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틀러는 5년 금고형을 받았지만,
9개월 징역을 살다가 석방되었다.
그가 감옥에서 구술한 책이 「나의 투쟁」(Mein Kampf)이다.
뮌헨 비어홀 폭동(Beer Hall Putsch)은 실패했지만,
무명의 히틀러를 전국 무대로 도약시키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출처 : 아틀라스뉴스(http://www.atlasnews.co.kr)
www.yna.co.kr/view/MYH20170109005200038
아돌프 히틀러(Adolf Hitler)가 독일노동자당과 접촉한 것은 우연이었다.
오스트리아 출신인 그는 1차 대전이 터지자 바이에른에서 사병으로 지원해
4년간 서부전선에서 복무하다가 종전후 바이에른 주도인 뮌헨의 한 부대에 배치받았다.
그곳에서 히틀러는 교육선전부에 근무했고
뮌헨의 여러 정당의 정보를 정탐하는 역할을 맡게 된다.
1919년 7월 히틀러는 상관의 지시로 독일노동자당을 정탐하다가
드렉슬러의 민족주의, 반자본주의, 반마르크스주의, 반유대주의 이념에 매료되었다.
www.atlas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495
“나에게 한 문장만 달라. 누구든 범죄자로 만들 수 있다.”
“100%의 거짓말보다는
99%의 거짓말과 1%의 진실의 배합이 더 나은 효과를 보여준다.”
“선동은 문장 한 줄로도 가능하지만
그것을 반박하려면 수십 장의 문서와 증거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것을 반박하려고 할 때면 사람들은 이미 선동 당해 있다.”
monthly.chosun.com/client/news/viw.asp?ctcd=&nNewsNumb=201807100026
이성의 판단과 사회적 합의,
법치의 존중보다 패거리 집단 행동에 매몰된 좀비떼짓.
흑백 논리로 피아를 구분해서 좌우 전쟁을 벌이고,
여기에서 자리나 이득이나 얻어볼까하는 생계형 선동자들이
그때 홍위병들을 자극했고,
지금 대깨문들을 주무른다.
-세상을 피아 구분해 분열시킨다.
-적폐 낙인으로 적개심을 극대화한다.
-잦은 집단시위에 어린이까지 동원한다.
-법치를 무력화해 사상범으로 처단한다.
-과거에 대한 부정으로 이념의 정당성을 찾는다.
홍위병은 대깨문과 틀린점을 찾기가 오히려 힘들어.
문혁은 결국 무투, 무장투쟁까지 이어졌어.
무개념, 무식한 흑백 논리, 이념 전쟁이 나라를 얼마나 망치는지
홍위병들은 10년간 열심히도 보여줬고,
중국에 남긴 그 후유증은 수십년을 이어졌다.
중국 홍위병과 한국 대깨문 - 조국 갤러리 (dcinside.com)
m.blog.naver.com/harsty1113/221025567258
www.youtube.com/watch?v=UPguD5AbA0s&t=6s
2차 대전의 서막(2) - 總統 (Führer) - SS친위대 - 홍위병 - 대깨트 (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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