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지을 줄을 모르고 부를 줄만 알지요.”
“시를 부를 줄만 안다?
거 참 묘한 말이로군.
그럼 어디 한 수 불러보시오.”
그 양반이 붓을 들고 김삿갓을 쳐다보자
그는 곧 그 양반에게
소나무를 가리키는 글자가 있는지 물어보고는
그 두 자를 나란히 쓰라고 하였다.
松松
“자, 두 자를 썼으니 또 부르게나.”
그러자 이번에는 잣나무를 가리키는 글자가 있으면
그 옆에 또 두 자를 쓰라고 했다.
그 양반은 삿갓이 시키는 대로 썼다.
栢栢
이어 그는 바위를 가리키는 글자가 있으면 두 자를 더 쓰라 하고
그 곁에 돌아간다는 글자를
한 자 덧붙이라고 하였다.
岩岩廻
그리고 줄을 바꾸어서 같은 방법으로 산
山山
물
水水
처소를 가리키는 글자를 각각 두 자씩 쓰게 하고
거기에 기이하다는 글자를 덧붙이라고 하였다.
處處奇
영문도 모르고 여기까지 받아쓴 양반은
그만 붓을 획 집어던지며 버럭 화를 냈다.
“여보시오.
내가 시를 부르라고 했지
언제 이 따위 글자나 부르라고 했소?”
김삿갓은 잔뜩 골이 난 그 양반을 보고 빙긋이 웃으며,
“그러기에 나는 시를 부를 줄만 안다고 하지 않았소.
한 자(字) 시에 능한 양반이
지어놓은 글귀의 뜻도 모르고 화부터 내니
이거 너무하는 것 같소이다.”
“뭐라고!”
“자, 나는 아무래도 글 잘하는 양반님네들과는
상대가 못되는 것 같으니 이만 물러가겠소.”
김삿갓은 이 한마디를 던지고는
훌쩍 일어나 다락을 내려갔다.
그의 도도한 태도에 눈이 휘둥그레졌던 양반들은
삿갓이 떠나자
이내 그가 써놓은 글자들을 읽으며 음미해 나갔다.
松松栢栢岩岩廻
소나무와 소나무,
잣나무와 잣나무,
바위와 바위 사이를 돌아드니
山山水水處處奇
산과 산,
물과 물
가는 곳마다 기이하구나.
“어허, 이것이야말로 걸작이로구나!”
양반들은 일시에 환호성을 질렀다.
그러나 다음 순간
그에 비해 유치한 자신들의 시를 두고
낯이 뜨거워 몸 둘 바를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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