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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복왕 티무르, 당대 최대의 영토를 장악하다!
우즈베키스탄의 사마르칸드를 중심으로 중앙아시아 일대의 유목민 국가를 통합한 티무르는
칭기즈칸의 후예임을 자처하며 사방으로 정복 전쟁을 벌인다.
14세기 말에서 15세기 초까지 티무르가 확보한 판도는
중앙아시아 전역을 비롯해
인도와 아프가니스탄, 이란, 이라크, 터키 등 흑해와 지중해 연안까지 이르렀다.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0121311090004854
티무르 시대
서기 1370년부터 1405년까지의 기간입니다.
1370년은 바를라스 부 출신인 티무르가 차가타이 울루스의 권좌에 오른 시점입니다.
1405년은 티무르가 중국 원정을 위해 동진하던 와중에 죽은 시점입니다.
이 기간에 티무르는 전쟁을 통해
페르가나, 이란, 이라크, 아제르바이잔 등지를 정복하고,
이집트, 소아시아, 킵착크 초원 등지에서 상위 군주로 인정 받으면서 정권을 확립했습니다.
이를 통해 티무르의 지배지는
과거 몽골 제국의 서방 3왕가(주치 울루스, 훌레구 울루스, 차가타이 울루스)의 영역을 넘어
서쪽으로는 이집트, 소아시아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계속되는 원정을 이용해 티무르는 측근 세력을 키웠고,
과거 차가타이 울루스에서 문제가 되었던 부족 세력들은
티무르 이후로는 큰 권력을 행사하지 못 했습니다.
무굴제국[Mughal Empire ~ (1526~1857)]
1857년 영국에 의해 멸망당할 때까지 인도에 존재하던 이스람 왕조.
왕조의 정식 명칭은 티무르 왕조와 같은 구르카니 혹은 구르칸으로
어원은 부마를 뜻하는 몽골어 귀르겐(güregen)에서 유래했다.
이유는
무굴 제국의 전신인 티무르 제국이 자신들의 정통성을 몽골 제국에서 찾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티무르의 5대손인 바브르 대에 와서는 몽골 제국이란
이미 한 세기 이상 과거의 이야기였기에 몽골 제국과의 연관성을 찾는 움직임은 줄고,
그 대신 몽골 제국에 못지않은 대제국을 세운 티무르의 후계임을 강조하였으며,
영토의 상당 부분이 인도였기에 자국을 힌두스탄이라 부르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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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산업스파이를 보내다
영국은 아편전쟁 후에도 무역 적자를 해소하지 못했어요.
몇 번인가 영국 스스로 차(茶)를 재배하려고도 해봤지만 번번이 실패했어요.
당시
중국이 차를 재배하고 생산하는 기술을 비밀 중 비밀로 다뤘기 때문이에요.
궁리 끝에 영국은
왕립원예학회 회원인 로버트 포천(Fortune)이라는 식물학자를 중국에 보내
차 종자와 묘목을 확보하고 이를 생산할 기술을 가져오게 합니다.
포천은 그 전에 이미 중국을 여행하면서
서양 식물학계에 알려지지 않았던 다양한 종들을 가지고 돌아와 유명해진 학자였어요.
중국에 간 포천은 어떻게 됐을까요?
중국은 생김새가 다른 외국인이 내륙 깊숙이 들어오는 걸 금지하고 있었어요.
산간 지역 차 농장까지 가는 일이 여간 어렵지 않았죠.
포천은
중국 옷에 중국 가마를 타고 중국인 관리 행세를 하며 내륙까지 들어갔다고 해요.
중국 변발을 하는 게 가장 힘들었다고 하는데요.
초보 이발사가 비누칠도 하지 않은 채
포천의 머리를 밀어 두피가 벗겨지다시피 했다고 해요.
오죽하면 포천이 자신의 일기에
'뺨으로 눈물이 줄줄 흘러내리며 고통으로 울부짖었다'라고 써놓았을까요.
멧돼지 덫에 걸려 죽어가다가 간신히 나뭇가지를 타고 기어 나오기도 하고
강도에게 배를 약탈당하기도 했어요.
포천은 3년 동안 중국 차 재배지를 돌며 고생한 끝에,
1851년 봄 묘목 2000개와 종자 1만7000개,
숙련된 차 일꾼 한 팀을 데리고 홍콩에서 인도로 출발합니다.
이후 영국은 인도에서 아편 대신
차(茶)를 키우기 시작했어요.
19세기 말에는 인도 아삼 지방의 차 경작지가 1376㎢까지 늘어났지요.
인도 북서부 다즐링과 남부 실론 섬에도 차 경작지가 퍼져 갔어요.
반세기도 안 되는 짧은 기간에 영국이
중국을 제치고 세계 차 시장의 최대 공급국이 됐어요.
한때 중국이 전 세계 차 시장을 독점했지만
이 무렵엔 점유율이 10%로 떨어졌다고 해요.
newsteacher.chosun.com/site/data/html_dir/2018/10/18/2018101800005.html
중국산 차나무·기술로 다르질링 홍차 만들어
세계 3대 홍차로 사랑받는 다르질링 홍차는
로버트 포춘이 밀반입한 중국산 차나무와 중국인 기술자로부터 출발했다.
영국동인도회사를 만족시킨 로버트 포춘은
차 산업에 진출하려는 미국 특허사무소와 차나무 밀반출을 위한 비밀계약을 맺고
1858년 3월4일 다시 우이산 퉁무관으로 향했다.
6개월에 걸친 작업으로 미국에 차나무를 보냈지만,
미국은 남북전쟁에 휩싸이며 차 산업을 포기했다.
북미대륙 유일한 상업용 차 생산농장이 있는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찰스턴 티 팜(Charleston Tea Farm)에서 자라는
차나무 조상 일부는 로버트 포춘이 퉁무관에서 불법 채집한 차나무다.
외국인 무단출입을 통제하는 퉁무관 검문소를 지나면
외국인에 대한 주민들의 경계심은 찾기 어려웠다.
차나무와 차를 만드는 기술이 모두 없었지만
차 산업에 뛰어들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불태운 영국동인도회사에 의해
홍차는 영국 식민지였던 인도를 비롯한 아시아권 국가와
아프리카 케냐 등지에서 대량생산된다.
‘홍차는 영국’이라는 인식은 아직도 유효하다.
www.sisajournal.com/news/articleView.html?idxno=172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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