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神話 Story

삼장(三藏) 법사 현장(玄奘) - 대당(大唐) 서역기(1)

 


현장법사(玄奘: 602년 ~ 664년)는

수나라 시대

강릉 현령 진혜의 넷째 아들로 불교를 신봉하는 집안에서 태어났다.

 

종교에 대한 열정이 남달랐던 그는 둘째 형 진소를 따라 열한 살 때 출가했다.

 

그가 공부에 매진할 당시 당나라에는

제대로 번역된 불경이 많지 않아서 교리 해석에 많은 논쟁이 따랐다.

 

이러한 이유로 많은 구법승들이

목숨을 건 험난한 여정에도 서역행을 고집했다.

 

현장 또한 당시의 구법승들처럼

불교의 발원지인 천축국으로 가서 불경을 구하고자 했으나,

나이가 너무 어려 무산되었다가

스물아홉 살이 되어서야 서역으로 떠날 수 있었다.

 


현장은 

불경 번역가로 흔히 현장삼장(玄奘三藏)이라 한다.

 

10세 때 형을 따라 낙양의 정토사에서 불경을 공부하다가

13세에 승적에 이름을 올려 현장이라는 법명을 얻게 되었다.

 

그를 부르는 또 다른 명칭은

삼장법사인데,

삼장(三藏)이란 명칭은

경장(經藏) ·

율장(律藏) ·

논장(論藏)에

능하여 얻게 된 별칭이다.

 

 

《서유기》에서 묘사된 현장은 삼장법사로서 묘사된다.

 

불경을 구하러 천축으로 가던 도중

옥황상제에게 싸움을 건 죄로

산 밑에 500년째 깔려있던 손오공의 형벌을 면제해주고

손오공을 통제하기 위해 손오공에게 금고아를 머리에 씌운다.

 

그 이후

손오공을 데리고 다니면서 천축으로 향하던 도중

저팔계와 사오정을 만나 일행에 포함시켰다.

 

이렇게

삼장, 손오공, 저팔계, 사오정은

불경을 구하러 천축으로 여행을 떠나는데

여행 도중 여러 요괴들을 만나지만

손오공의 활약으로 위기를 모면한다.

 

그런데

일방적인 것은 거의 전부의 요괴는 모두 손오공이 무찌른다는 것이다.

 

 

현장법사는

664년 2월 5일 열반에 들기 전까지

20여 년간 1,335권이나 되는 불경을 번역하여

불교가 대중 속에 깊이 파고드는 데 이바지했다.

현장은

당시의 한문 불교 경전의 내용과 계율에 대한 의문점을

팔리어와 산스크리트어 원전에 의거하여 연구하려고

627년 또는 629년에 천축(天竺, 인도)에 들어가 645년에 귀국하였다.

 

귀국 후 사망 시까지 만 19년에 걸쳐

자신이 가지고 돌아온 불교 경전의 한문 번역에 종사하였다.

 

그의 번역은 원문에 충실하며

당시까지의 번역법이나 번역어에 있어서 커다란 개혁을 가져왔다.

 

이 때문에 종래의 번역을 구역(舊譯)이라 부르고,

현장 이후의 번역을 신역(新譯)이라고 부른다.

 

현장은 중국 불교의 법상종 · 구사종(俱舍宗)의 개조이다.

  또 그는 자신의 천축 여행의 견문기를

《대당서역기》에 통합 정리하여 태종에게 진상하였다.

 

이 책은

당시의 인도나 중앙아시아(서역)를 알기 위한 제1급의 사료이다.

 

또한

문학적으로는 현장의 천축 여행을 모티브로 하여

명나라 시대에 《서유기》라는 소설이 생겨났다.

 

 

장안을 떠난 현장은

온갖 고난을 이겨내고 꿈에 그리던 나란타 대학에 도착했다.

 

나란타 대학은

불교역사이래 최대의 승가대학이었다.

 

배우는 비구들만 1만 명이 넘었으며

불교철학은 물론

싼스크리트 문법 ·

약학과 의학 ·

논리학 ·

천문학 ·

수학 ·

주술 ·

불교예술 ·

베다의 학문 등

오명학을 두루 수학하는 불교종합대학이었다.

중국에서 젊은 비구가 수만리 고행 길을 지나 나란타에 도착하자

100여명의 승려와 신도들이 영접하고 찬탄 하였다.

 

나란타 대학의 학장이신 계현법사(정법장 · 실라바드라)를 찾아뵙게 되었다.

 

현장은

예물을 바치고 무릎을 대고 기어가

스승의 발에 입을 맞춘 후에

몸을 일으켜 정중한 자세로 큰절 3배를 올렸다.

 106세의 계현법사는 물었다.

 

“그대는 어디서 오는가?”

“저는 당나라에서 왔으며

스승님께 유가사지론을 배우고 싶어

사막을 건너고 물을 건너 3년을 걸려 왔습니다.”

계현법사는 현장의 말을 듣고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낮은 소리로 말씀하셨다.

 

“내가 3년 전에 병세가 심해지고 고통이 커서 육신을 떠 날려고 하였다.

 

그날 밤 꿈에 세분의 보살이 나타나 말하였다.

 

계현법사는 전생에 백성들을 많이 괴롭힌 왕이었기 때문에

그 업보로 임종의 고통을 받는 것이다.

 

지금 중국에서 유가사지론을 배우러 비구가 출발 하였다.

법사는 때를 기다려 그에게 불법의 요체를 전수해야 할 것이다.”

106세의 계현법사는

현장을 보는 순간 병세는 씻은 듯이 좋아지고

유가사지론을 전수할 인연이 온 것을 기뻐하였다.

 

계현법사의 스승은 다르마팔라(호법)이다.

 

호법은

디그나가에게 유식철학과 인명논리학을 전수받았으며

디그나가의 스승은 무착과 세친 형제로 유명한 바수반두와 아상가이다.

 무착은

매일 밤 꿈속에 도솔천에 올라가서 미륵보살의 가르침을 들었다.

 

꿈에서 깨어나면 그는 미륵보살의 가르침을 기록 하였다.

 

이렇게

백일 간 꿈속에서 전수받은 미륵보살의 가르침이 유가사지론 100 권이다.

 

유가사지론은

미륵보살이 설법하고 무착이 꿈속에서 받아 적은 희귀한 논서 이다.

 계현법사는

현장을 위하여 15개월에 걸쳐 유가사지론을 세 번 강설하셨다.

 

현장은 스승을 찬탄하는 편지에 이렇게 쓴다.

 

“정법장 스승께서는

삼승의 가르침은 물론

외도의 단견과 상견에 대한 내용을 숨기지 않고 모두 설법해 주셨습니다.

 

품으신 고결한 뜻과 덕행은 널리 알려져

내외가 모두 귀의했고 인도의 위대한 스승이 되셨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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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장법사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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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대당(大唐)의 천자께서는

황제의 자리에 올라서 시운을 타고 천하의 기강을 장악하시니,

사방천지가 하나가 되어 밝게 다스려졌다.

 

상고시대의 3황(皇)과 견줄 정도로 그 덕화가 4방에 두루 퍼졌다.

 

그리하여

현묘한 덕화가 흘러내리고 상서로운 바람이 아득하게 부니,

하늘[乾]과 땅[坤]이 만물을 덮거나 싣는 것과 같았으며

비바람이 만물을 고르게 적시는 것과 같았다.

 

동이(東夷)도 조공을 바치러 들어오고

서융(西戎)도 그 질서 속으로 편입되었다.

 

나라의 기틀을 세워 자손에게 전하였고

반란을 다스려서 바르게 한 것은

진실로

전대의 왕들을 아득하게 뛰어넘고 선대(先代)를 모두 포함할 정도였다.

 

같은 문자(文字)와 동일한 규범으로 다스려지게 하신 신업(神業)과 같은

이 공적에 대해서는 글을 쓰지 않으면 그 커다란 계략을 찬미할 수 없으며,

하나하나 분명히 말하는 것 이외에는 어찌 그 대업을 칭송할 수 있겠는가?

현장은 오로지 서역을 유람하는 대로 그 풍토를 기록하였다.

비록

여러 나라의 풍속을 충분하게 나누어 밝히지는 못하였지만,

실로 그 땅에는

삼황오제의 시대 이상으로 천자의 은혜가 미치고 있었으며,

살아있는 것 모두가 은택을 입고 있었으니,

말을 할 수 있다면 누구라도 천자의 공적을 칭송하지 않는 자가 없었다.

 

당나라 조정으로부터

오천축국, 변경의 이민족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정삭(正朔)8)을 받아서 한결같이

천자의 덕화(德化)를 입어 무력의 공적을 찬양하며,

문덕(文德)의 성대함을 찬미하여 으뜸가는 화제로 삼고 있다.

 

 

대당서역기

대당서역기 제 01 권(1 현장(현장) 한역 변기(변기) 찬록 이미령 번역 1. 출발지에서부터 인도 국경 사이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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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당대자은사삼장법사전 : 네이버 블로그 (naver.com)

 

대당대자은사삼장법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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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척의 상단에는

금동상륜이 25층이나 되며

그 안에는 여래의 사리가 한 말이나 들어 있다.

 

이 큰 탑의 서남쪽으로 1백여 걸음 되는 곳에 흰 석상이 있는데

크기가 1장 8척이나 되고 북쪽으로 향하고 있다.

 

영험과 상서로움이 많아서

이따금 불상이 밤에 큰 탑을 돌고 있는 것을 보았다는 사람들도 있다.

 

가니색가 가람으로부터 동북쪽으로 1백여 리를 가서

큰 강을 건너 포색갈라벌저성에 이르렀다.

 

성 동쪽에는

탑이 있는데 무우왕이 만든 것이라고 한다.

 

이곳은 과거 네 부처님께서 설법하시던 곳이다.

 

성 북쪽 4~5리 되는 곳에 있는 가람 안에 2백여 척 되는 탑이 있는데

이것도 무우왕이 건립한 것이라 한다.

 

이곳은 석가불(釋伽佛)이 옛날에

보살도를 행하실 때 혜시를 즐겨 행하셨던 곳으로,

석가불께서 이 나라에 1천 번이나 환생하여 왕이 되시어

장님을 위해 천 번이나 눈을 뽑아주셨던 곳이라 하였다.

 

이러한 등등의 성적이 수없이 많은데 법사는 모두 두루 순례하고,

고창왕이 보시한 금과 은과 비단과 의복 등을

큰 탑이나 큰 가람에 다 나누어 공양하고 정성을 다한 뒤에 떠났다.

 

여기서부터

다시 더 나아가서 오탁가한다성에 도착했다.

 

성 북쪽으로 산과 강을 건너 6백여 리를 행진하면

오장나국(당나라에서는 원)이라 한다.

 

옛날 아수가왕의 동산이다.

이곳은 소바살도 강을 끼고 있었다.

 

옛날에는 1천4백여 개의 가람이 있었고

승려는 무려 1만 8천 명이 되었다.

 

삼장법사전은 소설 서유기의 현장법사 구법기의 실화 경전이다. : 네이버 블로그 (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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