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독국(押督國)은
경주에 이웃해 있어 일찍부터 신라에 병합되어 신라영토가 되었다.
김유신이 젊은 시절에 선덕여왕 13년(644년) 압량주(押梁州) 군주(軍主)가 되어
성사를 거느리고 백제의 7개 성을 쳐 크게 이겼다.
신라와 백제가 전투를 할 때
안강은 경주를 방어하거나 백제를 치는 군사적 요충지로서 역할을 했다.
경북 경산시 일대에는 많은 고인돌과 대형 고분이 남아있었다.
압독국 시대의 고대 고분은 1980년대 경산 임당동과 조영동에서 처음 발견됐다.
임당동 1호 고분(국가사적 516호)에서는
은제 허리띠와 순금 귀걸이,
금동관모,
고리자루칼 등의 껴묻거리와 함께
금으로 치장한 성인 유골 1구와 순장자로 추정되는
어린아이의 인골(이빨)이 함께 출토됐다.
아마 신라에 정복된 이후에
압독국 지역을 다스리던 현지 수장의 것으로 추정된다.
조영동 고분에서도 순장의 흔적과 유물 800여 점이 발견되었으며
2017년 11월 경산 하양읍에서도 왕릉급 목관묘가 발굴된 바 있다.
사라진 고대왕국…경산 압독국의 비밀 - 아틀라스뉴스 (atlasnews.co.kr)
신라에 이웃하여 일찍이 신라 영토가 됐다는 기록이 있다.
압독국이 있었던 위치 일대에는
지금도 많은 고인돌과 대형고분이 유존한다.
신라는 병합 후 압독 지역을 대단히 중시한 것으로 보인다.
압독 지역이 경주로 들어가는 관문이기 때문.
김유신이 진덕여왕 때 이곳의 군주로 오기도 했다.
신라불교에 큰 공적을 남긴 원효(元曉)가 압독 출신이라는 점 등을 근거로
압독 지역이 신라 발전에 한 몫을 담당했던 것으로 짐작되기도 한다.
https://www.donga.com/news/Society/article/all/20190918/97459801/2
영남대 정문 건너편 야트막한 구릉지대에 남아 있는 고분군이
압독국 지배계층 무덤이라는 게 학계의 정설이다.
임당동고분군,
조영동고분군,
부적리고분군으로 나눠지는
이곳에는 조사된 무덤만 1500기가 넘는다.
1987년 발굴 때 임당고분에서는 순장 흔적 속에
금동관,
금동신발장신구,
금귀고리,
은허리띠 등 유물 5000여 점이 쏟아졌다.
공개된 경산시 하양읍 목관묘가
압독국의 왕릉급 무덤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평야지대 가운데 있는 임당고분군과 달리
압량들판의 끝자락,
무학산·팔공산으로 이어지는 산기슭에 있다.
1세기 전후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이 무덤에서
중국제 청동거울, 철검, 팔찌 등이 대거 출토됐다.
한 무덤에서 부채가 3개나 나온 것은 처음이라고 한다.
규모와 부장품에서 임당고분군을 능가한다고도 한다.
https://www.hankyung.com/opinion/article/2017112333521
행복 108계단의 끝자락,
곧장 깎아지른 바위절벽과 맞닥뜨린다.
여기서부터는 한 사람만 겨우 지나갈 수 있는
좁고 가파른 철제계단이 바위절벽에 꼭 붙어 달려있다.
배려와 양보의 마음을 가져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가르침을
온 몸으로 배우며 천천히 발걸음을 옮긴다.
가파른 계단 위 이내 문패와 같은
‘紅珠庵’ 붉은 음각을 만나게 된다.
이 음각을 지나면 낮은 석굴을 나오는데 이곳이 홍주암이다.
원효대사가 처음 수행을 시작하고,
김유신이 단을 쌓아 기도를 했다는 바로 그 장소다.
석굴은 천연적으로 법당이 되었고,
석굴 중앙바위에는 좌정한 모습의 석가모니 부처님을 양각해 모셨다.
마애불 앞 바위에는 작지만
당당한 모습의 금강역사가 양각돼 있다.
석굴 왼편에는
‘아동제일약수(我東弟一藥水)’라 새겨진 작은 샘이 있다.
원효대사와 김유신이 부처님께 공양을 올린 청수다.
1970년 2월
원효대사가 토담을 쌓고 수행했을 당시의 부처님이 발견됐다.
그 부처님은 현재 경주박물관에 보관돼 있다.
https://www.beopbo.com/news/articleView.html?idxno=83827
인근에 있는 선본사 갓바위가 전국적으로 유명하지만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불굴사 홍주암이다.
http://www.seniormaeil.com/news/articleView.html?idxno=18120
嶺南(辰韓.진한) 고대 小王國 탐방(2) - 청도 이서국(伊西國) - 이사금 ^ 잇(齒)큼 - 朴.昔.金 (tistor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