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가니스탄의 역사는
아랍권에서 가장 복잡한 역사를 지녔다.
한마디로,
강대국 “패권주의의 전쟁터”였다.
구체적으로,
BC 6세기경 페르시아 침입,
알렉산더제국 침공,
7세기 중엽 아랍족 침공(이슬람교 전파),
10세기 마흐무드 가즈니 침공,
13세기 초 칭기즈칸의 몽고제국 침입,
14세 티무르 집권(안정기),
16세기 중엽 인도 무굴제국의 카불 수도 지정,
18세기 중엽 이란계 두라제국 건설,
18세기 말엽 최대 이슬람제국을 형성하게 된다.
그 후,
19세기 초 내전 거듭,
영국 아프가니스탄 개입,
19세기 중엽 이후 영국과 러시아 간 주도권 싸움의 희생양,
제1차 아프가니스탄 영국 전쟁(1838년~1842년),
제2차 아영 전쟁(1878년~1880년),
1919년 제3차 아영 전쟁,
1919년 8월 독립,
아마눌 왕 집권,
다우드 수상(대통령) 1973년 쿠데타‧왕정폐지‧공화제 수립,
소련원조 다우드의 쿠데타 이후 “공산주의 폭증”,
공산혁명과 소련과의 전쟁(1978년~1981년),
1987년 무함마드 나지불라 대통령 선출,
무자헤딘의 무함마드 나지불라 정권 전복(아프가니스탄 이슬람공화국).
여기서부터 지금의 “탈레반”이 관여하게 된다.
5년 후,
1992년 라바니 대통령 당선, 반 라바니 전선 구축,
“내전 확산”, 1994년 “파키스탄과 수니파 탈레반” 지원,
라바니 정부 러시아에 원조 요청,
1996년 9월, 탈레반의 라바니 정권 축출,
2001년 9월
미국 “세계무역센터”에 대한 테러(탈레반 정권 비호, 오사마 빈 라덴‧알카에다 잠적),
2001년 10월 미군의 군사공격,
2001년 11월 탈레반 정권 붕괴,
2004년 10월 카르자이 대통령 당선,
2009년 8월 카르자이 대통령 재집권,
2021년 “아슈라프 가니” 대통령 아랍에미리트로 도피 등의 역사를 가졌다.
[사설] 아프가니스탄 탈레반 정권과 “와칸 회랑(Wakhan Corridor)”의 청와대에 “긴급 타전”, 미국의 “복리(複利) 계산”!! - 경인매일 (k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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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국가 자처 탈레반 양귀비 재배 금지…내각 구성에 속도 | 한경닷컴 (hankyung.com)
1842년 영국군, 한명 빼고 전멸하다
반군지도자 악바르는 야비했다.
안전 귀환을 약속해 놓고 철수하는 영국인 대열의 후미에서
약탈과 살인 행위를 저질렀다.
영국군은 전투를 하면서 철수를 했다.
짐이 많은데다 민간인들이 대부분이어서 후퇴 속도가 느렸다.
낙오자도 있었고,
동상 걸린 사람도 속출했다.
아프가니스탄 국경 근처 좁은 골짜기를 통과할 때
악바르의 군대는 마지막 소탕작업에 들어갔다.
이 때 유일하게 살아남은 사람이 윌리엄 브라이든이다.
1월 13일,
브라이든은 유일한 생존자로 본국과 인도총독에게 보고를 전했다.
세 번째 카불 함락…강대국의 무덤 아프가니스탄 - 아틀라스뉴스 (atlasnews.co.kr)
https://m.blog.naver.com/seokyu2016/222256277730
지금부터 20년 전인 2001년 3월,
당시 아프가니스탄을 지배하던 이슬람 무장 세력 탈레반은
바미안 대불을 보란 듯 폭파했다.
천 년 이상 한자리에 서있던 높이 55m의 서대불(西大佛·사진)과
그보다 약간 작은 동대불(東大佛)은
며칠 동안 탈레반이 퍼부은 포탄과 다이너마이트에 흙먼지가 되어 사라졌다.
https://www.chosun.com/opinion/specialist_column/2021/05/18/43FN4LHXHVCDTIGE43SE5XMFEM/
영국과 러시아는
아프간을 핵심 무대로 한 그레이트 게임에 몰두하다가,
유럽 대륙에서 독일의 부상을 견제하지 못했다.
독일의 부상에 따른 1차대전은
러시아 제국의 몰락뿐만 아니라
영국 제국이 쇠락하는 계기가 됐다.
'제국의 무덤' :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전략을 이해하기 위한 간략한 역사 | 허프포스트코리아 (huffingtonpost.kr)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군사 작전
아프가니스탄 은 의 산악 지대 내륙국 입니다.
중앙 아시아 및 중동 .
아프가니스탄 역사상 침략자들 중에는 마우 야 제국 ,
그리스 제국 마케도니아 대왕 ,
우마르,
아랍 칼리프 인 ,
몽골 제국 징기스칸 ,
티무르의 티무르 제국 ,
무갈 제국 ,
다양한 페르시아 제국 ,
시크교 제국 ,
영국 제국 ,
소련 ,
그리고 가장 최근에
북대서양 조약기구의 연합군 (NATO ) ) NATO의 제 5 조
"하나에 대한 공격은 모두에 대한 공격이다.
아프가니스탄은
역사적으로 여러 인도유럽계통의 문명이 서로 영향을 주고,
전쟁을 치렀던 중요한 연결지역이 되고 있다.
여러 시대를 걸쳐 이 지역은
다양한 아리안계통의 종족들 즉
캄보자족(Kambojas),
박트리아족(Bactrians),
페르시아족(Persians) 등의 거주지가 되어왔고,
메디안족,
페르시아 제국,
알렉산더,
쿠샨왕조,
헤프탈리트족,
아랍족,
투르크족과 몽골족 등에 의해 침략을 받았다.
근대에 들어서는
결국 무위로 끝난 영국과 소련의 침략이 있었고,
최근에는 미국과 동맹국에 의한 전쟁이 있었다.
한편으로는 이 지역 원주민들이 제국을 건설하면서
이란고원지역과 인도대륙을 침략하기도 하였다.
서기 1세기에는
현재의 아프가니스탄을 중심으로하는 쿠샨(Kushan) 왕조가
광대한 제국을 건설하면서 불교문화를 이룩하였다.
탈레반이 파괴시켜
세계적으로 비난을 받은 것으로 유명한 버미얀의 석불은 이 시대에 세워진 것이다.
쿠샨왕조는
3세기에 페르시아의 두 번째 왕조인 사산제국(Sassanid Empire)에 의해 멸망당하였다.
이후 쿠샨과 사산왕조의 중도계통 통치자들에 의해 지배되다가
키다르 훈족(Kidarite Huns)
그리고 다시 헤프탈리트(Hephthalites 혹은 White Hun)족에게 복속되었다.
헤프탈리트족들은
페르시아에 사산왕조를 다시 재건한 호스로우 1세(Khosau I)에 의해
서기 557년에 멸망당하였다.
쿠샨왕조와 헤프탈리프의 후계자들은
카불리스탄(Kabulistan,
현재의 카불, 잘랄라바드, 카피사, 페샤와르, 치트랄, 가즈니 등지를 일컫는 옛지명)이라는
작은 왕조를 세웠으나 다시 무슬림 군대에 의해 멸망당하였다.
출처 : 아프가니스탄 침략 - Inversion list - Wikipedia (korean2.wiki)
아프가니스탄엔 자원이 없다.
그리고 앞서 언급했듯이 교통의 요지이나,
머무를만한 거점 지역은 아니다.
각 문명간의 다리 역할을 했지만,
건너기 어려운 흔들 다리에 가까웠다.
알렉산더 대왕이 이 다리를 서에서 동으로 건넜고,
결국 아프가니스탄 동부 산악 지역 (현재의 파키스탄 북부)에서 회군했다.
징키스칸은 북에서 서로 건넜고,
일부의 병력을 아프간 중앙부에 주둔시켰고
그들은 ‘하자라’라는 이름의 민족으로 아직 살아간다.
티무르는 북에서 동으로 건넜고,
북인도에 ‘무굴’ 제국을 세웠다.
압도적인 문명이 다른 문명을 지배하기 위해 아프가니스탄을 건너던 시절엔
아프가니스탄에서 전쟁이 일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모든 문명이 팽팽하게 경쟁하던 제국주의 시대부터는 얘기가 달라진다.
인도를 지배하던 영국은 동에서 북으로 진격했다.
2만이 넘는 세계 최고의 부대가 진군했지만,
고작 수십명이 살아돌아왔다.
북에서 남으로 진격했던 소련은 10년간의 전쟁끝에 퇴각했다.
남에서 북으로 진군했던 미군은
아직 아프가니스탄을 완전히 점령하지 못했다.
오랜 시간의 지난한 전쟁 끝에
세계의 슈퍼파워가 퇴각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개인적으로는 두 가지 이유를 생각해본다.
첫 번째로 아프가니스탄은 부족 연합체 국가다.
즉,
수도를 점령한다는 것이 국가를 점령하는 것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한양을 점령하면 전쟁이 끝날거라 생각했던 왜군과 유사한 상황이다.
두 번째로는 지리적 중요성으로 인해
‘누군가가 독점하는 것을’ 모두가 반대한다는 점이다.
아프가니스탄 전쟁사 – 들어가며 – panzerpaust
탈레반은 자금 대부분을 불법 마약 거래를 통해 유지하고 있다.
아프간 내 양귀비 재배업자와 헤로인 생산업자로부터 세금을 거두고 있고,
마약 거래에도 세금을 매겨 재정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
실제로 UN의 통계 자료에 따르면
전 세계 양귀비 가운데 약 80%가 아프간에서 재배되고 있다.
탈레반은 카불을 점령한 이후
양귀비 재배를 허용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향후 G7을 비롯해 국제 사회의 경제 제재가 심해질 경우
탈레반이 마약 사업에 다시 뛰어들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하고 있다.
탈레반은 경제 제재해도 안통해이것 생산량 80 독점 | 한국경제TV (wowtv.co.kr)
증산도 월간개벽 - 전쟁과 상흔의 역사를 지닌 아프가니스탄 (greatopen.net)
풍성한 인생 :: 아프가니스탄 근대통일국가 두라니 (tistory.com)
외세가 아프가니스탄의 영토를 점령했던 적은 많지만
그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몇 개의 도시일 뿐,
진짜 아프가니스탄이라고 할 수 있는 산악과 강 계곡지대는 장악하지 못했다.
그래서 처음에는 도시 사람들의 순순한 태도에 속았다가
산악지대의 부족전사의 저항을 만나면서부터 진정한 아프가니스탄을 겪고 좌절했다.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했던 강력한 외세의 명단을 보면
기원전 페르시아 제국부터
지금의 미국까지 상당히 많은데,
그 중에서도 알렉산더대왕,
징기스칸,
빅토리아여왕,
소련이 포함되어 있는 것을 보면 놀랄 것이다.
소련이나 미국과 같은 초강대국도
아프가니스탄을 완전히 장악하지 못한 또 다른 이유는
엉망으로 만들어진 국경이 있다.
현재의 국경은
아프가니스탄 인구분포나 정치체계와 전혀 상관이 없이 누더기로 기워진 것으로
국경을 구분한다는 것 자체가 의미가 없다.
(역사이야기) 누구에게도 무릎 꿇지 않은 아프가니스탄 - DVDPrime
문명의 충돌, 파편의 역사 아프가니스탄 (brunch.co.kr)
중국은
미군 철수에 따라 아프가니스탄에서 잠재적 기회를 포착할 수 있지만,
동시에
아프가니스탄의 내전과 혼란에 대한 두려움이 교차한다고 봤습니다.
특히 중국 정부가 과거에 테러를 저질렀다고 주장하는
이른바 위구르 극단주의 단체가 탈레반과 연대해
중국 국경의 불안 요소가 되는 것을 두려움의 이유로 지목했습니다.
일반적으로
다른 나라에 대한 관여에 반대하는 입장을 견지해온 중국이지만
2001년 아프가니스탄 침공은
유엔 안보리 활동을 통해 지지했다는 점도 환기시켰습니다.
중국과 아프가니스탄은 약 76Km의 국경선을 맞대고 있습니다.
그리고 중국측 국경 지역은 신장 위구르 자치구입니다.
그렇습니다.
최근 인권 문제로 중국과 서방이 갈등을 빚고 있는 바로 그 '신장'입니다.
서방 국가들은
중국 정부가 위구르인들을 상대로 집단 수용소를 운영하는 등
인권 침해가 심각하다고 지적하지만,
중국 정부는
직업훈련소일 뿐이고 제기되는 의혹들은 거짓이라며 전면 부인하고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주목받는 단체가 있습니다.
바로
'동투르키스탄 이슬람운동'(ETIM)'입니다.
신장 위구르 자치구의 분리 독립을 주장하는 무장단체입니다.
신장에 동투르키스탄이란 나라를 세워야한다고 주장합니다.
이들이 같은 수니파 이슬람인 탈레반 등과 연대해
아프가니스탄을 근거로
신장 독립 활동에 박차를 가할 가능성을 중국 정부는 경계할 수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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