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휴는 봉선사에서 지함을 이별한 뒤 곧장 금강산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봉선사를 떠나면서부터는 낮에 대로를 걷기도 힘들었다.
곳곳에서 유림(儒林)들이 진을 치고 앉아
지나가는 승려를 잡아다가 몰매를 주거나
아예 종으로 잡아가는 경우가 있었던 것이다.
태조 이성계를 이은 그의 후손들은 억불숭유(抑佛崇儒) 정책을 써
불교에 대해 극심한 탄압을 일삼았다.
유림이나 관헌들은 불교를 사교(邪敎)로 단정하여 닥치는 대로
사찰을 불태우고 불상을 파괴했다.
승려는 노소를 막론하고 강제 환속을 시킴으로써 불교의 씨를 말리려고까지 하였다.
이렇게 불교를 탄압했던 것은
이성계의 반역 행위를 고려의 국교였던 불교계에서는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성계가 정치 이념으로 유교를 내세워 신봉하고 장려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칼이 불교계에 꽂혔고
그때마다 불교는 잎을 잃고 가지가 꺾이고 기둥마저 썩는 수난을 당해야만 했다.
때마침 명종이 인종의 왕위를 잇자마자 왕후가 된 명성왕후는
갑자기 숭불 정책을 펴서 여기저기서 유림들의 상소가 빈번했고,
상소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유림들이 직접 나서서 절을 불태우거나
중을 잡아가기도 했던 것이다.
정휴는 길을 돌고돌아서 고청봉(孤靑峰) 명초 스님이 말해준
서암(瑞巖)을 찾아 금강산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금강산에 있는 사찰마다 텅텅 비어 썰렁한 바람만이 불고 있었다.
정휴는 공부에 인연이 없음을 탄식했다.
선지식은 고사하고 도반(道伴)마저 만나기 힘들었으며
정휴 자신도 늘 관원을 피해 다니는 형편이었다.
세상은 양반 놀이에 미쳐 돌아가고 있었고 불가는 폐허가 되어 가고 있었다.
아무리 정휴가 도첩(度牒)을 가지고 있다 한들
그걸 인정해줄 유림은 아무도 없었던 것이다.
"아무리 난세라도 선지식은 계시련만..."
정휴는 텅빈 바랑을 짊어지고 터덜터덜 산자락을 누비고 다녔다.
정휴가 방장 명초가 가리킨 대로 굳이 금강산을 찾은 것은
금강산에 수도를 돕는 기운이 많다는 얘기를
객승한테서 얼핏 들은 적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미 선지식이 없는데 아무리 영기가 가득한 산인들 수도처가 될 수는 없었다.
그래도 정휴는 계속 금강산을 오르내리고 골짜기로 오락가락하면서 서암을 찾아 헤맸다.
그러던 어느 날 지친 발도 풀 겸 나무 그늘에 앉아 있는 정휴 앞에 젊은 중이 한 명 지나갔다.
그 중과 이 얘기 저 얘기 나누다가 정휴는 서암에 대한 소식을 듣게 되었다.
"그렇습니까?
그 스님이 물한리라는 곳에 계시다구요?"
신심이 다시 솟구친 정휴는 단숨에 유점사 계곡을 타고 넘어가 물한리라는 곳으로 찾아갔다.
산 넘고 물 건너는 것이 전혀 힘든 줄 모르고 첩첩산중을 들어간 것이었다.
서암 대선사는 물한리라는 산골로 숨어들어 오두막을 짓고 신분을 감추고 있었다.
그리고 시봉 들던 여신도를 부인으로 삼고 나무 장사를 하면서
탄압이 완화되기만을 기다렸다.
가사 장삼조차 걸치지 않고 그저 나무꾼의 형상을 하고 있을 뿐이었다.
"소승 문안드립니다."
"어디서 온 수좌시오?
이런 산중으로 나무꾼을 찾아오는 스님도 다 있군."
"계룡산 용화사에서 왔습니다."
"그러면 명초 화상이 보낸 것이로구먼.
원 쓸데없는 업을 짓고 있구먼.
이름이나 한번 들어봅시다."
"정휴입니다."
"법명인가?"
"아니옵니다.
아직 행자이옵니다."
"그런데 왜 나무꾼을 찾아왔는가?
명초가 가르침을 주지 않던가?"
"나무하고 밥만 지었습니다.
정말로 세상의 이치를 꿰뚫는 도를 배우러 왔습니다.
선지(禪旨)를 가르쳐 주신다면 몇 해라도 정성껏 시봉하며 배우겠습니다."
"방이 없네."
"제가 만들지요."
"무얼 먹고?"
"이래 뵈도 힘은 장사입니다."
마침내 서암 문하로 입문한 정휴는 우선 초가 한 칸을 엮었다.
나무를 켜서 기둥을 세우고 풀을 베어다 하늘을 가리고 흙을 물에 개어 벽을 발랐다.
그리고 소나무 가지를 잘라 지게를 맞춰 당장 땔나무를 하기 시작했다.
지방 토호들이 논밭을 다 차지하고 산마저 마구잡이로 빼앗아가
백성들은 땔감조차 마음껏 구하지 못했다.
덕분에 나뭇값이 뛰어 나무장사가 썩 잘 되었다.
그래서 정휴는 밥값뿐 아니라 스승을 모실 생각으로
쉬지 않고 땔나무를 해서 김천 장에 내다 팔았다.
사는 게 훨씬 좋아진 서암이었지만 정휴에게는 더욱 철저히 일만 시켰다.
마치 그것이 서암이 할 수 있는 일의 전부인 것처럼 늘 일만 시켰다.
정휴도 처음에는 스승의 깊은 속을 몰랐기에 그저 황송한 마음으로 나날을 보냈다.
정휴가 이따금 도를 물을라치면 서암은 요리조리 발뺌을 했다.
"스님, 뭐를 도라고 이르는 것입니까?"
"오늘은 기운이 다 해서 말할 수가 없으니 다음에 이야기하자."
간혹 던진다는 말이 정휴를 웃게 하는 정도였고
눈동자를 백 배쯤 커지게 할 만한 대화는 일체 나누지를 않았다.
다만
"제 공부는 제가 하는 것이지 남이 해주는 게 아니다"
라고만 덧붙일 뿐이었다.
그러나 정휴의 생각은 그렇지 않았다.
정휴가 알고
싶은 것은 조계(曹溪)의 법맥을 이었다는 서암 화상의 비상한 법문이었다.
뭔가 화끈한 감격을 줄 만한 강한 충격을 요구하고 있었던 것이다.
정휴는 나름대로 좌선을 열심히 하면서 서암의 가르침만을 고대했다.
그러나 그럴 때마다 들려오는 것은 나무하러 가자는 말뿐이었다.
더구나 이따금 서암이 부인과 나누는 평범한 대화 내용은 정휴를 더욱 초조하게 만들었다.
"그놈의 도는 어떻게 생겼길래 이다지도 소중히 감춰둔단 말인가?"
정휴는 마침내 불만을 품게 되었다.
속았다는 생각도 해보고 서암이 가짜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정휴는 금강산에서도 깊고 깊은 골 물한리에 들어간 지 반 년이 되던 어느 날,
서암이 홀로 산에 오른 사이 하산을 결심하고 말았다.
빈 바랑을 들쳐메고 산길을 내려가는 정휴의 가슴은 미어지는 듯했다.
정휴가 낙심한 발걸음으로 길을 가고 있는데 뒤에서 벼락같은 소리가 들려왔다.
서암이었다.
"행자야, 행자야.
나 좀 보고 가라."
메아리가 우르르 계곡을 울리면서 화가 잔뜩 나 있는 정휴를 흔들었다.
정휴는 산마루를 올려다보았다.
그때 또 한 번의 메아리가 정휴의 귀를 마구 흔들어댔다.
"도가 여기 있다. 옛다, 도 받아라!"
서암이 무엇을 집어던지는 시늉을 해보였다.
정휴는 서암을 이별하고 떠나오는 동안 가슴이 무너져내리는 절망으로 다리의 힘이 쭉 빠졌다.
옛다, 도 받아라?
도가 손아귀에 있다는 말인가?
도가 던져서 받는 것이란 말인가?
정휴는 계룡산 명초스님에게서도,
나무꾼 서암에게서도 심한 배신감이 느껴졌다.
그 배신감이 정휴를 더욱 절망하게 했다.
그들에게서 도를 배워보겠다고 일만 하며 보낸 세월이 아깝기 그지 없었다.
산허리를 돌아 계곡을 타고 내려가다가 정휴는
바위에 걸터앉아 울분으로 떨리는 마음을 가라앉혔다.
그때,
정휴의 눈에 한 진인(眞人)의 모습이 들어왔다.
커다란 반석 위에 가부좌를 하고 좌선중인 그 진인은 머리를 길다랗게 늘어뜨리고
이따금 깍찌 낀 손을 이마께까지 들어올렸다 내리곤 하였다.
하기사 금강산중에만도 그렇게 수도중인 사람이 수십 명도 더 되었다.
그중에는 승(僧)도 있고 속(俗)도 있기는 했으나,
대개는 도가 수련을 하는 사람이었다.
옷 차림새로 보아 반석 위에 앉아 있는 사람은 도가 진인임에 틀림없었다.
정휴는 그를 지나쳐 가면서 금강산을 떠나 송도에 있는 지함이나 만나보고
다시 공주 고청봉으로 돌아가리라 마음먹었다.
그때였다.
"여보시요, 정휴 스님."
반석 위에 있던 바로 그 진인이었다.
고개를 돌려 정휴를 바라보는 그는 얼굴 가득히 웃음까지 띄고 있었다.
"아니, 북창 선생..."
"허허허, 오랜만이오."
정휴는 반석 위로 뛰어올라가 북창 정염의 손을 덥썩 잡았다.
그 사이에 나이가 더 들었을 텐데도 혈색은 오히려 더 붉었다.
"그렇지 않아도 금강산에 있으리라는 것은 이미 알았지만 두루 알아보질 못했었소.
그래,
그동안 득도한 게 있을 것이니 내게도 나누어주시지요."
"아닙니다.
저는 스승복이 없어서 늘 찾아만 다니는 신세입니다.
다시 고청봉으로 돌아갈까 합니다.
여태 나무꾼 노릇만 하다 갑니다."
"나무꾼?"
"그렇습니다.
제 얘기 좀 들어보십시오."
정휴는 북창에게 그동안 있었던 산중 생활을 낱낱이 말했다.
이야기를 다 듣고 난 북창은 무릎을 탁 치면서 정휴를 나무랐다.
"바로 그것이오.
어째서 굴러온 도를 발로 차버리셨소.
아깝네, 아까워요.
그걸 가지고 왔어야지.
이미 명초 그 스님이 가르쳤고,
서암 그 스님이 다시 또 가르쳤건만 스스로 걷어찼군요."
"아니, 말로 주는 도를 어디다 담아 옵니까,
지고 오란 말씀이십니까?"
"아니오.
먹고 자고 일하고,
그것이 다 도 아니겠소.
스승의 뜻을 아직도 모르고 있군요.
이보시오, 정휴 스님."
"예."
"잃는 것이 얻는 것이오.
허탈해 할 것 없소.
스님은 그저 자꾸 버리기만 하면 도에 이를 수 있소.
스님은 이미 스님에게 찾아왔던 부처를 문전 박대했으니
다음에 손님으로 올 때는 꼭 알아보고 안으로 모셔들이시오.
무슨 얘기인지 알아들으시겠소?
자꾸 버리시오.
무슨 말인지 알 것인즉,
용맹 정진하시오."
"......"
"이제, 어디로 가시겠소?"
"그저 뛰쳐나온 몸이 갈 데가 어디 따로 있습니까?
저를 거두어 주십시오."
"나는 내 한몸 거두기도 바쁘다오.
지금 이지함 그 친구가 송도 화담산방에 있으니 그리 가보시오.
길이 열릴 것이오."
정휴는 북창 정염을 이별하고 발길을 돌려 송도로 향했다.
금강산을 벗어나니 바람도 한결 부드러워졌다.
벌써 춘광(春光)이 완연해지기 시작했다.
이따금 아지랑이가 꿈틀거리는 곳도 있었다.
봄이 왔다.
정휴가 송도에 이른 것은 화담 일행이 송도를 떠난 지 이레만이었다.
그래서 정휴가 겨우 화담 산방을 찾았을 때는 산방에 아무도 없었다.
정휴는 다시 산아래 동네로 내려가 화담의 소식을 물었다.
"화담 선생은 학인들 하고 천하를 둘러보신다며
길 떠난 지가 벌써 이레가 다 되었습니다.
지금은 아마도 한양에 계실 겁니다."
산방을 아주 잘 안다는 송도 농민이었다.
"혹 어떤 학인들하고 다니는지 아시면...?"
"원, 스님두.
그걸 어찌 안다오?
그저 화담 선생이
몸이 불편해지자 산방을 폐쇄하고 유람이나 한번 돌아오겠다고 떠난 것을."
정휴는 앞이 막막해졌다.
지함,
도대체 지함이 무엇이길래 왜 자신은 늘 그를 찾아헤매는지 정휴 자신도 알 수 없었다.
정휴는 지친 걸음으로 계곡을 빠져나갔다.
정휴가 한참 길을 가고 있는데 뒤에서 정휴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여보시오, 젊은 스님."
정휴가 뒤를 돌아다보니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 서 있었다.
"혹 정휴 스님 아니시오?
이지함을 아는...?"
"예, 그러합니다만 노인장께서는 뉘신지요?"
"허허허, 바로 보았군.
내가 화담이오."
"예? 학인들 하고 한양으로 내려가셨다던데...?"
"맞소.
그런데 몸이 너무 불편해서 나는 돌아왔소이다.
아마도 지함 그 학인을 찾아온 듯한데 산방에 올라가 차나 나누십시다."
올라가는 길에는 본 적이 없는데,
화담은 정휴의 등뒤에서 홀연히 나타난 것이었다.
정휴는,
화담이 어느 집엔가 들렀다가 화담산방을 찾는 중이 있다는 걸 알고
화담이 자기를 불렀으리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름은 어찌 알고,
이지함을 안다는 건 또 어떻게 알았을까?
설혹 지함에게 정휴의 이름을 들었다치더라도
한번도 본 적이 없는 자신을 어떻게 알아본 것일까?
그러나 정휴는 그런 의문을 지워버리고 화담을 따라 산방으로 올라갔다.
화담은 손수 물을 받아 찻물을 끓였다.
찻물이 파랗게 우러나자 화담은 찻잔을 내어놓고 찻물을 따랐다.
"마시게."
"예."
"한양까지는 잘 갔는데,
몸이 몹시 불편해져서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었네.
일생에 단 한번도 제 나라 땅을 다 밟아보지도 못하다니,
참으로 부끄럽네.
이제 내가 있을 날도 며칠밖에 남지 않았다네."
"왜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내 별을 보게나.
태사성(太史星)이 빛을 잃었다네.
내가 곧 기운을 잃고 쓰러질 것이라네."
"......"
"사람으로 났으니 사람의 몸이 낡으면 버려야 할 것은 버려야 하지 않겠는가.
다 버리고 버려도 제 마음만 꽉 붙들고 있으면 된다네.
자네, 예까지 왔으니내 심부름 좀 한 가지 해주시게나."
"무슨 심부름이시온지...?"
"내가 <홍연진결(洪然眞訣)>이라는 책을 쓰고 있는데,
아직 마무리가 덜 되었다네.
그걸 마저 마치거든 자네가 이지함에게 전해주게.
그걸 쓸 사람은 바로 그 사람이니."
"예. 선생님 말씀대로 따르겠습니다."
화담은 마음이 편해졌는지 조용히 차를 마셨다.
정휴는 화담산방에 바랑을 풀고 화담의 시중을 도맡았다.
아직 봄이라고는 하나 노인네가 견디기에는 조석 날씨가 싸늘하여
정휴가 산방에 불을 지폈다.
화담이 <홍연진결>을 다 쓴 것은 꼭 하룻만이었다.
이미 태사성을 본 뒤로 틈틈이 쓰던 것을 여행을 떠나며
덮어두었던 것이었으므로 마무리가 쉬웠던 것이다.
정휴는 그 책을 받아 지함에게 전해주는 대로
공주 고청봉 명초에게 돌아가리라 마음 먹었다.
화담은 정휴에게 책을 건네주고 정휴의 손을 꼭 잡았다.
"이 책을 이지함에게 전하게.
아마도 내년 봄 3월 여드레 유시에 산방으로 다시 돌아올 것이니
그때 꼭 전하도록 하게.
그리고, 여보게.
자네가 내 옷 좀 땅에 묻어주고 떠나게.
아무리 못쓰게 된 옷이라도 함부로 두어 썩게 둘 수야 없지 않는가?"
"무슨 말씀이시온지?"
"허허, 이 사람.
모르는 척 말고 내 몸 좀 땅에 묻어달란 말일세.
내가 자리는 봐두었으니 자네는 그저 땅이나 파고 흙이나 덮어주면 그만일세."
화담은 곧바로 일어나 화담산방 뒤뜰로 걸어갔다.
"여길세. 여기에 내 시신을 묻어주게."
화담은 그뿐, 다시 산방으로 들어갔다.
"자, 나는 임종 삼매(臨終三昧)에 들겠네."
화담은 가부좌를 틀고 조용히 앉아 숨을 골랐다.
정휴는 화담이 한참동안 아무 기척을 보이지 않자
계곡을 내려가 화담의 집을 찾았다.
집에는 부인인 듯한 노인과 장성한 아들 부부가 살고 있었다.
"저어, 산방에서 왔습니다.
화담 선생께서 곧 입멸에 드신다 합니다."
"뭐라구요?"
화담의 아들이 깜짝 놀라며 달려나왔다.
"아니, 한양 가신 아버님이 언제 돌아오셨단 말이오?
집에는 소식도 없이,
뭔가 잘못 아신 게요."
그렇게 말하면서도 화담의 아들은 부리나케 산방쪽으로 달려올라갔다.
다른 식구들도 우르르 그의 뒤를 따라 산으로 올라가고,
그 소식을 들은 이웃들도 뒤를 따랐다.
정휴가 산방에 올라가보니 화담은 이미 숨을 거둔 뒤였다.
그런데도 화담은 손끝 하나 흐트러지지 않은 자세를 꼿꼿이 유지하고 있었다.
아들이 정휴와 함께 화담의 시신을 뉘고 가부좌 튼 다리를 풀어 길게 펴놓았다.
병오년(1546년),
화담계곡에 봄빛이 짙어가는 청명날이었다.
정휴는 화담 선생이 한 이야기를 가족에게 전하고 묘자리를 마련했다.
장사를 다 지낸 정휴는 공주 고청봉으로 발길을 돌렸다.
어쩌면 스승 명초 스님도 입적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불현듯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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