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군총사령관 맥아더 장군은
한국전쟁을 빨리 끝내기 위해 총공세를 펴기로 하고
15,000명의 미 해병 1사단을 원산에 상륙시켰다.
이 부대는 북진 끝에 11월 하순,
함흥 북쪽 장진호까지 진격했다.
하지만 중공군은 이미 10월 하순 한반도에 들어와 있었다.
해발 1000m가 넘는 산악지역인 장진호에도
중공군 4개 사단 12만여명이 포진해 있었다.
미군이 중공군에 포위돼 공격을 받자 유엔사령부는 철수를 명령,
11월말 1사단은 추위와 굶주림 속에 포위망을 뚫고 탈출했다.
이 장진호 전투(Chosin Reservoir Battle·`초신`은 장진의 일본식 표기)에서
엄청난 사상자가 양쪽에서 발생했다.
미군측 기록에 따르면 이 전투에서만
중공군 25,000명,
미군 3000명의 전사자가 나왔다.
탈출한 병사들은 흥남까지 철수했고,
연합군이 진격할 때 환영했던 민간인들까지 뒤섞여 흥남으로 몰려들었다.
이때 흥남항에서 미 해병 1사단을 포함한
10만5000명의 지상군과 10만 여명의 피란민,
1만7500대의 각종 차량과 35만t에 달하는 군수물자를
193척의 군함으로 남쪽으로 탈출시킨 과정이
`흥남철수`라고 불리게 된 것이다.
이때
후송하지 못한 200t의 탄약과 같은 양의 폭약,
500개의 포탄,
200드럼의 유류는 최종철수 때 항만과 함께 폭파됐다.
https://blog.daum.net/gmania65/478
“아주 진을 치고 있는데, 몇 천 명, 몇 만 명이 넘는 줄이었다”고 회상했다.
당시 미 10군단의 고문이었던 현봉학 박사의 설득으로,
미 10군단 지휘관인 에드워드 알몬드 장군과 레너드 라루 선장은
‘버릴 수 있는 모든 것을 버리고,
구할 수 있는 모든 사람을 구하라’고 지시했고,
선원들은 배에 실었던 군수물자와 무기 등을 내리고
마지막 피난민 1만 4000여명을 승선시켰다.
‘흥남부두 철수 작전’은
약 10일간 10만 5000명의 병력과
1만 7000대의 차량을 비롯한
대부분의 장비와 물자를 옮겼을 뿐 아니라,
북한 피난민 9만 1000명 등을 포함해
수많은 피난민을 탈출시킨 역사적 사건이다.
영화 ‘국제시장’ 속 기적의 실화 ‘흥남부두 철수 작전’ - 천지일보 - 새 시대 희망언론 (newscj.com)
애치슨은 미 상원 비밀 청문회에 나가
‘미국의 극동 방어선은
일본의 오키나와에서 필리핀을 잇는 선(Line)으로 한다’고 말했다.
그것이 바로 그 ‘경망한 발언’이다.
이른바
‘애치슨라인 선언(Acheson's line declaration)’이라는 것이다.
이로써 한국은 미국의 극동 방위선에서 빠졌다.
따라서
우리에게는 청천벽력과 같은 최악의 소식이었지만
남침 전쟁 준비를 끝낸 김일성에게는 더 이상 고무적일 수가 없었다.
어쩌면 타이밍도 김일성에게 그렇게 절묘할 수가 있는가.
당초는 비밀 증언이었으나
미 상원 외교위원장이 전격 공개함으로써
피아(彼我) 간에 ‘핫뉴스(hot news)’로서 긴급하게 전파되게 되었다.
http://www.newscj.com/news/articleView.html?idxno=270696
1950^有起誤 ^ 美.中전쟁 - 君主's ^ 誤判 - 에치슨 Line - 文's Line (tistory.com)
https://www.youtube.com/watch?v=9-Oiksr8EzQ
https://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210622025038
맥아더 기념관에 보관된 한 장의 서류.
액션리포트(작전보고서)라는 제목의 이 문서는 6.25전쟁이 끝난 후
무려 23년 간 기밀에 부쳐져 있다가 70년대에 세상에 공개되었다.
액션리포트에는
보름간 진행된 흥남철수작전의 진행 과정이 매우 세세하게 기록되어 있는데,
작전에 동원된 배는 군함부터 세계 각지에서 달려온 상선,
심지어 어선까지 다양했다.
그들이 각종 무기와 짐,
기름까지 버리고 실은 것은
'크리스마스 카고'라는 별칭으로 기록된 특별한 화물,
바로 민간인 피난민들이었다.
웨이크 섬 회담을 마친 며칠 후인 10월 20일 맥아더는
한국군과 미군이 탈환한 평양에 비행기로 날아온다.
그는 비행기에서 내리더니
“날 맞아줄 고위인사가 누군가?
Kim Buck Tooth는 어디 있지?”라고 농담을 한다.
맥아더가 말하는 ‘김 벅 투스(Kim Buck Tooth)는
그가 말하는 김일성의 별명이며
직역하면 ‘김 뻐드렁니’다.
맥아더는 김일성을 그렇게 불렀다. 그
는 밤을 새지 않고 바로 도쿄로 돌아갔다.
하지만 그가 평양 방문을 통해 달라진 것은 없으며
벌써 중공군이 압록강을 건넜다는 사실도 몰랐다.
http://www.newscj.com/news/articleView.html?idxno=271280
http://www.news2day.co.kr/article/20200110146235
http://www.news2day.co.kr/article/20200115146522
데이비드 핼버스탬의 저서
‘가장 추운 겨울’을 통해 본다면
중공군은 미군에 비해 장비와 무장면에서 취약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맥아더가 깔보았듯이 그렇게 엉터리없는 군대는 아니었다.
그들의 옷과 모자는 얼핏 보아서는 우스워도
미군의 옷은 따라가지 못할 만큼 최고의 방한복이며 위장복이었다.
옷으로 말하면 한쪽은 카키(khaki)색,
또 다른 쪽은 흰색으로 두 가지 용도로 쓰였으며
흰색을 밖으로 내어 입었을 때는
평안도나 함경도 설원(雪原)에서 죽은 듯이 눕거나 엎어졌을 때
항공 정찰로는 식별해낼 수가 없었다.
이것이 그들을 아군의 눈에 띄지 않는
유령 군대로 만들어 놓은 이유 중의 하나다.
그뿐이 아니다.
그들은 날이 새면 산골짜기에 연기를 피워,
온 계곡을 그것으로 가득 메우게 함으로써 공중에서 볼 때
연무(煙霧)나 아지랑이로 착각하게 했다.
http://www.newscj.com/news/articleView.html?idxno=272307
https://m.blog.naver.com/PostView.naver?isHttpsRedirect=true&blogId=anddt&logNo=220503520876
[현장] 이렇게 된다… 1950년 흥남, 1975년 베트남, 2021년 아프간 | Save Internet 뉴데일리 (newdaily.co.kr)
아! 함보른 탄광! 박정희! 한강의 기적! (tistory.com)
트루먼과 맥아더의 갈등이 보여주듯이
대통령과 전쟁을 수행하는 장군의 생각은 다를 수 있다.
그렇다면 그때 우리에게는 어느 선택이 좋았을 것인가.
맥아더가 가진 직선적 소신의 관철?
트루먼의 절충적 생각?
하지만 쉽게 결론 내릴 과제로는 생각되지는 않는다.
미국은 왜 맥아더를 해임하고
한국전쟁을 휴전으로 마무리 지었는가?
이 역시 깊은 연구가 필요한 과제인 것이 분명할 것이다.
http://www.newscj.com/news/articleView.html?idxno=273164
트루먼과 맥아더는
이전에도 숱한 의견 충돌을 빚었다.
당시 상황에서 견해가 가장 엇갈렸던 대목은
38선 재돌파 문제였다.
1950년 북한의 기습 남침으로 시작된 전쟁 초기
부산 일대만 남기고 밀렸으나
인천상륙작전 등을 통해 북한을 거의 점령한 상태에서
중공군의 개입으로 서울까지 내줬다가(1.4 후퇴)
반격에 성공해 서울을 찾은 상황.
맥아더는 북진을 요구했으나
트루먼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https://www.sedaily.com/NewsVIew/1KUZTVC5GD
만약 중공군이
미 해병을 그들의 덫으로 유인할 생각이 아니고 격퇴하려 했다면
스미스 사단이 황초령을 건너기 전에 다리를 파괴했어야 옳다.
그렇지만 그들은
스미스 사단이 다리를 건넌 뒤에서야 다리를 부쉈다.
이로써 중공군의 의도와 유인 전술은 명백해졌고
스미스 사령관의 처음 직감은 적중했다.
수동 북방 전투에서 중공군이 쉬이 퇴각한 것도
미군을 그들의 덫으로 더 깊숙이 끌어들이기 위한 미끼용 전술이었을 수 있다.
다리는 만약의 경우 후퇴로일 수도 있지만 외길 보급로로서 생명줄이다.
때문에 미군과 중공군 사이에 황초령 다리를 놓고
부수고 새로 짓고 하는 실랑이가 계속 벌어져야만 했다.
http://www.newscj.com/news/articleView.html?idxno=274085
‘장진호 전투와 흥남철수작전’을 통하여 교훈을 돌이켜보자.
첫째, 철저한 동계전투 준비의 필요성이다.
중국군의 “항미원조 전쟁사, 장진호편”에 보면
장진호 전투 당시 ‘중공군 연대 전 병력이 동사하거나 전사하였고,
동상으로 진지에서 사망한 자가 너무 많아
2개 중대 중 겨우 20명만이 전투가 가능했다’는 기록이 있다.
또 “혹한으로 박격포 70%를 사용할 수 없었고,
소총 및 기관총도 노리쇠가 얼어 격발이 되지 않았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동계전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혹한 속에서의 전투력 보전이라 할 수 있다.
둘째, 장진호 전투시
미 해병 제1사단장 스미스 소장과 같은 훌륭한 리더십을 자진 지휘관 육성이다.
스미스장군이 실제 전투를 지휘함에 있어서 직관적인 판단력으로
진출속도를 조절하고 병력 및 부대를 집중 운용 했으며,
‘다른 방향으로 공격’이라 표현으로 신념과 리더십을 발휘했다.
추운겨울은
영화 ‘국제시장’처럼 인생의 ‘장진호 전투’가 있을 수 있다.
이를 극복하는 것이 삶이고, 인생이다.
“평화를 원하거든 전쟁을 준비하라(備戰則和 乞和則戰)”
고대 로마의 전략가인 베게티우스가 주장한 말이다.
국가는
평화를 대비하여 전쟁을 준비하는 국민이 되어야 한다.
https://www.kgnews.co.kr/mobile/article.html?no=618142
장진호 전투는 쫓기는 철수 작전이기는 했으나
조지 워싱턴으로부터 시작한 140년 미 해병 역사에 비추어
조금도 부끄러움이 없는 기념비적인 전투였다.
그것은 미군의 탁월한 해·공·육 연합 작전 능력과
미 해병 1사단 장병들의 용기
그리고
스미스 소장의 현명한 지휘력이 빚어낸 작품이었다.
만약 이들이 진격만을 외쳐대던 도쿄 사령부나
알몬드 10군단장의 지시대로만 움직여 중공군의 덫에 깊숙이 걸려들었다면
그들은 장진호의 혹한과 중공군의 덫을 쉽게 빠져 나오기 어려웠을 것이다.
http://www.newscj.com/news/articleView.html?idxno=275014
“평화를 원하거든 전쟁을 준비하라(Si Vis Pacem, Para Bellum)!!”
고대 로마의 전략가인 베게티우스가 주장한 말이다.
역설적이게도 ‘평화’를 위해선 전쟁도 불사할 수 있어야 한다는 논리다.
누군들 평화를 원치 않고, 전쟁을 원하겠는가?
그러나 그 접근법이 잘못되었다는 거다.
평화는 구호를 외치거나 구걸해서 오는 것이 아니다.
만약의 사태에 대비한 만반의 전쟁준비와
도발시 처절한 응징만이 평화를 보장한다.
저렇게 대화가 통하지 않고, 막나가는 놈들에게는 몽둥이가 약이다.
여기에서 이순신 장군이 한 말을 되새겨 본다.
必死則生 必生則死
(죽기로 싸우면 살 것이요, 살자고 하면 죽을 것이다.)
이를 현재의 우리 정세에 비추어 문 대통령과 집권층에게 간언해 본다.
備戰則和 乞和則戰
(전쟁을 준비하면 평화가 올 것이요, 평화를 구걸하면 전쟁이 오리니)
http://www1.president.go.kr/petitions/303?navigation=petitions
http://www.newscj.com/news/articleView.html?idxno=275999
잊혀져가는 유기오(6.25) - 백마고지 ^진내 포사격 - 낙동강방어선 ^다부동 전투 - 따이한^짜빈동 전투 (tistory.com)
저널리스트 데이비드 핼버스탬(David Halberstam)이 말한
‘가장 추운 겨울’의 한국전쟁은
하복을 입은 채 성급하게 북진한 유엔군에게 엄청난 피해를 입혔다.
군을 따라 오르락내리락해야 했던
우리 양민들의 피해와 불행은 더욱 형용할 수가 없다.
영화 ‘국제시장’의 배경인 흥남철수가 우리에게 보여준 것은
그것의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더구나 영화와 달리 치유가 안 된 상처들을
우리는 아직도 너무나 많이 안고 있지 않은가.
http://www.newscj.com/news/articleView.html?idxno=276948
新 에치슨 Line(?) - 靑(中)^朝(韓) vs 美^日 - 미국 ^ 中共 포위 Line - 아시아 핵기획그룹(ANPG) ^ KOR 不 포함 (tistory.com)
https://youtu.be/TjME2Ei62ZU?list=RDTjME2Ei62ZU
국가정보원과 경찰이
북한 공작원의 지령을 받고
우리 공군의 핵심 전력인 F-35A 스텔스 전투기 도입 반대 활동을 한 혐의로
지역 신문사 대표 등 4명을 붙잡아 수사 중이다.
이들은 F-35A가 도입된 2019년부터
배치 기지인 청주를 중심으로 반대 서명 운동과 1인 시위 등을 주도했다고 한다.
북 노동당 대남 공작 부서인 문화교류국이 직접 지령을 내렸다고 하는데
이는 북 정권이 F-35A를 그만큼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북 정권은 F-35A가 국내에 도착하자
“무모한 전쟁 광기” “반민족적 범죄 행위”라고 연일 비난했다.
김정은은
“첨단 무기를 반입하는 남측에 대한 경고”라며 신형 탄도미사일까지 쐈다.
그러자 문재인 정부는
3월 도착한 전투기 전력화 행사를 하반기로 미뤘다.
인수식 등엔
장관과 공군 총장이 아닌 차관과 차장을 보내기도 했다.
북 눈치를 살핀 것이다.
[사설] 코로나 지원금 준다고 먼저 줄인 건 北 두려워하는 F-35 도입 예산 - 조선일보 (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