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도자기의 시초가 정유재란때 일본으로 끌려간
조선 도공 이삼평이었으니 ...
일본 큐슈의 사가현에 있는 도자기 마을 이마리(伊萬里) 는
도쿠가와 시절 (1603-1867) 남쪽으로 10킬로 떨어진 아리타(有田)로
이곳 영주였던 나베시마가 가마를 옮겨오면서 부터 형성된 마을이다.
수준 높은 도자기 기술을 유지하기 위해 일부러 산이 험준하고 골짜기가
깊은 곳에 자리를 잡고 도공들에게 도자기를 굽도록 했다.
https://www.youtube.com/watch?v=uITozxQQsrI
1598년 정유재란 때 왜군에 끌려간 심당길의 15대손이다.
400여년간 도자기를 빚어 온 심수관 가문은
12대 때부터 자손들이 선대 업적을 기려 이름을 계승하고 있다.
그의 부친(14대 심수관)은 1989년 한일 문화의 가교 역할을 한 공로로
한국 정부로부터 명예총영사 직함을 받았다.
심수관 공방으로 들어서는 정문 왼쪽에
‘대한민국 명예총영사관’이라는 목재 간판이 세워진 배경이다.
그러나 2019년 부친이 별세하면서
명예총영사 간판을 떼야 하는 상황에 부닥쳤다.
당시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로 한일 관계가 얼어붙으면서
한국 정부도 후속 조치를 취하기는 어려웠다.
[단독] ‘조선 도공의 후예’ 15대 심수관, 한일 문화외교 빚는다 (msn.com)
일본 도자기는
임진왜란 이후에 조선에서 많은 도공들을 데려와서 비약적으로 발전을 합니다.
일본은 1650년경부터 동남아 지역을 통해서 네덜란드까지 도자기를 수출합니다.
일본은 서양에 도자기를 수출하면서 막대한 부를 축적하는데,
나중에 메이지 유신의 바탕이 됐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그만큼
도자기가 일본에 미친 영향이 실로 엄청나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당시 도자기는 원료가 되는 흙도 좋아야 하고,
불을 다루거나 자기를 빚는 도공의 기술이 합쳐져야 하는
지금의 '반도체'와 같은 첨단 기술의 집합체라고 볼 수 있습니다.
www.impeter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47731
천년고도 교토엔 ‘일본 속의 한국’이라 불리는 ’고려미술관‘이 있다!
지난 2월 일본 교토, 비 내리는 궂은 날씨 속에 사람들이 속속 모여들었다.
일본전역에 흩어져 있는
우리 문화재를 찾는 일에 평생을 바친 한 남자의 다큐영화 시사회다.
그가 떠난 지 25년이 지났건만 일본인들은 왜 그를 반추하는 것일까?
천년고도 교토의 외곽에 자리잡은
‘고려미술관‘을 일본인들은‘일본 속의 한국’이라 부른다.
이 곳을 세운 사람은 다름 아닌 재일교포 1세대 정조문(1918~1989).
조센징이라는 차별 속에서 울분을 참아가며 평생을 바쳐 수집한
1700여점의 유물이 그 고려미술관을 가득 채우고 있다.
그것은 바로 일본 전역을 정처없이 떠돌아 다니던 우리 문화재들이었다.
그의 헌신적 노력으로 세워진 고려미술관은
해외에서 우리 문화재만을 소장 전시하는 최초이자 유일한 미술관이다.
많은 조선의 도공들이 납치되었습니다.
도자기도 많이 약탈되었지요.
1598년, Shimazu Yoshihiro에 의하여
사쓰마 지역으로 납치된 1급 도공들은 80명 가량이라고 합니다.
나이는 17~22세정도로 생각됩니다.
당시 항해 기간은 1개월 가량으로 생각되는데,
바다에서 가장 중요한 식수 부족 및 풍랑 등으로
초죽음이 된 상태로 상륙했을 것입니다.
m.blog.naver.com/llsw1/70023576469
옥산궁(玉山宮)에서 제사를 올릴 때 부르는 노래는,
당시 조선 도공들이 불렀던 망향의
노래 그대로라고 합니다.
(번역을 위하여, 현대 한국어로 내용을 번안하면)
오늘이라, 오늘이라.
나는 언제 갈까? 언제 갈수 있을까?
나의 고향을 찾아서 언제 갈 수 있을까?
오늘이라, 오늘이라.
나는 언제 갈까? 언제 갈 수 있을까? 어떻게 갈까....
m.blog.naver.com/llsw1/70023576712
총균쇠의 저자 제레드 다이아몬드는
한국과 일본의 역사가 고대에는 한 형제였지만
이후에 각자의 길을 걷게 되었다고 했다.
한국을 통해 대륙의 종교와 문화가 전달되었으므로 형 아우와 같았지만,
한국은 대륙의 영향을 계속 받고
중국을 사대하는 정책을 조선 시대 후반까지 유지한 반면,
일본은 섬나라라는 지정학적 이유인지,
아니면 지진과 수해가 빈번하면서 스스로 생존력을 키워간 것인지는
아직도 내 나름대로의 판단을 하지 못하고 있지만
샤머니즘을 바탕으로한 독특한 덴노(천황) 종교관,
그리고 이를 활용한 메이지 유신까지 이어지는 국가주의라는,
우리로서는 도저히 이해하지 못하는
일본인 기저의 정신 세계가 지금도 지배하고 있는 듯하다.
m.blog.naver.com/tasmanic/221667011887
도자기(陶瓷器) 발전史(4) - EU ^ 유럽연합 (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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