켈로부대는
미국 극동사령부가
1949년 북한 출신 중심의 자생적 유격부대를 흡수해 만든 부대다.
미군이 그해 한국 주둔 전투병력을 철수하면서
북한 지역 첩보 및 공작 임무 수행을 위해 창설했으며,
부대 명칭은
미 극동사령부 직할 한국연락사무소(KLO·Korea Liaison Office)의 영문 머리글자를 땄다.
6·25전쟁이 발발하자
켈로부대는 적진 내 첩보와 후방 교란을 맡아 맹활약했다.
1951년 7월 창설된 미군 8240부대에 통합됐지만,
비정규군이라 계급도 군번도 없었다.
전쟁 당시 켈로부대원은
피란민으로 위장해 적진에 침투하는 방식의 첩보 활동을 자주 펼쳤다.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1062413340000331
http://m.monthly.chosun.com/client/news/viw.asp?ctcd=c&nNewsNumb=202106100018
https://blog.daum.net/hyanggun/15913544
국군은
당시 낙동강을 따라 경남 마산~경북 왜관~경북 영덕에 걸친 240여㎞를
'최후의 방어선'으로 정하고 북한군의 공세에 맞섰다.
백선엽 장군이 이끌던 제1사단 7600여명이
대구로 향하는 길목인 경북 칠곡군 가산면 일대에서
북한군 3개 사단 2만1500여명에게 맞섰던 다부동 전투는
6·25전쟁에서 가장 치열했던 전투 중 하나로 꼽힌다.
당시
백선엽 장군은 후퇴하려는 부하들 앞에서
"앞장서 돌격할 테니 내가 후퇴하려거든
너희들이 나를 쏘라"며 권총을 뽑아들고 돌진한 것으로 유명하다.
https://premium.chosun.com/site/data/html_dir/2016/06/23/2016062300396.html
https://m.blog.naver.com/PostView.naver?isHttpsRedirect=true&blogId=hmjin80&logNo=220774331835
[한국전쟁, 낙동강 전투의 모든 것] 7-2. 천평 계곡 전투(일명 볼링앨리 전투) : 네이버 블로그 (naver.com)
[한국전쟁, 낙동강 전투의 모든 것(완결 편)] - 8. 북한군 9월 공세와 영천 전투 : 네이버 블로그 (naver.com)
https://m.blog.naver.com/PostView.naver?isHttpsRedirect=true&blogId=jungsin3560&logNo=221105720011
미 제8군의 강력한 예비대(소방부대) 이끈
마이켈리스 대령(미 27연대장)
▲ 마이켈리스 대령(미 27연대장)
천평동 ‘볼링 앨리’ 전차전을 승리로 이끈
미 25사단의 27연대 연대장 마이켈리스 대령은
후에
미 8군 사령관을 지낸 맥스웰 테일러 장군의 부관으로
2차 세계대전을 치른 야전 지휘관이었다.
본인도
6·25전쟁 후 승승장구해 대장까지 진급하고 미 8군 사령관에 올랐다.
백선엽 장군은 회고록 <내가 물러서면 나를 쏴라(1)>에서
마이켈리스 연대장에 대해
“전체 부대가 기계처럼 움직였다”면서
그의 지휘력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마이켈리스의 미 27연대는
미 8군 사령관 워커 소장이 위기 상황에서 투입하는
일명 ‘소방부대’라 불리는 강력한 예비대였다.
1950년 7월 30일 진주가 적에게 넘어가자
마산 정면에 투입돼 진동리를 지켜냈고,
영산의 낙동강 돌출부가 뚫린 8월 11일에는 영산에 즉시 투입됐다.
마산 진동리에서 마이켈리스 연대장의 지휘력을 보여준 일화가 있다.
진동리는 진주~마산 간 도로와 사천~고성을 거쳐
마산으로 향하는 우회로가 합쳐지는 길목이었다.
8월 3일 오전
진동리에서 27연대 본부가 주둔하고 있던 진동국민학교에
인근 고지에서
기관총을 포함한 강력한 화력을 동원한 적의 기습 공격이 시작됐다.
순식간에 학교는 아수라장이 됐다.
이때 마이켈리스 연대장이
적의 화력이 집중되고 있던 운동장으로 뛰어나가
병사들을 독려하고 지휘 체계를 정리하여
중화기의 엄호사격 하에 고지를 점령하도록 반격 지시를 내렸다.
이때의 탁월한 지휘력으로
마이켈리스 연대장은 중령에서 대령으로 진급했다.
http://www.futurekorea.co.kr/news/articleView.html?idxno=30522
https://m.blog.naver.com/steelgun/40176717087
‘백골부대’ 명칭은
6.25 전쟁 당시 자진 입대한 서북청년단원들이
죽어서도 고향땅을 되찾고야 말겠다는 의미로
철모에 백골을 그린 것에서 유래했다.
백골부대가
북한이 가장 두려워하는 부대로 알려지게 된 것은
무시무시한 해골마크 뿐만 아니라
실제로 북한에 위협적인 행보를 보였기 때문이다.
https://www.joongang.co.kr/article/21177337#home
데이비슨 라인(Davidson Line)
미 8군 공군참모 개리슨 데이비슨(Garrison M. Davidson) 준장이
낙동강 방어선(워커 라인)이 무너질 때를 대비하여
진해-밀양-울산에 이르는 90km 가량의 예비 방어선을 구축하자고 제안함.
사실 이 방어선은
순전히 미군이 철수하기 위한 시간을 벌기 위해 세워진 방어선으로,
여기까지 밀리면 미군은 사실상 한국방어를 포기하고
일본으로 철군하는 작전을 펼칠 예정이었음.
다부동 전투가 벌어지기 직전,
한국군과 미군 장성들이 모여 긴급작전 회의를 했는데
이 때 미군 참모진들이 지금 상황이 힘드니
데이비슨 라인까지 후퇴하여 방어선을 줄이자고 제안을 함.
말 그대로 제안만 함.
https://www.dogdrip.net/userdog/350167080
http://www.newswinkorea.com/mobile/article.html?no=1656
https://blog.naver.com/cbg6218/222929690234
https://blog.naver.com/achadal/221975457139
http://news.imaeil.com/page/view/2010062507234432425
한국전쟁의 인천상륙작전(Operation Chromite)이
바로 망치와 모루 전술의 성공적인 모습
망치와 모루 전술(Hammer and Anvil tactic)은
위 그림에서 보는 것처럼
강한 쇠라도 모루에 올려놓고 망치로 두들기면
휘어지고 늘어나는 것에서 착안해서,
적을 쇠라고 간주하고 자신의 부대 중 일부를 망치로,
다른 일부를 모루로 적용해서 적을 섬멸하는 전술입니다.
고대 그리스로마 시절부터
현대의 걸프전,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까지
널리 쓰이고 있는 전술의 아주 기본적인 개념입니다.
첫번째 사진에서 보면
빨간색으로 표시된 적(Enemy)에 대해
모루(The Anvil) 역할을 하는 부대가
정면으로 대응하며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합니다.
그러는 사이 파란색으로 표시된 망치(Hammer) 역할의 부대가
측면으로 돌아서 적을 공격해서 섬멸하는 것입니다.
한쪽에선 모루부대가 막고 있고,
반대쪽에선 망치부대가 공격을 하므로 적은 고립되고,
전선이 앞과 뒤, 옆 사방으로 형성이 되므로 적을 섬멸할 수 있습니다.
쇠의 역할인 적의 경우 이런 상황에서는
쇠가 모루를 뚫고 빠져나가야만 패배를 막을 수 있습니다.
[여의도변호사박영진] 변호사와 군사전술 1 : 망치와 모루 전술 : 네이버 블로그 (naver.com)
https://m.blog.naver.com/PostView.naver?isHttpsRedirect=true&blogId=moeblog&logNo=220392893675
‘망치와 모루’의 전략개념에서
결정적 타격인 망치의 역할은 미 8군 777린치 특임부대
[김희철의 전쟁사(79)] 인천상륙작전의 화룡점정(畵龍點睛)은 연결작전 (상) – 시큐리티팩트 (securityfact.co.kr)
http://www.ynam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9047
http://www.securityfact.co.kr/news/view.php?no=1778
https://bbs.ruliweb.com/community/board/300143/read/49524038
망치(Hammer)와 모루(Anvil) 戰術(Tactic) (tistory.com)
당신이 몰랐던 6.25 이야기(3) - 한미상호방위조약 - CHN^國共內戰(국공내전) (tistor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