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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東. 러시아. 印度 . 東南 Asia

高仙芝(고선지) 장군 루트 - 와칸 회랑(Wakhan Corridor) ^ 연운보 勝戰 - 사마르칸트 Paper(紙)

 

 

고선지(高仙芝) 장군.

 

고구려 유민 출신(父: 고사계.高舍鷄)으로

당나라 군대를 이끌었던 그를 아는 이는 많지 않다.

 

특히 그가 최초의 동서양 전쟁으로 불리는

‘탈라스 전투’의 총사령관이었고,

결과적으로 종이 전파 등

동서 문명 교류에 역할을 했다는 사실 역시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출처 : PD저널(http://www.pdjournal.com)

 

가난한 여행자 :: 고선지 ===>>>생애 & 영향 (tistory.com)

 

고선지 ===>>>생애 & 영향

고선지(高仙芝, ? 702년~756년 나이 55세) 고구려 유민 출신 당나라 장군이다. 생애 아버지는 고구려 말기 무장이자 유민으로 당의 장수였던 고사계(高斯界)이다. 유민이 노예 신분을 탈출하는

hopergy.tistory.com

 

아프간 특별기여자 29명… 현대중공업 협력업체 취업 (hankookilbo.com)

 

아프간 특별기여자 29명… 현대중공업 협력업체 취업

탈레반이 재집권한 아프가니스탄을 떠나 한국으로 넘어온 아프간 특별기여자 29가구가 7일 취업과 함께 임시 생활시설에서 떠났다. 이달 중으로 아프간 특별기여자 전원이 지역사회에 정착할

www.hankookilbo.com

 

 

고선지의 부임지는 안서도호부로 지금의 신강위구르지역이다.

 

쿠차와 호탄, 카라샤르를 오가며

고선지는 타클라마칸 사막을 수없이 지났을 것이다.

 

 

타클라마칸은 ‘돌아올 수 없다’는 뜻으로 한반도의 1.5배에 달하는,

세계에서 사하라 사막 다음으로 큰 사막이다.

 

 

사막의 길을 훤히 꿰며 달렸을 고선지.

그런 고선지를 구당서는 [용모가 곱고 아름다웠다]고 말하고 있다.

 

고운 용모의 고선지는

파미르 고원을 넘어 소발률국 정벌에 나서 대승을 거두며 중국 대륙의 신예로 떠오른다.

 

https://youtu.be/c26nOocRdiE

 

 

 

 

https://m.blog.naver.com/zerosij/60160706887

 

고선지.. 그의 위대한 원정로..(1부)

당나라의 깃발아래 실크로드를 재패했던 장수가 있었다.. 이 장수로 인해 당나라는 실크로드를 지배하게되...

blog.naver.com

 

신장서의 서쪽 끝, 파미르 고원, 사진=윤명철 동국대 명예교수·우즈베키스탄 국립 사마르칸트대 교수

 

https://www.pdjournal.com/news/articleView.html?idxno=26679

 

“고선지, 나폴레옹·한니발 같은 명장이었다” - PD저널

고선지. 고구려 유민 출신으로 당나라 군대를 이끌었던 그를 아는 이는 많지 않다. 특히 그가 최초의 동서양 전쟁으로 불리는 ‘탈라스 전투’의 총사령관이었고, 결과적으로 종이 전파 등 동서

www.pdjournal.com

 

 

 

https://blog.daum.net/naganchun/3470

 

4, ‘고선지’ 장군 이야기

4, ‘고선지’ 장군 이야기 - 고구려 유민으로 당나라에서 기개를 떨쳤다- 고선지(高仙芝, ?년~755년)는 고구려 출신 당나라 장군이다. 서역에서 활약하고 탈라스하반에서의 전투에서 압바스(Abbas

blog.daum.net

 

서양인들은

고선지(高仙芝)라는 인물을 발굴해 높이 평가했다.

 

1000년 이상의 시간이 지난 후,

헝가리 출신의 역사학자인 오렐 스타인은

고선지를 카르타고의 장군인 한니발,

프랑스의 황제인 나폴레옹을 뛰어넘는 위대한 군인으로 평가했다.

 

중국 측 사료의 기록처럼 유민 2세대인 그는

신조국과 황제에게 충성을 바쳐 기량을 발휘했다.

 

하지만 끝내는 패배자로서,

배반자로서 처형을 당했다.

 

그의 삶 속에서 고구려는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었을까.

 

https://www.hankyung.com/life/article/202005313641g

 

당나라의 서역 정벌 영웅, 고선지 [윤명철의 한국, 한국인 재발견]

당나라의 서역 정벌 영웅, 고선지 [윤명철의 한국, 한국인 재발견] , (34) 세계 전사에 길이 남은 고구려 유민출신 고선지 장군 고구려 유민으로 당나라 장군 된 고선지 파미르 고원 넘어 72개국 점

www.hankyung.com

 

 

고선지 장군의 가장 큰 승리는 와칸 계곡의 연운보에 있다.

 

와칸 계곡은 세계의 지붕 파미르 고원의 남단부에 위치한

너비 2km, 길이 241km에 이르는 좁다란 협곡이다.

 

곰, 시라소니, 표범이 사는 위험지대로 중국, 파키스탄 등과 국경을 맞대고 있다.

 

과거 구 소련이 매장한 지뢰 제거 캠페인이 벌어지기도 하는 위험구역으로,

지뢰를 피하기 위해 일부 지역은 촬영이 금지되기도 했다.

 

아프가니스탄과 타지키스탄 국경수비대의 저지로 촬영이 중단되기도 하는 어려움 속에,

취재진은 연운보의 위치를 찾아내는데 성공했다.

 

죽음의 계곡으로 알려진 아프가니스탄 와칸 계곡을

최초로 KBS 취재진이 촬영에 성공.

당시 토번 군대가 주둔하고 있던 연운보의 위치를 확인했다.

 

고선지가 연운보에 주둔한 토번을 함락시킴으로써

당나라는 토번의 기세를 꺾게 된다.

 

지금은 티베트로 중국 자치구에 속해있지만

당시 토번은 그 영향력이 대단해 당나라를 위협할 정도였다.

 

고선지는 전략적 요충지인 연운보를 점령함으로 인해

당나라가 토번의 우위에 있음을 증명하고 그 자신도 명성을 얻게 된다.

 

https://www.youtube.com/watch?v=o8KvpvdSTIQ 

 

 

 

https://blog.naver.com/PostView.nhn?blogId=seokyu2016&logNo=222256277730&categoryNo=0&parentCategoryNo=0 

 

고선지 장군의 원정로였던 와칸 회랑(Wakhan Corridor)

이 번 글은 타지키스탄, 중국, 파키스탄 세 나라 사이로 좁고 길게 뻗어 있는 와칸 회랑에 대한 역사지리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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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m.blog.naver.com/PostView.naver?isHttpsRedirect=true&blogId=zerosij&logNo=60160715478 

 

고선지 그의 위대한 원정 2부 (연운보 전투)

고선지는 1만의 기병을 이끌고 파미르 고원을 오르기 시작했다.. 고선지는 행군을 시작하여 파밀천에 이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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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선지는 당현종의 총애를 받으며 더욱 막중한 임무를 맡게 된다.

 

이슬람과의 전쟁을 치러야 하는 것.

 

당시 이슬람은

우마이야 왕조가 지고 입바스 왕조가 새롭게 집권함으로 인해

자신의 존재를 알릴 필요가 있었고 그 동쪽엔 당나라가 버티고 있었다.

 

751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동서양이 맞부딪힌 전쟁을 치르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탈라스 전투다.

 

동서양 최초의 전투에서,

고선지는 당나라 총사령관의 직책을 맡아

10만 대군을 이끌고 탈라스 대평원으로 진군한다.

 

현재 중앙아시아는 대부분의 지역이 이슬람 영향권이다.

 

그러나

탈라스 전투가 있기 전까지 중앙아시아는 불교가 강성했다.

 

고선지가 탈라스전쟁에서 패함으로 인해,

중앙아시아가 이슬람화되는 결과를 가져온 것이다.

 

고선지가

세계 역사와 문화에 영향을 미친 것은 그뿐 만이 아니다.

 

제지술을 아는 중국포로들이

압바스 왕조의 군사들에게 포로로 잡힘으로 인해

제지술의 전파가 전 세계로 이뤄져,

유럽 문명에는 르네상스를 일으켰고

코란과 성경이 보급됨으로 인해

전 세계에 종교와 문화의 교류를 가능케 했다.

 

https://www.youtube.com/watch?v=VQki7s0Q-D8 

 

 

 

 

포로가 된 제지공은

아라비안나이트

도입부에 나오는 유명한 도시 사마르칸트로 보내졌다.

 

최초의 제지공장이 생겼고

명품 ‘사마르칸트 종이’가 탄생했다.

 

이후 종이는 중동과 유럽으로 널리 퍼져 문명의 토대가 됐다.

 

https://www.joongang.co.kr/article/3398174#home

 

사마르칸트에 종이 전해준 건 고선지 장군

서기 751년 7월. 지금은 키르기스스탄 영내인 코프로브카 평원. 고구려 후예인 당(唐)나라 고선지 장군은 탈라스 긍라사성을 30㎞쯤 앞두고 숨을 돌렸다. 7만 병력(3만 설도 있음)과 700여 리를 기습

www.joongang.co.kr

 

 

 

https://m.blog.naver.com/zerosij/60161298121

 

고선지 그의 위대한 원정 (3부 탈라스전투)

사마르칸트지라 불리우는 종이가 있었다.. 이 종이는 중앙아시아와 유럽의 문화에 큰 발전을 가져왔던 기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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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나라와 사라센 제국 사이에는 실크로드를 둘러싼 전투가

탈라스(Talas) 지역에서 있어 왔습니다.

 

포로로 사로잡힌 타슈켄트(石國) 왕이 처형된 것을 계기로

다시 전쟁이 벌어지고 당나라 현종(玄宗)은 751년에 정벌군을 일으켰으며,

사라센 제국 역시 군대를 일으켜 맞서 싸우게 되었습니다.

 

751년 4만 명의 아랍-투르크 군대가 당나라 영토로 진격했으며,

오늘날의 키르기즈스탄(Kyrgyzstan)에 있는 탈라스 강에서

고선지(高仙芝) 장군의 군대와 맞섰습니다.

 

당나라군은 주로 보병이었으며 아랍-투르크 기병에 허를 찔렸습니다.

당나라 군대는 크게 패하여 겨우 몇 천 명만이 탈출할 수 있었습니다.

 

사라센 기록에 따르면

투르키스탄 지방 탈라스강 근처에서 벌어진

이 ‘탈라스강 전투(Battle of Talas)’의

많은 포로 중에 포함되었던 제지 기술공들이

아라비아인들에게 제지술을 전파하였습니다.

 

 

 

http://hobbitwizard.com/archives/207

 

놀라운 역사적 사건, 종이 제조법의 발명 - 무한 조합의 무한 다양성

디지털 기술이 종이를 대체할 것이라는 수많은 예상에도 불구하고 광고, 책, 사진, 신문, 포장지, 지폐, 휴지에 이르기까지 종이가 없는 세상은 생각할 수조차 없습니다. 생활의 도처에서 거의

hobbitwizard.com

 

https://m.blog.naver.com/china_lab/221188694344

 

[한국 속 중국] 고선지 장군, 중국 역사를 만든 고구려의 후손

실크로드 다시 열고 종이 문화를 서방에 전달한 고구려의 후손중국에서 활동한 한반도 출진 가운데 가장 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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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뭐꼬!(What is this!) ^ 가계야치(家鷄野雉) - 他人과 비교하지 마라! - Our neighbor’s hen seems a goose. ^ 이웃집 닭은 거위로 보인다! (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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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무는 진달래를 내려다보되 깔보는 일이 없고, 진달래는 소나무를 우러러보되 부러워하는 일이 없다. 소나무는 소나무대로 스스로 족하고, 진달래는 진달래대로 스스로 족하다. 家鷄野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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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가니스탄의 역사는 아랍권에서 가장 복잡한 역사를 지녔다. 한마디로, 강대국 “패권주의의 전쟁터”였다. 구체적으로, BC 6세기경 페르시아 침입, 알렉산더제국 침공, 7세기 중엽 아랍족 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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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일라스 山(Mt' Kailas. 須彌山수미산) - 神들이 사는 聖山 (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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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일라스 산은 불교의 우주관에서 세상의 중심이자 우주의 근원으로 보는 성산, ‘수미산’으로 라마교와 힌두교의 성지이기도 하다. 티베트 남서부 마나사로와르흐 북쪽 카일라스 산맥 중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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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크 로드(Silk Road) ^ 오아시스 路 - 대흑사병(大黑死病, Great Black Death) 전파 경로 - 天山 남북 路 - 시안(장안) ^ 楊貴妃(양귀비) (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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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서 서역 개척으로 유명한 두 인물을 아는 것도 중요하겠지요. 전한 시대의 장건입니다. 장건은 한 무제의 명으로 대월지에 사신으로 파견되었는데, 중간에 흉노에게 잡혔다가 고생 끝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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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방의 고대 사서에 따르면,

이 도중 그들은 가는 곳마다 자신들의 왕조를 창조하며

현지인들과 통혼하기도 하고 현지화 하기도 하고

오늘날 튀르크민족 국가들이라고 불리는 나라들에 정착했다.

 

서쪽에서 시작하자면

이집트·터키·이란·시리아·투르크메니스탄·러시아. 타지크스탄 공화국·

아제르바이잔·우즈베키스탄·카자흐스탄·몽골리아·투바공화국 등이다.

과연 믿을 수 있는 이야기일까?

이 사실을 고대 사서에 적힌 그들의 행방 기록,

그들의 후손들이 남긴 선조들의 족보,

그들이 서쪽으로 나아가면서 그 후손들에게 생긴 얼굴 및

외모의 변화에 관한 기록 등 3가지를 통해 알아본다.

 

이처럼

고구려 왕가와 그 유민들이 서방으로 간 사실의 단서는

우선 고구려가 건재한 시기에 고구려와 돌궐 간의 친선관계에서도 발견된다.

 

[수서(隋書)] 돌궐전은

동돌궐의 계민카간(啓民可汗, Yami Kaghan)이

고구려 사신과 자기 장막 안에서 만나고 있을 때

불시에 방문한 수 양제가 이를 보고

“돌궐과 고구려 관계를 끊으라”고 요구했다고 전한다.

이 수(隋)나라 때 고구려와 돌궐의 친선관계는 이후에도 지속됐다.

앞서 [구당서]에서 확인했듯 고구려가 망하자

보장왕의 가문 일부와 그 속민이 동돌궐로 간 데서 확인할 수 있다.

또 동돌궐의 마지막 카간인 힐리카간(頡利可汗)은

보장왕과 손자, 손녀를 혼인시킨 사돈관계였다.

 

힐리카간은 계민카간(啓民可汗)의 셋째 아들로,

당나라 정관 4년(630) 이정의 공격을 받아 항복한다.

당나라의 두우(杜佑)가 편찬한 정치서인 [통전(通典)]은

‘고려왕 막리지 고문간(高麗王 莫離支 高文簡)’이

계민카간의 아들인

힐리카간의 증손녀 아시나 부인(阿史那 夫人)과 혼인했다고 전한다.

 

그리고 고문간은

당시 고구려 땅인 요서(遼西, 오늘날 요녕성)로 돌아와

‘요서고려국왕(遼西高麗國王)’ 관직을 받았다고 한다.

고(高)씨 성을 쓰고 “고려왕 막리지”라는 관칭을 쓰며,

그가 활동한 연대가

발해 초대왕인 대조영(698년~ 719년 6월)이 죽기 4년 전인 715년임을 보아

고문간은 고장의 손자로 추정할 수 있다.

고문간의 부인 아시나는

동돌궐 묵철카간(默啜可汗, 바가투르카간)의 딸이고,

묵철은 오늘날 몽골에 그 비문이 남아 있어

유명한 빌게카간(Bilge Kağan)과

퀼테긴(Kül Tigin, 684~731)의 작은 아버지이다.

아시나 부인은 이 둘과 4촌 형제자매다.

이 [통전] 기록은

[구당서]에 나오는 “고려의 옛 왕가와 유민은 돌궐로 들어갔다.

이리하여 고씨군장은 사라졌다”는 기록이 사실임을 보여준다.

그런데 고구려 왕가와 그 유민들은 돌궐에만 정착한 것이 아니다.

그들 중 일부는

몽골, 카자흐스탄, 오늘날 우즈베키스탄과 투르크메니스탄을 거쳐

유럽의 문턱인 동로마제국은 물론,

서남으로 이란과 사우디를 거쳐 심지어 시리아와

이라크를 지나 이집트에 이르렀다.

그 근거는 무엇인가?

가장 중요한 사실은 바로 [구당서]가

“돌궐로 간 고구려 왕가와 유민”이라고 한 사람들의 후손들이 남긴

자신들의 선조에 관한 족보(族譜, 페르시아어: Shejere-name, 곧 ‘나뭇가지 책’)이다.

 

곧 서방 사서가

“튀르크인”들이라고 부르는 이들이 남긴 자신의 선조들에 관한 기록이다.

‘돌궐로 간 고구려 왕가와 유민’의 후손들은

서쪽으로 이동해 간 350년간 중앙아시아 일대에 여러 왕조를 남겼다.

 

이때 자신들이 편찬한 역사서에

통치자(‘칸’ ‘술탄’ ‘샤’)의 족보 형태로 기록을 남겼다.

 

일반적으로 ‘튀르크사’로 알려진 여러 왕조 군왕들의 족보이다.

 

월간중앙 - 중앙시사매거진 (joins.com)

 

[전원철의 ‘역사 거꾸로 읽기’] 튀르크 14개 왕조의 뿌리, 고구려 고(高)씨 왕가

6세기 고대 튀르크인의 모습이 우리 선조와 닮은 까닭은?

jmagazine.joins.com

 

https://m.cafe.daum.net/kphpi21/7FFr/666? 

 

오스만 제국의 창시자는 고구려 왕족의 후예

오스만 제국의 창시자는 고구려 왕족의 후예고구려-발해 왕의 19대손 칭기스칸과 오구즈칸 족보상에 있는 오스만7. 서방으로 간 고구려 종족에서 나온 투르크 종족의 오스만 칸 가문방금 머나먼

m.cafe.daum.net

 

https://youtu.be/05mp8rYeQc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