제국에 대해 적절한 조치를 취할 것이다.
이는 일본에게 매우 중대한 문제다’라고 말했다.
이에 태프트는 ‘일본이 대한제국에 대한 보호권을 갖는 게
동아시아의 안정에 이바지할 것‘이라고 동의했다.
미국은 정말 한국을 버렸나…‘가쓰라-테프트 밀약’ (sedaily.com)
www.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8/23/2019082300547.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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