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地球는 돌고 있다!

철(鐵. Fe)의 역사(4) - 鐵의 왕국 가야. 신라 - 馬 ^ 등자(鐙子) - 英 ^ Iron Bridge

통일신라시대 철제여래좌상(서산 보원사지) ( 출처 = 국립중앙박물관 )

 

삼국시대에 접어들면서 철기 생산은

전쟁에서의 승리 욕구로 더욱 활발해진다.

고구려, 백제, 신라의 치열한 전쟁이 철기 전성시대와 연결된 것이다.

 

이후 철 생산 기술이 가장 발달한 곳은

한반도 남부의 변진(弁辰, 가야/신라)이다.

 

이 지역의 원래 풍부한 철광석 덕분에

제련 기술이 발전하고 독보적 위치에 오르게 된다.

 

가야 시조 김수로왕의 성 ‘김(金)’이 쇠를 뜻한다거나,

신라 제 4대 ‘탈해왕’ 역시

대장장이 출신이었다는 점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철강과 인문학⑭] 동아시아 ‘철의 왕국’은 가야가 아니라 ‘신라’였다 - 페로타임즈(FerroTimes)

 

[철강과 인문학⑭] 동아시아 ‘철의 왕국’은 가야가 아니라 ‘신라’였다 - 페로타임즈(FerroTimes

중국에서 만들어진 철기는 주변 여러 나라에 전래되었다. 기원전 3세기 한나라 시대(BC 206년~AD 220년) 국가 전매기술로 보호해 타 지역으로 빠져나가는 것을 매우 제한했지만 상호 긴밀한 왕래가

www.ferrotimes.com

 

https://www.youtube.com/watch?v=-c_lahvQJFw&list=PLXU9_O6coqxWtXL8z0ayDoWd1F99Zp7Wy&index=29 

 

https://youtu.be/l90qGwTkE8Y

 

https://youtu.be/5FAoCZi3X8Q

 

https://youtu.be/jIeG-BF2IVc

 

에밀레종의 제작에는 무려 34년이 걸렸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간단한 청동기와는 달리 범종은

엄청난 양의 끓는 청동을 한꺼번에 거푸집에 부어야 한다.

 

이때의 압력을 견디려면 거푸집이 튼튼해야 한다.

 

또한

거푸집 안의 공기가 빠져나온 자리에 기포가 생기지 않도록 공

기를 신속하게 제거하는 것과 같은 많은 기술이 필요했다.

 

에밀레종 위쪽의 음관은 고주파의 잡음을 제거한다.

 

또한 종의 밑에 패인 명동은 공명으로 좋은 소리가 나도록 한다.

 

특히 에밀레종은

울림에서 원래 소리와 되돌아오는 소리가 보강되거나 소멸되는

‘맥놀이 현상’에 의해 은은한 소리가 난다.

 

과학이야기 > 역사를 바꾼 원소들 > 에밀레~ - 철(Fe), 구리(Cu) - | LG사이언스랜드 | HCEL2012010001 (lgsl.kr)

 

에밀레~ - 철(Fe), 구리(Cu) -

1962년, 한국전쟁의 상처를 극복하고 조국 근대화를 위한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시작되어 1996년 제7차를 끝으로 막을 내렸다. 이 기간 동안 우리나라는 ‘한강의 기적’이라 불리는 전 세계가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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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타라 용광로

일본을 최초로 통일한 오다 노부나가는

일찍이 화승총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총으로 무장한 소수정예 병력을 활용해

막강했던 다케다 신겐 부대를 굴복시킴으로써

일본열도 통일의 주도권을 확보하게 된다.

 

철포 전래 30년이 지난 16세기 후반

일본이 보유한 총의 수가 수십만 정에 이르러

당시 유럽 전체의 보급량을 넘어섰다고 한다.

 

일본은 이런 특수 목적의 철강을 개발함으로써

철강기술을 급속도로 발전시켰다.

 

이 기술을 기반으로

우수한 성능의 무기와 전함을 만들어

20세기에는 아시아 국가를 점령하고

세계대전을 유발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철강과 인문학⑮] 뒤늦게 시작한 일본의 제철, 타타라제철법-일본도-화승총까지 - 페로타임즈(FerroTimes)

 

[철강과 인문학⑮] 뒤늦게 시작한 일본의 제철, 타타라제철법-일본도-화승총까지 - 페로타임즈(Fe

일본에서의 철은 대략 서기 3세기 야요이시대 후기에 철을 사용하기 시작했고 5세기 이후 고분시대에 철을 제조하기 시작했다고 보는 것이 정설이다.제철기술의 유래는 중국에서 직접 전래되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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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족에게서 배운

등자(鐙子, 말안장에 매달아 발을 걸치게 해두는 승마기구)를 매달아

가능해진 기마술(騎馬術)은 로마기병을 압도했다.

 

등자에 발을 고정시키고

창과 활을 자유자재로 사용하는 고트족 기병에

로마병들은 상대가 되지 못했다.

 

창을 든 로마 기병은 적을 향해 창을 찌르는 순간

그 충격으로 말에서 떨어지지 않기 위해 창을 놓아야 했다.

 

활을 쏠 때도 한쪽 팔로 고삐를 잡아야 했다.

 

하지만 고트족 기병은

등자 덕분에 두 손이 모두 자유로웠다.

 

별 것도 아닌 것처럼 보이는 철 조각, 등자의 등장이

로마제국의 운명에 치명적인 상처를 입힌 것이다.


 

 

 

전 포스코 회장 권오준 박사는 저서 “철을 보니 세상이 보인다”에서

전쟁의 성격과 사용된 무기를 기준으로 인류 역사를 4단계로 구분하고 있다.

제1기는 원시시대부터 화약이 발명될 때까지로

전투원의 육체적 힘이 주체가 되고 무기는 그것을 보완하는 구실을 했다.

돌·청동·철 등으로 만든 칼, 창, 도끼, 투창, 노궁 등이 사용됐다.

 

제2기는 화약 발명부터 19세기 말까지로

화약의 힘으로 탄알을 날리는 총포류가 개발되기 시작했다.

최초의 총포를 사용한 전투는 1346년 크레시전투였다.

 

제3기는 제1차 세계대전에서 제2차 세계대전말까지의 시기다.

전쟁의 성격이 국가 총력전으로 바뀌고 무대는 세계로 확대됐다.

무기의 발달이 획기적으로 이뤄져 비행기와 비행선, 전차(탱크), 잠수함이 등장했다.

레이더나 소나 등 전자무기와 미사일이 등장했다.

 

제4기는 제2차 세계대전 말 원자폭탄 출현에서 현재까지다.

전략무기의 출현과 항공기의 급진적 발전으로 전쟁의 양상을 일변시키고

군비와 무기체계에 획기적 변화를 가져온

원자폭탄, 수소폭탄,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이 실전 배치된다.

 

원자력 잠수함, 우주무기 개발로

군사위성의 실용화, 고출력 레이저, 입자빔과 같은 무기가 도입된다.

 

[철강과 인문학⑯] 전쟁&무기(1) 인류 '전쟁의 역사' 승패를 좌우한 철제무기 - 페로타임즈(FerroTimes)

 

[철강과 인문학⑯] 전쟁&무기(1) 인류 '전쟁의 역사' 승패를 좌우한 철제무기 - 페로타임즈(FerroTime

인류 역사에서 전쟁은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 원초적 욕망을 달성하기 위해, 또 빼앗기지 않기 위해 전쟁의 역사는 끊임없이 계속됐다.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수많은 무기를 만들었다. 막강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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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og.daum.net/scsohn/220

 

등자(鐙子) 이야기

등자는 말안장에 달려서 발을 끼워넣을 수 있게끔 고안된 간단한 구조의 도구이다. 이 등자가 없다면 안장에 올라 앉아도 발이 허공에 뜨게 되어 자세가 불안정해질 것이다. 등자가 없다는 건

blog.daum.net

 

www.atlas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368

 

제임스 와트 증기기관, 영국 산업혁명 시동걸다 - 아틀라스뉴스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Necessity is the mother of invention)라는 서양 격언이 있다. 18세기 산업혁명의 원동력이 된 제임스 와트(James Watt, (1736–1819)의 증기기관도 영국사회의 필요에 의해 발명되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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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언브리지(The Iron Bridge) 출처 : 아틀라스뉴스(http://www.atlasnews.co.kr)

세계 최초의 철교(鐵橋)는

영국 콜브룩데일(Coalbrookdale)이라는 곳에 있는 아이언브리지(The Iron Bridge)다.

이름 그대로 ‘철의 다리’다.

철제 다리는 아이언브리지가 원조는 아니다.

프랑스 리용(Lyons)에서 1755년 철교를 건설하려다 돈이 많이 들어서 포기했다.

영국에서 철교를 만들면 세계 최초가 된다.

1773년 건축가 토머스 프리처드(Thomas Farnolls Pritchard)가

아치형 철교를 만들자고 친구들에게 제안했다.

 

철강 중심지에 철로 만든 다리를 놓아야 한다는 그의 주장은 설득력을 얻었다.

 

당시 콜브룩데일의 제련소는 다비 1세의 손자 다비 3세가 경영하고 있었다.

다비 3세는 프리처드의 제안을 받아들여 철교 건설을 위한 자금 모금에 나섰다.

1777년 11월 철교 공사가 착공되었다.

건설비용이 예상보다 많이 들었다.

모집한 자금이 모자라 다비 3세가 자신의 재산을 쏟아 부었는데,

그는 막대한 건설비용 때문에 1789년 사망할 때까지 빚에 시달렸다.

다리는 주철(무쇠)로 만들었다.

교각 거리 30m, 사용된 철의 총중량은 약 380톤이다.

우여곡절 끝에 다리는 1779년 7월에 준공되었다.

www.atlas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85

 

최초 철교, 영국 아이언브리지…산업혁명 산물 - 아틀라스뉴스

세계 최초의 철교(鐵橋)는 영국 콜브룩데일(Coalbrookdale)이라는 곳에 있는 아이언브리지(The Iron Bridge)다. 이름 그대로 ‘철의 다리’다.영국에 산업혁명의 불이 당겨진 18세기초 콜브룩데일은 철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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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bk1277.tistory.com/529

 

철(鐵. Fe)의 역사(1) - 빅뱅(Big Bang)의 시대 - 지구와 鐵 - 인간과 鐵

박 대통령의 열정과 사명감에 감화된 에르하르트 총리는 다음과 같은 조언을 했다. "나는 경제장관 때 한국에 두 번 갔다 왔습니다. 한국은 산이 많아 경제 발전이 어렵습니다. 아우토반(고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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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3KUEY-uA0DE?list=PLXU9_O6coqxWtXL8z0ayDoWd1F99Zp7Wy 

 

youtu.be/6dqZnuCfrY4?list=RD6dqZnuCfrY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