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로가(白鷺歌)〉
가마귀 싸호는 골에
白鷺(백로)야 가지마라
셩낸 가마귀 흰빗을 새올셰라
淸江(청강)에 잇것 시슨 몸을
더러일가 하노라
포은 선생이
태종 이방원이 초대한 연회에 나가려 하자
이를 경계하며 지었다고 함.
팔순의 노모께서 간밤의 꿈이 흉하다고 하며
문밖까지 따라 나오면서 이 노래를 불러
공이 가는 것을 말렸다고 전한다
포은 몽주(夢周)는
1337년(충숙왕 복위 6년)에 경북 영천에서
일성부원군 정운관(鄭云瓘)과
후일 선생에게 “가마귀 싸우는 골에 백로야 가지 마라”라는
유명한 시조로 아들을 훈계했던
현철한 어머니
영천이씨 사이에서 아들 4형제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의 어머니 이씨(李氏)가
아름다운 난초화분을 안고 가다가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면서
화분을 깨뜨리는 꿈을 꾸고
사흘 후에 낳았다고 하여
처음 이름을 몽란(夢蘭)이라 했다가,
몽란이 아홉살 되던 해
그의 어머니가
대낮에 물레질을 하다가 고단하여
깜빡 잠이들어 꿈을 꾸었는데,
금빛나는 한 마리의 용이 뜰의 배나무 위에서
배를 따 먹으며 빙그레 웃고 있었다.
그녀는 깜짝 놀라서 깨어나 나무를 쳐다보니
몽란이 배나무 위에서 용처럼 웃고 있었다.
이런 일이 있은 뒤
그의 어머니는
몽(夢)자에다 용(龍)자를 붙여
몽룡(夢龍)이라고 고쳐 불렀다.
몽룡이 18세 되던 어느 날 새벽
그의 아버지 운관(云瓘)의 꿈에
중국 고대에
자기 형 무왕(武王)을 도와 은(殷)나라를 멸하고
주(周)나라를 세웠던 주공(周公)이 나타나
"몽룡은 후세에까지 가문과 명성을
길이 빛내게 할 것이니
소중히 키워라" 하고 부탁하였다.
그리하여 관례(冠禮)를 치르면서
주공(周公)의 주(周)자를 따서
이름을 몽주(夢周)로 고쳤다.
몽주는 자라면서
충(忠)과 효(孝)와 의(義)가
남달리 뛰어났다.
그가 20세가 되던 해
아버지를 여의고 3일 동안이나
물 한모금 마시지 않고 통곡하였으며
당시의 풍습이
부모의 상복을 겨우
백일밖에 입지 않았는데도
묘소 옆에다 여막을 짓고
산중에서
혼자 3년 동안이나
상식을 올리며
효(孝)를 다하자
세상사람들은 하늘이 내린 효자라고 칭찬했고
공민왕도
그의 집에 정표(旌表)를 세워
표창했다고 한다.
http://yuniljung.com/mong/mongjoo.htm#계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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