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www.youtube.com/watch?reload=9&v=_WU1kSZzBYY
https://brunch.co.kr/@jglee57/50
https://www.youtube.com/watch?v=uoCdoqYWbxY
동인도 회사를 통해 세계를 주무른 ‘네덜란드(Netherlands)’는 어디에서 유래되었을까?
‘Netherlands’는 ‘nether(lower)’와 ‘lands(땅)’가 결합된 말로
국토 상당 부분이 해수면보다 낮아서 생긴 이름이다.
다른 오래된 이름으로 ‘Holland(holt land 혹은 wood land)’가 언급되는데
이 이름은 과거에는 단지 ‘North and South Holland’ 지역만을 지칭했었다.
www.healthumer.com/news/articleView.html?idxno=2361
청어, 네덜란드를 먹여살리다.
https://www.chosun.com/opinion/2023/02/12/V5QQQWSZMNBKJB6XVVCDUAZCWM/
네덜란드에서는 가볍고 표준화된
‘보급품 수송함’의 대량 건조기술이 1570년에 개발되었다.
이는 경제사에 한 획을 그을 만한 대단한 기술이었다.
가장 큰 특징은
이전에 만들어진 배에 비해 5분의 1 정도 인원만으로 운행이 가능해졌다는 점이다.
게다가 표준화로 건조비용이 영국의 60%에 지나지 않았다.
이는 곧 화물유통 경쟁력의 차이로 이어졌다.
이로써 네덜란드 조선업은 당대의 최고산업이 되었다.
www.healthumer.com/news/articleView.html?idxno=2365
https://blog.naver.com/jsrsabre/220627511635
https://blog.naver.com/jsrsabre/220634026902
www.sedaily.com/NewsVIew/1ODFYVFFYV
동인도회사 : Vereenigde Oost-Indiche Compagnie (VOC)
17세기에 접어들며
포르투갈은 에스파냐에 밀리며 동아시아 무역 지배권이 점차 약해지기 시작한다.
이때를 놓치지 않고 동아시아 무역에 진출한 나라가 바로 네덜란드다.
네덜란드는 1602년 최초의 주식회사 ‘동인도회사’를 설립해
본격적으로 동아시아로 진출을 꾀했다.
네덜란드의 동인도회사는
왕실이나 특정 귀족의 지원이 아니라 일반인에게서 동아시아 무역을 위한 투자자본을 모으고,
무역이익을 투자금액에 따라 배분하는 방식으로 운영되었다.
이때 투자자금의 권리를 증명하는 증서를 발급했는데
이것이 바로 최초의 주식이다.
항해 성공땐 돈 벌고 실패땐 출자한 만큼만 손해
지금 형태의 증권이 탄생하게 된 배경에는 유럽의 신항로 개척이라는 역사적인 사건이 있었습니다.
신항로를 이용한 동방 세계와의 교역
그건 일확천금의 기회이자 태풍이나 해적이 도사리고 있는 위험천만한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위험을 분산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했죠.
그 결과 탄생한 것이 바로 '증권'입니다.
사람이 출자한 한도 내에서 책임을 지는 증서를 발행하는 방안을 고안한 것입니다.
항해가 성공하면 돈을 벌고 안 돼도 출자한 만큼만 잃어버리면 되는 셈이지요.
이런 배경 속에서 세계 최초의 주식회사가 탄생합니다.
네덜란드의 동인도회사는
유럽에 최초로 주식과 투자의 개념을 도입하여 왕실의 재정만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대규모 무역을 가능하게 함으로써 그야말로 대항해 시대를 열었다.
그리고 곧 영국과 포르투갈을 제치고 최고의 무역회사로 발돋움했다.
https://www.chosun.com/opinion/2022/12/11/WXE4TSRATFFHBEV2H2D3RLILG4/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의 동방무역 (tistory.com)
1609년 암스테르담 증권거래소가 설립됐다.
세계 최초의 증권거래소였으며 세계금융의 중심으로 자립잡았다.
당시 상인들은 상품을 인도받고 곧장 대금을 지불하는 대신 차용증을 썼다.
이 차용증은 시간이 흐르면서 수표로 발전됐다.
16세기 후반에는 지중해지역 은행들이 옮겨 왔고,
1609년 암스테르담은행 탄생으로 이어졌다.
암스테르담은행에서 발행된 은행권은 유럽 전지역에서 유통하는 중심화폐가 되었다.
암스테르담은 이로써 국제무역 중심지가 되었다.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의 자본금은 영국 경쟁사보다 10배 가량 컸다.
네덜란드 동인도회사는 수익률 1000%의 대박을 내기도 했다.
이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상선 150척, 군함 40척, 직원 5만 명, 군대 1만 명의 압도적 규모에 있었다.
당시에는 민간회사도 군대를 보유하고, 대포와 함선을 구비했다.
weekly.hankooki.com/lpage/world/202004/wk20200407101800147490.htm
https://www.huffingtonpost.kr/2015/11/30/story_n_8685116.html
원래 튤립은 네덜란드가 아닌 머나먼 텐샨 산맥에서 건너왔으며,
특히 원래 터키에서 사랑받는 작물 중 하나였지요.
실제로 터키인들은 튤립을 너무 사랑해서,
옷이나 장식 등에 새겨놓고 튤립 구근을 거래하기도 했답니다.
유럽 상인들과의 교역을 통해서 건너온 튤립은
네덜란드에서 큰 인기를 끌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튤립의 모자이크 바이러스로 인해
희귀한 점박이 모양의 꽃잎이 피었을 땐
그 가치가 일반 튤립의 몇 배 이상이 되기도 했답니다.
튤립은 원래 신종이 쉽게 나오기 어려운 데다
꽃을 피우는 데만 3년 이상 소요될 정도로
단기간에 쉽게 양을 늘리기 어려워
투자 대상으로 안성맞춤이었습니다.
http://webzine.miraeassetdaewoo.com/bbs/board.php?bo_table=MD12&wr_id=29
최초의 버블 사태, 1600년대 네덜란드의 튤립 열풍!
당시 후추는 금값이었다. 하지만 이런 후추보다 더 비싼 게 육두구였다.
그 영어 명칭인 ‘너트메그’(nutmeg)란 사향 향기가 나는 호두라는 뜻이다.
그 무렵 향신료는 부피가 적고 공급이 부족한 상황이었기에 매우 수익성이 높은 상품이었다.
정향을 실은 네덜란드의 첫 상선은 무려 2500%의 순익을 남겼을 정도다.
하지만 이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그 뒤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의 유대인들은 경쟁이 심한 인도의 후추를 피해
동남아 지배권 확립하고 육두구와 메시스 그리고 정향을 독점 거래했다.
www.healthumer.com/news/articleView.html?idxno=2951
https://steemit.com/kr/@pius.pius/4f2qny-1
포르투갈로부터 몰루카제도를 접수한 네덜란드인들은
가격을 올리기 위해 이 섬에서만 정향을 생산하도록 했다.
약간 매운 듯하면서 향기를 내는 정향은 늘 푸른 큰키나무로 분홍 꽃이 피는데,
이 꽃이 정향의 원료다.
일반적으로 꽃이 피기 바로 직전에 따서 햇볕이나 불을 지펴 말려 가공하는 과정을 거친다.
말린 꽃봉오리가 마치 못을 닮았다고 해서 정향(丁香)이라 하며,
영어 이름인 클로브(clove) 역시 클루(clou, 못)에서 유래되었다.
www.healthumer.com/news/articleView.html?idxno=2952
고가의 설탕 교역을 둘러싼 경쟁은 영국과 네덜란드 간 전쟁을 불렀다.
영국 ‘항해조례’가 발표되면서 영국과 네덜란드는 22년 간 세 차례 전쟁을 했다.
당시 사탕수수 경작지인 서인도제도의 바베이도스섬은 영국령이었지만,
설탕 교역은 네덜란드 서인도회사가 주도했었다.
바베이도스섬의 유대인들과 교역하던 네덜란드 상선 13척이 영국 함대에 나포되자,
이를 발단으로 1652년 1차 영국·네덜란드 전쟁이 일어났다.
이 전쟁에서 승리한 영국이 1655년부터 설탕 무역 종주권을 차지했다.
m.kmib.co.kr/view.asp?arcid=0924024474
VOC는 필요할 때 추가로 자본을 늘리거나, 차입을 줄이거나,
배당금을 줄여 이를 재투자하지 못했다.
네덜란드는 프랑스, 영국 및 러시아처럼 중앙 정부에서 국채를 발행하지 않았기 때문에,
암스테르담 증권 거래소는 VOC와 WIC(West-Indische Compagnie)가 몰락한 후
중요성이 점점 사라져갔다.
암스테르담에서 활발히 거래되던 외국 국채 또한
1820년대 자본 조달이 더 용이한 런던으로 자리를 옮겼다.
steemit.com/kr/@pius.pius/7frpr5-2
http://www.seouleco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49997
영국과 네덜란드는 1665년 다시 전쟁을 시작했다.
전쟁은 그해 7월 브레다 조약으로 종결되었다.
2차 전쟁은 네덜란드의 승리였다.
1667년 전쟁의 종식과 함께 승전국 네덜란드는
육두구 산지 반다제도와 사탕수수 산지인 수리남의 소유권을 인정받는 대신
뉴욕을 영국에 내주었다.
물론 당시로서는 육두구와 사탕수수 산지가
네덜란드에게 경제적 가치가 더 높았을 것이지만,
장기적으로는 크나큰 손해라고 할 수 있다.
전쟁에 이긴 네덜란드가 뉴욕을 포기한 건 큰 실수였다,
역사의 아이러니다.
www.healthumer.com/news/articleView.html?idxno=3007
영국과 네덜란드는
1674년 웨스터민스터 조약을 체결하고 뉴욕을 영국에 돌려주기로 했다.
이로써 네덜란드는 북미대륙 동해안의 식민지를 50년만에 모두 잃게 된다.
뉴네덜란드와 뉴암스테르담은
뉴잉글랜드와 뉴욕으로 바뀌어 영국 식민지가 되었다.
www.opinion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2024
https://www.philips.co.kr/a-w/about-philips/our-heritage.html
http://monthly.chosun.com/client/news/viw.asp?ctcd=&nNewsNumb=201002100052
http://www.chogabje.com/board/view.asp?C_IDX=75845&C_CC=AH
https://waarheid.tistory.com/entry/%EB%84%A4%EB%8D%B8%EB%9E%80%EB%93%9C-%EC%84%B1%EA%B5%90%EC%9C%A1
https://www.nocutnews.co.kr/news/4653335
'유럽연합 ^ EU' 카테고리의 다른 글
2차 대전의 서막(1) - 나의 鬪爭 - 뮌헨 비어홀 폭동 - 유겐트 - 홍위병 - 草綠同色 (0) | 2021.01.09 |
---|---|
臥薪嘗膽(와신상담) - 스카파플로(Scapa Flow) ^自沈 - 푸린^U보트 기습 - 천안함^爆沈 - 有備無患(유비무환) (0) | 2021.01.08 |
알렉산더 大王 - 동방원정 - 페르시아 정복전쟁 (0) | 2020.11.30 |
프랑스 - 나폴레옹 - 종교전쟁 (0) | 2020.09.28 |
대영제국의 탄생과 산업혁명 (0) | 2020.09.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