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차는 여러종류의 다양한 나무의 잎을 우려서 마시는 모든 것을 ‘차’ 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녹차, 홍차, 우롱차, 보이차는
모두 하나의 찻잎에서 나오는 차 종류입니다
차나무는 “카멜리아 시네시스”라고 합니다
동백나무과에 속하는 아열대성 상록식물로 잎은 품종과 착생위치에 따라서 변이가 큽니다.
즉
차나무에도 여러종류의 품종이 있고
기후나 토양에 따라서 차나무나 차잎의 크기가 다릅니다
어린 잎의 뒷면에는 고운 털이 나며 색깔은 녹색, 황색, 자색 등 품종에 따라 다릅니다
차나무 품종은
대개 중국 대엽종, 인도 대엽종, 중국 소엽종으로 분류되는데
우리나라에서 자생하고 있는 차나무는
잎이 적고 엽육이 두꺼운 중국 소엽종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www.healthumer.com/news/articleView.html?idxno=3174
보스턴 차사건
영국에 반감이 생긴 미국인들은 홍차 대신 커피를 마시기 시작했다.
하지만 하루아침에 갑자기 입맛을 바꿀 수는 없는 노릇이라
홍차 맛과 비슷하도록 연하게 볶은 원두로 내린 ‘아메리카노’를 만들어 마셨다.
에스프레소와 같은 강한 맛의 유럽 커피와 대조되는 이유이다.
아편전쟁
영국은 중국에서 차를 비롯해 비단, 도자기 등을 수입했는데,
수출품이라고는 모직물 정도였다.
당연히 무역적자가 날로 커져갔다.
적자 규모는 날로 늘어나 아편전쟁 직전에는 4,067만 파운드에 이르렀고,
이로 인해 대량의 은이 중국으로 유출되어 유럽에서는 부족현상이 심화되었다.
이에 대한 대책으로 선택한 것이 바로 아편이다.
영국은 18세기말부터 차 대금으로 인도에서 기른 아편을 밀수로 중국에 팔아 지불하고자 했다.
그러한 영국의 몰상식한 선택에 대해 청나라 정부는 아편을 몰수하는 것으로 응대했다.
이러한 일련의 사건들로 인해 청나라와 영국 사이에 아편전쟁(1839~1842년)이 일어났다.
https://m.blog.naver.com/missdh8299/221379352894
홍차는
완전발효시킨 차로 강발효차라고도 합니다
‘홍차’는 떫은 맛이 강하고 막 발효된 홍차는 갈색을 띄고 우려내면 다홍색을 띱니다.
홍차는 세계 차 소비량의 75%를 차지합니다 (‘녹차’는 22%정도입니다)
‘홍차’는
인도, 스리랑카, 중국, 케냐가 주요 생산국이며 영국과 영연방국에서 많이 소비됩니다.
서양에서는 홍차를 ‘블랙티’ 라고 부르는 이유는
홍차가 이동하는 과정에서 갈색이던 홍차가 검은색으로 변하기 때문에 ‘블랙티’라고 불립니다.
[17세기 초, 유럽에 차가 전해지다]
- 1610년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의 배가 녹차를 일본 나가사키(長崎) 현에서 암스테르담으로 운반
- 아시아의 발달한 경제와 문화에 압도되었던
유럽인들은 차를 ‘외래의 선약’으로서 외경심을 갖고 받아 들임.
- 18세기를 거쳐 차 마시는 습관이 보급됨에 따라 영국에서는 독자적인 홍차문화가 형성
- 18세기 후반 영국 전역에 차문화 보급
– 대륙 국가 전체 소비량의 약 3배를 소비
- 북미 식민지에도 차문화 보급 – 1760년 500톤의 차 소비
[보스턴 차사건. 미국 독립전쟁의 시작 ]
• 1773년 12월 16일 밤
• 차를 가득 싣고 보스턴 항구에 입항한 “다트머스 호”를 비롯한
영국 동인도 회사 소속의 소속 배 3척이 인디언 차림으로 변장한 괴한들에게 습격을 당함.
• 이들은 1773년 영국이 동인도 회사에 차 무역 독점권을 주고 면세특권까지 주는 것에 반발하여,
아메리카 식민지의 차 상인들이 중심이 되어 배를 습격함.
• 총 342상자의 차를 바다에 버림.
보스턴 차 사건에 대해 영국은 보복적인 탄압책을 써서 보스턴 항구를 폐쇄하고,
보스턴이 속해 있는 매사추세 스 주에 대한 지배를 강화
→ 식민지 전체 백성들의 반감을 삼.
[18세기 후반 영국의 차 수입 현황]
- 당시 대 중국 무역은 영국의 동인도회사가 거의 독점
- 실크와 차, 도자기 등 비싼 물건을 수입하고, 영국은 겨우 모직물 정도를 수출
- 영국은 당시 유일한 차 수출국이었던 청나라로부터 막대한 양의 홍차를 수입해야 했음.
- 인도와 동남아에서 차를 재배하기 전인 1870년경까지 중국에서만 차를 수입
- 홍차는 지나치게 발효된 우롱차였고
중국에서는 흔하게 여겨져 값이 쌌기 때문에 영국이 대량으로 수입
- 당시 청나라는 광주 한 곳만을 대외무역항으로 지정하고,
해외무역 특허 상인조합인 13공행이 대외무역을 독점하고 있었기 때문에
중국에 대한 영국의 수출은 부진했고 홍차를 사기 위해서는 대량의 은이 필요했음.
영국의 대 중국 무역은 언제나 수입초과였고,
이를 위해 막대한 양의 은을 청나라에 결재해주고 있었음
[아편전쟁 원인] ~ 전쟁의 발단은 영국의 아편 밀수
• 영국은 만성적인 무역적자를 해소하기 위해 식민지 인도에서 나는 아편을 청으로 밀수출하기 시작
• 18세기 이후로 영국 동인도 회사는 본국에서 생산된 면포를 인도에 수출하고,
인도의 아편을 중국에 밀수출하고,
중국으로부터 홍차를 사서 본국으로 가져오는 “삼각무역”을 개시
• 청 정부는 마약 밀수를 금지했으나 지방 관리들이 뇌물을 받고 묵인하여 아편복용은 순식간에 확산
- 1830년대 중반 아편인구 200만 명이 넘음
- 1839년에는 60kg짜리 4만 상자 이상 밀수입, 500만 명 이상
영국의 대 중국 무역은 언제나 수입초과였고, 이를 위해 막대한 양의 은을 청나라에 결재해주고 있었음.
그 결과 해마다 대량의 은이 유출되어 은의 가격이 상승,
은으로 납세하는 농민들의 생활이 곤궁해짐
• 청 정부는 은의 유출로 극심한 재정난을 겪고, 아편중독자의 급증으로 국민 건강을 해침
[아편전쟁 발발]
1839년 아편을 근절하기 위 해 도광제가 임칙서를 흠차대신(欽差大臣)으로 임명
- 광주만 안에 정박하고 있던 영국상선을 수색하여 약 2 만 상자의 아편(1425톤)을 몰수, 폐기함
- 1940년 아편전쟁 발발
[난징 조약(1842) ]
- 전쟁 배상금 지불
- 몰수 아편 대금 600만 달러 배상
- 홍콩(1997년 반환)을 영국에 양도
- 상해 등 5개항 개항
- 공행 폐지
- 차를 제외한 모든 물품에 5% 관세(관세자주권상실)
- 영사재판권
- 최혜국 대우
https://www.youtube.com/watch?v=3McMZsW4PPU
'戰爭 戰鬪 야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세계 4大 海戰史 - 한산도 대첩 (0) | 2020.08.31 |
---|---|
안시성 戰鬪 - 당나라 군대? (0) | 2020.08.22 |
거대한 역전 - 홍차^아편전쟁 (0) | 2020.07.09 |
면화^면직물과 증기기관^1차산업혁명 (0) | 2020.07.03 |
후추와 포루투칼 ^ 1509년 디우해전(Battle of Diu) 승리 (0) | 2020.04.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