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천 지역에는
감문면, 감문천등 감문국과 지명이 남아 있고,
감문국과 관련한 다양한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김천시에 따르면,
감문국 읍성은 개령면 동부리에 있는 감문산성으로 추정되며,
감문국의 궁궐의 초석으로 전해져 내려온 돌이
양천리 유동산 북쪽 밑에 있는 민가에 1969년까지 있었다고 한다.
개령면 뒷산인 감문산에는
감문국의 성이었던 감문 산성이 남아있다.
토성이며 군창지, 봉화대 터 등이 남아있다.
감문면에는 속문산(또는 백운산)에 속문산성이 있는데,
이 산성이
감문국의 마지막 군대가 신라에 저항했던 곳이라는 전설이 내려온다.
개령면 광천리 빗내 마을에 빗내 농악이 전수되고 있는데,
이 농악이 감문국의 군악이라고 전해진다.
빗내 농악은 옛 감문국의 나랏제사로,
풍년을 기원하는
빗신제가 혼합해 동제(洞祭) 형태로 전승되어 왔다.
매년 음력 정월 6일에 풍물놀이와
무당의 굿놀이,
줄다리기 등의
행사와 함께 진굿(진풀이)의 농악놀이로 발전했다.
경상북도 무형문화제 제8호로 지정되어 있다.
사라진 고대왕국…풍부한 전설 속 감문국 - 아틀라스뉴스 (atlasnews.co.kr)
우리 사서에 감문국이 처음 등장하는 것은
‘삼국사기(三國史記)’로
신라조(新羅條) 조분이사금(助賁尼師今) 2년 7월조에
“以伊湌昔于老爲大將討破甘文國伊其地爲郡”
즉
“신라가 이찬 석우로를 대장으로 삼아 감문국을 토멸하고
그곳을 감문군으로 삼았다”고
기록된 이래 모든 사료에 감문으로 등장하고 있다.
감문국은
감천의 중하류에 위치해 비옥한 충적평야지를 기반으로
기원 후 1세기경 성립돼 정치적 성장을 꾀하고 있었으나
고대국가로 성장하기 전 단계에서 여타 소국에 비해
일찍이 고대국가의 기틀을 마련한
사로국 즉 신라에 의해 정복되고 말았다.
조선중기의 인문지리서인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이나
후기의 ‘대동지지(大東地志)’ 등 관련 사료를 종합해 볼 때
감문국의 중심지는 현재의 개령면 동부리 일대로 추정된다.
그 영역은
감문면과 아포읍,
어모면,
조마면까지 미쳤을 것으로 보이며 일부학자들은
선산군 무을면 일대까지를 감문국의 영역으로 보기도 한다.
http://m.kimcheon.co.kr/view.php?idx=49718
보현당 묘지에서 역사인물을 만나다. (보현당의 묘지기행) :: [잃어버린 왕국을 찾아서 1] 감문국 - 영남일보 (tistory.com)
http://www.newstown.co.kr/news/articleView.html?idxno=20290
금효왕릉(金孝王陵)
금효왕릉은
감문국 시대 왕릉으로 전해지는 고분으로
궁궐 터에서 감문산을 넘어 북쪽으로 8㎞ 떨어진
현 감문면 삼성리 오성마을 930번지 밭 가운데
봉분 높이 6m, 지름 15m 크기로 남아 있는데,
김천 지역에서는 가장 큰 고분이다.
금효왕릉의 규모는 현재보다 큰 규모였다고 하나
오랜 세월 경작지로 잠식되어 전체적인 규모가 축소되었고,
일제 강점기 수차례 도굴되어
부장품의 존재 여부조차 장담할 수 없는 실정이다.
주민들 사이에서는
특별한 의미 없이 말무덤으로 불려 왔는데,
여기서‘말’은‘크다’는 의미를 가진 접두사로 봐야 하므로
말무덤은 큰무덤, 곧 수장(首將)의 무덤으로 봐야 할 것이다.
옛무덤 거치러지고
거치러진 풀이 요란하니
아마도 금효왕 넋이
편치 않은가 하노라
http://www.seoulilbo.com/news/articleView.html?idxno=316565
嶺南(辰韓.진한) 고대 小王國 탐방(3) - 상주 ^ 사벌국(沙伐國) - 상주(상산) 朴氏 - 고녕가야(古寧伽倻)^함창 (tistor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