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정이 아산 현감을 발령받아 부임한 것은 무인년(戊寅年, 1578년) 봄이었다.
토정의 나이 예순두 살이었다.
토정은 아산에 부임하자 포천에서 그랬던 것처럼 우선 아산의 현황을 파악하였다.
그래서 만나는 사람마다 가장 어려운 일이 무어냐고 직접 묻곤 했다.
그때 나온 것이 양어장 문제였다.
아산의 양어장에서 나오는 잉어는 워낙 맛이 좋아 아산 지방의 특산물로 이름이 높았다.
서울의 벼슬아치들이 그것을 알고는 나랏님께 바치는 공물 품목에 넣었는데,
중간에 손을 대는 관리들이 많아 해마다 잉어 공물량이 늘어났다.
잉어 양식량은 늘 같은데 할당량이 늘어나니 백성들만 죽을 지경이었다.
토정은 그 말을 듣고 즉각 양어장을 흙으로 메꿔 폐쇄시켜버렸다.
잉어를 아예 산출시키지 않아 공물량의 많고 적고로 인한 시비가 생길 겨를이 없게 만든 것이었다.
토정에게는 그만한 힘이 있었다. 선조가 자신을 인정했다고 해서 나온 것은 아니었다.
그와 절친한 율곡이 권력의 핵심에 있고 같은 화담 산방 출신인 박순이 영의정이며
조카인 산해가 대사간, 산보가 집의의 직책에 올라 조정의 인정을 받고 있는
유망한 관리이기 때문도 아니었다.
토정은 오히려 그런 벼슬에는 근처에도 가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포천 현감이나 아산 현감 같은 벼슬을 맡은 것은
그 나름으로 백성에 대한 사랑을 직접 실천할 기회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이미 토정이라는 이름은 조선 팔도 어디를 가나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던 것이다.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 그리고 그 백성으로부터 받는 신뢰,그것이 토정의 진정한 힘이었다.
토정은 즉각 자신이 조사한 아산의 현황을 글로 적어 한양으로 보냈다.
토정은 이 상소를 통해 임진 대환난을 암시하면서 군대 문제를 신랄하게 파헤쳤다.
상소는 거의가 다 군대 문제로 가득 차 있었다.
토정은 생애의 마지막을 예견하면서도 임진 대환난만을 걱정하고 있었다.
그에게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이 문제가 가장 컸던 것이다.
- 엎드려 아룁니다.
비록 만병 통치의 영단(靈丹)이 있을지라도 열병을 앓는 자가 복용하면 죽는 일이 있고,
비록 불결한 것일지라도 열병을 앓는 자가 복용하면 사는 일이 있사옵니다.
진언을 채용하는 도리도 또한 이와 같사옵니다.
엎드려 원하옵건대,
전하께서는 우생의 말을 지극히 불결하다 하지 마시고 성은을 베푸시어 백성의 병을 구하여주십시오.
신은 들으니
'임금된 이는 백성으로써 하늘을 삼고, 백성은 먹는 것으로써 하늘을 삼는다'고 하였사옵니다.
신은 한 가지 일을 예로 들어 자세히 아뢰겠사옵니다.
일찍이 들으니 우리 아산에서 하루에 소장을 올리는 자가 4, 5백 명에 이른다고 하기에,
신은 사람이 많아서 그러하고 풍속이 나빠서 그렇다고 생각하였사옵니다.
그런데 신이 부임한 뒤에 보니 사람이 많고 풍속이 나빠서 그런 것이 아니었사옵니다.
원통한 백성이 많은 것이 다른 고을에 비할 바가 아니었기 때문이었사옵니다.
신은 청컨대 그 사유를 말하겠사옵니다.
지나간 계축년(癸丑年, 1553년)에 군적을 정비할 때,
이 고을의 현감이 아전에게 매를 쳐가면서 장정을 많이 끌어들이게 하였사옵니다.
아전이 고통을 견디지 못하여, 늙고 병들어 금방 죽게 된 사람도 장정에 충당시키고,
이어서 나무, 돌, 닭, 개의 이름까지도 장정으로 채워 넣었사옵니다.
그래서 장정이 다른 고을보다 배나 더 있는 것이옵니다.
비록
우리 아산만이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아산이 가장 심했던 것이옵니다.
따라서 남는 장정은 다른 고을에 옮겨 보충하게 되었사옵니다.
갑술년(甲戌年, 1574년)에
군적을 개정할 때도예전 숫자에 따르고 감히 고치지 못하였사옵니다.
그러나
실지로는 아산의 백성으로서 아산의 군적에 충당시켜도 오히려 부족한데 하물며
다른 고을의 군역이겠습니까?
굳이 보내야 한다면 강아지나 장승을 몰아보낼 수밖에 없사옵니다.
그런 까닭에
삼대 독자인 사람도 면역되지 못한 자가 있고, 70세가 되어도 군에서 제적되지 못한 자가 있사옵니다.
정원에 결원이 매우 많은데, 하물며 다른 고을의 군역에 복무하는 일이겠습니까?
각종 군병과 관부의 노비가 이미 그 본인이 없으면 반드시 그 일족에게 대가를 징수합니다.
그리고
가난한 백성이 갑자기 그 대가를 마련해내지 못하면 독촉하거나 잡아들이옵니다.
그리하여
남자로 하여금 자기 자신의 번을 서고 또 일족의 번을 서게 하며
여자로 하여금 자기의 군포를 바치고 또 일족의 군포를 바치게 합니다.
남자는 군대 막사에서 울부짖고, 여자는 감옥에서 울부짖사옵니다.
농사와 누에 치는 일에 때를 잃어 입을 것과 먹을 것이 모두 없사옵니다.
부대에서 달아나 타향에 숨어서 꼬리를 감춰버리며 사라져 없어지기에 이릅니다.
진실로 슬픈 일이옵니다.
원통함을 호소하는 자가 날마다 관정에 가득합니다.
어떤 자는 그 일족의 촌수도 알지 못한다고 일컫고,
어떤 자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말합니다.
그것을 변별하고자 한다면 궐번은 누가 설 것이며,
만약 변별치 않는다면
병정으로 인한 백성의 병폐는 마침내 구제할 수 없을 것이니 장차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한 현의 원통한 백성이
이미 천여 명이 되니 온 나라 안의 원통한 백성은 몇 만이 될는지 알 수 없사옵니다.
이렇기 때문에병정으로 인한 백성의 원통한 기운은
천지 사이에 꽉 차서 삼광이 흉을 고하고 전염병이 치성하니 또한 두렵사옵니다.
문왕이 기산을 다스릴 때
어리고 아버지가 없으며, 늙고 자식이 없으며, 늙어서 아내가 없고,
늙어서 남편이 없는 이 네 부류의 사람은 천하의 궁민으로서 호소할 곳 없는 자들이라,
문왕이 정령을 발포하여 인정을 베풀 때에는 반드시 이 네 부류의 사람들을 우선하였사옵니다.
오늘날의 궁민은 문왕 때보다 많사옵니다. 그러나
백성 중에는 구휼의 은택을 입는 자가 없으니 신은
그윽히 성명하신 전하를 위하여 부끄럽게 여깁니다.
본현에 사족(士族)인 김백남이란 자가 있는데, 나이
예순한 살에 아직까지 배우자가 없다고 합니다. 신이
이상하게 여겨 그 이유를 물었사옵니다.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우리 현에는 사람이 부족하여 사족을 각종
부역에 충원시킨 일이 매우 많습니다.
그런데 만약 그들이 다른 고을로 옮겨가버리면
일족이 그 대신 침해를 받게 됩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근심하여 일족을 피하기를 함정을 피하듯 합니다.
김백남의 이름이 일찍이 군 안에 들어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사위 삼기를 즐겨하질 않사옵니다. 그래서
늙은이가 되기까지 이른 것입니다'라고 하였사옵니다.
신이 그 말을 듣고 그 사람을 보니 탄식과 측은함을
견딜 수 없었사옵니다. 또 말하기를 '백남은 형제
중에서 건실한 자이옵니다. 그의 맏누이 김씨는 나이
쉰 살인데 아직 시집가지 못하였으며, 그의 동생
김견이란 자는 쉰일곱 살인데 아직 장가가지 못하여
다 백남의 집에 의탁해 살고 있습니다'고
하였사옵니다.
비단 이뿐만이 아니옵니다. 또 사족 박필남이란
자가 있는데 나이 쉰이며, 정옥이란 자는 쉰다섯
살이고, 정권이란 자는 예순두 살이며, 박유기란 자는
일흔한 살인데 모두 아직 남의 남편이 되지
못했사옵니다.
신이 들은 것만도 이와 같으니 신이 알지 못하는
사람이 어찌 여기에 그치겠나이까? 사족인 자가 이와
같으니 서인의 경우에는 어찌 다 헤아릴 수
있겠나이까?
백성은 그 배우자를 사별하여 홀아비와 과부가 된
자도 또한 궁민이라고 말하는데, 저들은 처음부터
천륜이 있는 것을 알지 못하니 실로 천하에 지극한
궁민이옵니다.
한갓 어진 정치의 혜택을 입지 못할 뿐 아니라,
도리어 침해를 입어 그들의 생리로 하여금 더욱
궁하기가 이와 같게 하였으니 소장을 올리는 일을
어찌 그만 둘 수 있겠나이까?
백성은 나라의 근본이옵니다. 근본이 견고해야
나라가 편안한 것이옵니다. 지금 바다 건너에는 강한
적이 칼을 갈고 있고, 안에는 원통한 백성이 많으니
혹이나 위급한 일이 있게 된다면 어찌 구제할 수
있겠나이까?
근본이 견고하지 못하니 나라가 편안하기를
기필하기 어렵사옵니다. 만약 이것을 염려한 것이
잘못된 일이라고 한다면 그만이지만 그렇지 않다면
일은 소홀히 여기는 데서 일어나고, 화는 뜻밖에
일어나는 것이니 대처의 방책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되겠사옵니다.
엎드려 원하옵건대, 전하께서는 급히 팔도에
명령하시어, 그 호수(戶數)를 감손하고 그 군인의
정원수를 감한 뒤에 현재의 군사를 잘 운용하고 잘
길러서 뒤늦은 후회가 없게 하시옵소서.
대체로 백성이 흩어지는 것을 근심하면 모름지기
은덕으로 위무해야 할 것이옵니다. 잡아들이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옵니다. 군사가 적은 것을 근심하면
모름지기 의용을 가르쳐야 할 것이고, 숲처럼 수만
많기를 숭상할 것은 아니옵니다. 지금은 정병이
필요한 때이지 숫자만 따질 때가 아니라고 봅니다.
옛날 주나라가 쇠미하였을 때 열국이 전쟁으로
강함을 다투었사옵니다. 위나라가 진나라와 싸우게
되니 누구나 진나라가 이길 것이라고 말하였사옵니다.
왜냐하면 진나라의 군사는 많고도 강하였는데
위나라 군사는 적고도 약했사옵니다. 수가 많고 적은
것은 어리석은 사람도 쉽게 알 수 있지만, 기세가
강하고 약한 것은 지혜 있는 사람도 살피기 어려운
것이옵니다.
그때 위나라의 신릉군은 능히 그 형세를 살필 수
있었기 때문에 한단에서 진나라 군대를 방어할 수
있었던 것이옵니다.
그는 이렇게 생각했사옵니다. '사람들이 나를
위하여 죽고자 한다면 수만의 군사만 가지고도 저들을
꺾을 수 있을 것이며, 사람들이 나를 위하여 죽고자
하지 않는다면 비록 백만의 대병을 가졌더라도 홀로
서 있는 것과 다름이 없을 것이다.'
그리하여 마침내 명령을 내리기를 '부자가 함께
군중에 있으면 아버지는 돌아가고, 형제가 함께
군중에 있으면 형이 돌아가고, 독자로서 형제가 없는
자는 돌아가 부모를 봉양하라'고 하니, 돌아가는
군사가 2만이나 되었사옵니다. 신릉군은 그 나머지
군사로써 진나라를 이겼사옵니다.
신릉군이 더욱 증원이 요구될 때를 당해 감하고 또
감하고서도 마침내는 성공한 것은, 사람의 숫자만
많은 것은 적은 사람이 화합하는 것만 못하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옵니다.
그런데 지금의 우리나라는 그 반대이옵니다. 태평한
세상에 처해 있으면서도 오히려 적이 오기 전에 먼저
나라의 근본을 절단합니다. 오는 자를 위로하고 모인
자를 편안하게 하는 도리를 모릅니다.
오직 남의 아버지를 가두고 남의 형을 가두는
것으로 좋은 법을 삼고 있사옵니다. 그리하여 독자나
형제가 없는 자로 하여금 자기의 병역에 분주하게 할
뿐만 아니라 또 그 일족의 병역에 분주하게 하며,
다만 일족의 병역에만 분주하게 할 뿐 아니라 또 닭,
개, 나무, 돌까지도 일족의 병역에 분주하게 합니다.
돌아가 부모를 봉양하라고 한 명령이 있었다는 것은
듣지 못했사옵니다. 그리하여 남자와 여자가 장가들고
시집가는 일을 알지 못한 채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어
곤궁 속에서 죽어가는 자가 허다합니다.
이때를 당하여 지혜와 계략이 있는 자가 수만의
무리를 거느리고 와서 우리나라를 침범한다면 백성의
마음은 와해될 것이옵니다. 왜냐하면 백성들이 원통해
하고 민망해 함이 워낙 커서, 전쟁이 발발해 몇
달이나 며칠이 못 되어도 한 지아비도 나라를 위하여
죽으려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옵니다.
참으로 슬픈 일이옵니다. 전하께서 비록 요순을
따르고 탕무를 본받지 못할망정, 차마 성명하신
전하로 하여금 위나라 공자 신릉군만 못하게 만들
수야 있겠습니까.
어떤 이는 말하기를 '일족이 대신 입역하는 법을
폐지한다면, 병역을 싫어하는 자가 돌아보고 염려할
것이 없어서 또는 옮겨가서 병역을 기피하려는 마음이
있을 것이니, 부족되는 군의 수가 더욱 비고 성기게
될 것이다. 그러면 이보다 더 큰 근심거리는 없을
것이다'라고 합니다.
신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일족을 대신
징집하면 장정들이 어지럽게 흩어져서 어떤 이는 중이
되고, 어떤 이는 도적이 되곤 합니다.
그리하여 백성은 날로 적어집니다. 이것으로 일족을
징집하는 것은 백성을 흩어지게 하는 방법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런데 군대 수가 어떻게 비고 성기지
않게 할 수 있겠나이까?
일족을 대신 징집하지 않는다면, 생업에 안도하여
어지럽게 흩어진 자가 도로 모일 것이니 백 사람을
잃고 천 사람을 얻게 되어 군액이 비고 성긴 것은
그리 근심할 바가 아닐 것이옵니다.
또 병역을 져야 할 백성이 타관에 옮겨가 있는 곳은
다 이웃의 다른 나라에 간 것이 아니고 팔도 안에
있으니, 만약 그들이 가 있는 곳의 관으로 하여금
하나하나 찾아내어 그 곳의 병역에 복무할진대 어찌
본 고을을 피하여 다른 고을의 병역에
복무하겠나이까?
본 고장에 있어도 일족의 대역이 없고 다른 고을에
정착하여도 또 '병역에서 벗어나' 편안히 있을 수
없다면 비록 상을 주며 옮기라고 하여도 옮기지 않을
것이옵니다.
엎드려 원하옵건대, 전하께서는 안위의 형세를
살피시고 백성들의 지극히 궁한 사정을 민망하게
여기시어 일족이 대역하는 법을 폐지하십시오. 좌우의
신하들이 다 불가하다고 할지라도 듣지 마시고, 모든
사람들이 다 불가하다고 할지라도 듣지 마십시오.
신이 말한 것은 나라 사람들의 공론이고, 백성의
곤궁함이니, 전하가 보시는 바가 또 무엇을 의심할
것이겠나이까?
옛날 진나라 목공이 진나라 군대에게 포위되어 장차
포로로 잡히는 것을 면할 수 없게 되었을 때 야인 3백
인이 위험을 무릅쓰고 달려가 진군으로부터 목공을
탈출시켜 돌아왔사옵니다.
야인 3백 인이 어찌 적의 억만의 정병을 대적할 수
있었겠나이까? 전일에 자기들을 살려준 은혜가 그들의
사기를 격발시킨 바 있기 때문이옵니다.
이것으로 수가 많은 자는 적이 있지만 어진 자는
적이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사옵니다.
전하께서 만일 일족 대역의 법을 폐지하시어
억조창생을 인정으로 거느리신다면 천하에 적이 없을
것이옵니다.
또 옛날 밝은 임금은 백성의 재산을 다스리는 데
10분의 1을 징수하는 세정을 펴서 백성으로 하여금
위로는 부모를 섬기기에 넉넉하고 아래로는 처자를
기르기에 넉넉하게 하였사옵니다.
풍년이 든 해에는 종신토록 배부르게 먹고,
흉년에도 죽음을 면하게 하였사옵니다. 그렇게 한
뒤에 병정을 내보내는 것은 전지 세금의 비례에
따랐으며, 백성의 노력을 부역시키는 일은 1년에
3일을 넘지 못하게 하였사옵니다.
지금의 정사는 번거롭고 세금은 과중하여 백성이
견디어 부지할 수가 없어 전답과 가옥을 다
팔아버리고 사방으로 떠다니며 붙어살고 있사옵니다.
서민으로서 전답을 경작하면, 그 수확의 절반을
나라에 바치고 나머지 절반으로 겨우 호구를 하고
있사옵니다. 비록 걸왕의 백성일지라도 이와 같이
곤궁하지는 않았사옵니다.
그리고 또 군졸이 되면 처자식이 먹을 것은
헤아리지 않고 가지고 있는 것을 죄다 긁어서 그의
군량에 채우게 합니다.
그리고는 상번이라는 이름으로 반 년 동안을
복역하고 또는 백일 동안 또는 한달 동안을
복역합니다. 하번한 뒤에도 진상상행이라는 이름으로
연진에서, 또는 군현에서 사역하는 것이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사옵니다.
또 군장비를 수리하게 하고, 군기를 수직하게 하는
등 거의 비는 날이 없으니 이 또한 폐해가 대단히
심합니다. 또 일족의 대역을 시키고 일족의 군포를
바치게 하니, 이미 심하고 더욱 심하여 그 마지막
운명이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사옵니다. 참으로 슬픈
일이옵니다.
아아, 전하께서는 신의 말을 청납하시어 급히
군액을 감하고 일족의 대역을 폐지하라고
명령하신다면 구제할 수 있으나 그렇지 않으면 뒷날
비록 후회함이 있을지라도 일은 이미 그르치고 만
뒤일 것이옵니다.
신은 주상을 위하고 백성을 위한 것이옵니다. 어찌
백성을 위하고 주상을 위하지 않는 일이 있겠나이까?
다만 견마(犬馬)의 정성이 있어서 입을 다물고 있을
수 없을 뿐이옵니다.
아아, 신의 이 소에 천리의 존망이 결정되는
것이옵니다. 혹이나 전하가 채택하신다면 종묘,
사직의 다행함이 심대하며, 생민의 다행함이 심대할
것이옵니다.
아아, 신이 전하의 한 고을의 병민을
위임받았사오나, 일족의 대역을 받아들여서 백성들을
병되게 하는 일은 차마 하지 못하겠사옵니다.
통촉하여 시주옵소서. -
토정은 조정에서 그의 소를 받고 어명을 내려줄
때를 기다리지 않았다. 소를 올리고 난 즉시 아산의
군적을 과감히 정리하였다.
그래서 장승이나 고목에 붙은 명목상의 이름을
모조리 삭제하였다. 그리고 나이가 마흔이 넘은
사람은 무조건 돌려보내어 생업에 종사하도록 하였다.
뿐만 아니라 각종 군포도 거두지 않았다.
다만 정병에 해당되는 사람은 사족이나 노비를
가리지 않고 철저하게 뽑아 훈련을 시켰다. 고작 삼백
명이었다.
그러나 토정은 조직된 기왕의 군대를 철저하게
훈련시켜 십만 대군 못지 않게 정병으로 키웠다.
이로써 군적의 폐해로 인한 아산 사람들의 상소는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토정이 아산현의 제도를 개혁해 나가자 관리들은
몹시 불안해 하고 걱정했다. 그럴 때마다 토정은
이렇게 말했다.
"시간이 없소이다. 어명을 기다리는 동안에도
백성들은 고통 속에서 신음하고, 왜구의 칼에는 날이
더 시퍼렇게 오르고 있소이다."
그 다음에 토정이 한 일은 다른 군현에서 도망쳐 온
유민들을 정리하는 것이었다. 다른 지방의 군적을
피해 달아난 사람, 흉년이 심해 고향을 버리고 떠도는
사람 등 아산 지방으로 흘러든 유민이 천 명이
넘었다.
토정은 이 사람들에게 일일이 호패를 새로
만들어주면서 걸인청을 만들어 그곳에서 숙식을
하도록 했다.
걸인청에 수용된 유민들은 토정이 지시하는 대로
짚신을 삼거나 떼를 지어 논이나 밭을 개간하여
자구책을 마련해나갔다.
토정의 개혁은 모두 국법에 위배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조정에서는 토정이 보낸 소에 대해 어명도
내려보내지 않았고, 그렇다고 개혁을 중단하라는
지시도 내리지 않았다.
토정은 그런 것에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그리고
현내를 두루 답사하면서 치산치수의 계획을 세워
곧바로 유민들을 내세워 공사를 했다. 풍수 지리에
근거한 치산치수로 아산현의 가난과 액운을 몰아낼
작정이었다.
하루도 그냥 지나가는 날 없이 바쁘게 움직이던
토정에게 어느 날 먼 인연이 찾아왔다.
그날도 토정은 걸인청에 나가 사람들이 일하는
모습을 살피고 있었다. 그런데 어디서 오는 유민인지
마흔이 넘어보이는 한 여인이 남루한 옷차림을 하고
걸인청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여인은 금방 쓰러질 듯 비칠거리면서 걸인청 문을
들어섰다.
때마침 토정이 그걸 보고 여인에게 달려갔다.
"내게 몸을 의지하시오. 내, 안으로
부축해드리리다."
토정은 여인이 가슴에 품고 있는 보퉁이를
받아들었다.
토정의 말에 여인은 고개를 들어 토정을
바라보았다.
남루한 옷차림, 굶주림과 병에 찌든 얼굴에
유난히도 까만 눈이 반짝였다. 그러나 그 눈은 토정의
다정한 눈길과 마주치자 금세 생기를 잃었다. 순간
여인은 눈을 스르르 감더니 그 자리에 풀썩 쓰러졌다.
토정은 정신을 잃고 땅바닥에 쓰러진 여인을 부축해
일으켰다. 그 눈, 그 까만 눈. 토정은 그 당돌하게
빛나던 눈을 기억하고 있었다.
"희수, 그대가 여기에 어쩐 일이오?"
토정이 이름을 부르자 여인이 감았던 눈을 떴다.
여인은 자신의 온 생명력을 눈동자 속에 집중시킨 듯
눈에서 광채가 났다.
"선비님, 저를 잊지 않으셨군요."
희수의 눈에 눈물이 그득 고였다.
"잊을 리가 있겠소."
희수, 해사의 여인 희수. 운명의 사슬에 매여
지나가는 나그네에게 하룻밤을 바치고 평생을
독수공방해야 했던 여인 희수. 열일곱 꽃다운 나이에
하룻밤을 함께 보냈던 여인 희수가 마흔이 넘은
병자가 되어 나타난 것이었다.
토정의 품에 얼굴을 묻고 있던 희수는 고개를 푹
떨구었다. 다시 정신이 혼미해진 것이었다.
토정은 몸소 여인을 들쳐 메고 객사로 옮겼다.
의원을 불러 진료를 하고 서너 시간이 지나서야
희수는 겨우 정신을 차렸다.
다시 눈을 뜬 여인은 도무지 믿겨지지 않는 듯
근심스러운 얼굴로 자신의 얼굴을 들여다보고 있는
토정의 얼굴을 뚫어져라 하고 올려다보았다.
얼마나 오랜 세월이었던가. 지아비도 아닌 남자를
평생을 바쳐 찾아다닌 것이… 캄캄한 밤중에 만난
밝은 등불 같았던 분, 그분을 지금 눈앞에 보고 있는
것이었다.
토정은 토정대로 얼마나 그리워한 여인이었던가.
민이를 저 세상으로 보낸 이래 세상을 등지고 살아온
그에게 어느 날 갑자기 맺어진 인연. 이제 그 여인이
토정에게 다시 운명처럼 나타난 것이었다.
운명이란 그런 것이었다. 만나면 헤어지고 헤어지면
만나게 되어 있는 것이다. 다만 언제 그 열매가
맺어지는지 하늘의 계절은 길고 짧음을 잴 수 없었다.
십 년, 이십 년 심지어 백 년, 이백 년이 되어야
나타나는 인과응보도 있으니 인간의 짧은 생각으로는
그 깊은 뜻을 도저히 헤아릴 수 없을 터였다.
"내, 다시 해사를 찾아갔었소. 그대는 이미 그곳에
없더구려."
"···"
"그래, 그동안 어찌 살아왔소?"
토정이 그윽한 목소리로 묻자 희수의 눈에 다시
눈물이 그득 고였다.
마을 풍습대로 알지도 못하는 나그네에게 첫 정을
바쳤지만 희수는 그 첫 정이 도무지 잊혀지질 않았다.
처음 겪는 남녀 화합으로 만리장성을 쌓았대서가
아니었다. 희수는 토정을 통해서 새로운 세계를
느꼈고, 처음으로 사람으로 태어난 기쁨을 느꼈다.
토정이 해오는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가슴 속을
뚫고 들어왔다. 그리고 그의 손길 하나하나에서
희수는 생명을 느끼고 사랑을 느끼고 남자를 느꼈다.
파도처럼 몰려오는 뜻밖의 감정으로 희수는 혼란에
빠졌다. 뭐가 뭔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살을 맞대고
토정을 받아들였으나, 한 사람의 사내가 그토록
살갑고 소중하게 느껴져 본 일은 처음이었다.
희수는 토정이 잠에 들었을 때도 눈을 붙이지
못했다. 토정이 자고 있는 모습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행복에 겨울 지경이었다. 어찌나
행복했는지 지금까지 살아왔던 세월이, 아니 그날
일어났던 일조차 까마득한 옛날 같았다.
희수는 잠든 토정을 내려다보면서 초저녁부터
일어난 일들을 반추해보았다.
그날 굴을 따던 희수를 부르는 목소리가
갓바위쪽에서 날아왔다. 생각해보면 바람소리 같기도
하고 파도소리 같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 소리는
희수의 운명을 바꿔놓는 신호였다.
"희수야, 굴 그만 따고 이쪽으로 나오그라."
희수는 어머니의 부름에 따라 바구니를 팔목에 걸고
개펄을 걸어나갔다. 갓바위에 이르는 동안 어머니는
내내 손을 저으며 빨리 오라고 소리쳤다. 희수는 무슨
큰일이 있는가보다 하면서 좀더 빨리 걸어갔다.
갓바위에 이르자 어머니는 희수가 손에 든 바구니와
호미를 나꿔채고는 희수의 엉덩이를 밀었다.
"어서 집으로 가서 목욕허그라."
"무슨 일인데요?"
"가서 얘기하마."
열일곱, 익을 대로 익어 터질 것 같은 가슴으로
바닷바람을 맞으면서 세월을 보내고 있던 희수에게
드디어 '운명'이 다가온 것이었다.
희수는 어머니가 시키는 대로 서둘러 목욕을
하였다.
무슨 일일까. 목욕을 하고 나서 어디 신당이라도
간단 말인가? 아니면 다른 일이 있는 것일까? 갑자기
목욕은 웬 목욕이람.
목욕을 마치고 방으로 들어가자 어머니는 어디서
구했는지 깨끗한 치마 저고리 한 벌을 내놓았다.
한번도 보지 못했던 속곳들도 잘 개켜져 있었다.
"입그라."
"무슨 일이어요, 어머니?"
"가면 알어. 이걸 입고 따라오니라."
희수는 어머니의 재촉에 서둘러 새 옷으로 갈아입고
어머니를 따라나섰다.
벌써 해가 바다 아래로 가라앉아 서쪽 하늘과
바다를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토담 밑에 곱게 피어난
봉숭아가 한껏 멋을 부리고 있었다.
희수가 간 곳은 일 년에 두어 번 손님이 찾아올까
말까 한 주막이었다.
희수는 어머니를 따라 뒷문으로 들어가 별채
마당으로 갔다. 마당에는 친구 명옥이도 제 어머니를
따라 와 있었다.
"어머, 희수야. 너 여기 웬일이여?"
"몰라, 엄마 따라서 왔어."
"큭큭큭!"
명옥은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웃었다. 명옥은 무슨
까닭인지 이미 알고 있다는 눈치였다.
"무슨 일인데?"
"쉿!"
명옥이 손가락을 세우면서 희수의 말을 막았다.
이윽고 주모가 나타나더니 희수의 어머니와 명옥의
어머니를 데리고 별채 쪽으로 사라졌다.
어른들이 모습을 감추자마자 명옥이 입을 열었다.
"너 오늘 머리 얹는구마."
"무슨 말인데?"
"바보야. 객사에 든 남자들 말이여. 남정네들이
있지라."
"그래? 그런데?"
"그런데가 뭐여? 남자 씨를 받아야제. 우리
동네에는 남정네가 없으니 지나가는 나그네 씨라도
받아야지라. 너희 엄마가 벌써 주모한테
말해놨었다구. 오늘 밤 우리는 저쪽 별채에 있는
남자들하고 잔단 말이여."
"뭐여?"
"놀라긴? 남자가 뭐 짐승이디야?"
희수는 가슴이 두근거렸다. 말로만 들어왔던 남자를
이제 보게 된 것이다. 이따금 주막에 들른 남자들을
본 적이 있긴 했지만 이렇게 성숙해서 보기는
처음이었다. 그것도 같이 잠을 자야 한다니 뭐가 뭔지
알 수 없었다. 그래서 어머니는 난데없이 목욕을
시키고 새 옷을 입혔던 것이었다.
희수는 숨이 가빠졌다.
"너 떠는구나. 계집애, 내숭은? 아무것도 아니여.
엄마가 그러는데 겁낼 거 없대. 오히려 좋은 거래,
계집애야."
얼마 지나지 않아서 주모가 다시 나타났다.
그러고는 희수와 명옥에게 방으로 들어가 있으라고
했다. 희수와 명옥은 주모가 가리킨 방으로 들어갔다.
"너, 잘해야 하니라."
안심이 안 되는 듯 어머니가 걱정스런 얼굴로
말했다.
"어머니, 나 무서워요."
"무섭긴. 엄마도 이렇게 해서 너를 낳았다. 너도
아기를 가져야 돼여. 우리 해사 마을에서는 이렇게
하지 않으면 아이조차 갖지 못한단 걸 알고 있잖는가.
처녀로 늙어 죽을 수도 없는 노릇이고. 이 세상에서
이것이 첫 남자이고 마지막 남자라고 여기그라.
더이상 남자는 없다 이 말이구마."
어머니는 밖으로 나갔다.
창문에 땅거미가 스물스물 기어오고 있었다.
어디선가 닭이 때늦은 울음을 길게 뽑아내고 있었다.
"명옥아, 이리 따라 오그라."
주모는 명옥을 먼저 데리고 나갔다.
희수는 오들오들 떨면서 방에 혼자 남아 있었다.
"희수야."
주모는 이번엔 희수를 불렀다. 희수는 벌떡
일어났다. 현기증으로 몸이 비틀거렸다.
"이리 따라 오그라."
희수는 주모를 따라 뒷채에 있는 방문 앞에 가
섰다. 방문을 연 주모는 희수를 방 안으로
밀어넣었다.
방 안에는 용모가 수려하고 점잖은 선비가 앉아
있었다. 희수는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하룻밤 만에
끝날 인연이라는 걸 알면서도 희수는 가슴 속에 그
선비의 모습을 깊이 새기고 있었다.
이튿날 토정 일행이 해사를 떠나고 나자, 희수는
일도 하지 못하고 시름시름 앓았다. 하룻밤 쌓은 정이
깊은 그리움이 되어 마침내 병이 되었던 것이다. 마냥
즐겁게 뛰어놀고 일하던 장난꾸러기 처녀 희수는
어느새 그리움에 애간장을 태우는 여인으로 성숙하게
되었던 것이다.
달아
님께 아뢰어다오
서방 정토까지 비치어
아뢰어다오
님 곁으로 가기를 손 모아 비는
이 몸이 있다고 아뢰어다오
아으, 이 몸 버려두고
먼저 48대원(大願) 이루시오면
어이하랴
아으 어이하랴
희수는 날이면 날마다 눈물과 한숨으로 보냈다.
같은 밤에 같은 일을 겪은 명옥은 그런 희수를
안타까워했다. 그런다고 어찌 할 방도가 생기는 것도
아닌데 그러면 어쩌냐며 함께 눈물을 흘렸다.
희수의 상사 증세는 매달 찾아오던 달거리가
없으면서부터 점점 더 심해졌다. 희수는 매일 실성한
여인처럼 넋을 놓고 지냈다. 그러면서도 열 달이 차자
희수는 아이를 낳았다. 사내아이였다.
명옥은 하루 늦게 아이를 낳았다. 계집아이였다.
희수는 아이에게 규철(圭澈)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토정이 일러준 이름이었다. 아이에게 정을 붙인
희수는 병세가 많이 나아졌다. 일도 찾아다니고 마을
사람들과 어울리기도 했다.
그러나 아이가 두 살 나던 해에 희수는 아이를
동냥승에게 붙여 해사에서 내보냈다. 음기가 센
마을에서 요절하는 것을 피하려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며칠 뒤 희수도 해사 마을을 떠났다. 그 선비,
이지함을 찾기 위해서였다. 찾아본들, 희수를 알아볼
리도 없건만, 그저 얼굴이라도 한번 보아야만 살아갈
기력을 찾을 것 같아서였다. 그저 멀리서 바라보며 살
수만 있어도 희수는 더 바랄 게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희수는 무작정 해사를 떠났다.
희수는 이 마을 저 마을 떠돌아다니면서 잡일도
거들고 장사도 해가면서 이지함을 찾아다녔다.
그렇다고 이지함의 성명을 함부로 입에 올리며 찾지는
않았다.
혹여라도 자신이 찾아다니는 일이 그 선비에게 누가
될까봐 저어한 것이었다. 그래서 이지함을 찾는 일이
더욱더 힘들었다. 그렇게 떠돌던 끝에 희수는 마침내
삼개나루에서 토정을 찾았다.
그러나 감히 토정에게 가까이 가지는 못했다.
희수는 동막골 새우젓 장수들 틈에 끼어 일손을
거들고, 바느질을 하면서 매일같이 토정을
기웃거렸다. 그리고 먼 발치서라도 토정의 얼굴을
한번이라도 꼭 보아야만 돌아갔다.
그 뒤 토정이 포천 현감으로 제수되자 희수는
포천까지 따라갔다. 그러나 언제나 토정에게 가까이
가지는 못했다.
포천에서 희수는 굶기를 밥먹듯이 했다. 그러나
백성들 문제로 노심초사하는 토정의 모습을 한번
보기라도 하면 그런 고통쯤은 말끔히 잊을 수 있었다.
토정이 포천에서 일을 마저 마치지 못하고 조정에
송환되었을 때에는 정한수를 떠놓고 무사를 비는
기도를 간절히 올리기도 하였다.
그 뒤 토정이 금강산을 다녀와 임진 방비차 팔도를
주유할 때에도 그림자처럼 토정을 따라다녔다.
그러다가 토정이 어디론가 은둔하면서 그만 토정을
놓치고 말았다.
다시 토정을 찾아 전국을 헤매며 떠돌이 생활을
하던 희수는 마침내 병을 얻었다. 그러면서도 토정
찾는 일을 포기하지 않았다. 힘겹게 아산현까지
흘러들어온 희수는 주막에서 허드렛일을 거들면서
밥술이나 얻어먹기를 청했다.
몸을 잠시 의탁하며 건강이 회복되기를 기다렸다가
다시 토정을 찾아나설 참이었다.
"병든 몸으로 그럴 게 아니라 걸인청에 가보오.
거기 가면 병자들도 쉽게 할 수 있는 일거리도 있고,
밥 먹는 거 하나는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오."
"아직은 거지가 아니니 일을 맡겨주세요. 힘 닿는
대로 열심히 하겠어요."
"일을 못할까봐 하는 소리가 아니라오. 병자한테
힘든 일을 시키기가 민망해서 그러는 게지."
"괜찮아요. 주막일쯤은 거뜬히 할 수 있어요."
희수는 주모에게 사정을 하여 주막에서 일을 보기
시작하였다.
그때 주막에 와서 술을 먹고 있던 사람들의 말에
희수 여인은 깜짝 놀라고 말았다. 무심결에 들어
넘기던 대화 속에서 몽매에도 그리던 이름 석 자가
튀어나왔던 것이다.
"우리 현감은 세상에 둘도 없이 어진 분이셔."
"그러게 말이야. 그 어른은 원래 기인으로 유명하신
분인데 저렇게 백성을 잘 보살필 줄은 나도
몰랐다네."
"나도 그 분이 지은 <토정비결>이라는 책을
보았는데 하여튼 그걸 읽으니 살 맛이 절로
나더구만."
"아무튼 이지함 어른은 하늘이 낸 분이시네."
주막에서 들려오는 남정네들의 말소리 가운데에서
'이지함'이라는 이름 석 자가 불쑥 튀어나왔던
것이다.
희수는 주모에게 넌즈시 이지함 그이가 누구냐고
물었다.
"아니 그 유명한 토정 선생도 모르단 말이우?
그이로 말하자면 우리 아산 현감이라는 직분이 너무
작아서 도무지 빛이 날 수 없는 큰 인물이라우."
주모가 떠드는 소리를 듣고 있던 주당들이 목청을
돋우었다.
"아, 타관에서 오신 손님네야 아실 리 없지. 토정
이지함, 그분은 세상일을 훤히 다 꿰뚫고 있어서
무소불능 이르지 못하는 데가 없는 분이라오."
희수는 그 길로 걸인청으로 달려갔다.
마침 그곳에는 사또 이지함이 순시를 나와 있었다.
멀리서 그 모습을 본 순간 수십 년 기다려온 희수의
인내는 한꺼번에 무너져내렸다. 희수는 혼미해지는
정신을 모두려 안간힘을 쓰며 걸인청으로 들어섰다.
희수가 비칠거리며 들어서는 모습을 보고 토정이
달려나와 부축했다. 아, 꿈에서도 그리던 그분이
희수를 달려와 맞은 것이었다. 그분의 그윽한 눈길과
마주치는 순간 희수는 그 자리에서 혼절하고 말았던
것이다.
토정은 희수 여인의 손을 꼬옥 잡았다. 기구한
인연이었다.
"선비님…"
"고생이 많았소. 그렇지 않아도 어딜 갈 때마다
가끔 나를 심상치 않게 바라보는 시선이 있다는 걸
느낀 적이 많았소. 그게 그대일 줄은…"
"선비님…"
"그러지 말고 차라리 모습을 드러냈더라면…"
토정은 눈을 지그시 감고 여인의 사주를 다시
열어보았다. 이윽고 토정의 두 눈에서는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그대가 나를 찾은 게 이생만은 아니었구료."
"···"
"미안하오. 세세생생 그대에게 눈물만 흘리게
하다니."
"예? 무슨 말씀이시온지…"
"이제야 화담 선생님의 뜻을 알아들을 수 있을 것
같소. 천안 삼거리에서 선생님은 신라에서 찾아온
아내라며 어떤 처녀를 지목하였었소. 그리고
두륜산에서 갑자기 해사 마을로 길을 바꾸시길래 어찌
그러시나 했었소.
후에 정휴 일행이 우리를 기다려서 그런가 보다
했는데 그것만도 아니었구료. 선생님은 벌써 우리
일을 알고 있었던 것이오."
"저희 마을에 오시던 적 얘기시옵니까?"
"그렇소. 그대와 인연이 있음을 아시고 그리로
인도해주신 것이오. 그대는 먼먼 옛날부터 나를 찾아
헤매었소. 이제는 내 곁에 머물면서 편히 쉬시오.
원(願)도 갖지 말고, 원(寃)도 갖지 말고…"
토정은 희수의 손을 따뜻하게 어루만졌다.
그때부터 희수는 걸인청에서 사람들을 돌보는 일을
손수 맡아서 했다. 토정을 만났다고 해서 더 가까이
모시는 것도 아니었다.
토정 또한 희수를 가까이 하지 않았다. 다만 자주
걸인청에 나가 희수가 하고 있는 일을 돌아다보면서
세세생생 품어 왔을 희수의 그리움을 눅여주었다.
그러다 토정이 과로로 쓰러져 이질에 걸리자 희수는
그의 머리맡에서 시중을 들었다. 토정은 그것을
말리지 않고 묵묵히 받아들였다. 두 사람의 사연은
아무도 알지 못했으나 다들 무슨 깊은 뜻이 있으려니
하는 눈길로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몇 년 전에 어머니를 잃은 산휘는 이 사실을 나중에
알고는 희수 여인을 어머니처럼 극진히 받들어
모셨다.
'연재物 ^ 소설' 카테고리의 다른 글
토정, 그 후 - 소설^토정비결(下-마지막) (0) | 2020.08.03 |
---|---|
다시 찾아온 두무지 - 소설^토정비결(下-39) (0) | 2020.08.03 |
토정비결(하-37) (0) | 2020.08.02 |
첨성단 - 소설^토정비결(下-36) (0) | 2020.08.02 |
용호비결 - 소설^토정비결(下-35) (0) | 2020.08.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