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www.gukje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2417615
또 다른 비밀병기는
우크라이나 국민이다.
4000만 명이 들고 일어나
화염병을 만들며
국가 수호를 외치고 있다.
남자들은
징집령이 발령되기도 전에
자발적으로 민병대에 입대했다.
해외에서 들어온 자원입대자만 13만 명에 이른다.
대통령이
전투복을 입고 거리에서 항전을 독려하고,
미인대회 수상자까지 총을 들고 일어섰다.
https://www.hankyung.com/opinion/article/2022030168261
체첸·타타르·소수민족···우크라서 ‘反러시아’로 뭉친 외국인 자원군 (msn.com)
https://blog.naver.com/cbg6218/222953652519
소련 공군기들이
핀란드에 투하한 것은
폭탄이 아니라
굶주리는 핀란드 사람들에게
빵을 투하한 인도적인 일이었다고 선전한다.
이러한 변명에
핀란드군은
소련군에 저항하기 위해 만든 화염병에
몰로토프의 이름을 붙여
몰로토프 칵테일이라고 부르며
소련에서 받은 빵에 대한 보답으로
칵테일을 주는 상호교류를 시작한다.
핀란드 내의 술을 독점 판매하는 국영기업인
알코(Alko)에서 만든 45만여 개와
사제로 만든 10만여 개는
대전차 무기가 없던 핀란드군이
소련군 전차에 대항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었다.
몰로토프 칵테일 공격은
후미가 약했던 소련군 전차에 많은 피해를 줬다.
화가 난 소련군이
핀란드의 유리병 공장을 폭파해 버릴 정도로 피해가 컸다.
초기에 승기를 잡으려고 전력을 집중했던 소련은
거칠고 빈약했던 핀란드의 도로망으로 인해 난관에 봉착했다.
거기에
핀란드군의 몰로토프 칵테일 세례까지 받아
소련군의 전차는 피해가 갈수록 커졌고
스키부대의 게릴라식 전투에
소련 육군의 전투 피로도는 점차 가중됐다.
소련과 핀란드는
빵과 칵테일을
서로 주고받으며 치열한 공방을 펼쳤다.
전투가 계속되면서
핀란드는
군수물자가 부족해지기 시작했고
스탈린도
추가 병력을 증원했음에도 전선에 별다른 변화가 없자
봄이 오기 전인 1940년 3월 6일 서둘러 평화협정을 맺는다.
http://m.munhwa.com/mnews/view.html?no=2019040101032212000002