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권력에도 초연했던 효봉스님이다.
1950년대 후반 경무대에서 열린
이승만 대통령 생일잔치에 초대 받아 참석했을 때의 일화는 유명하다.
대통령이 자리를 권하며 스님에게 질문을 했다.
“스님의 생일은 언제입니까?”
잔치에 참석한 고관대작들의 이목이 자연스럽게 모아졌다.
스님이 말했다.
“생불생(生不生) 사불사(死不死),
살아도 산 것이 아니요,
죽어도 죽은 것이 아닌데,
생일이 어디 있겠소.”
깜짝 놀란 이 대통령이 입으로 ‘생불생 사불사’를 되뇌었다.
그리고 잔치가 끝난 후 떠나는 효봉스님에게
이 대통령이 이렇게 당부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 도인(道人)이 많이 나오게 해주시오.”
http://www.ibulgyo.com/news/articleView.html?idxno=151932
효봉 대종사 일대기[행장과 연보] : 법련사 (bubryunsa.org)
https://www.youtube.com/watch?v=4CMlxBlKx_A
‘절구통 수좌’
‘무(無)라 노장(老長)’
효봉스님을 표현하는 대표적인 용어이다.
한번 화두를 들고 앉으면 좀체 일어설 줄 몰랐던
스님의 용맹정진하는 모습을 비유한 것이 바로 ‘절구통 수좌’이다.
“깨닫기 전에는 죽어도 나오지 않겠다”는 각오로
1년 6개월간의 목숨 건 금강산에서의 용맹정진이 가능했던 것도
스님의 이같은 신심과 원력 때문이다.
1930년
법기암 뒤 토굴에 흙벽을 만들고 정진하던 효봉스님은
오직 깨달음에 이르기 위한 공부를 계속하다,
마침내 경계를 넘어섰다.
1931년 가을, 스님의 오도송이다.
“바다밑 제비집에 사슴이 알을 품고(海底燕巢鹿抱卵)
타는 불속 거미집에 고기가 차 달이네(火中蛛室魚煎茶)
집안 소식을 뉘라서 알랴(此家消息誰能識)
흰 구름은 서쪽으로 달은 동쪽으로(白雲西飛月東走)”
효봉스님이
1년 6개월간의 목숨을 건 용맹정진 끝에 만난 깨달음의 노래이다.
앞서 밝힌대로 스님의 또다른 별명은 ‘무라 노장’이다.
입적하기 전 노환에도 불구하고,
불법 공부에 대한 마음만은 한결같던 스님은
늘 “무(無)라 무(無)라”를 염불처럼 되뇌었다.
이를 주위에서 듣고 스님을 ‘무라 노장’이라 불렀다.
스님은 입적하는 날도
“스님! 화두가 들리십니까?”라는 물음에
“무라 무라 무라”라고 답하고는,
세상과의 인연을 마쳤을 만큼 평생 화두를 놓치 않았다.
이때가
1966년 10월 15일 오전 10시 정각으로
스님의 세상나이는 79세,
법의 나이는 42세였다.
http://www.ibulgyo.com/news/articleView.html?idxno=16114
春有百花秋有月(춘유백화유월)
“봄에는 꽃이 있고, 가을에는 달이 있다
夏有凉風冬有雪(하유량풍동유설)
여름에는 시원한 바람이 있고, 겨울에는 눈이 있다
若無閑事掛心頭 便是人間好時節(약무한사괘심두 변시인간호시절)
망상에 사로잡히지만 않는다면 모두가 좋은 계절이다.
-〈무문관〉-
이는
무문혜개(無門慧開, 1183~1260)의 선시이다.
어느 선사가
‘꽃잎은 져도 꽃은 지지 않는다’고 하였다.
꽃잎은 떨어져도 꽃이라는 존재는 영원히 존재한다.
피고 지는 생멸하는 현상 속에
변치 않는 영원한 실재가 있다.
그 실재란 실상(實相)이요,
무아(無我)이며,
공(空)을 말한다.
우리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은 생겨나
잠시 존재하다가 파괴되어 사라지게 되어 있다(生住異滅).
현실적으로 보이는 이 현상은 파괴되어 사라지지만
그 밑바닥에는 변치 않는 실재가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참된 실재를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보는 것,
분별심이 없이 실상을 관함이 깨달음의 경지이다.
혜개(慧開)의 말대로
망상(생각)에 빠져 있지 않으면,
본질의 세계를 그대로 본다.
이에 소동파(1037~1101)도
“버들은 푸르고 꽃은 붉다”라고 하였고,
도오겐(道元, 1200~1253)은
“눈은 옆으로,
코는 세로로 달려 있다(眼橫鼻直)는 사실을 알았다”고 읊었다.
http://www.hyunbul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304232
https://blog.daum.net/hs271/12885175
https://weekly.khan.co.kr/khnm.html?www&mode=view&art_id=6238&dept=116
https://m.blog.naver.com/PostView.naver?isHttpsRedirect=true&blogId=hakwoon2003&logNo=120191819352
사리신앙의 연원은 석가모니(BC563?~BC483?) 부처님이다.
석가는 일생을 통한 불법 홍포를 마치고
구시나라성 밖의 강가 사라쌍수(두 그루의 사라수) 밑으로 가서
겨드랑이를 대고 발을 포갠 채 조용히 열반에 들었다.
신도들이 다비를 하자 8섬 4말의 사리가 쏟아져 나왔다.
이를 진신사리라 한다.
석가 이후
스님들에게서 나온 사리를 승사리라고 하여
부처님의 사리와 구분해 부른다.
세존의 다비에 참여한 여덟 나라의 족장들이
이 사리를 분배하여 가지고 돌아가서는
각자 탑을 세우고(根本八塔) 봉안하여 경배했으니
이것이 사리신앙의 시작이고 탑(stupa)의 원형이다.
세존의 사리는
다시 아쇼카왕에 의해 재분배되어
인도 전국 8만4000곳에 탑이 세워지고
탑마다 진신사리가 봉안된다.
이 중 일부가 중국을 거쳐 우리나라에 들어와
통도사,
상원사,
법흥사 등에 안치되어
부처님의 신체를 모신 것과 같은 상징성으로
예배의 대상이 되고 있다.
http://weekly1.chosun.com/wdata/html/news/200312/20031229000027.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