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키피디아 한국어판과 중국어판에서
고구려 전성기 강역의 그림이 서로 다르다.
한국어판에는 고구려의 북쪽 강역에 동쪽으로 크게 그려져 있는데,
중국어판에서는 동부지역의 절반을 갈라 물길국(勿吉國)으로 표시해 놓았다.
물길은 삼국시대에 말갈(靺鞨)족으로 알려진 종족이다.
말갈족은 후에 금(金)과 청(淸)을 세운 만주족으로 개칭된다.
위키피디아 한국어판은
한국 사학계에서 통용되는 역사지도를 인용했을 것이고,
중국어판은 중국사학의 개념을 도입했을 것이다.
고구려 강역에서 두 나라의 개념 차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한국 사학계는
고구려가 말갈족을 지배했기 때문에 고구려의 강역으로 보았고,
중국은
말갈족이 고구려와 별도로 독립한 나라(물길국)으로 보았다.
강대했던 고구려는 중국 당나라에게 멸망했다.
그리고 중국인들은 고구려의 강토도 축소시켰다.
일종의 동북 공정인 셈이다.
고구려 영토도 축소시킨 중국인들 - 아틀라스뉴스 (atlasnews.co.kr)
동북공정이란
동북3성에서 발원한 모든 민족의 역사를 중국 민족과 역사에 편입시키려는 작업이다.
<대상>고조선,부여고구려,발해
1894년 청일전쟁 발발 직전 귀국할 때까지
위안스카이가 저지른 방자함과
조선 조정 유린(蹂躪) 사례는 일일이 꼽기 힘들 정도로 많다.
말이나 가마를 타고 궁궐 문을 무단출입했고,
조선 정부 공식행사에선 언제나 상석(上席)에 앉았다.
툭하면 군복 차림으로
궁궐 안까지 가마 타고 들어가 고종에게 삿대질했다.
130년 만에 부활한 ‘위안스카이 망령’...이번엔 대한민국 주권 뒤흔드나 - 조선일보 (chosun.com)
위안스카이(袁世凱. 원세개) ^ 중화 제국(亡靑) - 朝鮮의 近代化 가로막기 - 종북굴중혐미반일(從北屈中嫌美反日) (tistory.com)
중국의 역사공정: 탐원-단대-서북-서남-동북 공정 : 네이버 블로그 (naver.com)
[길을 찾아서] 서북공정·서남공정…멈추지 않는 중국 ‘패권주의’ / 이이화 : 교육 : 사회 : 뉴스 : 한겨레 (hani.co.kr)
돌궐은
유라시아지역 동서와 남북에 걸쳐 건설된 최초의 대제국이다.
최대 영토가 1000만㎢를 넘었고,
중국을 통일한 수와 당나라와 쟁패하면서 역사의 중심에 등장했다.
그러나 돌궐은 세력이 커지면 분열되는 초원제국의 전례를 벗어나지 못하고,
몽골고원을 중심으로 하는 동돌궐과
중앙아시아 지역으로 진출한 서돌궐로 분열됐다(582년).
둘로 나뉜 돌궐은 국력이 쇠잔해지면서 동돌궐은 630년,
서돌궐은 651년에 각각 당나라에 의해 멸망했다.
유라시아 대초원 지배한 거대제국 ‘돌궐’ - 인사이트코리아 (insightkorea.co.kr)
668년 이후 ‘돌궐로 들어간 고씨군장과 그 백성인 고구려 유민’들은
오늘날의 몽골과 카자흐스탄 등 돌궐, 곧 중앙아시아를 지나 약 350년에 걸쳐
이란, 아라비아, 동로마제국 영내 등 더욱 서쪽으로 나아갔을 가능성이 있다.
이 과정에서 그들은 페르시아(이란)인 및 아랍인들과 통혼할 수도 있다.
그 결과 원래의 동방인들은 그 모습을 바꾸기 시작해
오늘날 유럽인 또는 페르시아-아랍인과도 비슷해 보이는 모습을 하게 된 건 아닐까.
또 현대 튀르크인들이라고 하더라도 동으로 올수록 우리와 비슷하고
서로 갈수록 유럽인 또는 페르시아-아랍인과 비슷하다.
가장 서쪽 유럽에 맞닿은 터키에서 점차 동쪽으로 이어지는 튀르크 여러 나라,
곧 투르크메니스탄, 타타리스탄,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러시아 학카시아 공화국의 코라이-콩고라이인들, 카자흐스탄과 몽골에 가까운 투바인들,
그리고 우리 땅으로 다가오면서 튀르크인들의 모습은 다음 사진처럼 서서히 달라진다.
그렇다면 고구려는 결코 사라지지 않았다는 가설도 해봄직하다.
다만 한 갈래는
동쪽의 고구려를 재건한 말갈(靺鞨), 곧 진국(震國), 달리 발해로 돌아와
오늘날 우리 ‘코리아(Korea)’로 이어지고 있다고 하겠다.
또 한 갈래는
머나먼 서방으로 가서 고구려계 튀르크 제국들을 세웠다면?
이 사실은 셀주크, 오스만 튀르크, 호라즘샤, 카라코윤루 등
바로 튀르크 왕가들 자
신의 선조를 기록한 족보와 사서를 통해 충분히 유추해볼 수 있다.
그렇다면 유럽의 일부인 터키에서 중앙아시아 여러 나라는
우리와 역사적으로 피를 나눈 형제, 친척민족의 국가들이다.
이 지역을 ‘범 코레아-튀르크 정치·경제·문화 권역’으로 묶어
우리가 러시아와 중국 사이를 가르는
‘신북방정책’의 회랑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신장.위구루 - 타클라마칸사막 ^ 구게왕국 - 와칸 회랑. 아프카니스탄 - 혜초. 고선지 장군 (tistory.com)
중국이 위구르족과 돌궐족 사이에 선을 그은 것은
독립운동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신장은
1884년 청나라 영토로 완전히 편입됐지만,
1944년 신장 북부에서 소련의 지원으로
위구르족 민족국가인 동투르키스탄공화국이 수립됐다.
소련 학자들은 위구르족이 “가장 오래된 튀르크족”이라고 주장했다.
1949년 동투르키스탄공화국 지도자들이
의문의 비행기 추락으로 사망한 뒤 이곳도 중국에 병합됐다.
오늘날 위구르 독립운동 세력은 역사적 당위성을 동투르키스탄에서 구하고 있다.
중국의 발표에 대해,
‘투르키스탄’(튀르크족 땅)으로 불려온 중앙아시아에서
튀르크계 언어를 써온 여러 종족을
현대적 기준으로 구분하는 것은 무의미하다는 반론이 제기된다.
범튀르크주의나 범이슬람주의를 의식해
역사를 자의적으로 해석한 것이란 비판도 나온다.
중국은
동북공정의 고구려사에 대한 관점 탓에 한국과 갈등을 빚은 바 있다.
중국 역사 서북공정? “위구르는 돌궐 아니다” : 중국 : 국제 : 뉴스 : 한겨레 (hani.co.kr)
중국에 살고 있는 위구르족은 현재 모두 987만명이며
이중 942만명이 신장위구르자치구에 살고 있다.
신장위구르자치구 전체 인구 2천만명의 46%가 위구르족인 셈이다.
위구르족은
생김새부터 황인종인 한족과는 달리 아랍인의 외모를 갖고 있는 것은 물론
종교나 문화, 언어 등 여러 측면에서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중국인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역사 기록에 따르면
'단결' 또는 '연합'의 뜻을 지닌 위구르족은 기원전 3세기경
중국 북서부지역에서 유목생활을 하다가
부족전쟁을 피해 서쪽으로 옮겨오면서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위구르족은
돌궐족이나 흉노족과 조상이 같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흉노족의 왕자 2명이
다툼을 벌이다 부하들을 데리고 나가 만든 것이 돌궐족과 위구르족이라는 것이다.
이들은 744년 바스밀, 카를룩 등의 부족과 함께 후돌궐제국을 멸망시키고
외투켄산에서 '위구르제국'을 세우고
100년간 중앙아시아와 만주에 이르는 광대한 영토를 지배하게 된다.
특히 군사력이 뛰어났던 위구르족은
757년 당시 당나라가 안록산의 난으로 위기를 맞게 되자
위구르군을 수도 창안(長安)까지 파견해 당조를 구해주는 등 중국 조정을 돕기도 했다.
위구르족은 점차 유목적 성격을 잃고 농경사회로 전환하면서 군사력이 약해져
840년 다른 터키계 민족인 키르기즈족에 의해 멸망한 뒤 아랍, 몽골 등의 통치를 받는다.
<中 위구르족 어떤 민족인가> | 연합뉴스 (yna.co.kr)
끝나지 않은 중국의 역사분쟁-서남공정(티베트독.. : 네이버블로그 (naver.com)
중국 역사왜곡 서남ㆍ서북에 이어 동북공정까지 | 한경닷컴 (hankyung.com)
청나라 영토와 현재 중국 영토 - 도시·지리 채널 (arca.live)
유라시아 분포한 우랄·알타이어족은 고조선語 쓰던 기마민족에 기반 - 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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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wQX71d3xCqg?list=PLPrECp5Q29pvFjwvpPsBMpK8qKfFzDg4S
https://youtu.be/iGpoMNl1iRA?list=PL51gOaNkNGtjwSGZx2WEYM3Kf3DzX6sTV
칭기즈칸(成吉思汗, Genghis Khan) 후예들, 몽골문화말살 맞선 움직임.내몽골 몽골족 자치구(네이멍구 소개) (daum.net)
美 "위구르족 탄압 안돼"…中신장산 면 수입금지 검토 | 연합뉴스TV (yonhapnewstv.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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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선지는 고구려 유민 고사계의 아들이다
천산과 파미르고원을 넘나든 고선지 장군이 개척한 길들은 전쟁의 루트이기도 하였으나,
당시 최첨단 기술이었던 중국 한지(漢紙)의 제지술이 전파된 루트였다.
비록 탈라스 전투에서 고선지 부대는 패배하였으나
고선지 휘하의 병사에 의해 알려진 제지 기술은
실크로드를 따라 사마르칸트와 바그다드를 거쳐 다마스커스까지 전파되었다.
이 제지술을 바탕으로 8세기 중엽부터
바그다드에서는 동서의 문헌들이 대량으로 번역되기 시작했다.
동서 문명의 고속도로가 열리게 된 것이다.
하지만
타시켄트와 아랍 연합 세력에 대한 고선지 군사의 패배는
이 지역이 이슬람화되는 계기가 된다.
이후 이슬람은 타림 분지(즉 당(唐)의 안서 지방)로 진출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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