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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歷史^文化

만만파파식적(萬萬波波息笛) - 문무^대왕암(大王巖) - 동작동(東雀洞) 국립묘지 - 창빈 안씨(昌嬪 安氏) ^ 선조(宣祖)의 할머니 - 國泰民安(국태민안)

 

만파식적(萬波息笛). ~ 통일신라의 국보.

 

 

불었다 하면은~

적병이 물러가고,

병이 낫고,

가뭄에 비가 오고,

비올 땐 개이고,

바람은 가라앉고,

물결은 평온해 진다

 

https://m.blog.naver.com/PostView.naver?isHttpsRedirect=true&blogId=forebs&logNo=130150592368 

 

만파식적(萬波息笛)

만파식적. 통일신라의 국보. 불었다 하면은~ 적병이 물러가고, 병이 낫고, 가뭄에 비가 오고, 비올 땐 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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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파식적(萬波息笛)이

호국적인 기능을 갖고 있음은,

이것이 수성지보(守城之寶)로 강조되고,

또 이 피리를 불어 적병을 물리칠 수 있다고 한 것으로 알 수 있다.

 

이 피리가 호국의 보배가 될 수 있었음은

삼국을 통일한

문무왕과 김유신의 위덕을 의탁한 신물(神物)로 상징되었기 때문이다.


“성왕(聖王)께서 소리로써 천하를 다스리게 될 상서로운 징조입니다.

 

왕께서 이 대나무로 피리를 만들어 불면 천하가 화평해질 것입니다.”


용이 신문왕에게 했던 이 말은

이 설화가 전해주는 가장 중요한 메시지이다.

 

이는

유교의 예악(禮樂)사상과 관련된다.

예악사상에 의하면,

성음(聲音)의 길은 치도(治道)와 통하고,

소리를 살펴 음을 알고, 음을 살펴 악을 알며,

악을 살펴 정치를 알고 예악을 모두 얻으면

덕이 있다고 한다고 한다.


대나무는

합한 후에 소리가 난다고 했다.

 

이는

다양성을 화합하는 음악의 공능을 설명하고 있다.

 

음악은

여러 다양한 소리를 조화시키고 화합시킨다.

높고 낮으며,

길고 짧으며,

강하고 약한 여러 소리들이 어울려 아름다운 음악이 된다.

그래서 음악은 조화고 평화다.


전쟁이 끝나고 평화의 시대를 맞은 신문왕,

그의 과제는 조화와 화합이었다.

 

그것은

왕실과 귀족,

지배자와 피지배자와의 갈등을 해소하고,

특히

고구려와 백제의 유민들을 회유해야만 했던

통일 직후 당시의 정치사회적 상황과 무관하지 않았을 것이다.

 

사람을 감화시키고 풍속을 바꾸는데,

음악만큼 큰 것이 없다.

음악은 천지간의 화기(和氣)이고,

그 기능은 다양성을 조화시키는 것이다.

천지간의 조화로 생겨난 만파식적의 소리는

자연히 덕음(德音)에 속하는 것이고,

따라서 적병이 물러나고,

병이 나으며,

가물 때는 비가 오고,

장마는 그치며,

바람은 자고,

파도는 잔잔해지는

여러 신비적인 기능은 신비적인 것이 아니라

천지가 조화를 얻은 상태의 표현인 것이다.

46. 만파식적 설화 < 김상현교수의 7세기 한반도 < 이전 연재모음 < 지난연재 < 기사본문 - 법보신문 (beopbo.com)

 

46. 만파식적 설화 - 법보신문

문무왕·김유신 명령으로용이 임금에게 직접 전달 지배층에 의해 널리 유포정치적 목적과 깊은 관련     ▲ 신문왕은 용으로부터 세상을 구하고 평화롭게 할 수 있는 만파식적을 받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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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of the people), 국민에 의한(by the people), 국민을 위한(for the people) - 主權在民(주권재민) - 개원절류(開源節流) (tistory.com)

 

국민의(of the people), 국민에 의한(by the people), 국민을 위한(for the people) - 主權在民(주권재민) - 개

국민의(of the people), 국민에 의한(by the people), 국민을 위한(for the people) 정부는 이 지상에서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that this nation under God shall have a new birth of freedom, and 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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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왕암(문무대왕)

 

임금이 곧

이견대(利見臺)에서

동해를 바라보고 산을 살펴보니,

 

 

 

 

그 모양이

거북의 머리와 같고

산 위에

대나무 한 그루가 서 있는데

낮에는 둘로 갈라졌다가

밤이면 하나로 합쳐졌다.

 

 

이에

배를 타고 들어가서

그 대나무를 베어서 피리를 만들었는데,

이 피리를 불면

적군이 물러가고

병이 나으며,

가뭄이 들면 비가 오고,

장마 때는 비가 개며,

바람이 불 때는 그치고 물결이 평온해졌다.

 

그리하여

이 이름을 만파식적이라 하여

역대 임금들이 보배로 삼았다고 한다.

소리로써

천하를 다스리고

천하를 화평하게 하며

모든 파도를 쉬게 하는 피리.

 

이 만파식적의 상징성이야 말로

모든 마음의 파도를 쉬게 하여 번뇌를 잠재우고

경건함과 평온을 갖게 하는

범종의 참뜻과 조금도 다를 바가 없으며

그 범종에

이와 같은 만파식적 형태의 음통(音筒)을 만들어 놓았다

출처: https://namjindu.tistory.com/6639 [푸른숲 매거진]

 

 

천년고도 - 慶州 - 풍수^지리 - 만파식적(萬波息笛) (tistory.com)

 

천년고도 - 慶州 - 풍수^지리 - 만파식적(萬波息笛)

youtu.be/UAB0WaJeCrM m.gjnews.com/view.php?idx=12107 [경주신문] 마을을 찾아서...21 겨울바다! 좀 황량하긴 하지만, 군더더기 하나 없는 깨끗하고 짙푸른 바닷물과 성난 파도에 일었다 부셔지는 하얀 물거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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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제31대 신문왕(神文王)은

죽은 아버지 문무왕(文武王)을 위해

동해변에 감은사(感恩寺)를 지어 추모했다.

 

죽어서 해룡(海龍)이 된 문무왕과

천신(天神)이 된 김유신(金庾信)이 합심하여

용을 시켜 동해(東海)의 한 섬에 대나무를 보냈다.

 

이 대나무는

낮이면 갈라져 둘이 되고,

밤이면 합하여

하나가 되는지라 왕은 이 기이한 소식을 듣고

현장을 직접 방문했다.

 

이 때  나타난 용에게

왕이 대나무의 이치를 물으니,

용(龍)은

“비유하건대

한 손으로는 어느 소리도 낼 수 없지만

두 손이 마주치면 능히 소리가 나는지라,

이 대나무도 역시

합한 후에야 소리가 나는 것이요…

또한 대왕은

이 성음(聲音)의 이치로

천하의 보배가 될 것이다…”라고 예언하고 사라졌다.

 

왕은 곧

이 대나무를 베어 피리를 만들어 부니,

나라의 모든 걱정과 근심이 해결되었다.

 

그리하여 신라는

이 피리를 국보로 삼았고,

효소왕(孝昭王)때 분실하였다가

우연한 기적으로 다시 찾게 된 후

이름을 만만파파식적(萬萬波波息笛)이라 고쳤다.

25 만파식적 설화에 담긴 의미는 < 다시보는 불교학 논쟁 < 이전 연재모음 < 지난연재 < 기사본문 - 법보신문 (beopbo.com)

 

25 만파식적 설화에 담긴 의미는 - 법보신문

황수영 “국난극복 위한 호국적 의미” 주장 김상현 “왕권 강화 위한 정치적 목적” 반박 신라 제31대 신문왕(神文王)은 죽은 아버지 문무왕(文武王)을 위해 동해변에 감은사(感恩寺)를 지어 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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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으로부터 얻은 대나무로 만든 피리 

신문왕은

아버지 문무왕의 뜻을 이어

경주시 양북면 용당리에 감은사를 세웠다.

 

어느 날 바닷일을 보던 해관(海官) 박숙청이 신문왕에게 아뢰기를,

“동해안을 살펴보니

한 작은 산이 감은사를 향해 둥둥 떠오고 있습니다.”라고 보고하였다.

 

길흉을 점치는 일관(日官)을 불러 헤아려 보게 하였다.

 

일관은

“용신(龍神) 문무왕과

천신(天神) 김유신이

큰 보물을 주려는 것입니다.

 

나가서 받으셔야 합니다.”라고 말하였다.

 

신문왕은

그 달 7일에 감포읍 대본리에 있는 이견대로 향했다.

 

사람을 시켜 떠 오는 산에 대해 알아보게 하였다.

 

그 사람은 돌아와

“산의 모양은 거북의 머리처럼 생겼고

그 위에 대나무 막대기가 하나 있습니다.

 

대나무 막대기는

낮에는 둘로 나눠졌다가

밤에는 하나로 합쳐집니다.”라고 아뢰었다.

 

그 후 9일 동안

하늘과 땅이 요동치고 비바람이 몰아쳤다.

 

16일이 되자 비로소 비바람이 멎고

바다의 물결이 잔잔해졌다.

 

신문왕이

배를 타고 떠 오던 그 산에 들어가자

용이 검은 대나무를 바치며

“이 대나무로 피리를 만들어 불게 되면

천하가 평화로울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신문왕은 그 대나무를 가지고 돌아왔다.

 

그리고는

용의 말대로 피리를 만들어

왕실의 보물창고인 천존고에 보관하였다.

 

이 피리를 불게 되면,

침입한 적병이 물러가고

가뭄에는 비가 내리며

비바람이 몰아치다가도 잦아들었으므로

‘물결을 쉬게 하는 피리’라는 뜻에서

‘만파식적(萬波息笛)’이라 불렸다.

 

모든 근심 걱정을 해결하는 피리, 만파식적<입에서 입으로 전해 내려온, 지역의 설화<지역N문화 테마 (nculture.org)

 

모든 근심 걱정을 해결하는 피리, 만파식적

신문왕은 아버지 문무왕의 뜻을 이어 감은사라는 절을 세웠다. 어느 날 바닷가에 작은 산이 하나 감은사를 향해 떠내려 오고 있었다. 신문왕이 일관에게 물으니 문무왕과 김유신이 큰 보

ncms.nculture.org

 

내가 죽은 뒤에

용이 되어 불법을 받들고

나라의 평화를 지킬 터이니

나의 유해를 동해에 장사지내라.

 

화려한 능묘는 공연한 재물의 낭비이며

인력을 수고스럽게 할 뿐 죽은 혼은 구할 수 없는 것이다.

 

내가 숨을 거둔 열흘 뒤에는

불로 태워 장사할 것이요,

초상 치르는 절차는 힘써 검소와 절약을 좇아라.”

 

상상력을 자극하는 대왕암의 전설 - 오마이뉴스 (ohmynews.com)

 

상상력을 자극하는 대왕암의 전설

[문화유산답사 70] 감포 ‘문무대왕릉’을 찾아

www.ohmynews.com

 

https://youtu.be/8M7hXP9CEcg

 

 

 

신라 신문왕ㅡ감은사지 : 네이버 블로그 (naver.com)

 

신라 신문왕ㅡ감은사지

경상북도 경주시 양북면 용당리 55-1번지에 소재한 통일신라 시대의 사찰. 현재는 건물터와 감은사지 3층 ...

blog.naver.com

 

https://youtu.be/XdzDWRPLS20

 

 

https://brunch.co.kr/@everher/8

 

경주, 감은사지 탑과 대화하다.

감은사지 석탑에게 던지는 질문 | 감은사지 석탑에게 던지는 질문 경주지역에서 계속되는 지진을 놓고 말이 많다. 200년 혹은 500년 주기설을 이야기하며 현재가 그 주기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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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작동 국립묘지

 

서울시 동작구 현충로 210번지.

앞에는 한강이 흐르고

뒤로는 관악산 공작봉이 호위하듯 펼쳐져 있다.

 

이곳의 인터넷 홈페이지는

‘산수의 기본이 유정(有情)하고

산세가 전후좌우에 펼쳐져 흐르는 듯하여

하나의 산봉우리,

한 방울의 물도 서로 조화를 이루지 않은 곳이 없으며

마치 목마른 코끼리가 물을 마시는 듯한 형상(渴形象)으로

그야말로 명당 중의 명당이라 할 수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곳은 어디일까.

바로 국립서울현충원,

흔히 ‘동작동 국립묘지’라고 부르는 곳이다.

 

https://m.khan.co.kr/national/national-general/article/201208172139375#c2b

 

국립묘지에 대해 얼마나 아십니까

서울시 동작구 현충로 210번지. 앞에는 한강이 흐르고 뒤로는 관악산 공작봉이 호위하듯 펼쳐져 ...

m.khan.co.kr

 

역사적으로 보면

이 지역은 조선시대 단종에게 충절을 바쳤던

사육신(이개, 하위지, 유성원, 유응부, 성삼문, 박팽년)의

제사를 모시던

육신사(六臣祠)가 있던 곳으로 전하여지며

보훈충의(報勳忠義)가 깃들인 곳이다.

 

지형적으로는,

관(冠)을 쓴 듯 봉우리가 솟았다 하여 관악산이며,

붓끝과 같이 뾰족한 형세라 하여

문필봉(文筆峰)이라 일컬어지는 산세로 감싸여 있다.

 

이들 산세 속의 펑퍼짐한 지형을

‘동작포란형(銅雀抱卵形)’이라 하여

동작이 알을 품고 있듯

상서로운 기맥(氣脈)이 흐른다 하였다.

 

또한,

전면을 흐르는 한강수가

용트림하듯 흐르고 있어 한층 미관을 더하고 있다.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tem/E0006262

 

국립서울현충원(國立─顯忠院)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국립묘지령」은 그 첫 조항에서 ‘군인·군무원으로서 사망한 사람과 국가에 유공한 사람의 유골 또는 시체를 안장하고, 그 충의(忠義)와 위훈(偉勳)을 영구히 추앙하기 위하여 국방부 장관

encykorea.aks.ac.kr

 

박근혜 대통령이 대선에 출마했을 당시,

방귀 꽤나 뀐다는 풍수가들은

저마다

박정희 대통령 묘역에 대한 분석을 내놓았다.

 

동작동 국립현충원에 있는

박정희 대통령의 묘역이

왕을 배출할 자리인가 아닌가,

그것이 핵심이었다.

이때마다

반드시 거론되는 또 한명의 인물이 있었으니,

바로

중종 후궁 창빈안씨였다.

 

박정희 대통령의 묘가 국립현충원에서도

창빈안씨의 묘 바로 옆에 위치해 있기 때문이다.

창빈안씨는 살아생전 숙용안씨였다.

안씨가 죽은 뒤에 창빈으로 승격된 것은

그의 손자 하성군이 선조가 되었기 때문이다.

창빈의 묘는

이미 조선시대부터

‘명당 발복(明堂發福)’이라고 소문이 난 곳이었다.

 

관악산 공작봉에서 내려온 산줄기가

한강수에 가로막혀

더 이상 기운이 나가지 못하는 지점이 국립현충원 자리인데,

그 맨 꼭대기에

창빈안씨 묘소가 위치해 있다.

창빈안씨의 혈통을 이어받은 왕손들이 조선후기 왕조를 계승했으니,

이 자리에서 배출된 왕은

선조부터 순종에 이르기까지 14명에 이른다고 할 수 있다.

 

 

방계 왕자로 왕위에 오른 선조는

자신의 아버지와 할머니를 추숭할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위차를 중시하는 유교식 방법으로는 추숭이 거의 불가능했다.

 

종통 상으로 볼 때

선조는 덕흥군의 뒤를 이은 것이 아니라

명종의 뒤를 이은 것이기 때문이었다.

선조가

자신의 할머니와 아버지를 추숭하기 위해 선택한 방법은

불교식 추숭, 즉 원당의 설치였다.

 

선조는

살아생전

숙용이었던 할머니 안씨를 창빈으로 추숭하는 한편

창빈묘 부근에 위치한 갈궁사를 화장사로 개칭하고

창빈의 원당으로 삼았다.

 

이 절이

현재 국립현충원 안에 위치한 호국지장사이다.

호국지장사

 

http://www.ibulgyo.com/news/articleView.html?idxno=124782 

 

현충원 꼭대기, 천하명당일까? - 불교신문

선조부터 순종까지 14명의 왕 배출명당여부, 5년 뒤 역사가 가려줄 것박근혜 대통령이 대선에 출마했을 당시, 방귀 꽤나 뀐다는 풍수가들은 저마다 박정희 대통령 묘역에 대한 분석을 내놓았다.

www.ibulgyo.com

 

https://www.koya-culture.com/mobile/article.html?no=129564 

 

동작동 국립묘지의 중종후궁 창빈안씨 무덤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우리나라 사람치고 동작동 국립묘지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처음에는 6.25 전쟁 때 전몰한 국군장병들을 한 곳에 안장하기 위하여 1955년에 국군묘지로 설

www.koya-culture.com

 

조선 중종의 후궁

덕흥대원군의 생모이자 선조의 친할머니다.

참고로 

선조와 선조 이후의 조선 국왕들이 전부 후손이다.

 

 

경기도 시흥에서

 중종반정의 원종공신인 안탄대(安坦大) 의 딸로 태어나

 1507년 궁녀로 입궁했다.

 

뛰어난 미인은 아니었지만 성품이 차분하고 행동거지가 정숙하여,

 정현왕후의 신임을 받았다.

 

정현왕후는

안씨를 아들 진성대군의 후궁으로 추천했고,

20살의 안씨는 정3품 품계인 숙용에 봉해졌다.

영양군과 정신옹주를 생산한 데 이어,

후대 조선 왕통을 이끌어갈 중요한 자식인 덕흥대원군을 낳았다.

후계자 문제로 정치가 불안정하던 중종 시절,

안씨는 궁궐 생활에 눈에 띄지 않았고 품행이 다정해서,

중종의 정실(계비)인 문정왕후와 잘 지냈다.

중종 사후에도 문정왕후의 만류 덕분에 안씨는

 여승이 되지 않고 궁궐에 머물 수 있었다.

 

또한

안씨가 죽은 이후에도 문정왕후

안씨의 세 자녀를 잘 돌봐주었다.

 

그런 인연 덕분인지

문정왕후의 외아들 명종이 후사없이 세상을 떠나자,

명종의 정실 인순왕후

안씨의 자손인 하성군을 즉위시켰다.

 

선조와 이후의 모든 조선 국왕은 안씨의 후손들이다.

 



안씨의 생전에는 전혀 생각지도 못한 일이지만,

 그녀의 손자인 하성군이 왕위에 오른 덕분에

안씨는

내명부 정1품 빈(嬪)으로 추존되어 창빈의 칭호를 받았다.

 

 하지만

진짜 영예는 오히려 왕조가 멸망한 후에 받았으니,

하술되었듯

그녀의 묘 사방에 대한민국 대통령 4분이 묻혔다. 

 

출처 : https://namu.wiki/w/%EC%B0%BD%EB%B9%88%20%EC%95%88%EC%94%A8

 

 

 

 

https://blog.daum.net/dshdsh1/965

 

현충원 원주인 창빈안씨묘(2021.04.22)

요즘 맡은 바 책무로 바쁘고 힘들지만 오후에 시간을 내어 국립묘지를 걷는다. 오늘은 국립묘지의 옛 주인인 창민 안씨의 묘소와 호국지장사를 둘러보려고 마음을 머고 출발한다. 사당통문의

blog.daum.net

 

https://youtu.be/_mjJ2uZNqT4

 

 

King Maker ^ 해경궁 洪氏 ^ 한중록(閑中錄) - 正祖 이후는 사도세자(莊祖)의 後孫에서 王 ... (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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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경궁이 환갑이 되던 해에 정조는 어머니를 모시고 사도세자의 무덤이 있는 수원으로 행차했다. 사도세자가 죽은 지 32년 만에 남편의 무덤인 현릉원에 간 것이다. 실로 모진 세월을 이겨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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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krsQH_Dc040

 

 

정치가(政治家) ^ 경세가(經世家) ^ 스테이츠먼(Statesman) ^富國安民(부국안민) ^ 개원절류(開源節流) - 정치꾼 ^ 정상배(政商輩) ^ 폴리티션(Politicion) ^ 黃雀伺蟬(황작사선) ^ 흥청망청(興淸亡淸) (tistory.com)

 

정치가(政治家) ^ 경세가(經世家) ^ 스테이츠먼(Statesman) ^富國安民(부국안민) ^ 개원절류(開源節流

영어로 정치가는 '스테이츠먼(staesman'이고, 정치꾼은 '폴리티션(politician)'이다. 스테이츠먼은 당리당략에 얽매이지 않고 국가의 장래를 생각하는 경세가(經世家)라고 하고, 폴리티션은 국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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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화가’에서는 절대미를, ‘처용가’에서는 관용을, ‘찬기파랑가’에서는 한국적 영웅을, ‘혜성가’에서는 인간주의를, ‘제망매가’에서는 죽음(열반)에 대한 옛 조상들의 가치관과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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