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년 유월 초엿새,
강화도 마니산 첨성단에 국의 역학 대가들이 모두 모여들었다.
조선 팔도의 기운이 첨성단에 집결하였던 것이다.
하늘엔 구름 한 점 없었고,
대기엔 바람 한 줄기 없었다.
그리고 바다에도 파도 한 번 일지 않고 고요했다.
온 세상이 숨을 죽이고 이들의 모임을 지켜보고 있었다.
이 모임에 참석한 사람들의 면모는 어떠했는가.
토정 이지함을 비롯하여
박지화, 정휴, 정작, 전우치,남궁두, 휴정(서산대사), 서치무, 정개청,
남사고, 유정(사명당),명종주, 김술치, 여무소, 설영후, 고순부였다.
그리고 휴정이 데리고 나타난 유정.
그리고 지리산, 묘향산, 금강산, 설악산, 한라산 등지에서
따로 도가를 수련해온 도사들이 다섯 명 더 참석하였다.
서치무가 지리산에서 만난 명종주,
무정이 묘향산에서 만났다는 김술치,
정작이 금강산에서 알게된 여무소,
전우치가 설악산을 지나다가 교분을 맺은 설영후,
멀리 한라산에서 소식을 듣고 달려온 고순부가 바로 있었다.
이 모임에 참석한 사람의 면모는 어떠했는가.
토정, 박지화, 정휴, 정작, 전우치, 남궁두, 무정은
이미 연락이 빈번하게 닿고 있는 사이였고,
이모임으로 처음 만나거나 오랜만에 만나는 사람으로는
정개청, 서치무, 남사고, 유정, 명종주, 김술치,
여무소, 설영후, 고순부였다.
서치무, 정개청.
지리산 산천재에 있을 때 토정을 만났던 사람들로
서치무는 화담 산방에서 공부를 한 바 있었다.
그리고
정개청은 조식의 산천재를 떠난 뒤,
화담 산방 출신으로 대사헌, 대제학, 이조판서, 우의정 등을
두루 거친 뒤 좌의정의 자리에 올라 있는 박순(朴淳)의 집에 머물면서
박순의 아들과 조카를 가르쳤다.
같은 화담 산방 출신인 토정과 박순은 매우 친밀한 사이였고,
이러한 연고로 정개청 또한 자주 내왕을 하게 되어
정휴도 안면을 트고 지내게 되었다.
그 뒤 그는 나주로 내려가 계속 학문에 열중해
호남지방의 명유로 알려졌는데,
특히 주역만 십 년을 공부했다.
박순과 율곡은 그에게 계속 책을 내려보내주기도 했다.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tem/E0011939
격암(格庵) 남사고.
토정이 울진에서 만났을 때 신서를 받았던 소년.
그는 장성하여 관상감에서 천문학 교수로 일하고 있었다.
일찍이 북창이 교수로 있던 바로 그 관상감이었다.
천문, 지리, 역수(曆數), 측후 및
누각(時間) 등의 사무를 맡아보는 관청이었다.
관상감은 이조, 호조, 병조, 형조, 예조, 공조의
6개 부처 가운데에서 지금의 대통령 비서실격인
예조에 딸린 정부 기관이었다.
관상감에는 모두 110여명의 관리가 근무했는데
최고 책임자는 영사(領事)로서 정일품직이었다.
남사고가 맡은 천문학 교수는 종육품직이었다.
관상감에 들어가려면 잡과(雜科)라는 시험에 합격해야 했다.
잡과에는 관상감 직원을 뽑는 음양과(陰陽科) 외에도
번역사를 뽑는 역과(譯科), 의원을 뽑는 의과(醫科),
음악인을 뽑는 율과(律科) 등 4개 과가 있었다.
음양과 안에서도
전공별로 다시 천문학, 지리학, 명과학(命課學)의 세 분야가 있었다.
남사고는
이 가운데에서 천문학 시험을 통과하였는데,
그가 치른 고시 과목은
보천가(步天歌), 경국대전(經國大典), 천문역법(天文曆法), 시헌기요(時憲紀要)였다.
남사고는 나이가 어리긴 했으나
토정과는 각별한 사이라서 토정이 한양에 들를 때마다
토정의 집을 찾았고,
그때마다 두 사람은 흉금을 터놓고 세상 일을 의논했다.
이 인연으로 뒷날 토정의 조카 이산해가 영의정으로 있을 때
남사고는 천문에 관련된 정보를 산해에게 자주 전해주었다.
바로 산해는 임진 대환난을 직접 겪는 영의정이었기 때문이었다.
사명당^유정.
이 사람으로 말하자면 나중에 더욱 이름을 떨쳤지만
이때도 벌써 도승으로 이름이 높았다.
열세 살의 어린 나이에 스스로 머리를 깎고 입산했다.
열여섯 살에 승과에 합격하면서 많은 유생들과 교유하였는데,
특히
화담 산방 출신으로 스무 살이나 연장인 박순과 가까이 지냈고,
토정의 조카인 이산해도 친분이 있어 자연히 토정과도 교분을 맺게 되었다.
토정은 그런 유정에게 휴정대사를 찾아가도록 권유하였고,
그는 묘향산으로 들어가 휴정의 제자가 되었던 것이다.
명종주.
서치무가 지리산에 있을 때 만난 도인으로 실천력이 뛰어난 인물이었다.
그리고 서치무에게 지리를 가르치기도 했다.
김술치.
휴정이 운곡사에 머무를 즈음 한 처사가 찾아와 문답을 청했다.
그래서 입실을 허락했는데,
이 처사는 휴정을 하루종일 무섭게 노려보기만 하였다.
그러기를 나흘, 마침내 무정이 그를 긍정했다.
여무소.
정작이 금강산에서 만난 의원으로 침과 뜸만으로 치병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풀, 나무껍질, 열매, 뿌리 같은 약초를 절대로 쓰지 않았다.
그 대신에
환자의 몸에서 나는 머리카락, 손톱, 때, 털 같은 것을 조제하여 썼다.
그는 '자기 몸에 이미 스스로 좋은 약을 가지고 있는데,
구태여 다른 곳에서 약을 구하랴' 했다.
설영후.
전우치가 설악산에서 만난 사람으로 둔갑술, 축지법 같은 비술에 달통한 도인이었다.
그러나
그는 그러한 술을 사람들에게 보이지는 않았다.
고순부.
한라산에 토굴을 짓고 삼십 년 두문(杜門) 끝에
처음 이 소식을 접하고 달려온 사람이었다.
그에게 소식을 전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 스스로 알고 찾아온 것이었다.
마침내
조선의 천문, 지리, 역학, 의술의 대가들이 한자리에 다 모인 것이다.
따가운 여름 햇살 아래 커다란 느티나무 한 그루가 홀로 그늘을 드리웠다.
북극성을 바라보도록 쌓은 첨성단 위에
토정을 비롯한 도사, 술사, 의원, 선사들이 둘러앉았다.
마치 천상의 회의가 열리는 것처럼 엄숙한 분위기였다.
먼저 모임을 주선한 토정이 입을 열었다.
"우리가 오늘 이 자리에 모이게 된 것은 장차 다가올 대환난을 막기 위한 것이외다.
이 비밀 모임에 대한 이야기는 절대로 밖에 새어나가서는 안 되고,
이 자리에서 이야기한 것을 글이나 서책으로 남겨서도 안 될 것이오.
다만
이 회의 내용은 정휴가 적어 일의 본말을 밝히도록 할 것이외다.
먼저 박지화 형님께서 북창 선생님의 말씀을 전해주십시오."
박지화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북창 선생께서는
앞으로 이십 년 후 임(壬)의 수(水)해가 되고 용의 토(土)해가 되어
수극토(水克土)하는 해에 남쪽 바다가 열리면서
우리나라가 물바다가 될 것이라고 염려하셨소.
물이란 무엇이냐 하면 왜구이오.
그 해에 왜구의 침입이 있을 것이란 예측이셨소.
온 강토가 적의 발굽 아래 놓일 큰 재앙이 내다보인다는 것이오."
박지화의 말에 남사고가 고개를 끄덕거리며 말을 도왔다.
"그렇소이다.
이미 토정 선생과 저도 그 해가 바로
임진(壬辰)년이 될 것으로 짐작하고 있소이다.
이번에 다가오는 환난은 엄청난 것이올시다.
조선의 이씨 왕조만 무너지는 것이 아니라
배달 겨레의 줄이 여기에서 끊기는 것입니다.
상상할 수도 없는 큰 환난이 이 땅을 짓밟게 됩니다.
백성들이 무수히 피를 흘리고 죽어갈 것입니다."
모두들 입을 굳게 다물고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있었다.
나름대로 짐작은 하고 있었던 듯
결연한 표정으로 다른 역학자의 이야기에 가만히 귀를 기울일 뿐이었다.
고개를 뒤로 제치고 상념에 잠겨 있던 토정이
이윽고 말문을 열었다.
"격암의 말이 맞으오이다.
박지화 형님께서는 이 시국을 어떻게 보시오이까?"
박지화는 결연한 얼굴로 말을 꺼냈다.
"이 땅에서 이미 정기가 빠져버린 거외다.
한 해가 멀다 하고 조선 팔도 곳곳에 유행병이 돌고,
해마다 흉년이 계속되는 게 심상찮소이다.
난세를 헤쳐나가려면 지혜가 있어야 하오.
오늘 이 자리에 모인 분들이 바로 그 지혜를 모아야 하오이다.
그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오.
이 나라가 어디 한 사람 왕이나 대신의 나라이오이까?"
"바로 그렇소이다."
토정이 박지화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천기를 거스를 수는 없습니다.
조선은 망합니다."
한라산에서 온 고순부가 말했다.
"말법의 시대올시다.
말법의 시대에는 하늘이 청소를 한번 하게 됩니다.
하늘이 하는 일을 사람이 막을 수는 없습니다."
김술치가 고순부의 말에 덧붙였다.
"그래서 임진년 일을 먼저 상의드리는 것이올시다.
임진(壬辰) 난리로
수많은 백성이 목숨을 잃고 부상하는 사람 또한 부지기수일 것이오.
그 난리에 질병이 번지면 어떻게 막을 도리도 없소이다.
이 나라 조선,
이 백성 배달 겨레가 세상에서 없어집니다.
우리가 없어지고,
우리 후손들이 없어지는 중대한 문제입니다."
토정이 목소리를 높였다.
"그 환란을 피할 도리가 없습니까?"
정휴가 물었다.
"피할 도리라면야
화가 미치지 않는 땅에 숨는 방법이 있지만 너무 소극적이라네.
이는
온 백성을 살릴 길이 못되네.
이미 남의 손에 나라가 넘어갔는데
몇몇 목숨이 살아 있다는 것이 대체 무슨 의미런가!"
박지화가 안타까운 표정으로 정휴의 말을 받았다.
"조정에 알립시다."
정작이었다.
"그러나 조정에 알려보았자 마이동풍이고
우이독경일 것이외다.
이것이 가장 큰 문제이올시다.
권력을 쥐고 그것을 움직일 수 있는 자들이
앞날을 내다볼 줄 모르니 답답한 노릇이오."
정개청이 말했다.
밤이 늦어 별이 머리 위에서 반짝거리는 밤에도
이들의 이야기는 멈추지 않았다.
아침 이슬이 첨성단 신목에 내릴 때까지도
이들은 임진년을 놓고 계속 토론을 했다.
그러나
아무리 이야기를 해도 결론이 나지 않았다.
임진 대환난으로 조선이 영영 없어지고 왜국의 속국이 되거나
그나마도 씨를 유지하지도 못하고 말 것이라는 비관적인 이야기만 계속 반복되었다.
조선이라는 거대한 배가 흔들리면서 멸망의 낭떠러지를 향하여 항해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정작 그 배를 이끄는 사공들은 배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제 몫 다툼에 눈이 멀어 있었다.
속절없이 보름달이 두둥실 떠올라 마리산 정상에 새하얀 달빛을 뿌렸다.
마침내 첨성단에서 사흘이 되는 날,
토정은 회의를 끝냈다.
"여러 도사, 선사, 술사들께서 말씀하신 내용은
한결같이 조선은 나라를 잃게 된다는 말씀이었습니다.
어떻게
우리 조선이 왜구의 속국이 되어
그들의 말을 배우며 그들의 풍속을 따르리까?
조선 백성이 마지막 하나가 될 때까지
끝까지 싸워서라도 지켜나가야 할 것입니다.
조정에 있는 무리들은 한낱 정권에만 눈이 어두워
나라를 책임지는 사람들이 아니올시다.
왕이 있다고는 하나 이미 조선의 왕은 기력이 쇠진하여
천자의 자리를 잃었습니다.
그리하여
스스로 중국에 조공이나 바치는 속국으로 자처하는
나약하기 짝이 없는 어리석은 인물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나라가 뉘 나라입니까?
임금이 피난을 다닐 때에는 수백만의 백성이 갈 곳이 없어
피비린내나는 전장을 헤매게 될 것이고,
나라가 망하면 임금만 죽는 게 아니라,
수백만의 백성이 먼저 목숨을 잃게 될 것이외다.
능욕을 당하는 자도 백성이요,
그들의 발굽 아래 머리를 떨구는 것도 백성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조선 백성이 스스로 떨쳐 일어나 나라를 지키지 않으면
우리는 다함께 죽고 마는 것입니다."
토정의 마지막 말은 살점을 떼어던지듯,
한 마디 한 마디가 피를 토해내듯 절절했다.
"이제 백성을 구합시다.
우리가 일어서서 막으면 막을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부터 팔도의 술사, 도사, 선사들은 일어나서
임진 대환난을 막을 계책을 세우고, 방비를 합시다.
앞으로 삼 년 뒤 9월 9일에 다시 한번 이 자리에 모여서
그동안 마련한 방비책을 제출해 이를 검토하고,
그때 가서 할 수 있는 일을 모조리 찾아봅시다.
휴정과 유정,김술치 세 분은 불경에서 그 계책을 찾을 일이오,
남사고는 관상감 사람들을 독려하여 계속 임진 대환난의 정체를 파악하여
임금과 의정부에 쉬지 않고 보고를 해야 할 것이오.
박지화 어른과 정작, 여무소 세 분은 조선 정신을
빼앗기지 않는 선도(仙道) 정신을 계발하고 백성을
병겁에서 구제할 대의(大醫)를 높이 세워야 할 것이오.
서치무, 정개청, 명종주 삼 인은 팔도를 샅샅이
뒤져 왜구의 발길이 드는 곳과 그들이 밟으면 기를
잃게 되는 땅과 기를 얻게 되는 땅을 가리되,
기를 얻게 되는 땅으로는 발길이 닿지 않게 하는 방비를 마련하시오.
전우치, 설영후 두 사람은 왜구들이 장차 이 땅에 쳐들어올 때
군사들이 어떻게 막아야 할지 전술을 개발하시오.
남궁두는 팔도를 돌면서 의병을 일으킬 만하거나
군사를 일으킬 만한 장수들을 찾아서
고무 독려하고 다음 회의에서 알려주게.
고순부께서도 제주를
살피면서 왜구를 막아낼 계책을 궁구하여 주시오.
나는 정휴와 함께 팔도를 돌면서 인연 닿는 대로
사정을 파악하고 방비하는 요령을 익혀 삼 년 뒤에 말씀하리다.
이것은 일신의 명리를 위함이 아니요,
국왕에 충성하자는 것도 아니올시다.
오로지 조선 백성을 구제하기 위함이오.
설사
이 나라가 적의 칼 앞에 무참히 유린되고 부서지더라도
그날까지 마지막으로 싸워낼 사람은 바로 우리들뿐이오.
이 점을 명심하여
민심이 소란하지 않게 팔도를 탐문하고 방비책을 마련하셔야 할 것이오."
토정의 열변이 계속되는 동안
무수한 유성이 하늘을 이리저리 가르면서 떨어져내렸다.
참성단 회의가 끝나자 사람들은 저마다 마니산을 내려가
계룡산으로, 금강산으로, 지리산으로, 묘향산으로, 설악산으로, 한라산으로 들어갔다.
그로부터 삼년 뒤인
임신년(壬申年, 1572) 9월 9일, 약속대로 전국의 역학자들이
다시 강화도 마니산 첨성단으로 모여들었다.
이번 회의에는
삼년 전에는 참석하지 않았던 사람이 한 명 더 끼었다.
정여립.
호를 정감(鄭鑑)이라고 쓰고 있는 그는
전라도 전주에서 태어난 스물일곱 살의 젊은이였다.
스물두 살 나던 해에 진사가 되었고,
스물다섯 살에 과거에서 문과 을과에
두번째로 급제한 뒤 일세의 이목을 끌었다.
이를 계기로 율곡과 좌의정 박순이 그를 적극 후원해주고,
정개청과도 막역한 사이가 되었다.
이것이 토정과 인연을 맺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정여립이 젊은 나이로 너무 곧은말을 잘 하고,
사사건건 조정에서 일어나는 일을 비난하고 다녔으며,
남 비방하는 것을 삼가지 않아 적이 많았다.
그는 특히 송강 정철을 호되게 비판했다.
한번은
기근이 심해 백성들의 통곡 소리가 높자 정여립의 거친 입이
정철을 물고 늘어졌다.
"정철을 삶아 하늘에 제사를 지내면 비가 올 것이다.
" 주색에 빠져 정사를 올바르게 보지 못한다고
정철을 매양 이런 식으로 질타했던 것이다.
이 감정이 뒷날 커다란 사건으로 터지게 된다.
다들 한자리에 모이자 약속대로 각자 맡았던 방비책을 제시했다.
정작은 <용호비결>을 토대로 지은 의서를 내놓았다.
"사람의 신체는 불가사의한 것입니다.
온 우주 만물의 섭리가 사람 몸 속에 다 들어 있습니다.
앞으로 북창이 말씀하신 내용을 저희가 더 궁구하여
마침내
그 비밀을 다 밝혀내면 우리나라에서도 대의왕을 맞게 될 것입니다.
제가 더 실험을 하고 향약(鄕藥)을 계속 연구하다보면
틀림없이 이루어질 일입니다.
앞으로 난세마다 큰 질병이 닥치고,
악질이 더욱 창궐할 것에 대비해,
미리 준비를해두어야겠습니다."
정작은 도사들이 은밀한 비법인 양 책을 지어
후계자에게만 몰래 전하는 조선의 풍토를 개탄했다.
그래서
북창이 체험 끝에 써낸 책을 바탕으로 의서를 준비했던 것이다.
비로소
이 책에서 조선 동의약의 새로운 전기가 솟아나게 되는 것이다.
그동안 정작을 데리고 직접 도가 수련을 한 박지화가
북창의 주요 의견들을 정리해서 좌중에 발표했다.
그 자리에 모인 사람들은 모두 북창의 탁월한 실험 정신과 지혜에 놀랐다.
"참으로 놀라운 말씀이오.
정작,
자네는 더 열심히 연구하여
장차 질병 때문에 고생하는 백성들을 구해주도록 힘써 주게.
지금 우리나라는
중국에서 배워온 의술과 중국에서 배워온 약으로 사람들을 치료하여
쉽게 낫지 않는 경우가 많다네.
우리나라에 맞는 의학을 세우게."
"국가 존망이 풍전 등화와 같은데 그깟 의술이요
단전수련이 어디에 쓸 비법이란 말이오!"
정개청이 성을 발끈 내면서 말했다.
그러자 토정이 정개청을 나무랐다.
"우리가 있는 한 조선은 망하지 않을 걸세.
망하지 않은 조선을 지키려면 꼭 필요한 것일세.
설사 망한다 해도
동인 서인으로 나뉘어 있는 조정의 사림들보다 못하지야 않으리."
정개청이 대답을 하지 못하자
토정은 박지화와 정작의 발표를 칭찬한 후 남사고의 말을 들었다.
"토정 선생님,
조정에는 아무리 말을 해도 알아주는 사람이 없습니다.
눈앞에 정권이 왔다갔다 하는데
무려 20년 뒤의 일을 누가 믿으려 할 것이며,
더구나
국운이 다 했다고 말하는 데에는
그 역정이 대단해서 감당해낼 수 없었습니다.
다만
제가 천문을 보면서 관측한 사실을 놓고
국운을 돌릴 방도를 생각해보았습니다마는
아주 어려운 일입니다.
설사 임진 대환난을 무사히 넘긴다 해도
조선 백성의 고통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을 것입니다."
"그게 무슨 말이오?
그렇다면 대환난이 또 있다는 말이오?"
"그렇습니다.
제가 그동안 쭉 우리나라의 앞날을 따져보았습니다.
또한
어려서 토정 선생님과 같이 보았던 신서도 있고,
관상감에서 익히고 봐두었던 것도 있으니 말씀드립니다.
남쪽이 열리고 북쪽이 열리는 난리가 두 번 있으니
왜란, 호란인 듯 싶습니다.
아무리 우리가 나서서 나라 망하는 것쯤은 막는다 해도
두 번 다 백성이 많이 다칩니다.
나라의 정기가 다 빠져나갑니다.
이로써 우리나라는 기운을 못 쓰게 됩니다.
민족 정기는 이미 고갈되어 목숨 부지하는 것으로
백성들끼리 아귀다툼만 하게 됩니다.
그런 뒤에 수백 년이 못되어
왜란이 다시 있어 나라가 통째로 넘어갑니다.
융희라는 연호를 쓰는 해에 조선 이조는 끝이 납니다.
마지막 왕은 태조 이래 스물여덟번째일 것입니다.
우리나라를 빼앗은 왜는 동에서는 이기고 서에서는 질 것이니
왜구를 칠 큰 나라가 따로 있습니다.
그래서
왜가 망하는 날 그 큰 나라가 다시 우리나라를 빼앗아
북쪽에 있는 나라와 나누어 갖습니다.
나라가 갈립니다.
천년의 통일 국가가 쪼개집니다.
그리고
허리가 끊겨 왜란, 호란보다 더 끔찍한 살륙이 자행됩니다.
온 세상 군대가 다 모여들어 이곳에서 싸움을 하기 때문입니다."
좌중에는 숨소리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
너무도 끔찍한 미래가 펼쳐져 있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우리가 노심초사하여 방비하려는 것도 다 쓸데없다는 것이오?"
박지화가 남사고에게 물었다.
"아닙니다.
막을 방도가 있겠지요.
그러자고 두 번씩이나 이 자리에 모이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본시 국운이라는 것은 죽을 것을 다치게 하고,
다칠 것을 구설에 머물게 하는 정도이지
죽을 사람에게 갑자기 복을 가져다 줄 수는 없는 것,
대신 치러야 할 일이 많다는 것입니다."
"무엇이오?
대신 치러야 할 것이라는 게?"
박지화가 몹시 답답한 듯 다시 물었다.
"나라가 망하든 망하지 않든 왜란에 삼백만이 죽습니다.
왜가 끌어가는 숫자도 수만이 넘습니다.
아녀자는 왜의 씨를 받아 왜인을 낳게 됩니다.
왜란에 용케 나라를 부지했다 해도 호란이 기다립니다.
호란에 역시 삼백만이 죽습니다.
아녀자 이십만을 오랑캐가 끌어갑니다."
남사고는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다시 왜란에 나라를 빼앗겨 나라를 되찾을 때까지 오백만이 죽습니다.
백만을 왜가 끌어가 노역을 시킬 것입니다.
이십만이 넘는 아녀자를 끌어다가 왜의 노리개로 삼습니다.
이런 끔찍한 형벌은 아직 어떠한 나라에도 내려진 적이 없었습니다.
그 뒤
온 세상의 군대가 다 모여 싸움을 할 때
무려 오백만이 이 땅 위에서 목숨을 잃게 됩니다.
너무도 끔찍하고 처참한 일입니다.
우리나라의 앞날을 차마 내다보기조차 두렵습니다."
토정은 눈을 지그시 감고 남사고의 말에 묵묵부답했다.
"그러니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 백성들이 수백만씩 죽어 없어지는 데도 할 일이 없단 말인가?"
박지화가 울먹이는 소리로 좌중에게 묻자
서치무가 모기 만한 소리로 대답했다.
"일부 목숨을 부지하는 길이 있긴 합니다만..."
"무엇인가?
어서 말하게."
토정이 서치무를 채근했다.
"대환난중에 목숨을 보전할 수 있는 곳이
열 군데 있습니다.
이 열 군데를 십승지(十勝地)라고 합니다."
"그까짓 것으로 온 겨레를 어찌 숨긴다는 것인가?"
"그렇지만
뒷날 겨레를 이을 사람은 보존을 하는 것이 옳지 않습니까?
제가 보기에는 어떤 전란에도 끄떡 없는 곳입니다."
"일러나보게."
"십승지를 말하겠습니다.
십승지라면
첫째가 풍기에 있습니다.
소백산 아래 물줄기가 갈라지는 곳입니다.
두번째가 내성(乃城) 동쪽 즉 태백산 남쪽입니다.
세번째는 속리산 증항 근처,
네번째는 지리산 운봉(雲峰) 동점촌(銅店村)입니다.
다섯번째는 예천의 금당실(金塘室),
여섯번째는 공주 유구와 마곡 사이의 물줄기 갈라지는 곳,
일곱번째는 영월의 상동(上東) 상류,
여덟번째는 무주 덕유산,
아홉번째는 부안 변산의 동쪽이고
열번째가 가야산 만수동입니다."
그러자
고순부가 고개를 저으면서 나섰다.
"그러나
그런 곳에 숨어 구차한 목숨을 이어갈 수는 없는 노릇이외다.
이 땅이 뉘 땅인데 이 땅을 내어주고 그런 곳에 숨겠소?
그런 이야기는 널리 하지 않는 것이 좋을 듯하오.
그런 곳으로 숨어 목숨을 부지한 사람이 무슨 기가 있어 후세를 이끌어가겠소.
살아도 전쟁터에서 살아야 나라를 빼앗기지 않고 살아갈 수 있을 것이오.
우리나라의 미래가 딱 끊기는 것이 아닌 바에는
절대로 그런 장소를 누설해서는 안되오.
한 사람이라도 나서서 항거해야 할 마당에
그런 곳에 숨어 있는다는 것은
국력 낭비에 국민의 심성을 비겁하게 만드는 일이오."
그때 전우치가 나섰다.
"십승지 말씀에 일리가 있습니다.
저는 설영후 도사와 함께 팔도를 두루 살폈는데,
역시 십승지는 전쟁의 피해가 미치지 않는 곳이었습니다.
따라서
그런 곳은 목숨을 보전하는 데에는 괜찮은 자리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싸움을 해야 하는 장소,
싸워서 이길 수 있는 곳을 찾는 것이 중요합니다."
"잠깐 이를 말이 있습니다."
남사고가 전우치의 말을 끊고 나섰다.
"조선의 지리를 살피고 다니는 첩자가 잡힌 적이 있습니다.
그자는
팔도의 산천과 지리를 낱낱이 서책에 적으며 다니고 있었는데
풍기군수가 수상하다 하여 잡아올렸습니다.
그런데
조정에서는 그가 한낱 산과 강을 그린 책을 썼다 하여
첩자라 볼 수 없다며 풀어주었습니다."
"그렇다면 벌써
<동국지도(東國地圖)>와 <팔도지리지(八道地理志)>가 왜의 손에 넘어갔을 터,
이를 어찌 막아야 한단 말인가?"
명종주가 참성단 바닥을 주먹으로 내리치면서 한탄했다.
"토정 선생님,
도대체 왜 우리나라만 유독 그런 형벌을 받아야 합니까?
다른 나라도 이런 일이 있는 것입니까?"
"우리 조선이
도대체 왜 이다지도 큰 벌을 받게 되는 것일까?
화담 선생은 순수 시대가 끝나 역수 시대가 오기 때문에 그렇다고 하셨지만
그러한 데에도 다 이유가 있는 법일 텐데…"
토정이 탄식했다.
"지금 우리가 한탄만 하자고 여기에 모인 것이 아니지 않소?
어서 방비책들을 내놓으시오."
박지화가 좌중을 둘러보며 채근했다.
그러자 정개청이 나서서 말했다.
"왜는 수국(水國)입니다.
토기가 승한 해에는 군사가 크게 일어나는데,
이러한 까닭에
임진수토(壬辰水土)에
왜가 극성을 일으키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장사에 능합니다.
임기응변이 많고 잔재주에 능해서 초전에는 조선이 크게 당할 것입니다.
그러나
토기(土氣)가 약한 것이 왜의 약점인데,
계사수화년(癸巳水火年)이 되면 그 힘이 떨어질 것인즉
임진년만 막아낸다면
나라를 빼앗기는 큰 변고는 일어나지 않을 수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땅에서 싸우는 것은 조선이 불리하고,
계사년에 가서 바다에서 싸우면 오히려 승산이 있습니다."
"바다라 해도 조선을 둘러싼 바다가 손바닥만 하지 않은데,
어느 바다를 이르는 것이오?"
유정이 물었다.
"동해바다처럼 등이 곧아서 피아 식별이 용이한 곳은 싸우기에 불리합니다.
다행히 남서 바다가 조수의 높낮이도 몹시 크고,
해안도 복잡하므로 미리 잘 익혀 두었다가
전법을 개발하면 싸움에 이길 수 있습니다.
몇 군데 제가 그려온 곳이 있습니다."
정개청이 해안을 그린 그림을 몇 점 품에서 꺼내 토정에게 밀었다.
"좋소.
그렇다면 군사도 없는 상황에서 누가 수군이 되고 누가 수군을 이끌 장수가 되겠소?"
"제가 그런 인물을 한 사람 만났습니다."
"그게 누구인가?"
"저는 나라를 구할 만한 장수감을 찾기 위하여
설영후와 함께 무인 선발 시험장엘 갔습니다.
훈련원에서 실시하는 별과 시험이었습니다.
그곳에서 뛰어난 젊은이를 발견하였습니다.
비록
그는 무예 시범 도중 낙마하여 시험에는 떨어졌으나
훗날 크게 될 사람으로 보였습니다."
전우치는 설영후와 함께 무인 선발 시험장에서 만난 사람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그는 기골이 장대하고 얼굴에 범상치 않은 기상이 서려 있는 젊은이였다.
나이는 스무일고여덟 살쯤 되어보였다.
"여보시오,
젊은이. 그대의 출중한 무예에 감탄했소이다."
전우치와 설영후는 시험이 끝나고 처소로 돌아가는
이순신을 따라가 말을 건넸다.
"부끄럽습니다.
말조차 마음대로 다루지 못하면서 나라를 위해 일해보겠다고 덤볐으니…"
젊은이는 말에서 떨어져 낙방한 것이 무안한 듯 얼굴을 붉혔다.
"우리는
토정 이지함 선생의 제자인 전우치와 설영후요.
그대의 이름은 무엇이오?"
"이순신입니다."
이순신은 목소리도 우렁찼다.
"이렇게 만나게 되어 반갑소이다.
그대의 사주 좀 불러 주시겠소?"
"사주는 무엇에 쓰시려구요?
저는 제 자신의 영달이나 부귀 따위엔 관심이 없소이다."
이순신이 불쾌한 낯빛이 되어 대답했다.
섣불리 말했다가는 전우치에게 크게 역정을 낼 기세였다.
"그대의 부귀영화를 보려는 것이 아니라 국운을 보려는 것입니다."
"국운을 보려면 천문을 보아야지 일개 백성인 제 사주는 왜…?"
"허허허,
그대는 앞으로 나라의 중한 책무를 맡을 사람이오.
그런 사람의 사주에는 국운도 나오게 마련이라오.
우리 같은 떠돌이 사주에야 아무것도 나타나지 않지만,
장수가 되어 이 나라를 지킬 그대와 같은 사람들의 사주를 보면
이 나라의 앞날을 대충 짐작할 수 있소이다.
내가 벌써 여러 사람의 사주를 보아둔 게 있다오."
그제서야 이순신은 자신의 사주를 불러주었다.
이순신의 사주를 보면서 전우치는 고개를 깊이 끄덕였다.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설영후의 얼굴에도 한가닥 안도의 표정이 스쳤다.
"그래, 제 사주가 어떻습니까?
국운을 크게 일으킬 사주입니까?"
이순신이 궁금한 얼굴로 물었다.
"그대의 어깨에 이 나라가 걸려 있소.
임진년을 준비하시오."
"임진년이오?
임진년이라면 앞으로 20년이나 뒤의 일인데…"
"그때 왜구가 온 힘을 몰아 쳐들어올 것이오.
그러니
다른 사람에게는 알리지 말고 혼자서 비책을 세우시오.
다른 이에게 말을 한다 해도 믿어주지도 않을 뿐더러
그것을 빌미삼아 오히려 해를 입힐 것이오.
다시 한번 말하겠소.
그대의 어깨에 이 나라의 흥망성쇠가 달려 있소.
다음번 무과에 꼭 응시하여 무관이 되시오.
그리고 책임있는 자리에 오르게 되면 그때부터
군사를 훈련시키고 무기를 준비하시오.
무기를 준비하되
왜구의 날랜 선박을 물리칠 수 있는 것으로 마련해야 하오."
"조정에는 알리셨습니까?"
"알리지 못했소이다."
"그렇다면 그런 말씀을 어떻게 믿겠습니까?"
"왜국의 사정을 살펴보면 그런 사실이 그대의 눈에도 들어올 터...
내, 다시 말씀드리겠소.
임진대환난을 준비하시오."
"지금 나라 안에 흉년과 괴질이 거듭 돌아
백성들은 하루하루 살아가기조차 힘든 사정입니다.
그런데 20년 후를 내다보고 그에 대비하라시니…"
"그것은 나도 알고 있소.
그러니 나라에서 알아서 군대를 키우기를 기다릴 수는 없소.
그러니 그대가 어서 무반이 되어 준비해야 하오.
훗날 군사를 키우고 무기를 준비하려면 군비가 많이 들 것이오.
그에 대비해 내가 몇 가지 비책을 말해 주리다.
우리나라 남해는 조수가 크게 들어왔다 크게 나가는 곳이고,
해안 또한 평평한 곳이 많으므로 염전을 일구어 소금을 만들 수 있을 것이오.
소금으로 말하자면
내륙 깊은 곳에서는 부르는 게 값일 정도로 귀한 물건이오.
처음 장수가 되어서는 군사들을 훈련시키지 말고
그 시간에 소금을 만들어 내다 파시오.
그렇게 해서 번 돈으로 병사를 늘리고,
무기를 마련하시오.
남해에 있는 우수영, 좌수영 모두 임진 대환난을 막아낼 요긴한 길목이므로
반드시
물길을 익혀두었다가 뒷날 왜적을 물리치도록 하시오.
경상도는 해안이 너무 터져 있어서
예로부터 해전에 능한 해적을 막기가 어려웠던 곳이오.
필시 왜적이 그쪽으로 밀려올 터인즉
그쪽 수영에서 증원 요청이 있더라도 응하지 마시오.
왜적을 노량이나 명량으로 유인하여 싸우면 이길 수 있을 것이오."
"저도
왜인들의 정세가 시시각각 변하고 있음을 알아채고는 있습니다.
그들은 막부별로 패권 다툼을 치열하게 하고 있습니다.
머지 않아 강력한 막부 아래 통일국가를 이룰 것이고,
그리 되면 그들은 내전을 끝내고 외침으로 눈을 돌릴 것입니다.
왜인들은
섬나라라는 열등감 때문에 호시탐탐 대륙을 집어삼키려 넘보고 있습니다.
원래 호전적인 그들이 통일을 하면 내전으로 인한 혼란을
마무리하기 위해서라도 우리 조선을 공격해올 게 틀림없습니다."
"옳게 보셨소.
그대의 말씀을 듣고 나니,
내가 사람 보는 눈이 흐리지 않음에 기쁩니다."
"그러나 왜인들의 군선은 막강합니다.
더구나
그들이 통일된 기세를 몰고 몰려오면 우리 조선의 낡은 배로는 당해내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니 아까 일러드린 대로 그들의 배를 물리칠 수 있는 새로운 무기를 만들어야 하오.
그에 관해 연구하시오.
그러면 큰 인물이 나타나 그대를 도울 것이오.
그대의 사주에 그렇게 나와 있소.
병진생(丙辰生, 1556년)이 그대를 도울 것이오."
전우치는 이순신의 손을 굳게 잡았다.
"말씀은 재미있으나 워낙 믿겨지지 않으니 어쩌면 좋습니까?"
그래도 이순신은
그저 한 술사가 해보는 소리려니 하고 크게 염두에 둘 생각이 아닌 듯했다.
20년 뒤의 일을 어찌 알고 대비하란 말인가,
더구나 무관 시험에 떨어진 낙방생인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다는 것인가
하고 어리둥절해 있는 것 같았다.
"그러면 누가 이야기를 해주어야 믿을 수 있을 것 같소?
토정 선생님이 말씀하시면 믿겠소?"
"글쎄요,
혹 율곡 같은 이가 말씀을 한다면 몰라도…"
"율곡이라고 하셨소?"
"그렇습니다.
율곡 그분과 저는 동성동본입니다."
전우치가 이순신을 만난 이야기를 하자
토정이 다시 한번 이순신의 사주를 짚었다.
그러고 나서 토정이 말했다.
"그렇다면 율곡에게는 내가 말하지."
"수군이 그 한 사람의 손으로 다 움직이게 됩니까?
군사는 역시 땅에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군적에는 사람이 부지기수로 많은데
정작 군대는 구경할 수도 없습니다."
무정이 눈을 감고 천천히 말했다.
"무정은 무슨 방비가 있는 거요?"
토정이 무정에게 묻자 무정이 비장한 표정을 지으면서 대답했다.
"의병이 일어나야 합니다. 의로움을 내세우지
않고는 싸움이 되지 않습니다. 승가에서는 본시
살생을 금하고 있지만, 나라가 없으면 가람을 지킬 수
없고, 가람이 없으면 부처를 모실 곳도 없게 되는 것.
그것만은 목숨을 내걸고 지키는 것이 불자의
도리입니다."
"그렇다면 스님들이 일어난다는 말씀이시오?
그렇다면 불살생 계를 범해야 할 텐데…"
"그렇소이다."
무정이 단호하게 말했다.
"고맙소."
"저는 문관 중에서 장수감을 만났습니다."
남궁두가 말했다.
"그게 누구요?"
"조헌(趙憲)입니다. 지금 교서관의 박사로 있는
스물아홉 살의 젊은 선비지요. 불의를 보면 참지
아니하고 바른말을 잘 해 국왕조차 어려워하는
인물입니다."
"저는 야인 중에서 명장감을 찾았습니다."
정개청이 말을 이었다.
"권율(權慄)이라는 사람입니다. 나이는 서른여섯,
아버지가 영의정 권철(權轍) 대감인데도 아들인 그는
아직 벼슬길에 나아가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학식이 높고, 나라 걱정하고 백성 위하는 마음이 깊은
사람입니다. 지난 해에는 신동으로 소문난 이항복을
사위로 맞아들였습니다."
이항복이라면 토정이 마포 삼개나루에 있을 때 자주
찾아와 가르침을 청하던 총명한 소년이었다. 그가
벌써 열일곱이 되어 권율의 사위가 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그때 정여립이 벌떡 일어나더니 제 가슴을 꽝꽝
때리면서 외쳤다.
"그래가지고는 안 됩니다!"
좌중이 아무도 제지하지 않자 정여립은 목청껏
자신의 계책을 말했다.
"지금 조정은 썩어 있습니다. 왕은 나라를 지킬
그릇이 못됩니다. 신하들도 무능력하여 권력만 탐하고
부귀영화에 눈이 멀어 백성을 보살피지 않습니다.
이런 왕과 이런 대신들로 어떻게 임진 대환난을
막습니까? 아니 될 말씀들이올시다!"
"그러면 방비책을 말씀해보시오."
토정이 말했다. 그러자 정여립은 더욱 목소리를
높여 말했다.
"여기에 모이신 분들이 지혜를 모으면 얼마든지
역성 혁명을 할 수 있습니다. 무능한 왕을
끌어내리고, 탐관오리를 모조리 처형한 뒤에 우리
스스로 정병을 선발해 기르면 대환난은 얼마든지 막을
수 있습니다. 이렇게 간단한 문제를 왜 한 분도
거론하지 않습니까? 도대체 무엇이 두렵단 말이오!"
"···"
좌중은 침묵했다.
"토정 선생님, 이조는 그런 대환난을 이겨낼 능력이
없습니다. 이 세상 어떤 나라든지 혁명으로 일어서지
않은 나라가 없습니다. 고려가 그랬고, 조선이
그랬습니다.
원이 그랬고, 명이 그랬습니다. 당과 송도
그러했잖습니까? 세우면 세워지는 게 왕조올시다.
지금 우리나라의 왕조는 권력 다툼으로 기력이
쇠잔하여 겨레를 일으킬 만한 힘을 가지고 있지
못합니다.
우리가 왕조를 세워 쇠잔해진 기를 새로 일으켜
세우고 백성에게 힘을 줍시다. 이 길이 가장 확실하게
대환난을 이길 수 있는 방법이올시다."
그러자 토정이 분명하게 말했다.
"백성이 모두 도탄에 빠져 있는데 그런 일로 군사를
일으키면 이 나라는 그나마 있는 힘도 잃고 맙니다.
안 될 말씀이오."
"왜 안 될 말씀이라고 하십니까? 아직도 시간은
많이 남아 있습니다. 왕조를 바꾼 후에 군사를 길러도
충분합니다."
"성공하는 것도 어렵지만, 성공을 한 뒤에 권력이
어떤 형태로 돌아갈지 알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런
것은 천기에는 전혀 비친 적도 없는 이야기니 더
거론하지 맙시다."
토정이 그렇게 말하자 나머지 사람들이 모두 고개를
끄덕여 토정의 말에 동조를 했다. 그러자 정여립은
벌떡 일어나 그대로 참성단을 내려가고 말았다.
"그러나 정여립의 말에서 군사를 새로 길러야
한다는 말은 새겨들어야 합니다."
전우치가 말했다.
"그렇소. 군사를 길러야 하오. 지금의 군사는
장부에만 있는 유령 군사들이오. 실제로 전국의
군사를 다 합쳐야 정병 만 명도 나오지 않을 것이오.
장부에 있는 군사는 지금 마굿간에 매어 있거나(소),
동리 입구에 비바람을 맞으며 서 있소이다(장승).
이따금 움직이는 군사가 있는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늙은 노인들이오. 장정들은 다 숨어 병역을 기피하고
있소이다. 이대로 임진 난리가 닥치면 속수무책으로
금수강산이 다 유린당할 것이오.
그러나 지금 나라의 재정은 피폐하여 군사를 기를
만한 여력이 없소이다. 그저 한 도에 만 명씩만이라도
정병을 길러 훗날을 방비한다면 좋으련만…"
설영후가 전우치의 말을 받쳐주었다.
"그렇다면 조정에 알려 위정자들이 준비를 하도록
해야 하지 않겠소이까?"
고순부가 말했다.
"그런 말을 했다가는 역적으로 몰려 삼족이
살아남지 못합니다. 그래서 정여립이 저런 주장을
하는 것입니다."
남사고가 고개를 저으면서 말했다.
"그러나 누가 말하는가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네.
조정이 믿을 수 있을 만한 사람의 입을 빌어 말하도록
하세."
토정의 말에 남사고가 말했다.
"그렇다면 이율곡이 적격입니다."
"그렇다면 그건 내가 맡겠네."
토정이 남사고의 의견에 대답하면서 고순부에게
물었다.
"제주 쪽은 어떻습니까? 왜구를 막아낼 만합니까?"
"지난번 회의가 끝나는 대로 강화에서 배를 타고
서둘러 제주로 가서 살폈습니다. 왜적이 쳐들어오면
탐라에 가장 먼저 닿을 것이고, 그곳에서 왜적을
섬멸한다면 본토에까지는 아무런 화가 미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탐라는 왜구를 막기에는 지세가 약하고
식량이 부족했으며 군사도 적어 불리합니다. 이런
이유로 왜구도 제주로는 들어오지 않을 것입니다."
고순부가 제주는 전쟁터로서 적격지가 아님을
설명했다.
참성단에 모인 역술인, 선사, 도사 등은 밤을 새워
대책을 토론하였다. 하루가 다 지나고 또 하루가 다시
가도록 뾰족한 수는 나오지 않았다.
그러다 마침내 나흘째 되는 날 토정은 그동안 나온
의견을 정리하였다.
"박 선생님은 정작, 여무소와 더불어 대역질을 막을
의왕을 만들어주십시오. 국운으로 볼 때 그런 의왕이
일차 나올 때가 되었습니다.
지금쯤 그 자신 의왕이 되리라고는 생각도 하지
않으면서 고난스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을 것입니다.
그 다음 삼백 년이 지나 다시 한번 의왕이 나오고 또
그로부터 백 년이 지나 대의왕이 나타나 온 세상을
대역질에서 구해낼 것입니다.
그 의왕들은 저절로 나기보다 나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두 분이 북창 선생께서 이루신 것을 더 갈고
닦아 그 사람들에게 기틀을 넘겨주셔야 합니다."
토정은 남사고에게 말했다.
"격암, 자네는 자네 말대로 하는 게 좋겠네. 앞으로
수십 년 내에 이 자리에 모인 사람들도 다 죽고 말
것이니 이러한 일을 비결로 남겨 눈밝은 사람이
읽어볼 수 있도록 하세.
그래서 다가오는 대환난들을 조금이라도 누그러뜨릴
수 있다면 오죽 좋겠나? 다만 그걸 이용해 권좌나
탈취하려는 모리배가 생겨날 수도 있으니 반드시
도력이 높은 사람이 아니고는 알 수 없도록 숨겨야
하네.
정치는 벼슬아치들이 하나, 세상을 이끌어가는 것은
바로 우리들임을 잊어서는 안 되네. 바로 우리나라에
도맥이 끊겨 그런 대환난이 생기는 것이니 바로
이어주도록 하세. 그러고도 눈밝은 자가 나타나지
않는다면 우리나라의 운이 그 정도밖에 안 되는
것이니 어쩌겠나?"
토정은 남궁두에게 말했다.
"나도 계속 그렇게 할 것이지만, 자네는 특히
팔도를 구석구석 돌아다니면서 장수가 될 만한
사람들을 찾아서 나랏일을 의논하게. 그리하여 위급한
때에 그런 사람들이 벌떼처럼 일어난다면 어느 정도
국난을 막을 수 있을 걸세."
토정은 또 서치무, 정개청, 명종주, 전우치,
설영후에게 말했다.
"자네들은 팔도의 지리를 다시 한번 철저히 살펴
왜구가 지나가는 길목마다 살피고, 어디가 싸움을
하기에 이롭고 불리한가를 낱낱이 적어 후일에 쓰도록
해주게."
토정은 끝으로 정휴에게 말했다.
"자네는 나와 함께 인물들을 더 살피러 떠나세."
토정은 말을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나 준비해온
제물을 참성단에 늘어놓았다. 다른 사람들도 모두
일어나 제단 앞에 숙연하게 섰다.
토정이 하늘을 향하여 세 번 절하고, 이어서 다른
사람들도 차례로 절을 했다. 그런 다음에 토정이 손수
지은 제문을 읽었다.
하늘에 구름이 일고 있었다. 바람이 거세게
휘몰아져왔다. 짙푸른 바다가 꿈틀대더니 금시라도
마리산 정상을 집어삼킬 듯 거친 파도가 일기
시작했다.
참성단을 다녀온 토정은 정휴와 함께 전국을
돌아다녔다. 그러다가 풍수지리로 마을 전체의 기를
뜯어고치기도 하였다. 토정은 그렇게 함으로써
서치무와 정개청에게 전법으로 쓰는 지리를 보일
참이었던 것이다.
남해안을 돌던 토정은 관음산쪽으로 향했다. 그리고
한 마을에 이르자 주막을 찾았다. 해사 마을이었다.
"형님, 아직 해가 일러 더 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벌써 주막을 찾으십니까?"
정휴가 의아해서 묻자 토정은 빙그레 웃기만 했다.
"이보시오, 주모. 방을 하나 내어주시오."
토정이 주막문을 들어서며 큰소리로 외쳤다. 방문이
삐끔 열리며 주모가 얼굴을 내밀었다. 얼굴이
보름달처럼 둥근 중년의 여인이었다.
"술상을 올릴깝소?"
토정과 정휴를 맞이하는 여인의 눈에 물기가
번들거렸다. 맛난 음식을 앞에 둔 식도락가의
게걸스런 눈빛 같기도 했고, 숫처녀를 넘보는
호색가의 느물스런 눈빛 같기도 했다. 정휴는 웬지 그
눈빛이 비위에 거슬려 얼른 그 시선을 외면했다.
주모는 부리나케 술상을 차려왔다. 얼굴로 보아서는
행동이 굼뜰 것으로 보였지만 술상차리는 솜씨만큼은
재빨랐다.
술상을 내어온 주모가 물러가려 하자 토정은 주모를
불러세웠다.
"내, 이십 년 전에 이곳을 지난 적이 있소. 그때 이
주막을 지키던 주모는 어디 계시오?"
"아이구, 그래셨스라? 반갑구만이라. 아줌니는 벌써
세상을 떴지라우."
"이 마을에 혹 스무 살 쯤 되는 청년이 없소?
이름은 아마 규철이라고 할 것이오만…"
"규철이 말이지라? 그 아이를 어찌 아신다요?
그러면, 혹시…?"
"딴 얘긴 할 것 없고 내 물은 것에나 대답을
해주시게."
"그 아인 이미 타관 사람이 된 지 오래 되었지라.
이 마을에 있으면 요절을 하기가 십상이라 젖
떨어지자마자 제 어미가 타관으로 보내버렸소.
나중에 들은 얘기론 어느 부잣집에서 양자로
들였다는 얘기도 있고, 제 아버지가 데려가 정실
자식처럼 키운다는 얘기도 있고, 중이 돼서 떠돈다는
얘기도 있고…"
"중이라…"
토정은 중이란 말에 무언가 짚이는 것이 있는 듯
생각에 잠겼다.
"그렇다면 그 아이가…?"
토정은 혼자 중얼거렸다.
"이보게, 정휴. 운주사 상좌승이 생각나는가?"
"현수 수좌 말씀이십니까? 신당에 들었던? 그런데
갑자기 그 얘기는 왜?"
"아, 아닐세. 내 나중에 얘기해줌세."
토정은 말을 얼버무리고는 주모에게 다시 고개를
돌렸다.
"그 아이의 어미는 어찌 되었소?"
"희수 말씀이지라? 희수는 아이를 떼어놓고는
보고ㅈ아서 반실성을 했지라우. 이삼 년은 일도 않고
먼산바래기가 되어 앉아 있더니만 어느날 밤중에
사라졌으라우.
아이를 찾아갔는지, 하룻밤에 만리장성 쌓았던
서방님을 찾아 나선 건지… 그 뒤론 영 죽었는지
살았는지 소식이 없으라우. 아마 죽었을 게
틀림없지라. 혼잣몸으로 떠돌아다니다 얼어 죽었든지,
굶어 죽었든지…"
여인은 제 딸 얘기인 양 구슬프게 사연을
늘어놓았다.
"정휴. 일어나세. 가볼 데가 있네."
"아니, 여그서 묵지 않고 가시겠으라우?"
주모가 화들짝 놀라면서 물었다.
"내 며칠 안으로 다시 돌아오리다. 그때는 장정
수십 명을 데리고 올 터이니 주모는 주막에 있는
방마다 깨끗이 치워놓고 손님 맞을 채비를 하시오.
내, 다시는 희수 같이 불행한 여인이 생기지 않도록
이 마을의 기를 바꾸어 드리리다."
"그렇게만 해주신다면 오죽이나 좋것소."
"대신 마을에서도 준비할 것이 있소. 커다란 바위를
찾아내어 남근(男根)을 하나 깎도록 하시오."
"남근이라고 말씀하셨소?"
주모의 번들번들한 얼굴에 붉은 물이 살풋 들었다.
"맞소. 바위는 저 건너편, 소나무 밭에 묻혀 있을
것이오. 그걸 파내서 정성껏 깎으시오. 마을의
여인이란 여인은 모두 달려들어서 해야 하오. 여든
먹은 노파든, 열여섯 처녀든, 다섯 살 짜리 계집애든,
한 살 짜리 젖먹이든 여인의 몸으로 태어난 사람은
모두 한번씩 정을 들어 쪼도록 하시오. 그리고 그
돌을 저기 마을 뒷산에 끌어다 놓으시오."
"예, 예. 말씀대로 준비해 놓겄소. 선비님 말씸대로
된다면이사…"
주모에게 단단히 일러둔 토정은 정휴와 함께
강진으로 향했다.
"무슨 일을 꾀하시는 겁니까, 형님?"
해사로 들어가면서부터는 모를 일 투성이였다.
토정의 일이라면 모르는 게 없을 정도로 다 알고 있는
정휴인데도 이번에는 무슨 사연인지 전혀 알아챌 수가
없었다. 이 일이 임진 대환난 방비와 무슨 관계가
있을 것 같지도 않았다.
그런 정휴의 마음을 읽었는지 토정이 말했다.
"시험 삼아 해볼 일이 있네."
"시험 삼다니요? 대환난을요?"
"그렇다네. 장차 크게 쓸 전법이려니. 자네도
마을에 들어가면서 짐작을 했겠지만 저 마을은 음기가
세서 사내라곤 씨가 말랐다네."
"그래서 희수란 여인이 젖먹이 아들을 타관으로
떼어 놓은 것이로군요."
"그렇다네. 그러니 내가 저 마을 여인들의 한을
풀어주고자 하는 것이네."
토정은 더이상은 말을 하지 않았다. 정휴는 궁금한
것이 많았으나 토정의 굳게 다문 입을 보고 더는 묻지
못했다.
강진에 도착하자 토정이 길가는 사람을 붙들고 길을
물었다.
"여보시오. 소금장수 오천석이 어디에 사는지
아시오?"
"쩌그 저, 큰 집이지라."
그가 가리키는 집은 고관대작의 집만큼이나 커다란
고대광실이었다.
"형님, 장사꾼이 저렇게 큰 집에 삽니까?"
"그러게 말일세. 내가 보아주었던 사주가 맞아
떨어졌는가보이."
토정이 두륜산을 넘으면서 장사꾼들과 만났던
이야기를 정휴에게 해주었다.
토정이 문을 두드리자 여느 양반가처럼 하인이 먼저
나와 맞이했다.
"한양에서 온 이지함이라고 이르시오."
그러자, 하인이 이르기도 전에 안에서 헐레벌떡
뛰어나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니, 이지함 선비님이구만이라."
토정이 예전에 두륜산에서 만난 적이 있었던 장사꾼
오천석이 버선발로 뛰어나왔다.
"선비님, 말씸대로 혔더니 참말로 부자가 되었지라.
워떠코롬 사례를 혀야 그 크신 은혜를 만분지
일이라도 갚는다요?"
오천석은 토정이 사주를 보아준 뒤 크게 용기를
얻고 장사에 부지런을 떨어 큰돈을 벌었다. 그리고
그는 돈을 벌기만 한 것이 아니라 쓸 곳에 적절히
내어줄 줄도 알아 그 덕이 인근에 소문이 났고,
그럴수록 그의 장사는 더욱 번창해갔다.
토정이 일러준 대로 축기(縮氣)를 하는 만큼
방기(放氣)도 할 줄 알아 재물이 저절로
굴러들어오다시피 한 것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도움을 청하러 왔소이다."
"말씸만 하시씨요잉. 말씸만 허시먼 뭐든지
도와드려야제."
"해사 아시오?"
"아이고, 왜 모른다요? 음기가 하도 쎄서 거그만
가면 남정네들은 목숨을 잃는다고 하여 우리네
장사꾼들도 거그는 피해서 다니지라."
"그곳에 큰 장을 내시오."
"장을 말씀이오? 그러다가 요절하면 워떡하구라?"
"그건 걱정 마시오. 내가 다 조처를 해줄 터이니…"
"선비님께서 조처를 내려주신다면야 괜찮것지만,
워낙 터가 드센 땅이라서 영 마음이 내키지
않으네요이."
"양기로 음기를 끄면 되오. 큰 장을 열어서
사내들이 들끓게 해주시오. 그러면 자연히 음기가
고개를 숙일 것이오. 그곳 해사의 해산물도 적지
않고, 인근 마을까지 합치면 삼백여 호가 되니 장을
일으키면 크게 번성할 것이오."
"그렇지만 지금 있는디서 거기까지 가기가 쪼께
멀지라."
"그래도 장이 서면 길이 나고, 길이 나면 사람이
지나다니게 되어 있소."
"선비님 말씀인디 안 그럴 수 없제. 그럼 그러코롬
하겄소. 지가 먼저 장을 열겄소. 아주 큰 장을
열겄소."
토정은 오천석이 끌어모은 장사꾼들과 함께
해사마을로 돌아왔다. 토정은 장사꾼들이 장을 세울
준비를 하는 동안 마을 여인네를 이끌고 마을
뒷산으로 갔다.
여성의 음부같이 생긴 마을을 둘러싼 산 가운데서
음핵에 해당되는 곳이었다. 거기엔 토정이 일러놓은
대로 마을 여인네들이 깎아놓은 남근석이 누워
있었다.
토정은 산의 한가운데를 삽으로 팠다. 한 자를
파기도 전에 생수가 쭉 솟아올랐다. 다시 두 자를 더
파자 구덩이에는 옹달샘처럼 물이 그득 고였다.
토정은 마을 여인네들에게 일러 남근석을 구덩이에
세워놓도록 하였다.
마을 여인들은 힘을 합하여 남근석을 일으켜 세워
그 구덩이에 박았다. 그리고 흙으로 돌 가장자리의 빈
공간을 채워넣었다.
마침내 마을 뒷산 한가운데에 남근석이 우뚝 섰다.
그 당당한 기세에 주변 산야가 잔뜩 몸을 움추리는
듯했다.
"자, 이제 됐소. 이제 장이 들어서서 저 양기
충천한 장꾼들이 자꾸 음기를 누르면 이 마을은 예사
마을처럼 되어갈 것이오."
주막 앞 빈터에는 벌써 장터가 형성돼 있었다.
장사꾼들이 떠들썩하게 입담을 풀어놓고는 있었으나
장을 보러 오는 사람은 없었다.
토정은 오천석을 불러놓고 일렀다.
"그대는 이 장에서 더 큰 재산을 모을 것이오.
장꾼이 찾아오지 않는다고 하여 쉽게 포기하지
마시오. 이곳의 음기가 기운을 잃었다는 소문이
퍼지면 곧 손님이 줄을 이을 것이오. 마음을 느긋하게
먹고 기다리시오."
"지가 망허먼 망혔지 이대로 장을 걷지는 않을
것이구마요. 선비님 말씸을 꼭 지킬 것이니께 맴
놓으시씨요이."
토정은 그제서야 해사마을을 떠났다.
"이렇게 하면 임진 대환난을 막을 가닥은 좀 잡힌
셈이네. 이를 서치무와 정개청에게 일러 그 방비를
서두르라고 해야겠네."
"왜인이 힘을 쓰지 못하도록 미리 방비를 하실
것입니까?"
"그렇다네. 싸움터가 될 만한 곳을 미리
알아두었다가, 그런 곳마다 기운이 우리 쪽
군사들에게 돌아올 수 있도록 풍수를 쓰면 되네."
토정과 정휴는 한양으로 향했다.
한양으로 가는 길에 토정은 일부러 용인을 들러 안
진사를 찾았다.
"방비를 하는 데에도 돈이 드니 안 진사에게서 돈을
빌려써야겠네."
그런데 황토재에는 안 진사의 자취가 없었다.
안 진사가 살던 황토재 집은 이미 폐허가 되어
잡초만 무성했다. 쓰러진 기둥과 타다 만 골재가
어지럽게 널려 있었고, 그 사이사이로 풀만 무성하게
자라고 있었다.
인근에 사는 사람에게 물어본즉 새로 부임한 수원
목사가 찾아와 모반 혐의를 뒤집어 씌워 칼을 목에
채워 끌어간 뒤로 소식이 없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안 진사와 소식이 끊긴 지 벌써 **오년도 더 되었다.
그 소식을 들은 토정이 갈 곳은 뻔했다.
그 길로 수원으로 달려갔다. 감형에 가서 죄인
명부를 보니 안 진사가 그 이름에 끼여 있었다.
서둘러 형리를 매수하여 감형으로 들어가니 안 진사는
이미 저승사자를 옆에 모시고 있는 사람 같았다.
"아니, 어르신. 어떻게 이런 데에 계십니까?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안 진사는 목숨이 경각에 붙은 듯 턱을 벌리지도
못했다.
정휴가 챙겨들고 간 미음을 한 모금 마시고 잠시
진정을 한 뒤에 안 진사는 겨우 말문을 열었다.
"이곳 수원 목사 최준호는 일찍이 용인 현감을 했던
자라네. 용인 현감으로 있는 동안 내가 계속 뇌물을
올려 겨우 관의 등쌀을 피했는데 이제는 내가 준
돈으로 목사 자리를 사더니 더 큰돈을 요구했다네.
권력이란 그렇게 막강한 것, 그자가 내 재산을 모를
리 없으니 내가 주는 돈이 양에 찰 리가 없지. 그러니
그걸 통째로 빼앗으려고 모략했다네. 그걸 내가 뻔히
알면서도 막을 길이 없었다네.
꼼짝 못하고 앉아서 당했지. 그리고… 이리로
가까이 오게."
안 진사는 토정을 가까이 부르더니 정휴나 형리가
알아듣지 못하도록 귓속말로 뭔가 한참 밀담을
나누었다.
이야기를 하는 동안 형리들은 불안해 하며 어서
빨리 나가달라고 재촉했다. 안 진사는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다시 칼을 목에 썼다. 토정은 그 모습을
다시 보지 않고 밖으로 나간 뒤 정휴와 용인으로
향했다.
용인에 간 토정은 구봉산 골짜기로 들어갔다. 그곳
커다란 바위에 이르자 토정은 그 밑의 땅을 팠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궤짝이 하나 튀어나왔다. 궤짝을
뜯어 보니 금으로 된 장신구가 가득 차 있었다.
토정과 정휴는 그것을 행장에 나누어 담았다.
"안 진사가 미리 알고 재산을 도피시켜놓았었다네.
그러나 목숨은 숨기지 못하여 저렇게 영어(囹圄)의
몸이 되고 만 것이라네. 어르신께서 이 돈은 내가
알아서 조선 팔도에 뿌리라고 했네. 백성의 피를
탐관오리가 차지하면 나라에 큰병이 든다고
걱정하시면서 피를 잘 돌리라고 하셨네.
그래서 내가 임진 대환난을 말씀드리고 그 일의
예방에 쓰겠노라고 여쭈었더니 쾌히 승낙을 하셨다네.
모르긴 해도 수원 목사는 이것을 손에 넣기 전에는
진사 어른을 그렇게 쉽게 죽이지 못할 것이네.
그렇다고 풀려나기도 쉽지 않겠지만…"
토정은 정휴에게 안 진사가 숨겨두었던 금붙이를
건네주었다. 그것을 걸머지고 팔도를 돌아다니면서
참성단 회의에 참석했던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라는
것이었다.
정휴와 헤어진 토정은 한양으로 올라갔다.
한양에 가자마자 토정은 율곡을 찾아갔다. 조정에서
알아주는 인재인 그에게 임진 대환난을 설명해주고
국가적인 차원에서 대책을 세우라고 촉구하기
위해서였다.
율곡은 마침 병을 핑계로 사표를 내던지고 명사들과
담론을 나누고 있었다.
"도대체 환구단에 올라가서 하늘에 제사를 지낸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소리입니다."
한 선비가 핏대를 올리면서 말하고 있었다. 그러자
다른 선비가 말했다.
"그러나 벌써 십여 년 넘게 가뭄이 계속 들고
있으니 민심도 수습해야 하고, 정말로 기우제라도
지내야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닌가?"
"이 나라가 무당만 사는 나라인가! 이 나라는
삼강오륜이 시퍼렇게 살아 있는 군자국이란 말이오!"
두 선비의 격론을 말리고 있던 율곡은 손님이
왔다는 하인의 말에 사랑방을 나왔다.
"선생님, 어서 오십시오."
율곡은 토정을 반갑게 맞았다.
"무슨 일로 이렇게 시끄러운 겐가?"
"조정에서 지금 기우제를 지낸다고 하는데 지내야
한다, 군자국에서 그래서는 안 된다고 의견이
분분합니다. 그런데 막상 기우제를 지내야 한다는
의견도 둘로 갈리어 산천에 빌어야 한다, 천지에
빌어야 한다 하여 또 말썽입니다. 선생님께서
시원하게 말씀해주십시오."
"참으로 조정에 계신 분들이 할 일도 없군. 하늘에
기우제를 지낸다는 것은 백성의 마음을 위로하기
위해서라도 꼭 필요한 것이니 그 문제로
왈가왈부한다는 것은 백성을 생각하는 마음이 없기
때문일세."
"그렇다 해도 우리나라는 산천에 제사를 지내는
것이 옳다는 의견이 많습니다. 천지에 제사를 지내는
것은 오직 천자만이 할 수 있으므로 명나라가
아니고는 할 수 없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율곡, 답답하네. 이 나라가 어디 명나라의
제후국인가? 이 나라의 시조가 누구인가?"
"그야 단군이십니다."
"그렇다면 그분이 어디에서 내려오셨는가?"
"하늘에서 내려오셨지요."
"그렇다면 이 나라야말로 천자의 나라일세. 진짜
천자의 나라는 조선이란 말일세. 태조 대왕께서 폐한
환구단을 어서 복구하여 제천 의례를 올리는 것이
진정 백성을 위하는 길이네."
"허나, 조정에서 누가 그 말씀을 들어줄 사람이
없습니다."
"한번 말해서 듣지 않는다면 열 번이고 백 번이고
말을 해야 하지 않겠는가? 백성을 위하는 것인데 입이
다 닳아없어진다고 한들 어떻겠는가? 지금이 어느
때인데 그렇게 한가하게 사표나 써던지면서 국사를
소홀히 하는 겐가?"
"부끄럽습니다."
"공자 맹자가 사람 하나 바보로 만들었군."
율곡이 머리가 좋아 과거 시험마다 철썩철썩 잘
붙어서 벼슬길이 순조로운 편이었으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세속적인 벼슬의 품계요, 백성을 사람하는
마음으로는 아직도 그다지 깊지 못했던 것이다.
"공자는 병을 칭탁하여 유비를 만나지 않았고, 맹자
또한 병을 칭탁하여 제왕(齊王)의 부름을 거절했네.
병이 났다고 남을 속이는 것은 게으른 하인배들이나
하는 짓일세. 율곡 그대가 칭병을 하고 나랏일을
버리는 게 다 공맹이 만들어준 명분 아니겠는가?"
"작년에 관상감에서 요성이 나타났다고 걱정이
많습니다."
"이제 그런 걱정일랑 속시원히 떨쳐버리고 나랏일을
보게. 그 요성이 나타났다는 소문 덕분에 세상 인심이
잠잠해졌으니 그건 길성인가보군. 율곡 그대는 조정에
계속 있어야 하네.
그러면 조선이 망할 운이어도 난리 한번 겪는
것으로 막아낼 수 있고, 난리 한번 겪을 운이라면
지방 토호의 난 정도로 막을 수 있으니 어찌 나랏일을
소홀히 할 수 있겠는가? 사표를 거두고 어서 조정으로
돌아가게. 백성들에게 돌아가란 말일세."
"그렇지만 조정은 너무 시끄럽습니다. 허언과
망발이 날개를 달고 돌아다니며 활개치는 곳이
조정입니다. 게다가 임금 또한 아직 어려서 어진
신하의 말을 제대로 들을 줄 모릅니다. 백성을 위하는
마음이야 변치 않았습니다만, 조정의 그 이전투구
속으로 돌아가기는 싫습니다."
"어버이가 오늘 내일을 다투는 위중한 병에 들어 그
자식이 밤낮으로 수발을 드는데도 어버이는 오히려
약그릇을 발로 차내고 성을 내네. 어떤 때에는 그
아들에게 목침을 집어던져 발을 으깨놓고 따귀를
올리기도 한다네. 이럴 때에 아들이 물러나 어버이의
치병을 포기해야 옳은가, 그럴수록 더 정성껏 약을
지어올려야 하는가?"
"선생님의 비유는 참으로 제 가슴을 찌릅니다.
어르신네 말씀대로라면 제가 한 발인들
떠나겠습니까마는 군신과 부자의 관계는 조금 다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라가 이 지경이 되었는데 군신과 부자가 따로
있단 말인가?"
율곡이 비록 벼슬을 버리고 물러나 있긴 하였지만
임금에게 십만 양병을 직소할 만한 인물이라곤
율곡밖에 없었다.
토정은 율곡을 붙들고 임진 대환난의 실상을 눈으로
들여다보듯이 훤히 설명하며 설득했다.
"그대도 알 만큼 아는 사람이니 내가 말하겠네만,
나나 그대나 임진 대환난을 직접 겪지는 않을
인물들일세."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제 나이 이제 서른일곱,
임진년이면 쉰일곱밖에 안 되는데 아무렴 제 명이
그렇게 짧을려구요?"
"그렇지 않네. 우리 두 사람 다 명이 그리 길지
않은 편이네. 우리가 방비를 해두지 않으면 어리석은
조정 대신들이 그 큰 난리를 어떻게 막을 수 있을지
걱정이네. 그대가 벼슬자리에 있을 때 어느 정도
막음을 해놓는 게 마땅한 도리일세."
이튿날 율곡은 토정의 간곡한 청에 못 이겨
입궐했다. 그리고 토정이 말한 대로 십만양병을
주장했다. 그러나 좌우 대신들의 반대가 등등했다.
"해마다 흉년이 들고 질병이 휩쓸고 지나가서 남아
있는 거라곤 쭉정이밖에 없는데, 그나마 일할 수 있는
장정을 십만이나 뽑아다가 군사로 기른다구요? 아니될
말씀이오."
병조판서까지 반대를 하고 나섰다.
그러자 율곡은 개인적인 신임을 바탕으로 좌우를
물려 달라고 젊은 임금 선조에게 요청했다.
"제가 지금부터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은 널리
알려지면 아니될 일이기에 좌우를 물린 다음 따로
말씀을 올릴까 합니다."
선조는 율곡의 요청을 받아들였다. 다른 대신들은
물러나면서도 통촉하라는 소리를 몇 번 더 지르고
나갔다.
이윽고 임금과 독대를 한 율곡은 토정이 한 말을
소상하게 전했다.
"내일 일도 알기 어려운데, 하물며 20년 후의 일을
논하다니…"
선조는 율곡의 병이 깊음을 오히려 걱정하면서 그
의견을 염두에 두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율곡은
허탈한 심정으로 퇴궐하여 토정에게 돌아왔다.
일이 어그러졌음을 안 토정은 장탄식을 하였다.
오히려 율곡이 그런 토정을 위로하였다.
"토정 선생님,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아 있으니 큰
심려 마십시오. 제가 차차로 의견을 모으겠습니다.
지금은 워낙 나라 안에 변고도 많고 흉년도
거듭되어서 미처 생각이 미치지 못하는 것입니다.
때를 보아 다시 거듭하여 상소를 올리겠습니다."
그 뒤로 토정은 가회동 집으로 돌아가 맏형의
지번의 아들 산해와 둘째형 지무(之茂)의
산보(산보)를 앉혀놓고 은밀하게 이야기를 전했다.
벌써 서른다섯의 장년이 된 산해는 동부승지의
자리에서 일하고 있고, 서른네 살인 산보는 춘추관
정언이 되어 있었다.
"너희는 임진년을 전후하여 관운이 활짝 핀다.
그러나 때가 좋지 않다. 환난이 있게 된다. 그러니
아무리 높은 벼슬에 올라도 아무 쓸모가 없게 된다.
목숨을 바쳐서라도 나라를 지켜야 한다."
조카들에게 단단히 일러둔 다음날 토정은 정휴에게
화담 산방으로 가라고 말했다.
"정휴, 자네는 화담 산방에 먼저 가 있게. 가서
박지화 형님과 환난 준비를 계속하게. 나는 다른 곳에
들렀다가 곧 따라가겠네."
정휴는 토정의 분부대로 화담 산방으로 가 박지화
등과 함께 임진 대환난 방비에 애를 썼다.
그러나 어딘가에 들렀다가 뒤이어 오겠다던 토정은
영 나타나질 않았다.
"선생님, 토정 형님에게 무슨 일이 있는가 봅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토록 임진 대환난을 막아야
한다면서 동분서주하던 분이 여지껏 안 나타나시고
소식조차 없을 리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죽기라도 한 것인가!"
박지화가 난감한 얼굴로 말했다.
"그건 모릅니다. 그나저나 이제 임진 대환난 방비는
어떻게 합니까?"
"어떻게 하다니? 그러면 조선 백성을 병겁에 그대로
내버려두란 말인가? 안 될 소리! 그대로 계속 준비를
하게."
박지화는 토정이 나타나기를 기다리며 정휴를
비롯한 역사, 술사들을 모두 독려하면서 임진년을
방비해 나갔다.
한편 정휴는 금강산으로 가 무정을 만나 임진년을
의논했다. 또 정개청과 서치무는 싸움터가 될 곳을
찾아다니며 지맥을 다스렸다.
정작은 직접 향약을 살피면서 내경을 집필하였다.
남궁두는 장수가 될 사람과 의병을 일으킬 만한
사람을 찾아다니면서 임진년의 일을 알렸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들의 말을 믿으려 하지 않았다.
어떤 때에는 민심을 소란하게 한다는 죄명으로
관헌에게 붙잡혀가 물고를 당하기도 하였다.
그러는 동안에도 토정의 얼굴은 나타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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