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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옛적 香氣를 찾아서!

월월산산(月月山山)!

김삿갓은 왜 삿갓을 쓰고 방랑하며 일생을 보냈을까?

김병연은 조선후기에 잘 나가던 안동김씨 후손으로 유복하게 자란다. 그의 나이 6살 되던 해에

홍경래의 난이 일어났고, 당시 할아버지인 김익순은 선천의 부사라는 높은 관직에 있으면서도

홍경래 무리에 항복하여 치욕을 당하였다.

홍경래의 난이 평정되자 국가는 김병연의 할아버지인 김익순을 항복에 대한 죄를 물어 처형하고,

할머니는 관비로 축출하였으며, 아버지는 남해로 귀향을 보냈다.

김병연은 형과 함께 노복의 등에 업혀 황해도 곡산으로, 모친은 동생과 함께

경기도 이천으로 피신하는 등 가족들이 모두 뿔뿔이 흩어졌다.

시간이 흘러 김익순의 죄가 멸족에서 폐족으로 감형됨에 따라 김병연의 가족들은 다시 모였으나,

분을 이기지 못한 아버지는 화병으로 죽고

는 어머니인 함평이씨 손에 이끌려 강원도 영월로 들어가 살게 된다.

 

이런 가족사를 모르고 자란 김병연은 그의 나이 20세가 되던 해에 관에서 실시한 백일장에서

아래의 시제가 나오자, 홍경래의 난이 일어났을 당시,

목숨을 걸고 싸우다 죽은 가산의 군수를 예찬하고 선천의 부사였던

자신의 할아버지를 강하게 비판한 글을 작성하여 장원에 오른다.

論鄭嘉山忠節死 논정가산충절사 (정가산의 충절한 죽음을 칭송하고)
嘆金益淳罪通于天 탄김익순죄통우천 (김익순의 죄가 하늘에 통함을 탄한다)

그러나 어머니로부터 김익순이 자신의 할아버지임을 듣고는 크게 자책하게 된다.

이후 자신의 신분을 숨기고 벼슬을 위한 준비를 시작하지만,

곧 포기하고 24세가 되던 해에 가족들을 버리고 방랑을 시작한다.

푸른 하늘을 보기 부끄러운 죄인이라는 생각에 갓을 쓰고,

지팡이를 들고 방랑 생활이 시작됐고,

그의 별명이 방랑시인 김삿갓 혹은 김립이 된 것이다.

 

김삿갓은 강원도, 함경도, 제주도 등 전국각지를 돌아다니며 수많은 시를 지었고,

전남 화순군 동복면에서 생을 마쳤다.

후에 가족들이 시신을 수습하여 강원도 영월에 안장하였다.

그의 시들 중,

한자의 뜻과 음을 이용하여 창작한 시들은 지금도 잘 알려져 있다.

김삿갓이 지었다는 시 몇 개를 소개한다.

김삿갓이

길을 가다 날이 저물어 어느 집에 머물게 되었다.

다음날 아침, 이미 해가 중천에 솟았는데도

아침 밥상이 들어올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문 밖을 보니 주인 내외가 있었는데...

안주인이 “‘인량차팔(人良且八)’ 라고 물으니

남편은 ‘월월산산(月月山山)!’이라고 대답을 한다.

그게 무슨 뜻일까?

아침 밥상이 들어오기만 기다리고 있던 김삿갓은 잠시후에

김삿갓은 담뱃대로 재떨이를 두어 차례 두드리고 나서

 

“견자화중(犬者禾重)아 정구죽요(丁口竹夭)로다!”

라고 한마디 하면서 그 집을 나와 다시 길을 떠나는 것이었다.

세 사람의 사이의 대화가 심상치 않다.

‘인량(人良)’을 위아래로 붙이면 밥 식(食)이 되고,

‘차팔(且八)은 갖출 구(具)자라...

안주인은 “식사를 준비할까요?” 하고 물었던 것이다.

이에 대한 남편의 대답은

 

‘월월(月月)’ 곧 친구 붕(朋)자에 ‘산산(山山)’이라 했다.

뫼산(山) 두 개를 포개 놓으면 나갈 출(出)자가 된다.

요컨대 “이 친구가 떠나거든!” 밥을 먹자고 대답한 것이었다.

 

지독한 구두쇠부부의 교활한 암호였지만,

그러나 김삿갓은 대뜸 그들의 암호를 해독하여

犬+者=돼지(猪), 禾+重= 종자(種), 丁+口=可, 竹+夭=笑

"이돼지 종자들아! 가소(可笑)롭구나!”하며,

그 집을 나서 다시 방랑의 길을 떠나게 되었다.

 

(김삿갓은 해학을 아는 破字法의 대가이다 ㅎㅎㅎ.)

 

https://youtu.be/jdYbaKwNu78?t=6

http://www.farmmedia.co.kr/news/articleView.html?idxno=90

 

김삿갓 일대기 - 두메산골

김삿갓이 누군지 모르는 사람은 없다. ‘죽장에 삿갓 쓰고 방랑 삼천리…’ 하는 유행가가 나온 지도 이미 60년이 넘었다. 이처럼 김삿갓이 숱한 전설과 일화를 남기며 방랑하던 풍류시인이라는 사실은 널리 알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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