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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4大門(4) - 의(義) - 西^敦義門(돈의문) - 白色 - 가을(秋)

사대문(四大門)과 돈의문(敦義門)

서울의 사대문과 보신각은 인의예지신에 따라 명명(命名)되었다.

동(東)쪽은 인(仁)을 일으키는 문이라 하여 흥인지문(興仁之門, 興일 흥, 仁어질 인),

서(西)쪽은 의(義)를 돈독(敦篤)히 하는 문이라 하여 돈의문(敦義門, 敦도타울 돈, 義옳을 의),

남(南)쪽은 예(禮)를 숭상하는 문이라 하여 숭례문(崇禮門, 崇높을 숭, 禮예도 례),

북(北)쪽은 지(智)를 넓히는 문이라 하여 홍지문(弘智門, 弘넓을 홍, 智슬기 지)이라 하였다. 

그리고 믿음을 널리 전파한다는 보신각(普信閣, 普널리 보, 信믿을 신)은

동서남북 중앙(中央)에 있는 서울의 중심(中心)을 의미한다.

출처 : 시니어신문(http://www.seniorsinmun.com)

 

blog.daum.net/eduzzang/7354324

 

인의예지신(仁義禮知信), 서울의 4대문

조선의 태조 이성계가 도읍을 정한 한양에는 4개의 대문과 4개의 소문(小門)이 있었다. 4개의 대문은 유교의 오상(五常)인 인의예지신(仁義禮知信)에 의해, 동쪽에 흥인지문(興仁之門), 서쪽에 돈

blog.daum.net

돈의문^서대문

서대문으로 불리는 돈의문(敦義門)

유교 오행사상의 서쪽 방위를 뜻하는 ‘의(義)’를 넣어 이름을 붙였다.

원래 사직동 고개에 있었는데 태종 13년(1413년) 풍수상 지기를 끊는다는 지적에 따라

남쪽으로 옮기고 이름을 서전문(西箭門)으로 고쳤다.

세종 4년(1422년)에는 자리가 높아 통행에 불편하다는 이유로

더 남쪽으로 이전하면서 돈의문으로 바꿨다.

지금의 강북삼성병원 바로 앞이 돈의문이 있던 자리다.

이때 백성들은 새로 만들어진 문이라는 뜻으로 ‘새문(新門)’이라고 불렀다.

‘신문로’나 ‘새문안’이라는 명칭은 여기서 유래한 것이다.

 

www.sedaily.com/NewsVIew/1S8FRPI2JD

 

 

[만파식적] 돈의문(敦義門)

한양으로 도읍을 옮긴 조선 태조 이성계는 1395년 궁궐이 완성되자 도성 축조에 나섰다. 1차 축성은 11만8,000명을 동원해 1396년 1월9일부터 2월28일까지 진행됐다. 그러나 한겨울에 공사를 서두르면

www.sedaily.com

 

news.joins.com/article/23184814

 

일제 철거 '돈의문', AR기술로 104년 만에 복원

【서울=뉴시스】배민욱 기자 = 조선시대 한양도성 4대문 중 하나로 1915년 일제에 의해 철거된 후 지금까지 유일하게 모습이 남아있지 않은 '돈의문(敦義門)'이 증강현실(AR)로 104년 만에 되살아난

news.joins.com

서(西)는 오행 중에서 금(金)에 해당하는데

금속의 기운은 날카롭고 예리하며 엄정한 것을 상징하기 때문에 의(義)에 대응된다.

 

강학당 > 삼자경 > 삼자경(三字經) - 서울 사대문과 인의예지 (lwk.kr)

 

강학당 > 삼자경 > 삼자경(三字經) - 서울 사대문과 인의예지

삼자경(三字經)은 ‘세 글자로된 경전’ 이라는 뜻의 책이다 삼자경(三字經) - 서울 사대문과 인의예지  글쓴이 : 관리자 삼자경 (三字經) - <19> 서울 사대문과 인의예지    曰仁義 禮智信, 此

lwk.kr

youtu.be/9JUeCD-5sTo

 

서울의 4大門(3) - 예(禮) - 南^崇禮文 - 赤色 - 여름(夏) (tistory.com)

 

서울의 4大門(3) - 예(禮) - 南^崇禮文 - 赤色 - 여름(夏)

사대문(四大門)과 숭례문(崇禮文) 서울의 사대문과 보신각은 인의예지신에 따라 명명(命名)되었다. 동(東)쪽은 인(仁)을 일으키는 문이라 하여 흥인지문(興仁之門, 興일 흥, 仁어질 인), 서(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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