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알은 곧 세계다.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파괴하지 않으면 안 된다.
새는 신을 향해 날아간다.
신의 이름은 아프락사스다.”
우리는 모두 알에서 태어난 새와 같다.
아기 새가 견고한 알을 깨고 나오려면 얼마나 힘겨울까?
하지만
그것을 스스로 깨지 않는다면 새가 될 수 없다.
우리는
어머니의 자궁에서 온 힘을 다하여 제 머리로 밀치고 나오는 고통을 참아내며
세상으로 나와 첫 울음을 터트렸을 것이다.
비단 생물학적인 태어남만 그런 것이 아니다.
우리가 무엇인가를 새롭게 시작하려면,
예를 들어 처음으로 학교라는 세계에 들어가려면
기존의 미취학 아동의 상태에 있었던
모든 즐거움들,
편안함들,
유치함들을 버려야하는 고통이 따른다.
어떻게 보면 우리는 수많은 알들을 깨고 지금 여기까지 와 있고,
지금 현재도 어떤 알 속에 머무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만약 지금 무엇인가에 힘겨움을 느낀다면,
우리는 또 하나의 파괴를 준비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더 견고한 `알의 세계’가 있으니
그것은 외부의 환경이 아니라 내면의 환경이다.
데미안은 싱클레어에게
그 내면에 자리한 의식의 세계를 깨뜨리고 새롭게 태어나야 한다고 말한다.
거기에 압락사스가 있다는 말과 함께.
[명작에게 길을 묻다]헤르만 헤세 ‘데미안’ < 함께하는 교육 < 요일특집 < 기사본문 - 광주드림 (gjdream.com)
0:33 → 싱클레어의 집에는 두 세계가 공존했다
2:43 → 끝까지 거짓말을 한 싱클레어, 세계가 파괴되다
7:54 → 싱클레어에게 나타난 신비로운 존재, 데미안
12:40 → 새로운 변화를 겪게 된 싱클레어, 그 안에 나타난 데미안
16:17 → 보내지 않은 편지에 답장을 받은 싱클레어
18:04 → 새로운 조언자, 피스토리우스를 만난 싱클레어
19:36 → 데미안과 다시 만나게 된 싱클레어
“Boys, be ambitious”
“젊은이여, 꿈을 품으시오!”
“Boys, be ambitious” | 에코와이즈 블로그입니다^^ (ecowise.kr)
‘Boys, be ambitious!’는
영어수업 시간에 한번쯤은 들어본 적이 있는 유명한 구절이다.
삿포로농학교(현재의 홋카이도 대학)에서 최초의 외국인 교감을 지낸
미국인 윌리엄 클라크가 1877년 4월 16일
삿포로 남쪽 시마마츠역에서 학생들과 작별하면서 남긴 명언으로 전해지고 있다.
사실 클라크가 실제로 이런 말을 했는지는 논란이 있었고 했더라도
‘ambitious’의 정확한 뉘앙스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여러 설들이 많았다.
하지만 오오시마 마사타케가 저서에 남김으로서 정설로 굳어지게 됐다.
클라크가 기독교 신앙에 입각해 학생들을 가르쳤기 때문에
‘ambitious in Christ’(그리스도의 신앙안에서 뜻을 세워야)로 해석하는 이들도 있다.
한국어로는 Boys be ambitious를 무조건
야망을 가져라라고
천편일률적으로 해석하는 경향이 있는데
일본어번역으로는
‘少年よ大志を抱け’ 즉 ‘소년이여 큰 뜻을 품어라’로 돼 있다.
‘Boys, be ambitious’ 명언에 얽힌 얘기 | 제3의길 (road3.kr)
데미안과 떨어져 지내면서도
자신도 모르게 데미안이 제기한 수많은 화두에 매달리던 싱클레어가
어렵게 완성한 그림이 바로 저 찬란히 날아오르는 맹금류 아프락사스다.
싱클레어는 자신이 무엇을 그리는지 인식하지 못한 채
무의식의 흐름을 따라 알에서 깨어나 날개를 펼치는 새를 그렸다.
데미안은 그 새의 이름이 아프락사스임을 알려준다.
완전무결하고 지고지순한 신이 아니라
가장 어두운 악의 세계와
가장 아름다운 선의 세계를 모두 합일시킨 전체성의 신 아프락사스.
피스토리우스는 아프락사스의 의미를 알려주고
해박한 지식과 통찰력으로 싱클레어를 훌쩍 성장하도록 돕기도 하지만,
드높은 이상을 꿈꾸면서도 안정된 삶의 유혹을 버리지 못하는
피스토리우스의 나약한 이중심리를 싱클레어는 꿰뚫어본다.
그리고
바로 그 피스토리우스의 나약함이 자신의 성장을 가로막는 장애물임을 알게 된다.
피스토리우스에게
“이제 그 곰팡내 나는 잡소리는 집어치우고
진짜 당신의 내면에서 솟아나오는 이야기를 해보라!”고 요구하는 순간
싱클레어는 진정한 영혼의 독립을 선언한 것이다.
[심리학으로 소설 읽기] 데미안에 마음의 빚 느껴 마음의 벽 쌓는 싱클레어 - 중앙일보 (joins.com)
데미안 줄거리 및 감상 - 헤르만 헤세(박상배 옮김) : 네이버 블로그 (naver.com)
데미안 줄거리, 주제, 독후감 - 인간이 되는 과정 : 네이버 블로그 (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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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악장 17:50
4악장 22:28
https://www.truezin.com/news/articleView.html?idxno=10134
“모든 인간의 생활은 자기 내면으로 향하는 하나의 길이고,
그 길을 가려는 시도이며 암시이다.”
또,
헤세는 사춘기를 지나면서 느끼는 성장통을
새가 알을 깨고 나올 때의 충격과 아픔으로 표현하였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힘겹게 애쓴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그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비슷한 현상을 표현한 한자 성어로
줄탁동기(또는 줄탁동시)가 있다.
병아리가 알에서 나오기 위해서
새끼와 어미 닭이
안팎에서 같이 껍질을 쪼아 깨는 것을 뜻한다.
‘줄’은
병아리가 알 속에서 껍질을 깨기 위하여
쪼는 것을 가리킨다.
‘탁’은
어미 닭이 품고 있는 알에서 이 소리를 듣고
밖에서 알껍질을 쪼는 것을 나타낸다.
원래 ‘줄탁동기’는
불교의 깨우침과 관련된 한자성어로,
중국 선종(禪宗)의 대표적인 화두(話頭)를 모은
<벽암록(碧巖錄)>에 수록되어 있다.
(참고로 화두는 수도승에게 깨우침을 유도하기 위한 물음의 요체이다.)
어떻게 보면
병아리는 깨달음을 향하여 앞으로 나아가는 수행자이고,
어미 닭은
깨우침의 방법을 알려주는 스승이라고 할 수 있다.
병아리와 어미닭이 동시에 알을 쪼기는 하지만,
어미는 처음에 작은 도움만 줄 뿐이고,
결국 병아리 자신이 알을 깨고 나온다.
이는 스승은 깨우침의 계기만 제시할 뿐이고,
나머지는
제자가 스스로 노력하여 깨달음에 이르러야 함을 의미한다.
<데미안>에 나오는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는 말도 이와 같은 뜻이다.
(데미안)에서 “새가 알을 깨고 나오기”와 줄탁동기 - 의사신문 (doctorstimes.com)
줄탁동시(啐啄同時) 또는 줄탁동기(啐啄同機) 뜻과 유래, 손바닥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 : 네이버 블로그 (naver.com)
줄탁동시(啐啄同時)란
병아리가 알 속에서 껍데기를 쪼고(口卒)
어미 닭도 밖에서 함께 쪼아주는 일(啄)이
동시에 이뤄져야 부화가 된다는 뜻으로,
임직원이 화합을 이뤄야 난관을 이겨낼 수 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공부를 시작한 후로 제 사고가 많이 유연해졌어요.
꼭 풀타임 사무직이 아니더라도 지금처럼 재택으로 이전에 해왔던 일을
다시 해볼 수 있겠다는 결심이 서더라고요.
또,
이전에는 연차가 쌓여감에 따라 숫자로 설명되는 성과에만 점점 더 몰입했다면,
이제는 ‘이야기’가 있는 일을 하고 싶었어요.
시간이 한참 지난 후에도
제 기억 속에 남아있는 일은 고객과의 이야기더라고요.
성과는 말 그대로 남들이 볼 수 있는 숫자일 뿐,
진짜 저의 보람이 아니었던 거죠.
소설 데미안이 워킹맘에게 가르쳐준 교훈, “흑과 백이 아닌 좀 더 유연한 사고로” (lifejump.co.kr)
화투의 12월 패(비광) 무늬는
개구리와 우산을 든 오노노도후인데 무늬의 유래는 이렇다.
한 때 오노노도후는 자신의 재능 없음을 한탄하며
서예를 그만둘까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어느 비 오는 날 산책을 나갔는데 불어난 개울물에 휩쓸리는 개구리가
수양버들로 뛰어 올라 탈출하려는 시도를 연거푸 실패하는 것을보고
"개구리는 바보다.
아무리 뛰어 올라도 수양버들에 오를수는 없을텐데"라고
바보 취급하고 있을 때
공교롭게도 강한 바람이 불고 수양버들이 휘어
개구리가 수양버들에 뛰어 오르자,
이를 본 오노노도후는
"바보는 나다.
나는 저 개구리만큼
필사적으로 붓글시에 매달려 보았던가?" 하고 붓글씨에 매진했다고.
단,
이 일화는 사실 여부가 불분명 하다.
이 일화가 퍼진 때는 에도 시대 중기로 보이며
그 뒤 제2차 세계 대전 이전의 일본의 국정 교과서에도
이 이야기가 실렸으며 많은 사람에게 퍼졌다.
이 일화는 화투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의 그림소재가 되었다.
화투 비광의 숨겨진 이야기 , 오노도후 : 네이버 블로그 (naver.com)
개구리는 문자 그대로 필사적이었지만
오노는 속으로
'지 까짓 게 저 가지를 어떻게 잡겠다고…'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얼마 후 바람이 불어 가지가 흔들렸고
개구리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가지에 올라 목숨을 건졌습니다.
이 장면을 본 오노는
(당연히)
'나는 저 개구리만큼도 노력하지 않았구나'하고 반성했습니다.
그길로 마음을 고쳐먹고
다시 서예에 매진해 일본을 대표하는 명필이 되었다고 합니다.
일본 도덕 교과서에서도 소개한 적이 있는 이 에피소드는
일본 사람 대부분이 줄거리를 알고 있지만
실제로 이런 일이 있었는지는 불분명합니다.
조선을 대표하는 명필 한석봉(1543~1605)이
어둠 속에서 떡을 써는 어머니와 맞대결을 벌여 패한 게
사실인지 아닌지 모르는 것처럼 말입니다.
원래 하나후다에서 이 비광 주인공=오노는
스이칸(水干)을 입고
에보시(烏帽子)를 쓴
전형적인 헤이안(平安) 시대(794~1185년) 인물로 등장합니다.
반면 한국 화투에서는
옷과 모자 모두 중국식으로 바뀌어 있습니다.
아무래도 왜색 논란을 피하고 싶어서 그런 거겠죠?
우산 쓴 화투 비광 주인공은 누구? : kini'n creations (tistory.com)
등고자비(登高自卑)에서
登은 오를 등,
高는 높을 고,
自는 부터 자,
卑는 낮을 비로
유교 사서(四書) 중 하나인 '중용(中庸)'에서 유래했다.
'높은 곳에 오르려면
낮은 곳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는 뜻으로
모든 일은 순서를 밟아야 함을 의미한다.
또한 지위가 높아질수록
자신을 낮춤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기도 하다.
'높은 곳에 오르려면
낮은 곳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는 뜻으로
모든 일은 순서를 밟아야 함을 의미한다.
또한 지위가 높아질수록
자신을 낮춤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기도 하다.
'맹자(孟子)'의 '진심편(盡心篇)'에서
군자는 아래서부터 수양을 쌓아야 한다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바닷물을 관찰하는 데는 방법이 있다.
반드시 그 움직이는 물결을 보아야 한다.
마치 해와 달을 관찰할 때
그 밝은 빛을 보아야 하는 것과 같다.
해와 달은
그 밝은 빛을 받아들일 수 있는 조그만 틈만 있어도 반드시 비추어 준다.
흐르는 물은
그 성질이 낮은 웅덩이를 먼저 채워 놓지 않고서는
앞으로 흘러가지 않는다.
군자도 이와 같이
도에 뜻을 둘 때 아래서부터 수양을 쌓지 않고서는
높은 성인의 경지에 도달할 수 없다.
[틴틴충전소] 사자성어 - 등고자비(登高自卑) - 매일경제 (mk.co.kr)
U-Tube에서 1부~11부 Auto 이어보기
(좌^하 ~ 클릭하셈)
https://youtu.be/BtkEozhfQyk?list=RDCMUCHHUXIYpoxNQgdCXpq-o4u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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