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효 대사와 요석 공주의 파격적인 사랑
“誰許沒柯斧(수허몰가부)”와 “我斫支天柱(아작지천주)”
수허몰가부… 아작지천주…
뜻을 알 수 없는 노래는 퍼져
거지들은
이 노래를 주고받으며 구걸을 하고
아이들은
자치기나 말 타기 놀이를 하며 이 돌림노래를 불렀다.
노래가 익숙해지자
이제 노래의 뜻이
백성들 속에서 여러 형태로 해석되며 옮겨지기 시작했다.
“누가 자루 빠진 도끼를 빌려 주겠는가.
내가 하늘을 괴는 기둥을 깎겠다.”
이것은 도대체 무슨 뜻인가.
‘자루 빠진 도끼’가 무엇을 말하는지
‘하늘 괴는 기둥’이 무엇을 말하는지
서라벌은 온통 추측으로 분분했다.
“원효스님이 드디어 춘정이 동한 거 아냐?”
“망측한!
춘정이 동해서 단의 묘에 올라 그런 글자를 보이셨단 말야?”
“자네들 혹시 과부가 된 요석공주 소문 아는가?”
“아,
남녀 일이란 게 하늘 알고 땅만 알지.
선덕임금님 시절부터
두 분이 그렇고 그런 관계였다잖어.
자루 빠진 도끼에 기둥!
아,
딱 그거구만 아니면 대체 뭐겠어?”
첫날은 그런 해석이 승세를 잡았다.
그러나 둘째 날은 상황이 달라졌다.
백성들은 뜻밖에 민첩했고
누구도 생각지 못한
여러 가지 해석들이 마구 쏟아져 나오더니
빠른 속도로 합의된 해석 하나를 이끌어냈다.
“이거네. 지천주!”
“아 다르고
어 다르지 않은가.
떠받칠 하늘이 아니라
떠받친 하늘!
자,
이렇게 되면 어찌 되는 것인가?”
“누가 자루 없는 도끼를 주겠는가.
내가 하늘을 받친 기둥을 찍어 버리겠노라!”
“하늘을 떠받친 기둥을……”
“찍어내 버리겠다고……?”
“하늘을 떠받치고 있는 질서를 끊어내 버리고
새로운 질서를 만들겠다는 것 아닌가!”
출처 : 불교신문(http://www.ibulgyo.com)
백성들을 위한 포교 활동을 하던 원효는
언제부턴가 이상한 노래를 부르고 다니기 시작했어.
‘누가 자루 빠진 도끼를 나에게 빌려주겠는가?
내가 그 도끼로 하늘을 떠받칠 기둥을 깎으리’라는 내용이었지.
신라의 제29대 왕 태종 무열왕은 이를 듣고
원효가 아내를 얻어
훌륭한 아들을 낳고 싶어 한다는 걸 간파했어.
그는
자신의 딸인 요석공주와 원효를 맺어 주기로 마음먹었지.
무열왕은
신하들을 시켜 원효를 궁으로 데려오게 했는데,
우연이었는지 계획적이었는지 몰라도
원효가 다리를 건너던 중
발을 헛디뎌 물에 빠지는 사건이 벌어지게 돼.
그리고 그는 젖은 옷을 말린다는 핑계로 요석궁에 머물게 됐지.
불교의 계율마저 깨트리고 요석 공주와 결혼한 원효는
사흘간의 짧은 결혼 생활을 뒤로한 채 떠났어.
홀로 남겨진 요석 공주는 아들을 낳았는데
이 아이가 바로 설총이야.
어릴 적부터 영특했던 설총은
훗날 신라의 교육기관인 국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유학의 발전에 공헌하고,
한글이 창제되기 전까지 우리 글자의 역할을 한
"이두(吏讀) "를 만들어 발전시킨 것으로 유명해.
원효가 소요산에 머물며 수행에 전념하고 있을 때,
요석 공주는 아들 설총을 데리고 찾아왔어.
그런데 요석 공주는 남편을 직접 만나는 대신,
산 아래 조그만 집을 짓고
아침저녁으로 설총과 함께 원효를 향해 절을 올렸대.
사랑과 그리움,
존경과 경외의 마음을 가득 담아서 말이야.
원효가 세상을 떠나자 절에 들어간 요석 공주는
불교에 귀의해 원효의 발자취를 따랐어.
원효에 대한 요석 공주의 사랑이 얼마나 큰지 알 수 있겠지?
한밤중에 갈증이 나 마셨던 시원하고 달콤한 물이
아침에 보니 해골에 담긴 썩은 물이었던 거야.
‘모든 것은 오로지 마음이 만들어 내는 것
[一切唯心造]’임을 깨달은 원효는
의상과 헤어지고
신라로 돌아와 ‘모든 것은 마음에 달렸으니,
마음의 본모습을 깨닫는 순간 부처가 된다’는
‘일심(一心)’ 사상을 백성들에게 전했어.
자유로운 영혼으로 사랑을 이룬 “원효 대사와 요석 공주” : 네이버 포스트 (naver.com)
知心生故種法生(지심생고종법생)
마음이 생기면
만물의 갖가지 현상이 일어나고,
心滅故 不二(심멸고촉루불이)
마음이 멸하면
무덤, 해골물이 둘이 아님을 깨달았구나.
– 원효대사 –
옛 이야기(고전) - 원효대사 (tistory.com)
https://www.804n.kr/blogPost/untitled-1
성공한 怪擔(괴담) - 원효(元曉)대사 * 沒柯斧(몰가부:자루빠진 도끼) - 薯童謠(서동요) * 善花공주 (tistory.com)
https://post.naver.com/viewer/postView.nhn?volumeNo=28249853&memberNo=38753951
경북 경산시 일대 불굴사-제석사-도동재 .
원효가 창건했다고 전하는 사찰-암자만
전국에 100여곳이 넘기 때문에
원효의 자취를 만나기는 어렵지 않다.
그러나
'원효의 탄생지'임을 자처하는 곳이 있다.
대구 동쪽의 경북 경산시다.
이곳엔 원효의 탄생지에 세웠다는 제석사,
원효가 수행했다는 불굴사
원효의 아들 설총을 모신 도동재 등이 있다.
[문화가 있는 여행] 암굴속 불상엔 원효의 미소가… - 조선일보 (chosun.com)
욕망에 집착하면 그 사랑은 죄가 되지만,
고요한 마음으로 성찰하는 욕망은 진리로 가는 해탈문이 된다.
‘마음이 고요해진 자리’에서 피어나는 사랑.
원효와 요석의 사랑은
‘사랑으로 진정 행복해질 수 있을까’
의심하는 이들에게는
밤바다 위에 뜬 등대와 같은 커다란 이상향이다.
몸은 멀리 있어도 항상 가까이에 함께 머무는,
그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훈훈해지는
그런 이가 진정한 사랑이라면
원효야말로 최고의 연인인 셈이다.
사랑 때문에 극락에도 갈 수 있고,
지옥에도 떨어질 수 있다.
중생들의 사랑이야 그 극락과 지옥을
하루에도 수천 번 씩 오르내리는 과정이지만,
위대한 성사 원효의 사랑은
자신으로 인해 가슴 아파하는 한 여인과 더불어
피안의 세계로 나아가는 보살도였으며,
성과 속의 경계를 허물어버린 대자유의 길이었다.
그런 원효의 금란가사를 벗기고
민중으로 인도한 대보살이 바로 요석이었던 것이다.
⑤ 원효대사와 연인 요석공주 < 한국왕실의 여인불자들 < 이전 연재모음 < 지난연재 < 기사본문 - 법보신문 (beopbo.com)
https://blog.naver.com/PostView.nhn?blogId=smjeany&logNo=221982183516
나무아비타불 10번 외우면
극락갈 수 있다는 믿음…
단순한 10번 염불 아닌
근기 따른 수행의 한 방편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이 말은
불교도가 아니라고 해도,
누구에게나 친숙한 단어이다.
원효스님은
누구나 ‘나무아미타불’을 10번만 외우면
극락정토에 태어날 수 있다는 관념을 한반도에 정착시킨 분이다.
원효스님의 교화활동으로 인해서
글자를 모르던 당시의 일반 민초들도 염불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원효스님은 표주박 하나를 달랑 들고
‘쇼, 쇼, 쇼’를 연상시키는 무대에 직접 출연하였고,
여러 가지 춤에다
민중을 이끌어들일 수 있는 쉬운 가르침을 섞어서 전했다.
원효스님의 속뜻은
염불수행이나 다른 수행이나 큰 차이점이 없고
어려운 관문을 넘어서야 한다는 것이지만,
다른 한편으론
근기가 못 미치는 사람을 위해서
염불수행의 공덕을 열어두기도 하였다.
원효스님의 방편의 큰 의미를 제대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
http://www.ibulgyo.com/news/articleView.html?idxno=24880
원효대사는
중국에서 건너온 천 명의 제자를 수용하고
불법을 전하기 위하여 천성산에 89암자를 지었다고 한다.
현재 천성산에는
원효대사와 관련된 대표적인 사찰인 내원사를 필두로
홍룡사, 원효암, 미타암 등의 천년 고찰이 있다.
신라시대 원효대사가 활동하던 시절 불교는
왕실에서 공인한 종교로 전성기를 맞았다.
불교가 국교로서 인정받는 상황은 고려시대까지 지속되었다.
천성산에 남아있는 원효대사 기도처 < 자치·행정 < 뉴스 < 기사본문 - 양산신문 (yangsanilbo.com)
https://blog.daum.net/tea-zen/8728480?category=1366523
661년
원효와 의상이 중국 당나라로 스님공부를 하러 유학길에 올랐다.
충남 직산지방에서 날이 어두워 하룻밤 동굴에서 자게 된 원효는
잠자다 갈증을 느껴 옆에 있던 물바가지의 물을 마셨다.
아침에 보니 그 물은 해골에 담긴 물이었다.
우웩! 우웩! 다 토해냈다.
“해골에 담긴 물은 어젯밤이나
오늘이나 똑같은데,
어이하여 감로수 물이었던 것이
오늘은 구역질을 나게 하는가?
그렇다!
어제와 오늘 사이에 달라진 것은 내 마음 뿐이다.
진리는 결코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있다.”
원효는 그 길로 유학을 가지 않고 돌아와
국내파로 불교에 정진했다.
의상은
예정대로 유학길을 떠나 공부하고 해외파로 돌아왔다.
후에 원효와 의상은
통일신라 불교의 두 줄기를 세우게 된다.
원효는
불교의 대중화를 이룩한 스님이다.
그동안 불교가
귀족 사이에서만 불법이 전해졌는데
원효는
누구든지 나무아미타불만 불러도 부처가 되고
부처의 가피를 입는다고 말했다.
무지렁이 백성에게는 너무나 쉬운 방법이었다.
원효는
모든 것이 한마음에서 나온다는 일심사상을 설파하며
노래하고 춤추며 교화에 힘쓰는 한편
‘십문화쟁론’, ‘대승기신론소’, ‘금강삼매경론’ 등 많은 책을 썼다.
그는 태종 무열왕 둘째딸 요석공주와도 결혼하여
이두를 만든 설총을 낳기도 하는 자유 영혼의 소유자였다.
원효(元曉)대사 - 일체유심조(一切維心造) - 마음먹기에 달렸다! - Every thing depends on only our mind (tistory.com)
그러나
진골출신 의상은
화엄종을 창설하여 화엄사상을 펼쳤다.
화엄이란
‘하나가 곧 일체이며
한 작은 티끌 속에 시방(十方)이 있는 것이요
한 찰라가 곧 영원이다(화엄일승법계도)’라는
화엄종을 이룩하고 관음신앙을 펼쳤다.
그래서 현세의 고난에서 구제 받으려면
현세의 보살이신 관세음보살에게 빌어야 한다고 설파했다.
그래서
오늘날 불교신자들은 원효의 ‘나무아미타불’과
의상의 ‘관세음보살’을 대뇌이며
부처님의 은덕과 극락영생을 갈구하기에 이르렀다.
원효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바로 이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이라는
염불을 알린 사람으로 알려져 있답니다.
왕족 출신인 의상 역시
친구 원효처럼 백성들에게 가까이 다가가려 노력했습니다.
신분에 상관없이 3천 명의 제자를 기르며
신라에 조화를 강조하는 화엄종이 뿌리를 내릴 수 있게 했지요.
의상은
부처를 믿는 마음이 중요하지
신분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거든요.
https://m.post.naver.com/viewer/postView.naver?volumeNo=9723475&memberNo=36463485
https://www.beopbo.com/news/articleView.html?idxno=98621
https://www.youtube.com/watch?v=Wyc_3sYUGxA
‘여시오어(汝屎吾魚).’
상(想)에 사로잡힌 사람에게는 똥은 똥일 뿐이지만,
이를 초월한 사람에게는
환귀본처(還歸本處)라는 거스를 수 없는 섭리다.
포항 운제산 오어저수지 물가에 있는 오어사(吾魚寺)는
해동성자 원효 스님이 물먹은 곳 중 하나로,
내용은 ‘이혜동진(二惠同塵)’조에 나온다.
사실 이 대목은
신라시대 10성
(十聖 : 아도ㆍ염촉ㆍ혜숙ㆍ안함ㆍ의상ㆍ표훈ㆍ사파ㆍ원효ㆍ혜공ㆍ자장) 중
혜숙(惠宿)ㆍ혜공(惠空) 스님에 대한 소개와 이적(異蹟)을 기록하고 있다.
주인공은 혜숙과 혜공이며,
원효는 혜공을 빛내기 위한 조연이다.
혜공은 천진공의 집에서 품을 파는 노파의 아들로,
아명은 우조(憂助)다.
신령스러운 이적으로 면천(免賤)해 출가했는데
날마다 만취해 삼태기를 지고 거리에서 춤을 추었으므로
‘부궤(負櫃)화상’이라 불렸다.…
늘그막에 항사사(恒沙寺)에 거처했는데,
당시 원효가 인근에 주석하면서
여러 경전의 소(疎)를 찬술하면서
의심나는 것은 혜공을 찾아가 물었다.
어느 날,
원효와 혜공이 시냇가에서 물고기를 잡아먹고
돌 위에 똥을 보았다.
혜공이 그를 가리켜
“그대는 똥을 누고,
나는 물고기를 누었다
여시오어[汝屎吾魚]”고 외쳤다.
때문에 절 이름을 오어사(悟魚寺)로 고쳐 불렀다.
마지막 말을 두고
‘그대가 눈 똥은 내가 잡은 물고기’라는 등
여러 해석과 더불어 발언 주체도
원효라는 주장이 예전부터 있었던 모양이다.
⑨ 포항 오어사(吾魚寺) - 금강신문 (ggbn.co.kr)
신라 원효대사가 요석공주와 사이에 설총을 낳고
실계(失戒)한 뒤
대중속에서 노래와 춤으로 교화를 이루던 때,
원효와 함께 신라 불교 10성에 드는 혜공대사 역시
망태기 진채로 거리에 나가 춤추고 노래하며 불교를 알리던 중이었다.
이 두 스님이 하루는
술병차고 냇가로 나가 물고기를 잡아 안주삼아 한 잔 하고 있었다.
그 때 혜공스님이 느닷없이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명색이 중인데 물고기를 잡아 먹고 있으니 누가 볼까 두렵소.”
그러자 원효스님의 대답.
“다 먹고 난 다음에 그런 소리를 하면 뭐합니까.
정 그렇다면 산 고기를 뱉어 내면 되지 않겠소.”
“스님께서 그런 신통력이 있소.”
“해봐야 알지.”
“원효스님이 한다면 나도 자신있소이다.”
“그러면 말만 할 것이 아니라 여기서 한번 시험해 봅시다.”
물고기 안주로 술한잔
이렇게 해서 두 스님의 신통력 대결이 물가에서 벌어졌는데
한 스님은 냇물 상류쪽에서,
또 한 스님은 하류쪽에서 고이춤을 풀고
‘큰 것’을 보았다던가.
그러자 고기들이 생환,
물안에서 떼지어 몰려 다니는 것이다.
한데 섞인 두 고기떼를 가리키며
두 스님은 서로 내 고기라고 우겼다는 이야기인데,
그 물가에 절이 들어서니
‘나 오’(吾)자에 ‘고기 어’(魚)자,
오어사(悟魚寺)가 됐다는 일화가 내려오고 있다.
[여행/한국의 비경]원효대사 전설 깃든 포항 운제산 오어사 (donga.com)
경기도내의 원효스님의 흔적이 남아있는 사찰
삼막사, 신륵사, 원효암, 상운사, 수도사, 흥국사 등을 탐방하여,
원효스님의 숭고한 철학과 수행의 향기를 느껴 보는 시간을 가져본다.
원효와 요석공주 전설이 서려 있는 소요산 - 헤럴드저널 (heraldjournal.co.kr)
https://www.youtube.com/watch?v=e08o9dscrZI
https://blog.daum.net/511-33/12370260
https://jbk1277.tistory.com/1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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