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의 기적
1962년,
한국전쟁의 상처를 극복하고 조국 근대화를 위한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시작되어
1996년 제7차를 끝으로 막을 내렸다.
이 기간 동안 우리나라는
‘한강의 기적’이라 불리는 전 세계가 주목하는 경제성장을 이룩했다.
이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기적에는 철이 있었으며
우리나라는 고대국가 변한 시대에 이미
일본에 철을 수출했던 철의 나라였던 것이다.
1968년,
포항 영일만의 허허벌판에 철강으로 나라를 위한다는
‘제철보국(製鐵報國)’의 핵심인 제철소가 세워졌다.
철은 자동차, 조선, 건설업 등의 발전에 반드시 필요한 금속이었다.
아무런 기반도 없는 우리나라에서
제철소 건설은 신화를 창조하는 일이었다.
그로부터 40 여 년이 지난 지금,
우리나라는 매년 수천 만 톤의 철강을 생산한다.
영일만에서 시작된 철강 산업은 대한민국 산업 발전의 원동력이었다.
www.lgsl.kr/story/detail/sto/sto/58/HCEL2012010001
인류의 철기시대 진입에
가장 큰 기여를 한 고대국가는 히타이트(Hittite)였다.
히타이트인들은 철기를 쇠를 녹여 만드는 것이 아니라,
쇠와 불순물이 섞여 있는 스폰지 형태의 덩어리를 두드려
단철(鍛鐵)을 만들어 사용하였다.
당시 히타이트 제국의 야금 기술은
지구상에서 독보적인 것이었고,
이들이 거주하는 지역에 철광석이 풍부했기 때문에
고대 철기국가로 성장하게 된다.
4대 고대 문명 가운데
티그리스강과 유프라테스강 인근의
메소포타미아 문명이 가장 먼저 시작되고 발전한 이유가
바로 히타이트인들의 철기 제조 기술 덕분이다.
posri.re.kr/ko/board/content/12458
인류와 철의 조우(遭遇) 이후
본격적인 철기시대는 언제, 어디서, 누가, 어떻게 시작한 것일까?
때는 기원전 2천년 경,
인류 최초의 문명이 시작된 메소포타미아 북단의
터키 아나톨리아 지역의 히타이트 인들이 그 주인공이었다.
종전 학자들은 기원전 1500년 전후
흑해와 카스피해 사이에서 철이 처음 생산되었을 것으로 추측했다.
러시아 남부의 조지아, 아르메니아 공화국에서
초기 제련시설이 40여 곳 발견된 탓이다.
당시 메소포타미아 및 이집트의 국가들은 청동기를 사용했는데,
오직 히타이트만이 용광로를 이용해 철을 제련했다.
이 철제무기를 바탕으로 히타이트는 메소포타미아를 정복했다.
이집트 등에서도 극히 소량이지만 철기가 사용된 흔적이 있으나,
운철을 이용해 만든 것으로
철광석을 제련하는 단계에는 도달하지 못했다.
용광로에서 철을 녹일 정도로 온도를 올리기 위해서는
산소를 공급할 풀무가 필요한데
당시 히타이트에는 풀무가 없었다.
때문에
히타이트 문명은 풀무의 역할을 자연의 바람으로 대체했다.
특정한 시기에
수도인 하투샤 부근의 황야에 맹렬한 바람이 불어온다.
히타이트인은 이 시기에 황야에 용광로를 설치하고
맹렬한 황야의 바람을 풀무 대신으로
용광로가 철을 녹일 수 있는 높은 온도를 가까스로 얻어냈다.
이런 이유로 히타이트는
멸망하는 날까지 하투샤를 버릴 수 없었고 바람의 신이 최고신이었다.
당시 히타이트 문명에서는
'철기 자체가 초자연적인 신성한 재료'로 대우받았을 것으로 추측된다.
[철강과 인문학⑥] 철의 제국 ‘히타이트’…신(神)의 소재에서 인간(人間)의 철(鐵)로 - 페로타임즈(FerroTimes)
www.youtube.com/watch?v=WuTA0UMKf9s
철(鐵. Fe)의 역사(2) - 철제(鐵製)^무기와 전차의 등장 - 풀무의 발명 - 아라비아의 로렌스 (tistory.com)
용광로에서 철을 녹일 정도로 온도를 올리기 위해서는
산소를 공급할 풀무가 필요한데
당시 히타이트에는 풀무가 없었다.
때문에
히타이트 문명은 풀무의 역할을 자연의 바람으로 대체하였다.
특정한 시기에 하투샤 부근의 황야에 맹렬한 바람이 불어오는데,
히타이트인은 바로 이 시기에 황야에 용광로를 설치하고
맹렬한 황야의 바람을 풀무 대용으로 써서
용광로가 철을 녹일 수 있는 높은 온도를 가까스로 유지할 수 있었다.
철의 가장 큰 장점, 매력은 ‘강인함’이다.
그 강인함을 최대한 살린 도구가 바로 무기(武器)다.
생산량이 늘어난 철은 대부분 무기를 만드는데 쓰였다.
히타이트가 대제국을 건설할 수 있었던 것도
우수한 철제 무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철제 무기는 기존의 전투 방식과 전술을 변화시켰다.
첫 번째는 ‘전차’의 개량이다.
히타이트 건국 당시 가장 강력한 무기는 ‘전차’였다.
전차는 중앙아시아에서
기원전 2000년경 처음 등장해 메소포타미아로 전해졌다.
전차 군단이 등장하자 보병은 크게 약화되고 만다.
말이 끄는 전차는 기동력이 뛰어나고
궁수를 여러 명 태울 수 있어 공격력이 뛰어났다.
전차 부대가 보병 부대 주위를 빙빙 돌며
진영을 흐트러뜨리고
궁수들이 화살을 쏟아 부어 대량 살상이 가능했다.
전차 보유 여부, 과다가
승패를 좌우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특히 히타이트 인들은
철을 사용하여 기존의 전차를 대대적으로 개량하는데 성공한다.
더 빠른 전차,
더 많은 궁수(弓手)가 탈 수 있는 전차를 개발해냈다.
[철강과 인문학⑦] 전투 방식 변화 · 전쟁 승패 좌우한 철…인류 역사를 만들다 - 페로타임즈(FerroTimes)
히타이트의 철기문명이 제일먼저 전파된 나라는 아시리아와 이집트다.
하지만 철과 관련된 두 나라의 모습은 상당히 달랐다.
우선 아시리아는
최초의 ‘오리엔트 통일 제국’으로 세계사에서 차지하는 의미가 크다.
기원전 2000년경 최초의 문명인 수메르가 몰락할 무렵
티그리스강 상류에 등장한 아시리아인은
바빌로니아와 미탄니 왕국에 지배당한다.
기원전 1350년경 미탄니를 물리쳐 도약의 발판을 마련한다.
이 시기 아시리아 왕에게 보낸 히타이트 왕의 답장이
보가즈쾨이에서 발견된 점토판에 기록돼 있다.
[철강과 인문학⑧]철의 제국 히타이트 멸망의 아이러니…본격 철기시대 개막 - 페로타임즈(FerroTimes)
www.handmk.com/news/articleView.html?idxno=2376
바다(해상) 민족에 의해 히타이트가 몰락하면서
제철 기술의 확산 여건이 만들어졌다면,
실제로 이의 확산에 크게 기여한 이들이 존재한다.
바로 페니키아인들이다.
상업과 무역에 종사했던 이들은
철의 가치를 누구보다 빨리 간파하고 교역 물품으로 삼았다.
레바논, 시리아, 이스라엘 북부를 기반으로 했던 페니키아는
기원전 1100~800년 지중해 교역을 독점하다시피 했다.
페니키아의 무역선에는
서아시아의 철기가 가득 실렸고 지중해 각지에서 거래가 이뤄졌다.
처음에는 철기를 수입하는데 만족했지만 점차 그 욕구는 더욱 커졌을 것이다.
때마침 나라의 멸망으로 갈 곳 없어진 히타이트 대장장이들과 그 후손들이
페니키아의 무역선을 타고 지중해 전역으로 이주하게 된다.
철기 제품이 아니라 그 근간인 제철 기술이 퍼져나가게 된 것이다.
이제 지중해 사람들은 더 많은 철기를 마음껏 사용할 수 있게 됐다.
[철강과 인문학⑨] 제국(帝國)으로의 발전 조건, 이집트와 그리스의 철(鐵) - 페로타임즈(FerroTimes)
https://m.blog.naver.com/joonho1202/221723123472
아시리아인들이 전장에 들고나온 철제 무기는
그야말로 파괴적인 위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중 최고는 ‘공성탑’이었다.
공성탑은 일종의 이동식 망루로
아시리아인들은 6개의 바퀴가 달린 철로 만든 차체에
5미터 높이의 탑을 설치한 새로운 형태의 전차를 만들었다.
탑 내부에 설치된 거대한 철제 망치가
마치 도끼질하듯 위아래로 움직이면서 적의 성벽을 파괴했다고 한다.
아시리아의 무시무시한 철제 공성탑 앞에
이웃 나라들이 힘들게 쌓아 올린 성벽은 속수무책으로 무너졌다.
강력한 아시리아 제국의 힘 뒤에는 바로 철이 있었다.
두꺼운 벽과 도시의 성문총기의 발명품은
숫양의 도움으로 구멍을 뚫었다.
그들은 나무로 만들어졌으며
동물의 가죽으로 덮여 방화 성 화살과 혼합물로부터 보호했습니다.
숫양의 끝에, 원칙적으로, 청동, 그리고 나중에 철분 팁이 고정되었습니다.
던지는 기계는 또 다른 공성 무기이며,
종종 적의 군대에 의해 사용됩니다.
첫 번째 견본은
스탠드에 강화 된 슬링과 활의 종류였습니다.
나중에 바퀴와 마차가 장착 된 모바일 버전이 보급되었습니다.
여기에는 투석기, strelomety, ballista, onagra가 포함됩니다.
포위 공격 사다리가 가장 흔했습니다.
폭행의 수단. 장애물을 신속하게 극복 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길이가 벽의 높이보다 짧 으면,
길이가 길어서 쇠고리가있는 로프 그물을 벽체 이빨에 부착하여 사용했습니다.
수세기 동안 공성 탑도시의 봉쇄 및
그 이후의 기사 성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기계 중 하나였습니다.
그 중 첫 번째 작품은 고대 동양에 등장했으며
일부 수정 작업을 통해 중세까지 성공적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영화
'아라비아의 로렌스'로 친숙한 영국인 T.E. 로렌스(1888∼1935)는
오늘날 중동의 상황을 이해하는데 빠질 수 없는 인물이다.
1차 대전 당시 로렌스는 영국의 정보요원이었지만
아랍인들의 편에 서서 그들의 독립을 위해 함께 싸운다.
종전 후 로렌스는 당연히 아랍의 독립을 주장했지만
열강의 탐욕 속에 그의 노력은 수포가 되고
영국과 프랑스는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중동의 국경선을 그었다.
이른바 '사이크스-피코 협정'을 통해
부족과 종교적 특성을 고려하지 않고 제멋대로 그어진 국경선은
현대 중동에서 벌어지는 끊임없는 분쟁의 씨앗이 됐다.
www.yna.co.kr/view/AKR20170607054400005
영국 정보국 소속 장교 로렌스는
1차대전 중 중동지역의 전투에서
아랍 부족의 지원을 받기 위해 아랍 지역으로 파견된다.
그런데 그는
영국 정부가 바라던 것 이상으로 아랍의 지도자들을 사로 잡고
아랍의 독립을 위해 열심히 싸워 아랍 민족으로 부터
아라비아의 로렌스라는 영웅적인 칭호를 받게 된다.
그는 아랍 전사들을 이끌고 터키군들과 싸우면서
규율을 잡기 위해 남의 마을의 우물물을 마신 병사를
과감히 처형하는 등 독한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나
그의 그런 용맹성은 터키 군에게 포로로 잡힌 후
그곳에서 받은 성적 학대를 통해 병적으로 발전된다.
그리고
마침내 영국 정부의 소환을 받고 런던으로 돌아오지만
중동으로 보내 줄 것을 요구하면서 사막으로 돌아가길 원한다.
그러나
이미 정치적으로 타결이 된 아라비아 사막은 그를 원치 않았는데...
제1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18년,
수에즈 운하를 둘러싸고 영국과 오스만 제국(現.터키)이 대치하고 있을 무렵
영국은 아랍인들의 참전 및 지원을 요구하기 위해
정보국 소속의 로렌스 중위(피터 오툴)를 중동에 파견한다.
로렌스는 영국의 기대 이상으로
아랍인들을 위해 헌신해 분열된 아랍군을 통합하고,
마침내 오스만 제국의 중동 거점인 다마스쿠스를 점령하고,
이로 인해 아랍인들에게
"아라비아의 로렌스"라는 별칭으로 불린다.
하지만,
전쟁이 계속되며 로렌스의 심신은 점차 피폐해지고,
전투 중 오스만 제국군에게 포로로 잡히는데에 이어
오스만 장교에게 강제로 추행당하며 완전히 무너지고 만다.
게다가
오스만 제국의 몰락이 가시화되며 중동 독립을 논의할 때가 다가오자
열강들은 독립의 약속을 내버리고 분할 점령의 음모를 기도한다.
이에 로렌스는
영국 정부에 항의하며 아랍 민족들에게 단결을 호소하지만,
그들또한 탐욕에 눈이 멀어 다툴 뿐 단결하지 않는다.
결국 소환 명령을 받고 영국으로 돌아가지만,
로렌스는 계속해서 자신을 중동으로 다시 보내줄 것을 청한다.
그러나,
중동 문제는 이미 열강들과 현지 기득권들간의 정치적 합의가 끝나버려
로렌스가 돌아갈 자리는 어디에도 없다.
결국 로렌스는 오토바이를 타고 가다가 교통사고로 사망한다.
(독후감)
아랍의 한 마을을 습격해 약탈 살인 강간 방화를 저지른
터키군 패잔병을 보고
그 고향 출신의 한 아랍군 병사가
자기고향 이름을 외치며 단기필마로 돌격하는 장면은
마치 신라시대 화랑 관창을 연상케 합니다.
일단 피를 봐야 전투가 이루어지니깐요.
역시 근접전에서는 총보다 칼이 빠르다는걸 보여줍니다
이건 전투가 아니라 그냥 도살 이군요.
파이잘 왕자가
영국군 알렌비 장군에게
당신은 장군에 지나지않지만 나는 왕이 될 사람이다.
"You are a merely general but I must be a king" 이라고
말하는 장면에서 그의 정치적 감각을 엿볼수 있읍니다.
종전후 그는 실제로 이라크의 왕이 되었읍니다.
시리아의 다마스쿠스 를 점령한 후
발전소, 우체국, 병원 등을 가동할 인재가 없는
당시 아랍인들의 사정이 딱하군요
사막의 유목민인 그들이 현대문명시설을 운영할수가 없죠.
그리고 초원이나 사막의 유목민들은 시력이 엄청 좋은가봐요.
로렌스는 망원경으로 봐야야 보이는 사막을 행군하는 일행을
아랍인 가이드는 맨눈으로 보니까요.
이게 다 진화의 적자생존 법칙 때문이죠.
숨을 곳이 없는 곳이니 가다가 사람을 보면...
부족싸움이 심했으니...
친구인지 적인지 빨리 아는 사람만이 살아 남을수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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