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존(석가모니)당시 '찬타카'라는 악성(惡性) 비구(比丘)가 있었다.
그는 부처님의 마부였는데 사람들이 모인 곳에 가면 늘
"내가 새벽에 부처님을 말에 태워 성을 넘지 않았다면
부처님이 출가를 못했을 것이다.
그러니 내 덕분에 싯다르타 태자가 부처가 되신 거야."하며
위세를 떨면서 부처님 제자들을 깔보는 것이었다.
그런데 부처님이 계실 때는 얌전히 있다가 출타하고 나면
그 위세가 하늘을 찌를 뜻하여
아난이
부처님께서 입적하시기 직전에 찬타카의 이런 문제를 말씀드리고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하고 물었다.
부처님께서는 "묵빈대처(默賓對處)하라." 고 하셨다.
잘못한 사람에게 바로 잡아주려고
싸우거나,
벌주거나,
고치거나,
꺽으려 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저 대응하지 않고 외면하고 침묵으로 대처하면
스스로 깨달아 고치게 된다는 뜻이다.
물론 고의로 누군가를 괴롭히기 위해
외면하며 왕따 시키는 짓은 악업을 짓는 나쁜 행동이다.
하지만 잘못을 바로 잡기위해 외면하는 것은
부처님께서 가르치신 좋은 교육 방법이다.
어린 아이가 밥을 안 먹는다고 투정을 부리면
그대로 하루쯤 말없이 외면하면 된다.
아이가 배고프면 스스로 밥을 찾아 먹게 되니까 걱정할 것 없다.
어린아이뿐만 아니다.
누군가 문제가 있고 잘못이 있을 때
그 자리에서 따지고 싸워서 바로 잡아주려 하지 말고
그대로 말없이 외면하면 스스로 깨닫게 된다.
그런데 어리석어 너무 오래 걸리거나 도무지 깨닫지 못할 것 같으면
그때는 지혜로운 사람이 나서서 조용히 바로 잡아 줄 필요가 있다.
묵빈대처(默賓對處)는
조금 느리지만 스스로 깨달음을 얻게 하는 아름다운 정이 아닐 수 없다.
https://m.blog.naver.com/teseus2000/220694509152
1979년 노벨 평화상을 받은 테레사 수녀가 호주를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한 젊은 수사가 수행을 자원했다.
기대감에 부풀어 늘 그녀 가까이에 있었지만,
말 한 마디 건넬 기회가 없었던 그는 참다못해 테레사 수녀에게
이렇게 부탁했던 것이다.
"뉴기니아로 가는 여비를 제가 직접 부담한다면
비행기 옆 자리에 앉아 말씀을 나눌 수 있겠습니까?
그렇게 해서라도 수녀님의 고언을 듣고 싶습니다!
제게 기회를 주시지 않으시렵니까?"
테레사 수녀는 그를 가만히 바라보며 이렇게 물었다.
"물론이죠.
그런데 항공료를 낼만한 돈이 있나요?"
그는 자신감 넘치는 음성으로 크게 답했다.
"예!"
"그러면 그 돈을 가난한 이들에게 주세요.
내가 말해줄 수 있는 어떤 것보다도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을 것입니다."
젊은 수사는 테레사 수녀의 단 한 마디에 큰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다.
테레사 수녀는 수사가 스스로의 체험을 통해 깨달음을 얻기를 바랐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지식을 그에게 알려주기 보다는
그 지식을 산 경험을 통해 스스로 깨우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만일 누군가 도움을 청한다면
그에게 물고기를 잡아 주기보다는
물고기를 잡는 법을 가르쳐 주는 것이 현명하지 않을까?
정자파출부 > 공지사항 > 스스로 깨우치다 (jhelper.co.kr)
묵빈대처(默擯對處)의 힘은 어디서 생겨나는 것일까요?
그것은 바로 무아(無我)에 있습니다.
살다보면 억울한 일이 많이 생깁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십시오.
왜 억울합니까?
모두 ‘나’라는 ‘아我’가 있어 억울함이 생겨납니다.
그렇다면 ‘나’를 없애보십시오.
‘무아無我’가 되어 보십시오.
‘나’가 없어지면 억울함도 사라지고 맙니다.
그렇게 되면
침묵으로 대할 수 있는 지혜와 용기도 생깁니다.
말이 통하지 않는 이와 시시비비를 논하는 것처럼 어리석은 일도 없습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선
'그와 더불어 말하지 않고 가르치거나 훈계하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이를 '묵빈대처(默賓對處)'라고 합니다.
묵빈대처는 죄를 지은 사람에게 일절 대응하지 않음으로써
스스로 뉘우치게 하는 깊은 뜻이 숨어 있습니다.
이 이야기는 탈무드에 나오는
'물고기를 주어라.
한 끼를 먹을 것이다.
물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 주어라.
평생을 먹을 것이다'는 말을 연상시킨다.
자식에게 살아가는 방법을 가르쳐 준다는 뜻을 담고 있지만,
무슨 일이든 장기적인 안목을 갖고
근본적인 처방에 힘쓰라는 의미를 갖고 있는 말이
바로 '교자채신(敎子採薪)'이다.
https://www.mk.co.kr/news/economy/view/2017/09/633575/
내가 누군가에게 적개심이 있다면
눈을 감고 이렇게 속삭여 보라고 말한다.
“나와 똑같이 저 사람도
삶에서 행복을 찾고 있다.
나와 똑같이 저 사람도
자기 삶에서 고난을 피해 보려 하고 있다.
나와 똑같이 저 사람도
슬픔과 외로움과 절망을 겪어서 알고 있다.
나와 똑같이 저 사람도
자기의 욕구를 충족시키려 하고 있다.”
이렇게 속삭였더니
나의 마음은 안심되며 무심하고 적멸이 온다.
그냥 내버려 두세요.
그러다 말겁니다.
http://haeinji.org/contents/?pgv=v&cno=8575&wno=478
맑은 가난(청빈.淸貧)은
남이 가진 것을 부러워하지 않고 자신에게 주어진 현실에 만족할 줄 아는 것입니다.
맑은 가난은 불필요한 것을 갖지 않고 불필요한 것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갖고자 하는 욕망을 스스로 억제하기 때문에 더 필요한 것이 없습니다.
또 무엇을 갖고자 할 때,
갖지 못한 사람들의 처지를 먼저 생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나만 다 차지하고 살 수 있는 세상이 아닙니다.
서로 얽혀 있고 서로 의지해 있습니다.
내 이웃이 갖지 못하고 있는데 나만 많이 갖는다는 것은 인간의 도리가 아닙니다.
아무리 자기 것이라 하더라도 그 근원을 추적해 보면
다른 누군가가 가져야 할 것을 도중에 가로챈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윤강로의 스포츠세상 - Rocky YOON's Sport World :: 묵빈대처(默賓對處), 소욕지족 소병소뇌(少慾知足 少病少惱) (tistor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