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들 알고 있는 연극의 3요소는
무대,
관객,
배우다.
그렇다면 연극의 2요소는 무엇일까.
바로
배우와 관객이다.
그만큼 배우와 관객은
연극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프로시니엄 무대가 나타나고
D.디드로가 주장한 제4의 벽이 만들어지면서
관객들은 참여보다는 관람이 되었다.
하지만 과거의 관객들은 어떠하였을까.
셰익스피어시대의 연극들만 보더라도
아니 우리나라의 오광대 놀이만 보더라도
관객들은 공연에 참여했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야유를 보내거나 신나게 웃기도 하고,
토마토를 던지고 욕설을 내뱉기도 했다.
그만큼 연극에 대한 개입이 많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관객들은 일방적인 정보들을 받아들이며
수동적인 존재가 되었다.
배우와 관객은 서로에게 에너지를 준다.
배우들은 제4의 벽을 깨부수고 나와야 하고,
관객들은 제4의 벽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않고
당당하게 참여해야 한다.
[매일춘추] 연극의 3요소와 2요소 (imaeil.com)
요즘 TV를 보면 이런 식의 표현이 자주 나온다.
"굉장히 아름다운 것 같아요"
"이 제품은 주부들이 많이 찾는 것 같아요"
이와 같은
'~한 것 같다'는 애매한 표현은
우리나라 사람들의 말과 글에서 자주 보인다.
자기 의견을 강하게 내세우지 않으려는
한국 사람 특유의 겸손함 때문에 나타나는 오류이다.
하지만
이런 문장은 설득력이 매우 약하다.
신 교수는
"이는 자신의 생각이나 주관을 자기가 확신할 수 없다는
무책임한 표현"이라며
"책임을 회피하는 듯한 막연한 문장으로는
절대 상대방을 설득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글쓰기, 특히 논술에서는
'~한 것 같다'는 문장은 과감히 잘라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평소 말 습관에서
먼저 '같아요'를 버려야 한다.
'글'은 '말'을 종이 위에 옮긴 것이다.
"아름다운 것 같아요" 대신
"아름다워요"라고 말하는 습관을 갖는다.
www.chosun.com/site/data/html_dir/2007/09/19/2007091901231.html
관객은 거리를 둔 구경꾼인 동시에
능동적 해석가
(해설가가 아니고...)
한 초등학교 교사가 아이들에게 내어준 '생각하는 과제'.
사진 속엔
앙상한 헐벗은 어린이가 땅에 떨어진 빵 부스러기를 주워 먹고 있다.
그림을 보고
'그림 속 아이와 자신을 비교해 보고,
난 얼마나 행복한 사람인지 이유를 들어 설명해 보라'는 문항에
아이는 이런 답을 꾹꾹 눌러 썼다.
"남의 아픔을 보고
내가 얼마나 행복한지 아는 것은 별로 좋지 않다고 생각한다.
같이 아픔을 해결해주려 하고
같이 잘 먹고 잘 살아야 될 것이다."
아이의 이 기특한 답변은
SNS상에 떠돌며 수많은 누리꾼을 울컥하게 했다.
www.busan.com/view/busan/view.php?code=20160617000019
Longer :: 연극의3요소 절대없어서는안되는것들 (tistory.com)
‘~같다’를 꼭 써야 할 상황에서는 써야 한다.
내용상 단정적으로 말하기가 어려울 때가 있다.
다만
무심코, 습관적으로 남발하는 것은 조심해야 한다.
‘시간이 걸리다’가 확실치 않으면
‘걸릴 것이다’라고 하면 된다.
‘걸릴 것 같다’는 남용이고,
‘걸릴 수 있을 것 같다’라고 하면
오용에 해당한다.
www.hankyung.com/society/article/2018092849041
흰쥐와 검정쥐의 비유
안수정등(岸樹井藤) 이야기
빈두설경(賓頭說經)에 기록되어 있는
이 안수정등(岸樹井藤)의 비유담은
우리의 인생을
언덕[岸]과
나무[樹]와
우물[井]과
칡덩굴[藤]로
엮어서 만든 이야기로 불자들이 아니더라도 많이 알려져 있는 이야기입니다.
끝없는 무명장야의 이 세상에 태어나
무상신속의 불안 속에 위협을 당해 가면서
수파후랑(隨波遂浪)하는 인생,
이 인생을 부처님은 이 설화에 비유했습니다.
인생은 누구나 끝없는 세월 속에 여행을 계속하고 있는 유람객이다.
누구고 생사의 암두에 바로 서서 깊이를 알 수 없는 깊은 못을 바라보면
무서운 죽음의 그림자가 시시각각으로 다가옴을 볼 것이다.
생명 하나만을 온 몸의 끄나풀로 믿고 모든 고통을 참고 가는 모습을 똑똑히 볼 것이다.
사람은 나면서부터 사형선고를 받고 도살장을 향해 보보등단하는 소와 같다.
밤과 낮의 시간이 용서 없이 우리의 명맥을 깎으면서 지나간다.
생각하면 소름이 끼칠 정도로 위험한 운명에 놓여 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4대 6신을 5욕의 쾌락에 깊숙히 묻고
미망으로부터 미망으로 고뇌로부터 고뇌로 줄달음질친다.
대왕 빔비사라는 이 법문을 듣고 불사의 영광을 얻었다 하거니와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도
이 설화에 의하여 비로소 구도의 역정에 오르게 되었다 한다.
정치 평론가들은
자신의 정치적 이데올로기나 신념을 앞세우기 보다는
자신의 선택이나 주장에 대한 객관성과 공정성부터 확보해야 한다.
정치 평론가들의 사실(fact)에 따른 그들의 가치(value) 판단이
유권자의 정치적 혼동을 줄이고,
합리적인 정치 참여를 유도하는 길임을 동시에 알아야 한다.
선거에서 정치적 판단과 선택은
해설자의 몫이 아닌
시청자나 독자의 몫이기 때문 더욱 그러하다.
정치 평론의 수준이
참여민주주의 수준이라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깨닫게 하는 아침이다.
정치 평론가의 역할을 다시 평론 한다 - 경북매일 (kbmaeil.com)
어차피 인생이란
연극이 아니더냐
울지마 울긴 왜울어
바보처럼 울긴 왜울어
세상 돌아 가는 꼬라지를
남의 집 불구경 하듯
쳐다 보고 (볼 수 밖에...)
지원금 받아 써보니
꿀처럼 달기는 하다마는...
조삼모사(朝參暮四)인지...
진또배기(짐대백이)가 뭐여! - 소도(蘇塗)^솟대 - 장승백이 - 參足烏 - 처용가 (tistor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